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뿍뿍이와 카카 -1 >
“후우! 힘 들었어.”
이안은 눈 앞에 쓰러져 가는 거대한 마수를 응시하며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혔다.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인 녀석은 지금까지 처음 만나는 것 같아. 저 녀석이랑 비슷한 마수를 연성해 낼 방법은 없을까?’
100차원의 관문.
그 안에서 이안이 만난 상대는, 거대한 골렘의 외형을 가진 영웅 등급의 마수였다.
놈은 기본적으로 탱커 형 마수였지만, 공격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으며, 모든 상태이상에 완전 면역을 가진 데다 스스로 생명력도 회복하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빡빡이도 훌륭한 탱커지만… 저런 탱커가 하나 더 있으면 파티를 운용하기 더 쉬워질 텐데….’
이안은 보통 보스형 몬스터를 레이드 할 때, 가지고 이는 소환수들의 상태이상 효과들을 활용하여 적의 발을 최대한 묶어놓는 작업을 먼저 한다.
그리고 자신의 순발력에는 버프를 걸어서 순발력의 차이를 극대화 시킨 뒤, 그것을 베이스로 전투를 풀어가는 방식을 가장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아무런 cc기도 먹히지 않았으니, 확실히 고전할 만 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겼으니까 됐지 뭐.”
이안은 다음에 세르비안을 만날 일이 있으면, 저 골렘의 연성정보에 대한 것을 물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무너진 골렘의 사체 위로 게이트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이안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금 주변이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띠링-
[100차원의 관문을 성공적으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마계 99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새까맣게 변한 이안의 시야에, 새하얀 글씨로 두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으며, 잠시 후 어두웠던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마계 99차원’에 진입하셨습니다.]
[최초로 100차원의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명성을 15만 만큼 획득합니다.]
[사방에서 강력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움직임이 5%만큼 느려집니다.]
이안이 관문을 통해 이동한 곳은, 깎아지듯 높은 절벽 위였다.
아래쪽에 펼쳐진 널따란 마계평원이 한 눈에 담길 정도로 탁 트인 시야.
이안은 주변을 슬쩍 돌아본 뒤,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여기… 완전히 내 스타일인데?”
이안의 기분이 좋아진 이유는 간단했다.
평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마수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0차원까지 등장했던 마수들과 다른 종류의 마수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더 높은 단계의 마수들이 아닌 비슷한 등급의 마수들만 보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마수 연성술 숙련도를 올리기에 딱인 맵이야.’
게다가 이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몰이사냥이었다.
절벽 아래쪽으로 향하는 이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 * *
훈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지? 왜 반응이 없는 거지?’
훈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히든 퀘스트가 공유되었다는 메시지를 봤으면… 가만히 있을 형이 아닌데…?’
이안의 성격상,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마자 자신에게 곧장 개인 메시지를 보냈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무려 30초가 지났음에도 이안에게서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뭐지? 설마 접속 중이 아니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이 시각.
이안이 카일란에 접속하지 않고 있을 확률은, 무기 강화를 5연속 성공할 확률보다 낮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이 날 도왔어…!’
훈이는 이안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접속여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 이안이 보지 못했던 메시지를 봐버리기라도 한다면… 억울함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좋아, 이안형놈이 메시지를 보기 전에, 이 퀘스트를 끝내 버리는 거야!’
사실 훈이의 예상은 반 정도만 맞는 것이었다.
이안은 접속 중 이었지만, 훈이의 메시지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훈이의 퀘스트 공유 메시지는, 이안이 100구역 관문에서 혈투를 벌이는 동안 날아왔다.
한데 이안은, 난이도가 높은 중요한 전투를 해야 할 때면,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를 꺼놓는다.
집중력이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퀘스트 공유 메시지를 보지 못한 것.
어찌 됐든 훈이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이안형이 퀘스트 정보창을 최대한 늦게 열기를 바랄 수 밖에….’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훈이를, 카노엘이 툭툭 건드렸다.
“훈아, 뭐해? 세일론님이 기다리시는데?”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훈이가,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아, 잠깐 뭐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죄송합니다, 세일론님.”
세일론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훈이가 카노엘을 슬쩍 응시한 뒤 다시 세일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세일론님.”
“말씀하십시오.”
“혹시 뛰어난 소환술사가 없다면, 여기 카노엘 형도 파티에 함께 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훈이의 말에 카노엘은 살짝 놀랐고, 세일론의 시선이 카노엘에게로 움직였다.
“흐으음….”
훈이가 말을 이었다.
“이 형이 레벨은 150정도로 높은 편이 아니지만, 실력이 꽤 좋거든요. 이번에 마계 컨텐츠가 열리면서 등장한 히든 클래스 중에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강력하기도 하구요.”
그 말에 세일론의 안색이 밝아졌다.
150레벨이라면 길드의 다른 소환술사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수준의 레벨이었지만, 3차 업데이트와 함께 생긴 새로운 히든클래스의 주인이라면 얘기가 달랐던 것이다.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희야 환영이죠.”
카노엘이 고맙다는 듯 훈이를 응시했고, 훈이는 씨익 웃어보였다.
카노엘의 시선이 다시 세일론을 향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세일론님.”
세일론이 카노엘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카노엘님.”
* * *
‘진마(眞魔)’란, 말 그대로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마족 이라는 뜻이었다.
이라한이 얻은 ‘전투마’ 클래스는, 마계에서 유저들이 얻을 수 있는 듀얼 클래스 중 하나였지만, 이라한에게는 이제 듀얼 클래스가 아닌 메인 클래스가 된 것이다.
그것도 ‘광기의 전사’ 라는 히든 클래스로 얻게 된 것.
‘후후, 지금 당장이야 클래스 숙련도 때문에 다른 랭커들에 비해 훨씬 약해졌겠지만… 지금부터 성장속도가 다를 테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지.’
이라한은 몇 시간 동안의 사냥으로 쌓인 마기를 응시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속도라면 노블레스는 몰라도 상급 마족 까지는 어렵지 않게 승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마룡 칼리파도 깨어났고… 파괴마들이 인간계를 침공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마계에서 힘을 키우면 되는 건가?’
마룡 칼리파의 봉인을 푸는 건, ‘광기의 전사’ 클래스로 전직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히든클래스로의 전직조건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라한은 이 퀘스트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계가 마계에 흡수되기를 원했으니까.
‘후후, 그렇게만 된다면, 완전히 내 세상이 될 텐데 말이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라한은 마족이었고, 마계에서의 성장이 훨씬 빠른 상황이었으니, 인간계가 마계에 흡수되는 것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라한이 진마의 길을 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처음에는 퀘스트의 진행을 무척이나 망설였었다.
마검사 클래스를 잃는다는 패널티는 물론, 진마가 되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점이 ‘마계’ 안에서만 효력이 있는 것들이었기에 애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돌리게 된 강력한 계기가 있었다.
[어차피 인간계는 마계에 흡수될 걸세.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지.]
그것은 바로 마왕 서열 10위인 강력한 파괴마 ‘마하뮤’의 설득.
마하뮤는 이라한에게 인간계 침공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해 주었고, 여기에 이라한이 맡은 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면, 막대한 보상을 줄 것도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느끼기에 이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회였다.
‘다른 놈들을 압도하고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완벽한 기회야.’
일반 유저들에게 이라한은, 아직까지 카일란 한국서버의 비공식 랭킹 1위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중부대륙이 열리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투기장 pvp에서 우승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결코 랭킹1위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이라한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샤크란이나 레미르는 정말 강력해.’
어차피 20위권 안쪽에 있는 유저들의 강력함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등한 수준이었기에 랭킹1위 라는 타이틀이 크게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라한은 그게 싫었다.
그는 압도적인 랭킹 1위로 모두의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저벅- 저벅-
마계 105구역에 있는 던전 하나를 탈탈 털어 사냥한 이라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검사 클래스의 상실로 인해 다른 유저들과 벌어진 차이를 메우려면, 한 시도 쉴 틈이 없었다.
‘크크… 기다려라. 이 내가 곧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도록 하지.’
* * *
마계 95구역.
이안은 하루만에 99구역부터 96구역까지를 주파하고, 95구역의 필드에 입성하였다.
이는 필드의 마수들을 전부 사냥하지 않고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마수들만 사냥하면서 움직였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생각 같아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마수들을 다 잡으면서 가고 싶지만… 그랬다가 늦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하니까.’
앞으로 10일 내에 80구역에 있는 악마의 성에 도착해 마왕 레카르도를 만나야 했다.
그러려면 당연히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다.
10일이라는 제한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시간이 남더라도 80구역까지 도달한 뒤에 사냥을 하는 것이 옳았다.
94구역으로 가는 포탈을 찾아낸 이안은, 그 앞의 공터에 있는 바위에 잠시 걸터 앉았다.
“후우, 잠시 쉬었다 가자 얘들아.”
이안이 쉬어가자는 말은 일행에게 언제나 달콤한 제안이었고, 그 말이 끝나자 마자 가신들과 소환수들은 공터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쉬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이안은, 자신의 앞에 둥둥 떠있는 카카를 응시했다.
그러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놈은 무슨 노예라기보다는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야.’
보면 볼수록 뿍뿍이 같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안의 시선을 느꼈는지, 카카가 이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그러냐, 주인.”
“뭐가?”
“방금 비웃었잖아!”
“어떻게 알았지?”
카카가 이안을 째려보았다.
찌릿-
“역시 똑똑하다, 카카. 아이큐 7천 다워.”
“….”
아이큐 7천이라는 말은, 카카의 지능이 7천임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었다.
카카와 말장난을 하며 놀던 이안은, 문득 벌써 못 본지 두 달이 넘어가는 뿍뿍이가 생각났다.
‘그나저나 뿍뿍이 이 놈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안은 결코 뿍뿍이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 머리크고 밉상맞은 거북이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단지 틈날 때 마다 소환을 시도했지만, 뿍뿍이가 자신의 소환을 거부한 것 뿐이었다.
‘뭐, 좀 집요하게 소환을 시도했으면 소환됐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동안 통솔력이 부족한 탓에, 이안이 뿍뿍이를 방치한 것도 오래 얼굴을 보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이긴 했다.
“그러고 보니, 통솔력이 이제 남을 것도 같은데…?”
이안은 그동안 레벨이 많이 올랐다.
현재 이안의 레벨은 무려 195.
당연히 통솔력도 많이 올랐을 것이었다.
“어디보자….”
그리고 정보창을 확인한 이안이 씨익 웃었다.
정확히 뿍뿍이를 소환할 수 있을 만큼의 통솔력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좋아, 오랜만에 우리 거북님 존안 좀 뵈어 볼까?”
이안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카카가 물었다.
“거북님은 또 뭐냐, 주인.”
그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너보다 아주 조금 쓸모 있는 친구가 하나 있어.”
“…!!”
카카의 양 볼이 심통맞게 부풀어 올랐지만, 이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리웠던(?) 소환주문을 외쳤다.
“뿍뿍이, 소환!”
< (6). 뿍뿍이와 카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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