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분노의 도시 -3 >
* * *
마계가 열린지 어느덧 30일차.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는, 마계 관련 게시판이 따로 만들어질 만큼 마계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상위권 유저들도 대부분 관련 퀘스트를 받는 데 성공해서 마계에 진입했고, 덕분에 마계에 입성한 유저의 숫자가 몇 만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안으로 인해 120구역에서 119구역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던 얀쿤도 처치되었기 때문에, 110대 구역까지 진입한 유저들도 수천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안을 제외하고는 어떤 유저도 120구역을 지키는 수문장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120구역의 포탈이 영원히 프리패스로 남게 된 것은 아니었다.
- 으악!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저 오늘 드디어 121구역 뚫고 120구역 진입했는데, 120구역 끝에 있는 포탈에 수문장이 있어요!
- 엥?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어제 바로 120구역 지나서 지금 119구역 사냥중인걸요.
- 헐, 님들 진짜 큰일 남. 오늘 오전에 갑자기 120구역 포탈에 수문장이 생겼대요.
- 엥…? 그런 게 있었어요?
- 윗님 정보가 느리시네. 구역 수문장이 존재한다는 건 벌써 일주일 전에 알려졌어요. 110구역에도 이미 몇몇 랭커들이 도달했는데, 거기 수문장이 엄청 강력해서 아직 아무도 못 지났다고 하더라구요. 110구역 수문장 잡기 위해서 최고 랭커들끼리 레이드 팟 짜고 있다고는 하던데…. 120구역에도 수문장이 생겨날 줄이야.
- 으아아! 그럼 후발주자는 120구역 이제 진입 못 하는 건가요?
- 그렇죠. 진입도 못 할뿐더러, 한번 귀환석 타고 마을로 돌아가면, 다시 사냥터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거죠.
- 으으… 누가 수문장 안 잡아주나?
- 레벨이 350인가 그렇다고 하던데… 그 괴물을 누가 잡아요. 최상위 랭커들 20인 풀 파티로 덤벼야 잡아 지려나….
- 에이, 윗분. 그 정도는 아닐 듯 하네요. 350레벨 대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10위권 유저 한 너댓 명 정도 모이면 잡기는 할 듯.
- 10위권 유저 너댓 명 모이는 건 쉽나요.
- 하긴… 그것도 어렵겠네요.
바로 얀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새로운 수문장이 등장한 것이었다.
덕분에 120구역 안쪽에서만 드랍 되는 하급 마정석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물론 마정석의 시세가 어떻든 별 관심이 없는 이안은, 마정석이 생기는 대로 죄다 무기 강화에 녹여 버렸지만 말이다.
“후우, 이번에도 10강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군.”
강화실패 메시지와 함께, 9강에서 멈춰버린 정령왕의 심판을 보며, 이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거 참, 내 칼도 좀 강화해 달라니까, 자기만 계속 강화하네.”
옆에서 투덜거리는 카이자르를 이안이 달래주었다.
“이거 창 하나만 10강 만들면 하급 마정석 다 가신님 대검 강화에 몰아 줄게. 조금만 참아.”
“크흠흠, 그렇다면야….”
이안이 카이자르와 티격태격하는 동안, 어느새 일행은 100구역의 깊숙한 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이안의 시야에 거대한 성곽이 들어왔다.
“오오… 저긴가보구만.”
이안의 중얼거림에,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걷던 폴린이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영주님. 마계 안에서 성곽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목적지를 발견하자 이안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일행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뾰족뾰족한 돌기가 여기저기 솟아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성곽은, 정말 지옥에나 있을 법 한 악마성의 비주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으… 진짜 마계에 온 것 같네.”
이안의 감탄사에, 옆에 있던 세리아가 조심스레 딴지(?)를 걸었다.
“영주님, 여기 진짜 마계 맞는데요….”
그에 이안은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 그렇지.”
그렇게 분노의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곽을 따라 걷던 일행은, 거의 10여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은 끝에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구는 족히 높이가 10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성문으로 막혀 있었고, 그 앞에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마족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보초병인가 본데….’
마족들의 정보를 확인해 본 이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들에게 조심스레 접근했다.
보초병 주제에 마족들의 레벨이 300레벨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큼, 크흠.”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이안이 헛기침을 하자, 보초병들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쏠렸다.
“누구냐! 이곳은 마족이 아닌 이종족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큰 눈을 부라리며 이안을 아래위로 훑는 마족.
그의 면면을 살피던 이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래도 다짜고짜 공격을 하지는 않네. 인장을 보여주기도 전에 창을 휘두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안은 자신에게 말을 건 마족의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분노의 도시 치안대장 헤이스카 / 레벨 : 325]
‘어쩐지 개중에 제일 우락부락한 게 못 생겼더라니….’
이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전 마계의 십이지장 중 하나인 얀쿤의 의뢰를 받은 유저 이안이라고 합니다.”
이안의 말에 무척이나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있던 헤이스카의 표정이 일변했다.
“으음…! 인간, 얀쿤님을 어떻게 아는 거지?”
이안은 퀘스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인벤토리에서 인장을 꺼내었다.
“그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여기 얀쿤에게서 받은 마족의 인장을 보여드리도록 하죠.”
이안이 내민 상급 마족의 인장을 건네받은 헤이스카는, 잠시 후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이것은… 상급 마족의 인장!!”
당황한 헤이스카의 한 마디와 함께, 분노의 도시 입구를 지키던 마족 병사들이 일제히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런…! 귀인께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그러자 오히려 과한 반응에, 이안이 더욱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으음…? 이게 이렇게나 대단한 물건이었던 건가?’
이안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상급 마족의 인장은 그렇게 쉬이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안은 그저 수문장을 처치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던 상급 마족의 인장은, 사실 상급 이상의 마족에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인장을 건네 준 대상이 그 능력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하위 마족들에게 상급마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이 잘 풀리고 있음을 느낀 이안은, 지체하지 않고 성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그럼 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이안의 물음에 헤이스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이안은 문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이안의 가신들도 이안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헤이스카가 갑자기 이안을 저지하였다.
“잠깐!”
“으음…?”
헤이스카가 창대로 이안의 뒤를 따르던 카이자르를 막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안쪽은 이안님 혼자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이안이 조금 당황해서 되물었다.
“제 가신들인데…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얀쿤님께 인정을 받은 건 이안님이지, 이안님의 가신들은 아니니까요.”
“쩝….”
이안은 뭔가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신들을 외부에 둔 채 안쪽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카이자르, 금방 다녀 올 테니까, 상황 봐서 허약해 보이는 마수들 있으면 조심히 사냥이나 좀 하고 있어.”
“알겠다, 영주놈아. 이 근방에 있는 마수들의 씨를 말려놓도록 하지.”
“허세는….”
카이자르가 강하기는 했지만, 이안의 소환수들 없이 중급이상의 마수들을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이안은 피식 웃고 말았다.
성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이안을 향해, 헤이스카가 몇 마디 주의를 더 주었다.
“아, 마지막으로 몇 가지 주의를 더 드리자면… 우선 얀쿤님께서는 이제 십이지장이 아니십니다. 저야 괜찮지만, 분노의 도시 안쪽에서 이 부분은 민감한 사항일 수 있으니 말 조심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얀쿤님을 찾으시는 것이라면, 중앙 광장 가운데에 솟아있는 징벌의 탑에 계실 겁니다.”
징벌의 탑이라는 이름을 들은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징벌의 탑? 무슨 감옥 같은 느낌인데…. 어쨌든 일단 얀쿤을 만나기나 해 봐야겠군.’
이안은 친절한 헤이스카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띠링-
[‘분노의 도시’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50만 만큼 증가합니다.]
[‘마계 거주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일주일간, 분노의 도시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의 가격이 15%만큼 할인됩니다.]
[분노의 도시 거주민들의 친밀도가 10만큼 증가합니다.]
* * *
분노의 도시 안쪽에 진입한 이안은, 헤이카스의 조언대로 곧바로 도시 중심에 있는 중앙광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이안은 급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도시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었다.
의외로 분노의 도시는, 인간들의 도시와 다를 것 없는 전체적으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나저나 바깥에서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마족들이 여기는 진짜 엄청나게 많네.’
골렘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우락부락한 외모의 마족부터, 미소년과 같은 깔끔한 외모를 가진 마족. 그리고 눈이 확 뜨여질 정도로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마족까지.
하지만 이안은 마족의 외모만 구경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처에 스쳐지나가는 모든 마족들의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마족들은… 대부분 하급마족이네. 레벨 대는 거의 200대 중후반 정도….’
간혹 300레벨 초반쯤 되는 평 마족 정도가 보이기도 했으나, 이안이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얀쿤이 마족 중에도 대단한 놈이라는 건 느껴지네.’
그리고 구성원들의 면면을 관찰하다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도시 안에 마족만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인간은 이안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반마 혹은 엘프나 지금껏 본 적 없는 특이한 외형을 가진 종족들도 간혹 보이는 것이었다.
‘이래서 내가 지나다녀도 딱히 마족들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가…?’
이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분노의 도시 안에도 컨텐츠가 엄청나게 많아 보이니…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면 여기도 다시 와서 구석구석 돌아다녀봐야겠어. 선점할 수 있는 컨텐츠는 죄다 선점해 버려야지.’
그렇게 삼십여 분 정도를 걸어 중앙광장에 도착한 이안.
이안은 중앙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렵지 않게 ‘징벌의 탑’을 찾을 수 있었다.
광장 한 가운데 가장 높게 솟아 있는 거대한 탑이 바로 징벌의 탑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특이한데? 무슨 시장바닥 같기도 하고….’
징벌의 탑에 발을 들여놓기 전, 그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이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노예시장… 같은 건가?’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시야에 또 다시 최초발견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징벌의 탑’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0만 만큼 증가합니다.]
[‘노예 계약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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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분노의 도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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