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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222화 (248/1,027)

< (2). 분란의 씨앗 -3 >

*          *          *

세라핌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더 들은 뒤, 이안은 곧바로 노예시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노예시장의 주인인 다이스를 만날 수 있었다.

다이스와 친분이 있던 세라핌이, 미리 다이스에게 언질을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을 처음 대면한 다이스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호오, 상급마족이 온다고 해서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반마였군.”

다이스는 몸집이 좀 거대한 편인 세라핌과는 다르게, 왜소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겨지는 분위기마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노블레스 등급의 마족답게, 다이스의 주변으로 퍼지는 아우라는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이안이라고 합니다.”

“후후, 게다가 소환술사라… 정말 특별한 손님 이시구만. 클클….”

대번에 자신의 클래스까지 알아본 다이스를 보며, 이안은 조금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카르세우스가 서있어서 알아챈 것이려나?’

어찌되었던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기에, 이안은 얼른 인벤토리에서 노예계약서를 꺼내어 다이스에게 내밀었다.

“물건은 가져왔습니다.”

다이스는 곧바로 이안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러자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계약서가 팔랑거리며 다이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계약서를 받아들고 확인한 다이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물건은 확실하군. 이 귀한 물건을 자네가 어떻게 얻었는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네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원하는 물건을 얻은 다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그의 누런 이빨이 입술 사이로 슬쩍 드러났다.

이안이 마주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뭐, 어쩌다보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스가 피식 웃었다.

“자네 오늘 계 탄 것일세.”

말을 마친 뒤, 작은 다이스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따라와. 최하층으로 안내하도록 하지.”

다이스가 허공에 뜬 채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안은 재빨리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이안의 머릿속은, 이곳에 오기 전 세라핌에게 들었던 정보들로 가득 차 있었다.

*          *          *

지이잉-

넓디 넓은 마계 100구역의 최 남단.

그리고 그곳에 있는 거대한 포탈.

황량한 황야와 같은 지형에 덩그러니 떠올라있는 붉은 빛깔의 포탈은, 무척이나 위압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만 같던 이 공간.

그런데 잠시 후, 한 남자가 붉은 포탈 바깥으로 퉁겨져 나왔다.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멀찍이 튕겨져 나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축 늘어진 한 사내.

“제기랄. 진짜 오지게도 쎄군.”

거의 넝마가 된 갑주를 털며 천천히 일어서는 사내는, 바로 타이탄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샤크란이었다.

“어차피 한동안 90번대 구역으로 진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거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프겠는걸.”

샤크란이 천천히 걸음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하자, 근처에 은신해 있던 타이탄 길드의 길드원들이 튀어나와 그를 부축했다.

그 중 가장 앞쪽에서 튀어나와 가장 먼저 샤크란의 어깨를 받쳐준 남자는 광휘의 기사 세일론이었다.

“샤크란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살아나오셨네요?”

듣기에 따라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상한 어감을 가진 그의 말에, 샤크란이 인상을 팍 쓰며 대꾸했다.

“인마, 너는 길마가 살아 돌아온 게 불만이냐?”

그에 세일론이 살짝 주춤하며 대꾸했다.

“아, 아니 왜 또 이러십니까아. 그런 말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오.”

세일론의 앙탈(?)에 샤크란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확 씨, 징그럽다, 이놈아.”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인 샤크란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자릿수대 구역으로 진입하는 이 포탈 말이야.”

샤크란의 말에, 타이탄 길드원들의 시선이 전부 그의 입으로 모아졌고,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관문들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어떤데요?”

“우선 여럿이 동시에 트라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샤크란은 포탈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괴물 같은 녀석을 슬쩍 떠올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열 명, 아니 백 명이 들어가더라도, 진입한 인원 모두는 각기 다른 시험의 방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는 영웅등급의 마수 한 놈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샤크란의 이야기를 듣던 길드원 모두는, 그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100구역의 관문에 처음으로 도전한 샤크란의 말은 곧 엄청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일론이 샤크란을 향해 물었다.

“마스터께선 그럼 놈을 잡으신 겁니까?”

샤크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내가 여기로 튕겨 나왔겠냐? 99구역으로 이동했겠지.”

세일론이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아니, 살아 돌아오셨길래…. 그럼 마수가 마스터를 이겨놓고도 살려서 돌려보내줬단 말입니까?”

샤크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놈에게 처참하게 당했지. 봐주는 것 따위는 없었어. 다만 내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지자 자동으로 바깥으로 튕겨 나가지더라고.”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세일론을 비롯한 타이탄 길드의 유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놈은 어땠습니까? 그래도 마스터시라면 비등하게 싸웠겠죠?”

한 유저의 말에 샤크란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턱도 없는 차이로 무참히 깨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놈의 생명력을 절반도 채 닳게 하지 못했어.”

그 말에 유저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샤크란이 누구였던가?

카이몬 제국 투기장에서 이라한과 나란히 1위를 한번씩 거머쥔, 최강의 유저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이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며 당했다는 것은, 다른 이들은 덤벼보지도 못할 정도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200레벨은 넘긴 뒤에 다시 도전해 봐야 겠어.”

샤크란의 말에 다른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지만, 세일론은 눈을 반짝이며 포탈을 응시하고 있었다.

“세일론. 뭐해? 안갈거야?”

샤크란의 물음에 세일론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생명력 10% 남기고 튕겨져 나온다면서요.”

“그런데?”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죽지 않는다면 한번 들어가서 놈을 상대해 보고 나오렵니다.”

세일론의 말에 샤크란이 피식 웃었다.

“좋을 대로.”

패널티가 없다면 한번쯤 무지막지한 ‘놈’의 강력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샤크란이 인벤토리에서 물약 하나를 꺼내어 세일론에게 건내었다.

“이거라도 빨고 들어가라.”

그에 세일론의 두 눈이 반짝였다.

“오…! 이 귀한걸!”

샤크란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도핑이라도 해야 뭐라도 좀 해보고 나올 거 아냐. 다 싸우고 나면 분노의 도시로 돌아오도록 해. 우린 그 안쪽에서 정비하고 있을 테니까.”

세일론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배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세일론은 지체 없이 포탈 안쪽으로 몸을 날렸고, 나머지 타이탄 길드의 일행들은 걸음을 돌려 분노의 도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크란은 잠시 고개를 돌려 세일론이 사라진 포탈 안쪽을 응시했다.

‘200레벨 찍는 것으로도 부족해. 듀얼클래스라도 얻고 나면 트라이해볼 만 하려나….’

‘놈’을 상대하느라 소진한 체력이 많이 돌아왔는지, 샤크란의 무거웠던 발걸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타이탄 길드의 일행이 사라지고 나자, 100구역의 포탈 앞은 다시 아무도 없던 황량한 공터로 변하였다.

사실 마계 110구역까지만 하더라도, 관문이 있는 포탈 앞은,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유저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관문을 트라이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예 유저끼리 거래를 하거나 파티를 꾸리는 만남의 장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거점이나 마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마계 외곽지역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110구역을 통과한 유저들은 세 자릿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었고, 게다가 100구역까지 도달한 인원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100구역의 관문 앞은 이토록 조용한 것이었다.

휘이잉-

을씨년스러운 마계의 바람이 포탈의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때.

부스럭-

포탈 근처에 있던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작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뿍-

머리 크고 짧은 다리를 가진, 늠름한 자태를 가진 거북이 한 마리!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뿍뿍이였다.

뿍- 뿍- 뿍-

한걸음 걸을 때 마다 뿍뿍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포탈 앞까지 다가온 뿍뿍이는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돌리며 주변에 누가 없는지 확인했다.

“뿍, 인간들은 전부 돌아간 거겠뿍…?”

뿍뿍이는 그 어떤 인간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을 마주쳤다가 유명한 거북이인 자신을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117구역에선 조금 위험했뿍!”

뿍뿍이는 이안의 전투영상에 자주 등장했고, 또 그 외모가 워낙 독보적(?)이다보니 많은 유저들에게 알려진 이안의 마스코트와 같은 소환수였다.

덕분에 별 생각 없이 마계를 돌아다니다가 팬(?)들의 손에 잡혀 이안에게로 끌려갈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뿍뿍이는 인간들을 멀리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없는… 더 깊숙한 마계로 가야겠뿍!”

뿍뿍이는 늠름한 걸음걸이로 한걸음 한걸음 포탈을 향해 움직였다.

뿍- 뿍- 뿍-

그리고 붉은 포탈의 문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쿠웅-

둔탁한 소리를 내며, 뿍뿍이의 머리가 포탈에 막혀 튕겨져 나왔다.

지금까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이상한 현상에, 뿍뿍이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뿍! 이 포탈 고장났뿍! 왜 이러냐뿍!”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뿍뿍이는 다시한번 있는 힘 껏 몸을 포탈 안으로 밀어 넣었다.

터엉-!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머리 전체를 울리는 고통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 한줄 뿐이었다.

[주인 ‘이안’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맵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뿍뿍이가 무척이나 심술난 표정이 되었다.

“뿍! 게으른 주인 놈! 아직 여기도 안 들어가 보고 뭐했냐뿍!”

하지만 뿍뿍이는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 바보같은 거북이가 아니었다.

뿍뿍이는 미련없이 걸음을 돌려 또다시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뿍- 뿍- 뿍-

“우리 라이는 잘 살고 있겠뿍?”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는 뿍뿍이.

라이를 떠올리자 자신에게 미트볼을 양보하곤 했던 핀의 얼굴도 같이 떠올랐다.

“뿍…. 악덕 주인 밑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료들이 그립뿍….”

뿍뿍이는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을 하며, 무언가를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라뿍. 빡빡이보다 멋진 거북이가 되면 그 때 돌아가겠뿍.”

뿍뿍이는 오늘도 고독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등에 진 등껍질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 (2). 분란의 씨앗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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