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마수 연성술사 -1 >
“으…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일단 퀘스트를 진행해야지, 별 수 없겠네.”
이안은 두 명의 사제를 더 등용하여, 최대 보유 가능한 가신 숫자를 하나만 남겨놓고 가득 채운 뒤 인재양성소를 빠져나왔다.
현재 이안이 등용 가능한 가신의 최대치는 40명.
이안의 귀족 작위가 ‘후작’ 이었기에, 그에 맞는 슬롯이 주어진 것이었다.
‘어후, 짜르고 싶은 놈들이 몇 보이는데….’
이안은 가신 목록을 쭉 확인하며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귀족이 된 초기에 급한 대로 등용한 몇몇 가신의 능력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가신을 추방할 시 제법 치명적인 불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뭐, 정 전력이 부족하면 공작 작위로 승급시켜 버리지 뭐.’
공작이 되면 10인의 가신을 추가로 등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
후작이 공작으로 작위승급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명성치는 300만이었는데, 이안이 보유한 명성이라면 작위를 승급시키고도 한참이나 명성을 남길 수 있었다.
이안이 현재 보유한 명성치는 거의 천만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이 전력으로 어떻게든 얀쿤이 준 퀘스트까지는 뚫어 본다.’
넉넉히 명성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안이 작위를 승급시키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명성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수록 게임 플레이에 혜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카일란에서 ‘명성’ 능력치의 역할은 무궁무진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1. 명성이 높을수록, NPC들의 기본 친밀도가 올라간다. 친밀도가 높으면 퀘스트가 발생할 확률이 올라감은 물론, 상점에서 구입 가능한 아이템들의 가격이 내려간다.
2. 인재양성소에서 만날 수 있는 NPC들의 기본 등급이 올라간다. 그 예로, 명성이 100만이 되지 않던 시절, 처음 인재양성소를 갔던 이안은 대부분 일반등급이나 희귀등급의 인재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명성이 천만에 육박하는 지금은 기본 유일등급 이상의 인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인재양성소에 등장하는 인재의 등급은, 사용자의 명성 외에도 양성소의 시설레벨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도 명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이 사실이었다.
3. 아직 이안조차도 발견한 적은 없지만, 높은 명성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특정지역이 존재했다.
그 지역은 사냥터가 될 수도 있고,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으며, 숨겨진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일 수도 있다.
4. 유저는 처음 귀족 작위를 부여받은 다음부터는, 명성치를 소모해서 자체적으로 작위의 등급을 올릴 수 있다.
귀족 작위는 보유한 영지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며, 가신들과 영지민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데에도 높은 명성이 필요하다.
이안의 경우 현재 ‘후작’의 작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윗단계의 등급인 공작, 대공까지는 명성치만으로 승급이 가능한 작위였고, 그보다 상위 단계인 국왕이나 황제의 경우에는 다른 조건도 충족시켜야 한다.
5. 그 밖에도 명성이 높아야 포획 가능한 소환수, 일정 명성 이상을 소모해야 등용할 수 있는 가신 등 다양한 컨텐츠가 있고, 업데이트 예정인 컨텐츠도 많았다. 명성으로 아이템이 구입이 가능한 명성상점 같은 컨텐츠도 LB사에서 업데이트할 것이라 공언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명성은, 카일란에서 그 어떤 능력치 못지않게 중요한 능력치였다.
그리고 이안은 쌓일수록 명성치의 위력을 확연히 체감하고 있었기에 3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치를 소모해야하는 작위승급이 아직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빠르게 이동해 마계로 다시 진입한 이안은, 곧바로 115구역을 향해 움직였다.
아직까지 마계 진입에 성공한 유저가 천명도 채 되지 않는 소수였기 때문에, 넓은 마계의 필드에서 유저들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몇 시간에 걸쳐 필드를 이동해 드디어 115구역에 도달한 이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얀쿤의 말대로라면, 이곳부터는 오염된 마수들이 많이 등장할 거다.”
이안의 말에 옆에 있던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제법 스릴 넘치는 싸움이 되겠어.”
카이자르는 대검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웃었고, 폴린이 이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영주님, 새로 등용하신 사제들은 어떻게 포지션을 잡을까요?”
이안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이제부터 폴린 네가, 서브 탱커 역할을 해 줘야 해. 새로 영입한 사제들은 네 생명력 회복을 전담하게 할 거다. 모든 신성마법을 너에게 집중시킬거야.”
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제가 좀 더 전방에서 움직여야겠군요.”
“그래. 사제들의 신성마법 발동 가능 범위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 선에서, 움직여 주도록 해.”
“예, 영주님.”
대형을 조금 수비적으로 바꾼 이안 일행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115구역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염된 마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전까지보다 마수들 레벨대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군.’
거의 2~30마리쯤은 되어보이는 오염된 마수들.
레벨도 가장 높은 개체는 290이 넘었기 때문에, 이안은 신중히 그들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내가 말했던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전멸당하는 게 우리 쪽이 될 수도 있으니, 긴장 바짝 하도록.”
“예! 영주님.”
“알겠습니다!”
[알겠다, 주인.]
지금껏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로 전투했던 카르세우스 또한, 거대한 드래곤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주인,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왔더니 입이 근질거린다. 브레스부터 한 방 갈기고 시작해도 될까?]
카르세우스의 물음에, 이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시원하게 한 발 뿜고 시작하자고!”
* * *
[오염된 중급마수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트라쿠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3879809만큼 획득했습니다.]
[‘오염된 중급 마정석’을 획득했습니다.]
[‘오염된 트라쿠스의 이빨’을 획득했습니다.]
:
: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아니, 오염된 중급 마정석은 또 뭐야. 중급 마정석 이제 세번째 구경해보는 건데 하필 오염된 마정석이 나오다니.’
오염된 마정석은 어떻게 정화시킬 수 있는지 몰라도, 정화되기 전에는 그저 쓸모 없는 돌덩어리일 뿐이었다.
이안은 투덜거리며 115구역을 휘젓고 다녔다.
‘후우, 그건 그렇고 퀘스트 단서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되는 거야?’
오염된 마물이 생겨나는 근원.
그것을 찾아서 파괴하면 될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안은, 반나절이 넘도록 퀘스트에 진전이 없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빡빡아.”
[왜 부르냐, 주인.]
“마수들은 왜 오염이 된 걸까?”
밑도 끝도 없는 이안의 질문.
빡빡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경험치 욕심에 가득한 주인보다는 덜 오염된 것 같다.]
“…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그 때, 정찰을 위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핀이 이안에게로 날아와 전방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꾸룩- 꾸루루룩-!
그리고 그것을 듣자마자, 이안은 핀이 무언가 발견했음을 직감했다.
‘드디어…?!’
이안 일행은 핀의 안내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고, 잠시 후, 새빨갛게 빛나는 거대한 수정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수정의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뭐지?”
겉 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뭐하는 구조물인지 알 길이 없는 붉은 수정.
그때 옆에 있던 카이자르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영주놈아, 이 기분나쁜 색깔… 딱 보면 모르겠냐. 이게 오염의 근원인 것 같다.”
그리고 지체 없이 수정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카이자르!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은 이안이 그를 멈춰세우려 했으나, 이미 카이자르의 대검은 수정의 옆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든 뒤였다.
“잠깐!!”
쾅-!
카이자르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이안을 돌아봤다.
“왜 그러냐, 이안. 이거 부수면 안 돼?”
한편 이안은 난데없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가신 ‘카이자르’가 마계의 봉인수정을 공격했습니다.]
[봉인수정의 내구도가 68749(2%)만큼 감소했습니다.]
[봉인수정의 총 내구도가 3368701(98%)만큼 남았습니다.]
[봉인수정 내부에 봉인되어있던 NPC, ‘세르비안’의 생명력이 27948만큼 감소했습니다.]
[‘세르비안’의 생명력이 14382만큼 남았습니다.]
이안은 카이자르의 어깨를 황급히 붙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봐,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막 때려 부수면 안 될 것 같아.”
이안은 ‘세르비안’ 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세르비안… 분명 낯이 익은 이름인데. 들어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름이 분명한데 왜 생각이 안 나지?’
그리고 이안은, 곧 머릿속에서 떠올려낼 수 있었다.
“아, 맞다! 이리엘이 언급했던 이름이었어!”
이안은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이리엘로부터 얻은 마수 정보 도감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르비안’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르비안은, 이리엘이 언급했던 반마의 소환술사였던 것이다.
이안은 카이자르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카이자르, 아무래도 안쪽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아.”
“사람?”
“그래. 분명히 안쪽에 사람이 갇혀있다.”
이번에는 빡빡이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주인?]
이안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난 원래 모르는 게 없다, 이 거북놈아.”
[우우… 거짓말 치지 마라 주인.]
이안이 예리한 눈빛으로 빡빡이를 아래위로 훑었다.
“난 네가, 지금 등껍질 속에 들어가서 한 시간만 자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다 알고 있지.”
[헉…!]
당황한 표정이 된 빡빡이를 무시한 채, 이안은 열심히 수정의 외곽부터 깎아 내기 시작했다.
[마계의 봉인수정을 공격했습니다.]
[봉인수정의 내구도가 7984(0.23%)만큼 감소했습니다.]
[봉인수정의 총 내구도가 3360717(97.77%)만큼 남았습니다.]
[봉인수정 내부에 봉인되어있던 NPC, ‘세르비안’의 생명력이 155만큼 감소했습니다.]
[‘세르비안’의 생명력이 14227만큼 남았습니다.]
이안이 질린 표정이 되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으, 이건 무슨 내구도가 무식하게 300만이 넘는 거야? 이래서 어느 세월에 다 깎아내지?’
그리고 안쪽에 갇혀있는 게 분명한 세르비안의 생명력이 조금씩 닳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였다.
“영주놈아, 이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하면 오염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거냐?”
카이자르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모르겠고, 일단 무조건 이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해야 해.”
“왜?”
그에 순간 말문이 막힌 이안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대꾸했다.
“그냥 쫌,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가신놈아.”
소환술사 듀얼클래스와 관련된 핵심적인 정보, 혹은 히든 키가 될 수 있을게 분명한 반마의 소환술사 세르비안.
지금 당장은 세르비안을 수정안에서 꺼내는 게, 오염의 근원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이안이었다.
카이자르는 투덜거리며 이안을 도와 수정을 깎기 시작했고, 폴린과 라이도 한 손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쩌저정-!
붉은 수정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더니 300만이 넘던 내구도가 드디어 0으로 떨어졌다.
쿵-!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 앞에 떠오르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에는, 이안의 두 눈을 확 뜨여지게 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마계 듀얼클래스 오픈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클래스 네임 : 소환마-召喚魔(마수연성술사)]
[클래스 등급 : 히든]
* * *
< (5). 마수 연성술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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