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21화 (247/1,027)

< (2). 분란의 씨앗 -2 >

*          *          *

세라핌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제법 길었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1. 분노의 도시 노예시장의 주인인 노블레스 마족 ‘다이스’가 노예계약서를 급하게 찾고 있고, 노예계약서를 가져오는 이에게 1회에 한해 노예시장 최하층을 개방하겠다고 공언했다.

2. 노예시장의 최하층은 평상시엔 마왕들에게만 오픈한다는 룰이 적용되어있는 곳이었고, 일 년에 한 번 반나절 동안만 노블레스 이상의 마족들에게 오픈되는 곳이었다.

3. 노예시장 최하층에는 노블레스 마족인 세라핌조차도 탐이 날 정도로 희귀한 노예들이 많이 매물로 나오는 곳이다.

세라핌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뭔가 굉장한 기회(?)라는 느낌을 받았음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노예계약서가 뭐라고 노예시장의 주인이라는 분이 그렇게 대단한 특전을 내건 거죠? 게다가 노예시장의 주인씩이나 되는 노블레스 마족이 노예계약서 한 장 없어요?”

이안의 물음에 세라핌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노예계약서의 가치를 생각보다 너무 모르고 있군.”

“…?”

“확실히 노예계약서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능력 자체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지.”

노예계약서의 효용은, 원래대로라면 노예를 고용할 수 없는 평마족 이하의 마족들에게만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상급마족 이상의 마족들에게도 고용할 노예의 가격을 반절로 깎을 수 있다는 매리트가 있기는 했지만,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닌 수준.

사실 이안이 의아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요?”

“하지만 노예계약서는 무척이나 희귀해.”

“예?”

“마계 전체에서 매 년, 단 세장만 발급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 희귀도가 상상초월이란 말이지.”

“음…?”

간혹 그런 물건이 있다.

대단하다고 할 수 없는 물건임에도, 희귀도 하나만으로 그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물건.

그렇다고 해도 아직 모든 의문점이 전부 풀린 것은 아니었기에, 이안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음… 그렇다고는 해도… 노블레스 등급이라는 노예시장의 주인이, 대체 노예계약서가 왜 필요한 걸까요? 그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이잖아요?”

세라핌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예쁜 딸이 있는 팔불출 아버지이기 때문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이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에…?”

“다이스는 노블레스이지만, 그의 딸인 ‘샤샤’는 아직 평마족이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스무 번째 생일선물로 노예를 갖고 싶어 했다는군.”

그제야 이안은 지금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명료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딸래미 생일선물 때문에 노예계약서가 필요한 거였어?’

어찌되었든 세라핌의 설명으로 미루어 봤을 때, ‘노예시장의 최하층’은 히든피스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지.’

이안의 시선이 다시 세라핌을 향했다.

“그럼 전 이걸 들고 다이스를 찾아가면 되는 건가요?”

이안이 노예계약서를 흔들거리며 얘기하자, 세라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퀘스트들을 비롯해 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아진 이안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안이 세라핌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세라핌님은 노예시장 최하층에 들어가 보신 적 있죠?”

“물론이지. 나는 매년 1회 최하층이 개방되는 날에는 빼먹지 않고 항상 노예시장을 방문하지.”

이안이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정보 좀 주세요.”

*          *          *

처음에는 무척이나 귀찮아하던 세라핌이었지만, 이안이 지속적으로 간곡히 부탁하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에 귀찮아하던 것과는 달리 제법 상세하게 아는 정보들을 설명해 주었다.

“일단, 좋은 노예를 고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부터 알려주도록 하지.”

“포인트요?”

“아무나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들이니,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기억하도록.”

세라핌이 말해준 첫 번째 정보는, 노예시장은 기본적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더 상등급의 노예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최하층이 아니고서야 그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였다.

“네가 갈 곳인 ‘최하층’ 또한 최하층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세 개 층으로 구성된 복층 구조의 공간이고, 당연히 가장 아래쪽에 있는 노예들이 상급 노예일 확률이 높다.”

“아하… 확실히 제게는 유용한 정보네요. 하지만 이게 그렇게 고급 정보에요? 노예시장을 활용해 본 마족들이라면 대부분 알 것 같은 정보인데….”

“그렇지 않다. 좋은 노예를 식별할 줄 모르는 놈들은 고용해보고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지.”

그 다음으로 세라핌이 말해준 정보는, 노예정보를 식별하는 방법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노예시장에서는 노예를 구입하기 전에 노예의 등급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상급마족 이상이라면 누구나 노예의 정보는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거의 절반 이상의 정보들이 블라인드 처리되어 있을 거야.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인 노예의 ‘등급’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확인할 수 없지.”

그 이유는 노예에 책정되는 가격에 상한선과 하한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예의 가격이 등급과 능력치에 따라 자유롭게 매겨진다면, 노예시장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알아서 굴러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높은 등급의 노예와 낮은 등급의 노예의 가격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낮은 등급의 노예를 사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예의 정보를 확인할 때, 필수적으로 구매자가 확인해야할 것은 노예의 종족이다.”

“아하. 노예는 마족이 아닌가봐요?”

“아니, 노예 중에 마족도 있다. 심지어는 상급 이상의 등급을 가지고 있던 마족도 있지.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다른 차원계의 다양한 종족들이 노예로 들어온다.”

“마계의 침략전쟁에 의한 전쟁노예 같은 개념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전쟁노예랄까…?”

“과거의 전쟁노예요?”

“지금 마계는 침략전쟁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차원계를 침공했었지. 그리고 그 당시 완전히 마계에 굴복한 종족들과 차원계가 우리 마계의 식민지가 되었어. 지금 노예로 들어오는 이들은 오래전 식민지가 된 차원계의 종족들이라고 보면 되지.”

“아하…. 만약 마계와 인간계의 전쟁에서 인간계가 완전히 굴복한다면, 인간들이 노예가 되어 노예시장에 나오게 되겠군요.”

“그렇지. 나도 지금이야 마족으로서의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근본은 인간일세.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든 인간계와의 차원전쟁을 막아보려 하는 것이고.”

“아하….”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버렸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세라핌은 이안에게 상급 노예일 확률이 가장 높은 종족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문엘프나 다크팬텀. 혹은 카라곤 중에 하나를 발견한다면, 계약해도 손해볼 일은 없을 거야.”

“오호….”

열심히 메모하는 이안을 보며 세라핌이 한 마디를 더 추가했다.

“문엘프는 밝은 보랏빛 피부를 가진 엘프의 생김새를 하고 있고, 다크팬텀은 거의 불투명한 탁한 몸을 가진 유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카라곤은 하프 드래곤 이라고도 불리우는 용같이 생긴 인간이지.”

“용같이 생긴 인간…? 은 대체 어떻게 생긴 건가요?”

“그건 가서 직접 보면 알아.”

“….”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라핌이 알려준 정보는, 노예들의 스킬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예에 관해 잘 모르는 놈들이 노예계약을 할 때, 쓸 데 없이 노예의 전투능력치를 비교해서 가장 공격력이 쎈 놈을 고르곤 하는데… 제발 그러지 마.”

“으음…?”

순간 이안은 뜨끔하는 것을 느꼈다.

세라핌의 얘기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왠지 그랬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마 최하층에 있는 모든 노예들의 전투능력치를 다 비교해서 제일 높은 놈으로 골랐을지도….’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이유를 물었다.

“왜죠?”

“노예를 일반적인 전투전력으로 쓰는 거야말로 정말 최악의 선택이기 때문이지. 효율이 제로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어째서요?”

“기본적으로 노예가 아무리 전투능력이 뛰어나봐야 상급마족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녀석은 없을 거고,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노예들이 가질 수 있는 노예만의 고유능력이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지.”

이안은 더욱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뭐지? 뭔가 또 새로운 컨텐츠인가?’

강한 전력을 추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기는 했지만,  그거야 가신을 등용하거나 소환수를 포획하는 등, 다른 부분에서도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때문에 이안은, 노예컨텐츠 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었다.

“오호, 예를 들어줄 수 있을까요?”

세라핌의 말이 이어졌다.

“우선 문엘프의 경우, ‘밤’이나 ‘달’과 관련된 조건부 광역 패시브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네.”

문엘프의 능력은,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아, 라이가 가진 패시브 능력 같은 것을 광역으로 얻을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다면 그것은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특히 달이 세 개인 이 마계에서는 더더욱 도움이 되겠어.’

세라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크팬텀의 경우에는, 전투능력이 정말 0에 수렴하지만, 기가 막힌 은신능력을 가지고 있지.”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투능력이 없는 은신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죠?”

“다크팬텀은 가지 못하는 곳이 거의 없고, 마기나 신성력을 제외한 어떤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게다가 일정시간동안 자신을 투명화 시킬 수도 있어서 위험지역을 정찰하는 데 엄청나게 특화되어있지.”

여기까지 들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좋은 능력이기는 한데… 문엘프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감이….’

하지만 세라핌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크팬텀 중에 가끔 ‘어둠의 영역’ 이라는 고유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있는데, 이게 진짜 대박이야.”

“‘어둠의 영역’이라…. 뭔가 멋져 보이긴 하는군요.”

“멋진 정도가 아니지. 어둠의 영역이 시전 되면, 일정시간동안 범위 내의 모든 적들의 시야가 사라져버려. 길어야 15초 정도긴 하지만… 대규모 전장에서 이 능력은 승패를 뒤집어놓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게다가 상태이상 면역도 모두 무시해 버리지.”

순간 이안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규모전투라면 누구보다도 빠삭한 이안이었기에, 그 능력의 진가를 바로 알아챈 것이었다.

‘진짜 끔찍한 능력이군. 난전 중에 광역으로 시야가 사라져 버리면, 아마 15초가 15년 같을 거야.’

마지막으로 카라곤의 고유능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카라곤… 이놈은 나도 아직 노예로 못 써 본 종족인데, 이놈이야말로 발견하면 무조건 계약해 버려야 될 놈이야.”

그 말에 이안의 기대치가 더욱 높아졌다.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데요?”

세라핌이 대답했다.

“공간을 왜곡시키는 능력.”

“음…?”

“공간을 지 마음대로 접었다 폈다 하는 놈이야. 얘가 있으면 단체로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보면 돼.”

“….”

“물론 재사용 대기시간이나 소모값 같은 게 있겠지만… 그래도 거의 그런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더라고. 내가 직접 사용해 본 것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이야.”

지금까지 열심히 추천 종족(?)들의 고유능력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있던 이안의 머릿속이, 순간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 안에 카라곤이라는 세 글자만이 남았다.

‘그래, 카라곤. 너로 정했다!’

하지만 이안은 이 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반나절 뒤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원래 인생이라는 게 뜻대로 다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 (2). 분란의 씨앗 -2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