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반인반마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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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커뮤니티의 마계 관련 게시판들은 난리가 났다.
원래부터 실시간으로 글이 리젠 되던 활발한 게시판들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실시간 채팅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단은 물론, 이안이 띄운 월드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안’ 유저가 최초로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 한 줄의 메시지는 마계에 있던 모든 유저들이 이안을 찾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혹시 마계에서 한번이라도 이안님 본 적 있는 분 없나요?
- 왜요? 반인반마 되는 방법이라도 물어보게요?
- 당연하죠.
- 헐, 님들 그걸 아직도 모름?
- 엥? 그러는 님은 알아요?
- 당연하죠.
- 헉! 뭔데요? 저도 좀 알려줘요.
- 악마의 순혈을 얻으면 반마가 될 수 있다고 카일란 공식홈페이지 공략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다들 그것도 안 읽어보신 거임?
- 하… 그걸 누가 몰라요? 악마의 순혈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거죠.
- 아하….
사실 ‘악마의 순혈’이 반인반마가 되는 데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정보는, 이미 공식홈페이지에 개발자 노트를 통해 이미 풀려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순혈을 얻는 루트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단서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 그런데 님들, 너무 순진하신 거 아님? 님이 이안이면, 순순히 다른 유저들한테 정보를 풀 거 같음? 나 같으면 최대한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지지 않게 어떻게든 정보 차단하고 최대한 꿀 빨 거 같은데.
- 하, 방법까진 바라지도 않고 힌트라도 어떻게 얻고 싶으니까 그렇죠.
- 근데 윗분, 제가 지금 112~115구역에서 며칠 째 사냥중이거든요? 지금 제가 있는 구역이 현재 뚫려있는 구역 중에 가장 깊숙한 지역인데… 여기서도 이안님 봤다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 으음… 110구역 수문장이 아직까지 버티고 서 있는 거로 봐선… 아직 110구역 안쪽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긴데, 그럼 대체 이안님은 어디 있는 걸까요?
이안이 최초로 마계에 진입했다는 메시지를 띄웠을 때도, 또 다른 어떤 유저가 최초로 초월등급의 장비강화에 성공했다는 메시지를 띄웠을 때도, 지금처럼 게시판이 활활 타오르지는 않았다.
그때도 다들 이안을 부러워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유저들도 시간이 지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고, 그랬기에 그저 부러움으로 그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는 것은, 마계 컨텐츠들 중 가장 핵심 컨텐츠인 듀얼 클래스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정보도 아직 커뮤니티에 풀린 것이 없는 것이다.
마계가 열린지 한 달도 훨씬 넘어간 이 시점에, 아직 듀얼클래스로 가는 어떤 단서도 잡지 못한 일반 유저들은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뜸, 단서를 누군가 찾아낸 것도 아니고, 아예 반인반마가 되는 데 성공해 버린 유저가 나타난 것.
그리고 여기에 대한 충격(?)은 상위권의 유저일수록 더했다.
특히 카일란 초기부터 랭킹 100위권 안쪽에 있던 최상위 랭커들은 이안이 무척이나 아니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 이안은, 자신들보다 한참 클래스가 떨어지는 후발주자에 불과한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레벨이 아직까지 랭킹목록에 노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
- 이안 저 놈은, 운 진짜 좋은 것 같음.
- 맞아요, 지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신규클래스에 심지어 레벨업 지옥인 소환술사면 아무리 높게 봐 줘도 160레벨 될까 말까 말까인데…. 무슨 치트라도 쓰는건지 귀신같이 신규컨텐츠 계속 선점하네요.
- ㅇㅇ 분명 뭔가 있음. 진짜 오지게 운 좋은거 아니면 LB사에 뇌물이라도 먹인 게 분명함.
- 그런데 이안 대체 마계는 어떻게 도는 건지가 궁금하네요. 신규클래스들 중에 제법 네임드 랭커들도, 마계 진입했다가도 120구역도 제대로 못 돌고 사망하던데….
- 아, 그건… 저번에 방송 보니까 가신 하나가 엄청 고레벨이더라구요. 어디서 운 좋게 고레벨 가신 주워서 겨우 마계 돌고 있는 듯.
- 으, 이안놈, 투기장이라도 한번 나오면 내가 발라줄 텐데.
- 윗님, ㅋㅋ 그건 아닌듯요. 전에 중부대륙 전쟁때 이라한이랑 샤크란이 이안 잠깐씩 상대하는 거 봤는데, 이안 전투능력 진짜 지립니다.
- 노노, 제가 이라한님께 직접 들었는데, 그땐 이라한님도 전력으로 싸웠던 게 아니래요. 사실 그렇잖아요. 레벨도 20~30이상 차이나는 전사클래스가 PVP 호구인 소환술사 따위랑 비등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그건 그렇지만….
이안이 활약하고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랭커들의 그에 대한 질투는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이안과 직접 맞상대해 본 몇몇 랭커들을 제외하고는, 최상위권에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이안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실, 이안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은폐한 것도 한몫 했다.
처음에야 귀찮아서 정보공개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국가를 새로 하나 세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뒤로는 철저히 자신의 능력을 은폐했던 것이다.
로터스 길드 내부적으로도, 일부러 이안 자신의 능력을 평가절하 시켜서 소문내도록 철저히 입을 맞췄을 정도로 이안은 철저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랭커들의 이안에 대한 이미지는, ‘단순이 운만 좋은 별것 없는 유저’ 정도로 인식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이안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고 있는 유저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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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도시 치안대장의 부탁 Ⅱ(히든)(연계)-
분노의 도시 치안대장을 맡고 있는 로로스는, 마계 원로회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하나 부여받았다.
:
(중략)
:
로로스의 부하 둘을 데리고 마계 100구역 외곽에 있는 어둠의 성소를 소탕하고 돌아오자.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조건 : ‘분노의 도시 치안대장의 부탁Ⅰ(히든)(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악마의 순혈, 중급 마정석x5
* 거절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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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깔의 로브를 두른 아름다운 여인.
홍염의 군주 레미르는,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쭉 읽어 내려가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우, 드디어 찾았어.”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옆에, 마족의 영혼이 하나 떠오르더니 킬킬거리며 웃었다.
[키킥, 축하해 레미르. 이제 너도 곧 악마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되겠네. 물론 아무리 빨리 퀘스트를 완수해도 최초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키키킥.]
카산드라의 말에 레미르의 고운 눈썹이 와락 일그러졌다.
“시끄러워, 카산드라. 나도 알고 있다고.”
레미르는 랭커들과의 연합으로 110구역을 뚫은 뒤, 빠르게 맵을 진행시켜 그들 중 가장 먼저 분노의 도시에 도착했다.
분노의 도시에서 악마의 순혈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찾았지.’
여기까지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퀘스트를 받아내기 바로 5분 전에, 이안이 반인반마가 되었다는 월드메시지를 읽어버렸다는 것.
당연히 경쟁심에 불타 쉬지 않고 달려왔던 레미르는, 닭 쫓던 개 마냥 허탈해질 수 밖에 없었다.
‘후우, 대체 이안이라는 녀석. 뭐 하는 놈인지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방금 반인반마가 되는 데 성공한 이안도 분노의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게 분명했다.
‘사무엘진이나 마틴은 이안의 능력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오히려 샤크란이 가장 이안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아.’
레미르는 루스펠 제국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원래 카이몬 제국 출신인 샤크란이나 이라한 보다는, 루스펠 소속 랭커인 사무엘진이나 마틴과 더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안에 대한 정보를 접할 때 그들을 통해 접하게 되었었고, 그래서 마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안을 얕잡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안에 대한 판단을 전면 수정해야겠어.’
레미르가 붉게 빛나는 자신의 지팡이를 슬쩍 움켜쥐며,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망해가는 루스펠 제국 황실이나, 타이탄길드 보다도, 내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조력자가 이안일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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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 뿌북-!
분노의 도시 외곽지역에 있는 한 깊숙한 던전.
웬 머리 큰 거북이 하나가 뒤뚱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뿍, 뿌뿍! 마계에는 힘이 가득 담겨있는 음식들이 많다뿍! 맛은 조금 없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뿍.]
오직 식탐 하나만으로 끊임없이 마계를 여행(?)중인 대두 거북 뿍뿍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자신을 소환하던 주인도, 최근에는 잠잠해졌다.
덕분에 뿍뿍이는 그야말로 신나게 마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주인이 조금 보고싶뿍. 하지만 지금은 자유가 더 좋다뿍.]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지만, 요즘 들어 뿍뿍이는 이안이 어디에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안의 기운이 움직이는 방향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할까?
가끔 미트볼이 그리워 이안을 찾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인놈이 소환하면 그때 보러가도 된다뿍. 그때까지 기다려야겠뿍.’
이안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이안을 찾아갈 능력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 자유를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소환하지 않아도 뿍뿍이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안은 계속해서 옆에 두고 부려먹으려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뿍뿍이는 영특한 거북이였다.
[으, 그래도 내가 빡빡이처럼 인간들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랑하고싶뿍.]
사실 뿍뿍이가 삐뚤어지게 된 계기(?)는, 빡빡이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뿍뿍이가 보기에 빡빡이는, 말도 멋지게 하고 반짝이는 멋진 외모를 가진 엘리트 거북이였기 때문이었다.
[나쁜 주인놈! 날 빨리 소환해줘라뿍. 그동안 약초 많이 먹어서 머리도 더 커지고 등껍질도 더 단단해졌다뿍. 얼른 자랑하고싶뿍!]
애정이 필요한 거북, 뿍뿍이는 또다시 맛있는 마계약초를 찾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뿍- 뿍- 뿍-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움직일 때는 뿍뿍거리는 소리와 함께인 뿍뿍이!
그런 뿍뿍이가 자꾸 거슬렸는지, 던전 구석에서 낮잠을 청하던 중급마수 한 마리가 뿍뿍이을 노려보았다.
찌릿-
우락부락한 황소.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루스를 연상케 하는 외형을 가진 거대한 마수의 눈빛을 느낀 뿍뿍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뿍-!
마수와 눈이 마주친 뿍뿍이가 버럭 하고 역정을 내었다.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뿍! 불만 있으면 덤벼라뿍! 내가 혼내주겠뿍!]
[푸릉- 푸르릉-!]
그런데 놀랍게도, 잠시동안 뿍뿍이와 신경전을 벌이던 중급 마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모양을 본 뿍뿍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별 것도 아닌 녀석이 귀찮게 한다뿍. 빨리 힘을 더 모아서 나도 빡빡이처럼 멋있어져야겠뿍.]
뿍뿍이는 자신의 외모가 약해보여서 마수들이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뿍뿍이는 본능적으로, 계속해서 힘을 모으면 빡빡이처럼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뿍! 하나 더 찾았뿍!]
잠깐 사이 던전 구석에 자라고 있던 마계약초 하나를 찾은 뿍뿍이는, 잽싸게 달려가 주변을 파헤치고 약초를 우물우물 씹어 먹기 시작했다.
뿍- 뿍-
그리고 잠시 후, 뿍뿍이의 등껍질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하지만 뿍뿍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초를 파먹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 (1). 반인반마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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