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계로의 진입 -1 >
드디어 ‘마계’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담은 대규모 업데이트 날짜가 다가왔다.
카일란은 업데이트 준비를 위해, 이례적으로 꼬박 하루 동안 서버를 닫았으며, 덕분에(?) 이안은 오랜만에 하린과의 데이트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업데이트 당일.
이안은 비장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 시계를 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이안의 옆에는, 하린이 그의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하린도 오늘은 딱히 일정이 없었기에, 이안의 집에 있는 여분의(?) 캡슐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오픈 시간만 기다리는 이안을 보며, 하린이 투덜거렸다.
“그렇게 게임이 좋아?”
순간 이마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으응…? 그게….”
이안은 불안했다.
하린이 ‘게임이 좋아, 내가 좋아?’를 시전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이안에게 만큼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보다 더 어려운 난제!
하지만 다행히도, 하린은 그것을 물어보진 않았다.
“얼씨구. 좋아 죽는 구만 아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하린을 보며,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삐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안은 막간을 이용해 책상에 있던 수첩을 가져와서 하린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하린아, 여기 내가 마계에 요리 관련 컨텐츠 조사해서 전부 다 모아놨으니까, 이거 보고 따라서 퀘스트 풀어 가면 돼. 알겠지?”
그리고 이안의 설명을 조목조목 들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린.
이제 거의 자신에게 동화되어가고 있는 하린을 보며, 이안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여자친구는 또 없을 거야….’
길드사냥중에 여자친구의 호출로 매번 불려나가는 유현을 생각하며, 이안은 하린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무튼, 하린아. 여기 있는 퀘스트 다 완료하고, 마계 퀘스트 받으면 바로 나한테 메시지 보내. 알겠지?”
“응! 알겠어.”
“그때까지 난 최대한 마계 안에서 정보 모아놓고 있을게.”
“오케이!”
그리고 잠시 후, 카일란 서버 오픈 시간이 되었고, 이안은 곧바로 캡슐에 들어가 앉았다.
‘우선 바로 이리엘에게 가야겠어.’
이안은 신바람이 나서 카일란으로 접속했다.
지금 이 순간, 이안보다 먼저 마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이리엘에게 가서 말만 걸면, 곧바로 진입 포탈이 열릴 것이었으니까.
* * *
훈이와 카노엘은, 북부대륙에서 오클리를 찾아, 영웅 퀘스트를 열심히 진행중이었다.
“카노엘형, 이제 한 두 군데만 더 돌면 끝이지?”
“응, 이제 진짜 끝이 보인다. 어휴.”
카노엘이 훈이의 등을 토닥이며 진심어린 감사를 건네었다.
“훈이, 네가 아니었으면 진짜 이 퀘스트 엄두도 못 냈을 거야. 덕분에 서버당 열 세 개 밖에 없는 고대의 영웅 히든직업을 내가 갖게 될 줄이야.”
그의 말에 훈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 나도 형 덕분에 마계로 진입할 수 있는 퀘스트를 얻게 되었다고. 보상도 두둑히 얻었고. 또 새로 얻은 임모탈의 권능도 제대로 시험해 볼 수 있었고.”
무척이나 훈훈한 광경.
하지만 훈이 또한 빈말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카노엘의 드래곤 테이머 전직 퀘스트를 도와주던 중에, 마계로 진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퀘스트를 얻었던 것이었다.
훈이는 카노엘의 퀘스트가 끝나는 대로, 마계 진입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마계에 진입할 계획이었다.
‘흐흐… 이렇게 운 좋게 퀘스트를 얻을 줄이야. 아마 나보다 마계에 일찍 진입하는 놈은 없겠지?’
그런데 훈이가 속으로 기분좋은 생각을 하고 있던 그 때.
카일란에 접속해있던 모든 유저들의 시야에 붉은 색으로 빛나는 서버 시스템 메시지가 크게 떠올랐다.
[소환술사 유저, ‘이안’님이 최초로 마계 진입에 성공하셨습니다.]
물론 메시지를 읽자마자 훈이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뭐, 뭐야 대체?”
반면에 카노엘은 존경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와, 역시 이안형, 대단하네. 서버 열린지 3분만에 마계로 들어갔어.”
“….”
훈이는 오늘도 넘을 수 없는 벽(?)을 실감하며, 침울한 기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 *
[모든 유저들 중, 최초로 ‘마계’ 진입에 성공하셨습니다.]
[명성을 30만 만큼 획득합니다.]
[‘마계의 선지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일주일간 모든 경험치와 재화를 2배로 획득합니다.]
[24시간동안 영웅등급 이상 아이템 드랍율이 50%만큼 증가합니다.]
[영구적으로 ‘항마력’ 능력치를 2%만큼 획득합니다.]
[영구적으로 ‘마기’ 능력치를 1500만큼 획득합니다.]
[영구적으로 ‘마기 발동확률’ 능력치를 5%만큼 획득합니다.]
[짙은 마기의 농도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30%만큼 감소합니다.]
[짙은 마기의 농도로 인해 움직임이 20%만큼 느려집니다.]
[(감소한 능력치는 24시간에 걸쳐 조금씩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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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시스템 메시지가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엄청난 매리트를 가진 보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싱글벙글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차원계 최초발견 보상은 던전이나 필드랑은 비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하구나.’
이안의 의욕을 무럭무럭 자라게 만들어준 시스템 메시지들!
‘항마력이 2% 추가로 증가했으니까… 이제 7%인가? 이것도 엄청 꿀이네.’
이안은 시스템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중 처음 보는 능력치를 발견했다.
“어? 마기랑 마기 발동확률은 뭐 하는 능력치지?”
이안은 곧바로 정보창을 열었다.
그리고 캐릭터 정보 옆에 새로 생겨있는 두 가지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모든 능력치는 세부정보를 열면 그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능력치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 마기 -
유저가 적에게 입히는 모든 공격에 일정 확률로 고정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피격자의 방어력이나 저항력과 관계없이 수치 그대로 피해량이 적용되며, ‘마기 발동률’에 따라 확률이 결정됩니다.
퀘스트나 아이템의 부가 옵션을 통해 해당 능력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환수나 가신의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마기 발동률 -
타격시 마기가 발동할 확률을 의미합니다.
마기 발동률은 최대 100%까지 증가시킬 수 있으며, 퀘스트나 아이템의 부가 옵션을 통해 능력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안은 마기와 마기 발동률에 대한 설명을 보고 약간 실망했다.
“엄청난 능력치이긴 한데… 소환술사한테 불리한 능력이잖아?”
이안이야 셀라무스의 전사가 된 이후,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래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만, 일반 소환술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공격속도가 빠를수록 유리한 스텟일테니… 공격속도 위주로 키운 전사나 궁수에게 제일 좋은 능력치겠네.’
새로 얻은 능력치들과 버프에 대한 점검이 끝난 이안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험치버프 시간만큼은 낭비할 수 없지.’
곧바로 퀘스트를 진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은 불가능한 부분.
‘이제는 항마력이 99%가 아니니까….’
일주일 전에는 파리 잡듯 때려잡던 200레벨대의 라쿰들도, 이제 전력을 다해서 상대해야하는 강력한 몬스터가 된 것이었다.
이안은 소환수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소환!”
장비들을 최다 5강까지 강화하면서, 아이템에 붙어 있던 통솔력 옵션 또한 1.5배 증가한 셈이 되었다.
덕분에 이안은 카르세우스를 소환하고도, 라이와 핀, 빡빡이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레벨 조금만 더 올리면 할리도 소환할 수 있겠어.’
이안은 문득 뿍뿍이에게 미안해졌다.
뿍뿍이는 소환하기 위해 필요한 통솔력에 비해 전투에서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환하지 않은지 무척이나 오래 된 것이었다.
‘미안하다 뿍뿍아, 형이 통솔력 많이 올리고 소환해 줄게.’
전투 준비를 모두 마친 이안은, 포탈이 열린 맵의 구역 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입 꼬리를 씨익 말려 올렸다.
‘좋아, 지난주에 질리도록 돌아다녔던 맵이군.’
어지간한 하급 마수들의 공격패턴은 전부 다 머릿속에 넣어둔 이안.
물론 항마력99%라는 사기능력이 있을 때 보다는 훨씬 조심해야겠지만, 200레벨~230레벨 사이의 하급마수들은 어렵지 않게 사냥해 낼 자신이 있었다.
“라이야.”
[불렀는가, 주인.]
“오랜만에 사냥 한번 달려볼까?”
[크릉- 좋다 주인!]
해맑게 웃는 라이.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라이의 갈기를 쓰다듬는 이안.
카르세우스와 빡빡이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카르세우스, 우리 큰일 난 것 같다.]
빡빡이의 중얼거림에, 카르세우스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다. 주인놈이 또 발동 걸린 것 같다.]
[어떡하냐. 최소 일주일은 쉴 수 없을 것 같다.]
카르세우스의 표정이 더욱 침울해졌다.
[뿍뿍이가 부럽다.]
[나도 그렇다. 쉬고 싶다.]
빡빡이의 말에 카르세우스가 그를 째려보았다.
[넌 그래도 근 몇 주 동안 거의 쉬었잖아. 정말 오랜만에 소환됐으면서, 배부른 소리 하는군. 난 계속 1순위로 소환되서 일했다고.]
그에 빡빡이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일 안하다가 하면 더 하기 싫은 법이다. ‘월요병’이랑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지.]
[월요병이 뭔데?]
[주인놈의 여자친구가 알려준 건데, 인간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쉰다고 한다. 그래서 쉬고 난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더욱 일하기가 싫어지는데, 그걸 월요병이라고 한다더군.]
카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놈의 여자친구라면… 하린? 생각해 보니 일리 있다. 내가 인간이라도 그럴 것 같다.]
월요병에 걸린 거북이, 빡빡이는 고독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계의 하늘은… 정말 슬픈 붉은 빛이군.]
[크으….]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냥 재밌지 않냐? 이걸 일이라고 표현하다니.”
카르세우스와 빡빡이는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주인.]
[하아… 월요병은 정말 힘든 병이다.]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는 라이 좀 본 받아야 돼. 우리 라이 봐라. 사냥을 즐기잖아.”
그에 빡빡이가 더욱 슬픈 표정으로 한 마디를 읊조렸다.
[라이… 우리 불쌍한 라이는 ‘워커홀릭’ 이라는 병에 걸린 거로군.]
“….”
그렇게 잠시간의 실랑이가 끝나고, 이안 일행은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일주일은 숨만 쉬면서 사냥이다! 버프 끝나기 전에 180레벨은 찍고 만다.’
일주일만에 무려 5레벨을 올리겠다는 무시무시한 다짐.
카르세우스와 빡빡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안의 뒤를 따랐다.
< (4). 마계로의 진입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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