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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203화 (229/1,027)

< (4). 마계로의 진입 -2 >

*          *          *

차원계 최초 발견보상 이라는 어마어마한 버프.

그것은 이안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세리아, 너는 따라다니면서 영웅등급 이상 아이템만 따로 수거해서 모아놔. 알겠지?”

“옛, 영주님.”

“폴린! 너는 이제부터 마수들 몰아오는 데 주력해. 딜량은 부족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명을 받듭니다.”

가신들과 소환수들 하나하나에게 가장 효율적인 포지션을 맡기며 정신없이 하급마수들을 쓸어담는 이안.

이안 일행의 주력 딜러중 한명인 카이자르가 따분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영주놈아. 그런데 대체 왜 다음 맵으로 넘어가지 않는거냐. 여기 너무 시시하잖아.”

카이자르는 다행히(?) 라이만큼이나 사냥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이안의 무한 사냥에 불만을 표한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기준에서 너무 약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이안에게 툴툴거렸다.

“봐봐, 카이자르. 우리가 아까 전엔 중급마수들도 좀 잡았었잖아?”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랬었지. 그때가 스릴도 있고 재밌었다. 하급 마수들은 이제 너무 약하다.”

카이자르의 말에 이안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나도 중급마수들이랑 싸우는 게 더 재밌어. 레벨도 200 후반이라서 공격 한번한번 피할 때 마다 스릴 넘치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카이자르는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이안을 응시하고 있었고,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계산해보니까 분당 경험치 수급량이 하급마수들 사냥할 때가 1.3배 정도 많은 것 같더라고. 물론 다음 맵으로 넘어가서 중급마수들 사냥하는데 좀 적응이 되면 조금은 빨라지겠지만….”

“크흐음….”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안의 말에, 카이자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게 계산까지 했다면, 할 말은 없군.”

최근 들어 카이자르도 레벨업에 대한 욕심이 이안 못지않게 늘어났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신님아, 곧 있으면 또 레벨업 이잖아. 얼른 레벨업해서 280레벨 찍어야지.”

카이자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등 뒤에 메고 있는 대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렇다, 빨리 레벨을 올려야 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템의 레벨제한 때문!

이안이 경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사들인 전설 등급의 280레벨 제한의 대검이, 카이자르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자르는, 효율적으로 레벨업을 하는 데는 도가 터있는 이안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가신님이 그 대검 휘두르면 간지가 철철 흐를 것 같다.”

이안의 말에 카이자르가 고개를 갸웃 했다.

“간지가 뭐냐 영주놈아.”

그에 옆에 있던 빡빡이가 불쑥 끼어들어 대답했다.

[‘간지’란 마치 후광과도 같은 것이다, 카이자르. 보통 멋짐이 흘러넘치는 인간들에게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알고 있다.]

빡빡이의 설명에 카이자르는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오오…!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였다니! 간지라…! 내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군.”

둘을 번갈아 쳐다본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빡빡이를 쳐다보았다.

“빡빡아, 그건 또 어디서 들은거야? 이번에도 하린이야?”

빡빡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주인. ‘간지’라는 단어는 피올란이 알려줬다.]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후우, 그런 쓸 데 없는 거 배울 시간에 사냥이나 해라 빡빡아.”

빡빡이는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 귀룡의 일족은, 항상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는 지성 넘치는 거북이다, 주인. 난 무식하게 사냥만 하는 마초북이보단, 지적인 뇌섹북이 되고 싶다.]

“….”

할 말을 잃어버린 이안은 한숨을 푹 쉬며 창대를 고쳐 잡았다.

“지금부터 일분에 한 마리씩 잡는다. 한 시간 동안 60마리 못 채우면 오늘 점심밥은 없을 줄 알아.”

잔인한 이안의 선언에, 빡빡이와 카르세우스가 다 죽어가는 표정이 되었다.

[그건… 너무하다 주인!]

[하아….]

하지만 그들의 호소가 이안에게 통할 리 없었다.

그렇게 이안 일행은 일주일동안 마계 외곽지역에 있던 하급마수들을, 싹 쓸어 담듯이 쉬지 않고 사냥했다.

*          *          *

우우웅-!

마계 외곽의 어느 빈 공터.

마계 특유의 검붉은 기류가 찢어지며, 붉게 타오르는 포탈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후웅-

포탈이 열림과 동시에 격렬히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그리고 열린 포탈의 안쪽에서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으음, 여기가 마계라는 곳인가?”

대규모 업데이트가 끝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

마계에 두 번째 유저가 진입했다.

“뭔가 분위기가 내 스타일인데?”

주변을 천천히 돌아본 여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길게 늘어져 치렁치렁하는 붉은 머릿결과,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로브와 망토.

그녀는 바로, 홍염의 마도사로 유명했던 레미르였다.

이제는 홍염의 마도사가 아니라 홍염의 군주가 된, 카일란 한국서버 최고의 화염계 마법사.

“일단 정보부터 수집해야겠지?”

레미르가 완드를 들고있던 오른손을 허공에 휘젓자, 낮은 공명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후우웅-

“먼저 들어왔다던 이안이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서버가 열린 첫날, 컨텐츠가 오픈된 지 3분 만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잊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빨리 마계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허공에 뜬 채로, 레미르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 레미르가,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일은 있을 수 없지.”

*          *          *

한편, 일주일간의 사냥일정을 모두 마친 이안은, 뿌듯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결국 180레벨은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성과야.”

정보창에 찍혀있는 이안의 레벨은 179.

일주일만에, 무려 4레벨을 올린 것이었다.

랭킹권의 다른 유저들이 듣는다면 기겁을 할 정도의 레벨업 속도.

이안은 생각난 김에 전체 랭킹도 열어서 한번 확인했다.

“흐음… 이제 공식 랭킹 1위의 레벨은 다 따라잡았네. 1레벨만 더 올리면 되겠어.”

현재 공식적으로 랭킹1위에 올라와있는 유저의 레벨은 180.

다크루나 길드의 유명한 전사유저였는데, 1위의 아이디를 확인한 이안이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어? 그런데 공식 랭킹1위 자리에는 항상 레미르가 찍혀 있었는데… 레미르는 어디 간거지?”

혹시나 해서 랭킹목록을 몇 페이지 넘겨봐도 레미르의 아이디는 보이지 않았던 것.

그렇다면 답은, 정보 설정을 비공개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설정을 비공개로 했을까?’

이안은 어깨를 으쓱 하며 열어뒀던 랭킹목록을 껐다.

“레미르는 아마 180레벨보다 한두 개는 더 높겠지…?”

이제는 정말로 최상위 랭커들의 수준까지 레벨을 따라오는데 성공한 이안.

하지만 그들을 추월하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한국 서버만 수십, 수백만이 넘는 유저가 즐기는 카일란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를 지키고 있는 유저들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레벨이 상위레벨로 올라갈수록 경험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때문에 지금까지 빠르게 레벨 격차를 좁히는 것이 가능했던 것.

이제는 공식랭킹 1위보다는 레벨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었기에, 이안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더 열심히 해야겠어.”

마지막으로 새로 얻은 능력치들을 한번 더 확인한 이안이, 모든 정보창을 닫았다.

“항마력은 이제 7.08%, 마기는 1549, 마기 발동률은 5.22%….”

이안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항마력 뿐만 아니라 마계와 관련된 능력치들은 마수를 사냥할 때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다.

“항마력이 확실히 올리기 힘든 스텟이긴 하네. 일주일간 그렇게 사냥했는데 0.08% 밖에 안 오르다니.”

어쨌든 노가다를 하면 할수록 누적되는 능력치들이다보니, 이안은 경험치를 쌓는 것 만큼이나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이자르, 이제 슬슬 마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볼까?”

이안의 말에 카이자르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영주 놈아. 라쿰 얼굴만 봐도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이안은 지금 진행중인 두 개의 퀘스트를 떠올렸다.

‘하나는 얀쿤이 줬던 퀘스트였고… 하나는 이리엘이 줬던 퀘스트….’

얀쿤의 퀘스트는 외곽지역에서 오염된 마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고, 이리엘의 퀘스트는 중심지역까지 들어가 분노의 도시로 가야하는 퀘스트였다.

동선 상으로나, 난이도 상으로나, 얀쿤의 퀘스트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자, 120구역으로 가볼까?”

“좋다, 영주놈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이안.

하지만 자신감넘치는 걸음걸이와 달리, 이안에게는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얀쿤 만나기가 조금 무서운데….’

무려 350레벨의 상급마족이자, 마계 수문장인 얀쿤.

항마력 99%를 가지고 있을 때야 무서울 게 없었지만, 지금은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상대가 얀쿤이었다.

‘민첩성이 낮고 공격력이 강한 전투스타일 덕에 공격패턴만 제대로 기억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아마 단 한방의 공격만 제대로 허용해도, 그대로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경험해야 할 게 분명했다.

‘퀘스트가 유지된다고 했으니, 친밀도도 전부 유지되는 거겠지 뭐.’

이안은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중급 마수들 때문에 지금껏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110대 번호를 가진 마계 외곽지역이었다.

*          *          *

부스럭- 부스럭-

이안이 사라진 마계 121구역.

바싹 마른 누런 빛깔의 풀숲 안쪽에서, 연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 사이를 뚫고 나온 한 생명체.

[뿍, 마계 공기는 왜 이렇게 탁하냐뿍.]

짙은 남색을 띈 둥그런 등껍질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고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머리.

앞뒤로 움직일 때 마다 살이 접힐 것만 같은 토실토실한 네 다리.

놀랍게도 그 생명체는 다름 아닌 뿍뿍이였다.

[주인놈은 다른 맵으로 간 게 틀림없겠뿍!]

게다가 뿍뿍이는 뿍뿍거리는 소리가 아닌, 말을 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먹음직스런 기운이 느껴진다뿍.]

뿍뿍이는 풀 숲 사이를 아장아장 헤짚고 다니더니,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했다.

푹- 푹- 푹-!

짧을 다리로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하게 땅을 파내는 뿍뿍이!

거의 자신의 몸이 전부 빠져 들어갈 정도로 깊게 땅을 판 뿍뿍이는, 안쪽에서 검붉은 색의 풀뿌리를 꺼내어 우걱우걱 씹어 먹기 시작했다.

[뿍- 뿍- 뿌뿍-!]

[‘30년 묵은 마령초’를 섭취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만큼 증가합니다.]

[정령력이 150포인트 만큼 증가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른 동시에 뿍뿍이의 몸 안으로 붉은 기운이 빨려들어갔다.

[뿍! 힘이 난다뿍!]

마령초를 뿌리털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운 뿍뿍이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필드 곳곳에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진 마수들이 어슬렁거렸지만, 뿍뿍이는 개의치 않았다.

[강한 거북 뿍뿍이는, 마수 따위 무서워하지 않는다뿍!]

반대로 마수들 또한, 왜인지 뿍뿍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크릉- 크르릉- 못생긴 거북이다.]

[크르릉! 머리가 저렇게 큰 거북이는 처음 보는군!]

어쨌든 덕분에 뿍뿍이는, 필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약초들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주인놈이 계속 나를 소환하지 않았으면 좋겠뿍!]

행복한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뿍뿍이!

하지만 그에게도 그리운 사람이 한명 있었다.

[하린이 보고싶뿍! 마계의 먹이들도 마약미트볼보단 맛있는게 없뿍!]

하지만 하린을 찾아간다면 이안에게 이를(?) 것이 분명했기에, 똑똑한 뿍뿍이는 하린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내가 꼭 미트볼보다 맛있는 걸 찾아내겠뿍!]

뿍뿍이는 등껍질을 씰룩거리며, 또 다시 어디론가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          *          *

< (4). 마계로의 진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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