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계로의 진입 -3 >
* * *
얀쿤과의 친분(?)이 패치 후에도 이어질까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이안.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안은 얀쿤과 다시 마주칠 일이 없었다.
120구역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뭐지? 얀쿤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안은 퀘스트 목록을 펼쳐 얀쿤의 위치를 확인했다.
[퀘스트 최종 수령 NPC - 얀쿤 (위치 : 분노의 도시 / 마계 100구역)]
이안은 고개를 살짝 갸웃 했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어차피 분노의 도시는 가야만 하는 곳이었으니까.
“자, 그럼 오염된 마물인지 뭐시긴지를 잡으러 한번 가 볼까?”
퀘스트의 내용은, 단순히 오염된 마물을 사냥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염된 마물이 생겨나는 이유를 찾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이안의 임무!
‘뭐, 잡다보면 어디선가 길이 보이지 않겠어?’
얼핏 막막할 수도 있는 퀘스트 내용이었지만, 이안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류의 퀘스트를 한두번 해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15구역, 107구역에 가장 많이 서식한다 했었지?”
정확히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어떤 오염의 근원지 같은 것을 찾아 파괴하는 퀘스트이리라.
120구역에 들어선 이안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무척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20구역 중반부 부터는 이안도 처음 밟아보는 맵이었기 때문이었다.
“빡빡아, 라이 보호하면서 최대한 피해를 대신 받아줘. 세리아가 치료해 줄 거야.”
[알겠다, 주인.]
120구역부터는 중급 마수들이 제법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투 난이도도 무척이나 올라갔다.
중급 마수들 중 레벨이 높은 개체는 290대의 괴물도 존재했기 때문에 카이자르조차도 함부러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양 팔이 거대한 낫과 같은 형태를 띤 도마뱀 형상을 한 괴물. ‘트라쿠스’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깡- 까강-!
트라쿠스의 공격을 창대로 빗겨막은 이안은 한 발짝을 물러서며 그의 후속 공격을 피해 내었다.
휘익-!
소름 돋을 정도로 빠르게 이안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트라쿠스의 공격!
순간, 이안의 무기에 붙어있던 초월옵션이 발동되었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의 초월옵션이 발동합니다.]
[‘전격’ 속성의 원소공격이 발동되어, 중급마수 ‘트라쿠스’에게 8798 만큼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트라쿠스에게 한 방을 허용하면, 거의 4~5만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이안은 거의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고, 초월옵션의 생명력회복은 필요할 때 마다 한 번씩 발동되어 주었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의 초월옵션이 발동합니다.]
[강력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생명력이 14908(10%)만큼 회복됩니다.]
‘전격 공격발동이랑 생명력회복이 따로 발동하는 시스템이라 더 좋단 말이지.’
기분 좋게 차오른 생명력을 확인한 이안이, 중심이 흐트러진 트라쿠스의 허리춤을 향해 창극을 찔러 넣었다.
푸욱- 그리고 트라쿠스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끄에에엑-!]
[중급마수 ‘트라쿠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23890만큼 감소합니다.]
이어진 라이와 핀의 합공.
촤라락-!
둘은 트라쿠스의 빈틈을 정확히 노리며 맹공을 퍼부었다.
콰콰쾅!!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12890만큼 감소합니다.]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9890만큼 감소합니다.]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14890만큼 감소합니다.]
:
:
특히 라이의 연속공격에 고스란히 약점을 전부 내어준 트라쿠스는, 그대로 힘 없이 고꾸라져 버렸다.
[크아아오오!]
[중급마수 ‘트라쿠스’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트라쿠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3879809만큼 획득했습니다.]
:
:
120구역부터 서식하고 있는 마수들은, 보통 2~3개체의 중급마수와 10개체 정도 되는 하급 마수들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그렇기에 트라쿠스 한 마리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음에도, 아직 두 마리의 트라쿠스들과 다수의 하급 마수들이 남아 있었다.
이안은 트라쿠스 하나를 맡아 상대하고 있던 빡빡이의 생명력을 확인했다.
‘이제 1/3정도 생명력이 남은 것 같고. 아마 이제 20초 내로 세리아의 회복스킬도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오겠지?’
이안은 재빨리 가신정보를 열어 세리아 고유능력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확인했다.
‘13… 12… 11….’
그리고 빡빡이에게 공격이 들어오는 기가막힌 타이밍에 그의 고유능력들을 발동시켰다.
“빡빡아, 카이자르에게 귀룡의 가호 걸어주고, 절대방어 발동시켜!”
절대방어는 무려 10초 동안 모든 피해를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최고의 방어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빡빡이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절대방어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미리 ‘귀룡의 가호’ 능력을 먼저 발동시킨 것이었다.
‘귀룡의 가호’가 씌워진 상태라면, 카이자르가 받는 모든 피해량은 빡빡이가 대신 받게 될 것이며, 절대방어 상태인 빡빡이는 그 모든 피해를 흡수해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안과의 전투에 도가 튼 카이자르는, 귀룡의 가호가 씌워지자마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다 죽어봐라 이놈들!”
그렇지 않아도 무척이나 공격적인 전투성향을 가진 카이자르에게 무적이나 다름없는 쉴드를 씌워 주었으니, 카이자르의 움직임은 더욱더 과감하고 과격해졌다.
쾅- 콰콰쾅-!
카이자르의 움직임과 다른 가신들의 전투상황을 빠르게 둘러본 이안이 세리아를 불렀다.
“세리아, 알지? 빡빡이 절대방어 풀리기 전에 회복 걸어줘야 해.”
“옛, 영주님!”
그리고 빡빡이의 주변에 씌워진 보호막이 희미해지는 순간.
세리아의 고유능력이 곧바로 발동되었다.
“소환수 치유술!”
[가신 ‘세리아’가 ‘소환수 치유술’을 사용하여 소환수 ‘빡빡이’의 생명력을 79.5% 회복합니다.]
[빡빡이의 생명력이 228595만큼 회복됩니다.]
거의 바닥까지 떨어져 가던 빡빡이의 생명력이, 단숨에 쭈욱 차올랐다.
처음 세리아를 고용했을 때 소환수 치유술은 60%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능력이었지만, 그동안 숙련도가 많이 올라 79.5%까지 수치가 증가한 것이었다.
“카이자르, 폴린! 나랑 같이 왼쪽 놈을 맡자. 라이랑 핀, 너희는 빡빡이 도와서 계속 그 놈 묶어주고 있어!”
[알겠다, 주인. 맡겨줘라.]
꾸룩- 꾸꾹-!
일사분란하게 전장의 마수들을 상대해 가는 이안.
그 전투장면이 너무나 체계적이고 톱니 맞물리듯 딱딱 떨어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무척이나 손쉬운 전투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후우, 절대방어 재사용 대기시간이 조금만 늦게 돌아왔어도 무너질 뻔했어.’
현재 이안의 파티는 무척이나 공격적이었다.
이안의 빡빡이와 세리아가 컨트롤하는 떡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원이 모두 딜을 넣는 공격 포지션인 것이었다.
게다가 힐러는 이안의 가신 두셋 정도가 전부.
카일란에서 일반적인 파티는 탱커와 딜러, 힐러의 비율이 4:4:2나 3:4:3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파티는 2:7:1 수준인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파티였지만, 주력 탱커인 빡빡이가 무너지는 순간, 파티 자체가 아작 날 수 있는 것이다.
‘흐음, 너무 빡빡이와 세리아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투를 깔끔하게 마무리지은 이안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의 전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적들이 더 강해지면 제대로 된 힐러들을 좀 보강해야겠어.’
지금 힐러가 부족함에도 파티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리아였다.
파티의 주력탱커가 소환수이고, 세리아는 소환수 한정 사기적인 힐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
‘조금 사냥속도가 느려지더라도 폴린을 방어형 포지션으로 바꿔주고, 괜찮은 사제를 한둘 정도 영입하면… 조금 더 난이도 있는 전투도 가능하겠어.’
이안은 하드한 사냥을 즐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사냥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예측범위 밖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면 모르지만, 이렇게 예측 가능한 적들의 전투력 상승을 앞에 두고 무모하게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지양하는 편이었다.
‘한 118구역까지만 이 파티로 버텨보고, 중부대륙 내려가서 제대로 된 힐러 둘만 고용해서 올라와야지.’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리아가 아이템들을 싹 수거해서 이안의 앞으로 다가왔다.
“영주님! 아이템 다 주워왔어요! 영웅등급 장비가 무려 두 개나 떨어져 있었다구요!”
신이 나서 얘기하는 세리아에게 살짝 웃어준 이안은, 장비들의 옵션을 빠르게 확인했다.
“좋아, 제법 괜찮은 것들이 나왔네.”
그 중 하나인 소환술사용 머리장식을 세리아에게 건네준 이안은 다시 사냥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맵 하나만 더 진행하면 잠시 쉬었다 사냥할 테니까.”
이안의 말에 빡빡이와 카르세우스의 눈에 생기가 돌았고, 폴린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안에게서 아이템을 선물(?)받은 세리아의 표정이 가장 밝은 것은 물론이었다.
* * *
이제 3차 대규모 업데이트가 오픈된지 10일째.
이안과 레미르를 제외하고도 제법 많은 랭커 유저들이 마계의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안과는 다르게, 마계를 처음 경험하는 랭커들은 쉽게 120~130구역사이의 구간을 통과해 내지 못했다.
“제길, 레벨은 중부대륙 상위 던전 몬스터들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지?”
“몰라, 레벨이랑은 별개로 능력치가 더 쎈 것 같기도 하고….”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한방 한방 들어오는 데미지가 비슷한 걸 보면.”
“그런가? 그럼 적응되면 괜찮아지려나?”
그리고 많은 유저들이 마계의 땅을 밟기 시작하니, 커뮤니티에도 슬슬 마계에 대한 정보가 풀리기 시작했다.
상위 랭커들 중에는 커뮤니티에 신규 컨텐츠의 정보를 정리해서 올리며 많은 유저들의 인기를 얻은 네임드가 몇몇 있었는데, 그들이 공략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 자랑하기 좋아하는 유저들은 하급 마수들을 사냥해서 얻은 영웅등급 아이템을 스크린샷 게시판에 올려 우쭐거리기도 했다.
- 우와, 지웅이님. 이거 한손 검 마계 몬스터 잡아서 나온 아이템인가요?
- 예. 맞습니다. 후후… 라쿰이라는 마수를 잡고 얻은 물건인데, 공격력이 장난 아닙니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일 듯 하네요.
- 와… 난 언제 저런 아이템 먹어보나….
- 에이, 어디서 순진한 초보유저 속여먹나요. 이 검, 레벨제한이 170이나 되는데 이정도 공격력이면 그리 비싼 값 못 받아요. 딱 봐도 그냥 국민템 수준이구만.
- ㅠㅠ 아니 그래도 국민템은 너무하잖아요. 이정도면 상급 한손검인데….
- 님아, 상급도 안 되는 한손검이었으면 제가 국민템이라고 하지도 않았겠죠. 그냥 대장간 가서 녹이라고 했겠지.
이처럼 여러 가지 마계와 관련된 이슈들이 커뮤니티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마정석’의 존재였다.
마정석은 게임 기자단에 의해 취재되어 커뮤니티 메인을 크게 장식할 정도로 엄청난 신규컨텐츠였다.
[드디어 ‘카일란’에도 강화시스템이 생기다!]
[마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비 강화재료, ‘마정석’을 파헤쳐 보자.]
스크린샷 게시판에는, 이미 마정석으로 아이템 강화를 어느정도 성공한 유저들의 자랑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염장주의’ 전설등급 양손대검 +3강 성공스샷.]
- 헐, 하급 마정석 강화성공률 엄청 낮다던데… 벌써 3강에 성공한 사람이 나왔다니…! ㅎㄷㄷ
- 165레벨 궁사유저입니다. 전 어제부터 계속해서 라쿰만 잡으면서 마정석 노가다중인데, 이제까지 열 한 개 먹었거든요. 그거 다 발라서 겨우 1강 성공했는데 3강을 이렇게 빨리 무슨 수로 하신거죠?
- 후후, 놀라지 마십쇼. 저도 마정석 7개 쓸 때 까지 모조리 강화실패만 떴었는데, 8차 시도에 한번 성공하더니 14,15개 째에 연달아 성공 떴습니다.
- 와… 추정 강화성공률 10%도 채 안되는 것 같던에, 님 운 장난아니네요.
- 그런 듯. 게다가 강화 숫자 올라갈수록 성공률 더 떨어지는 것 같다던데….
아마 모든 부위의 장비를 모조리 5강까지 강화해 놓은 이안의 장비 창 화면이 커뮤니티에 공개된다면 난리가 나겠지만, 다행히도 이안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안은 단지 118구역 안쪽을 뚫기 위해 영웅등급 이상의 사제 클래스 가신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씨, 왜 오늘따라 인재양성소에 궁사랑 전사밖에 안 보이는 거야!”
< (4). 마계로의 진입 -3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