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33화 (258/1,027)

< (6). 뿍뿍이와 카카 -2 >

*          *          *

휘이잉-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뿍- 뿍-

그리고 그 사이로, 거북이 한 마리가 차가운 마계의 바람을 가로지르며 한 발짝씩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뿍- 뿌뿍-

고독한 마계의 거북 뿍뿍이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저 곳에 맛있는 마령초가 분명히 있뿍!’

팍 파팍-!

뿍뿍이의 앞발이 빠르게 풀숲을 헤집고 들어가 마계의 차가운 땅을 파헤쳤다.

우우웅-

그러자 그 안쪽에서 낮은 공명음이 들려온다.

‘역시! 찾았뿍!’

신이 난 뿍뿍이는 빠르게 앞발을 놀려 숙련된 솜씨로 마령초를 캐 내었다.

마령초는 잎사귀도 맛있었지만, 굵직한 뿌리들이 더욱 먹음직스러웠기 때문에 조심스레 파 내야 한다.

아그작- 아그작-

보랏빛 잎사귀부터 맛있게 전부 해 치운 뿍뿍이는, 마령초의 뿌리를 조심스럽게 뜯어 먹기 시작했다.

‘뿍… 스멜…!’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이 달달한 마령초의 뿌리.

이 두툼한 굵기와 향을 보았을 때, 지금 뿍뿍이의 입 속에 들어간 마령초는, 100년도 넘게 묵은 상등품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뿍뿍이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상급 마령초를 섭취하셨습니다.]

[‘귀혼(龜魂)’의 수련치가 2.58%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귀혼레벨 : 99 / 숙련도 : 81.94% ]

아니나 다를까, 뿍뿍이가 섭취한 마령초는 상급의 마령초였다.

‘뿍, 엊그제 먹었던 전설등급 마령초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뿍. 그거 몇 개만 더 먹으면 귀혼 수련치를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뿍…!’

전설 등급의 마령초는, 99레벨이나 된 뿍뿍이의 귀혼레벨을 무려 17.5%만큼이나 한 번에 올려 주었다.

뿍뿍이는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며칠만 더 영초(靈草)들을 섭취하면 귀혼을 MAX레벨까지 찍을 수 있겠뿍…!’

귀혼레벨이 오를수록, 뿍뿍이는 자신의 안에 있는 에너지가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난 빡빡이보다 멋진 거북이로 진화할거다뿍!’

사실 처음에는, 영초들을 먹는다고 해서 뿍뿍이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뜬다거나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뿍뿍이의 귀혼이 점점 강해지면서 뿍뿍이는 조금씩 계속 변해온 것이다.

처음 뿍뿍이에게 왔던 변화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온 변화가 바로 귀혼에 관한 시스템 메시지와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귀혼에 관한 정보창을 확인한 뿍뿍이는, 엄청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귀혼의 레벨은, 영기 가득한 영초(靈草)나 영물(靈物), 영단(靈丹) 등을 섭취하면 성장시킬 수 있다.]

[귀혼이 성장할수록, 귀룡(龜龍)은 더욱 강한 잠재력을 갖게 되며, 귀혼의 레벨이 50이 넘어가면, 특정 조건을 충족할 시 진화할 수 있다.]

‘진화…! 난 진화를 할거다뿍!’

뿍뿍이는 영물이기는 했지만, 이 시스템 메시지에 나오지 않은 정보까지 알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뿍뿍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귀혼의 숙련도와 레벨을 올리는 것 뿐이었다.

‘멋진 거북이가 되어 빡빡이의 콧대를 눌러주겠뿍!’

뿍뿍이는 자신의 동료 중 하나인 카르세우스를 잠시 떠올렸다.

뿍뿍이가 보기에 가장 멋들어진 외모를 가진 소환수는, 바로 신룡인 카르세우스였다.

‘뿌욱! 카르세우스같이 잘생겨지고싶뿍!’

그리고 동료 소환수들을 떠올리자, 문득 이안의 품이 그리워졌다.

‘내 악덕 주인은 잘 있겠뿍…? 일을 좀 많이 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따라 주인놈이 보고싶뿍…!’

이안과 미운 정이라도 들어 버린 것일까?

뿍뿍이는 요즘들어 이안과 함께했던 치열한 전투들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아… 그래도 열일곱 시간 전투 후에 달콤한 미트볼 한 알은 정말 꿀맛이었뿍…!’

주인과 떨어져 지낸 두 달 이라는 시간.

‘과거미화’ 라는 몹쓸 것이 뿍뿍이의 기억을 조작하기 시작한 듯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주인놈이 아예 소환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는다뿍. 혹시 날 잊어버린 건 아니겠뿍…?’

그런데, 뿍뿍이가 이런저런 아련한 상념을 하고 있던 바로 그 때.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 하나가 뿍뿍이의 시야에 떠올랐다.

[주인 ‘이안’이 당신을 소환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무려 한 달여 만에 날아온 이안의 소환 메시지!

“뿍…!”

너무나도 반가웠던 나머지, 곧바로 소환에 응해버리는 우를 범할 뻔했던 뿍뿍이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뿍…! 여기서 바로 소환에 응해버리면, 난 너무 쉬운 거북이가 되어 버린다뿍.”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힌 뿍뿍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이안의 소환을 거부했다.

“싫뿍! 난 안 가겠뿍!”

[주인 ‘이안’의 소환을 거부하셨습니다.]

다시 떠오른 메시지를 힐끗 응시한 뿍뿍이는, 초조한 표정이 되어 메시지 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설마 한번만 소환하고 포기하는 건 아니겠뿍…? 분명히 주인도 내가 보고싶을 거다뿍!’

그러나 1분, 2분이 지나도, 이안의 소환 메시지는 다시 날아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뿍뿍이는 뱃 속에 들어간 마령초가 잘 소화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주인놈! 빨리 다시 날 소환해라뿍!’

그렇게 시간이 5분정도 더 지났을까?

뿍뿍이의 커다란 두 눈에서 서러움의 눈물이 찔끔 나오기 직전!

기다렸던 이안의 메시지가 또다시 날아왔다.

[주인 ‘이안’이 당신을 소환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뿍뿍이는 참지 못하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뿍! 갈거다뿍!”

그리고 뿍뿍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우우웅-

[주인 ‘이안’의 소환에 응하셨습니다.]

[마계 95구역으로 이동합니다.]

*          *          *

이안은 자신 앞에 하얀 빛무리와 함께 나타난 대두 거북이의 실루엣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짜식이, 비싼 척 하기는.”

위이잉-!

낮은 공명음과 함께 나타난 한 마리의 대두 거북이.

이안이 뿍뿍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뿍뿍아, 그동안 잘 지냈냐?”

그리고 뿍뿍이는, 이안을 보자마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뿍! 주인아! 보고싶었뿍!”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이산가족의 극적인 상봉을 연상케 하는 이 감동적인 순간!

감정이 격해진 뿍뿍이와는 달리, 이안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야, 뿍뿍아. 너 언제부터 말 할 수 있게 된 거야?”

이안은 뿍뿍이가 말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모른다뿍! 그런데 갑자기 말을 할 수 있었다뿍!”

이안은 속으로 잠시 생각했다.

‘뭐지? 혹시 뿍뿍이가 그 새 진화를 하기라도 한 건가?’

이안이 예리한 눈으로 뿍뿍이를 한 차례 훑어 보았다.

하지만 진화했다기에는, 뿍뿍이는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흐음….”

이안은 뿍뿍이의 정보창을 한 번 열어 보았다.

‘혹시나 뭔가 달라진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살펴 보아도, 뿍뿍이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뭐지…?’

어쨌든 뿍뿍이가 말을 하게 된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고, 이안은 그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었다.

“짜식, 어쨌든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그동안 푹 쉬었지?”

순간, 뿍뿍이의 몸이 얼음처럼 경직되었다.

“뿍…? 나 별로 못 쉬었다뿍. 지금도 사실 힘들다뿍. 주인 얼굴 봤으니 다시 돌아가겠다뿍.”

쪼르르 어디론가 기어가기 시작하는 뿍뿍이의 등껍질을, 이안이 한 손으로 움켜쥐어 쭉 당겼다.

뿍- 뿍- 뿌뿍-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한 애처로운 눈빛을 라이에게 보내는 뿍뿍이!

하지만 오랜 친구인 라이조차 뿍뿍이의 눈빛을 외면하고 말았다.

“크르릉-! 다시 뿍뿍이와 함께 전투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번에는 빡빡이를 응시했으나, 빡빡이는 오히려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내 멋진 친구가 돌아왔군. 철야근무의 고통을 함께 나눌 전우가 생겨 무척이나 행복하다.”

울상을 짓는 뿍뿍이의 눈 앞에, 이안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쪼그려 앉았다.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마음대로 갈 수 없지.”

이안의 말에 뿍뿍이가 작은 항변을 했다.

“올 때도 마음대로 온 건 아니다뿍! 주인이 소환해서 올 수 있었뿍!”

말대꾸를 하는 버릇없는 소환수를, 이안은 가벼운 꿀밤으로 응징했다.

콩-

“시끄럽다. 아무튼, 오랜만에 왔으니까 이제 일 하자 뿍뿍아.”

“뿌욱….”

뿍뿍이는 잠시 우울한 눈을 하고 앉아있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이안의 가방을 두들겼다.

“주인, 그럼 일 하기 전에 미트볼이라도 하나 줘라뿍. 그거라도 먹어야 일 할 힘이 날 것 같뿍!”

그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 구석에 쟁여져 있는 마약미트볼을 오랜만에 꺼내어 뿍뿍이에게 건네었다.

“그래, 내가 인심 좀 썼다. 먹고 힘내라 뿍뿍아.”

뿍뿍이는 무려 세 알이나 건네는 이안의 씀씀이에, 감동하고 말았다.

“뿌욱…! 역시 멋진 주인이었뿍…!”

뿍뿍이는 무려 두 달 만에 먹는 미트볼을 정신없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혀 끝을 타고 흐르는 이 자극적인 미트볼의 맛이, 뿍뿍이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뿌우욱… 행복하다뿍…!”

단순하기 그지없는 뿍뿍이를 보며 이안이 실소를 짓고 있을 때.

뒤쪽에서 둘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카카가 쫄래쫄래 날아와 뿍뿍이를 응시했다.

“주인아, 저 바보같은 거북이 이름이 뿍뿍이냐?”

“응, 쟤가 뿍뿍이야.”

순간, 미트볼을 먹던 뿍뿍이의 시선이 카카를 향해 홱 돌아갔다.

찌릿-!

그리고 그 강렬한(?) 눈빛을 받은 카카가 움찔 했다.

“…?!”

그에 이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야, 카카. 너 설마 쟤한테 쫄은 거야? 하긴… 네 능력치면 쟤한테 물려도 한방에 골로 가긴 하겠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뿍뿍이를 응시하던 카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이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게 아니다 주인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카카의 진지한 말에, 이안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응? 뭐가?”

카카의 말이 이어졌다.

“저 거북이는 분명…!”

“…?”

카카가 뜸을 들이자, 주변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을 향해 모아졌다.

“일곱 전설의 마지막 한 조각이다…!!”

밑도 끝도 없는 카카의 말에, 이안이 다시 한번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일곱 전설은 대체 뭔데?”

그런데 이안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카카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나왔다.

“그건 내가 알려주도록 하지.”

이안의 시선이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을 향해 움직였고, 그곳에는 다름 아닌 카이자르가 앉아 있었다.

“음? 일곱 전설이 뭔지 네가 알아?”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나 뿐 아니라 사실 이안 너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지.”

이안의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엥? 그게 뭔데?”

카이자르의 시선이 천천히 카르세우스를 향해 돌아갔다.

“저 솜뭉치가 말하는 일곱 전설이란… 아마 카르세우스가 속해 있는 일곱 신룡의 전설을 의미하는 걸 거다. 만약 저 놈의 말이 맞다면, 뿍뿍이는… 카르세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신룡 중 하나의 핏줄이라는 얘기지.”

그에 주변에 있던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흥미롭게 얘기를 듣고 있던 빡빡이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건 좀 이상한데…. 뿍뿍이는 분명 우리의 일족이다.”

카이자르의 말에 호기심이 더욱 생긴 일행은, ‘뿍뿍이 신룡설’의 근원인 카카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에, 카카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카이자르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 (6). 뿍뿍이와 카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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