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안의 마계탐방기 -2 >
* * *
이안의 앞에 나타난 것은, 엄청난 거구를 가진 인간형 몬스터였다.
도깨비같이 우락부락한 얼굴에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있었으며, 붉은 털로 뒤덮여 있는 근육질의 신체를 가진 악마.
게다가 양 손에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한 자루도 들기 힘들어 보이는 대부(大斧)를 각각 한 자루씩 쥔 위압적인 모습을 한 상대가, 이안을 노려보았다.
[크롸롸롸-! 대체 그렇게 허약해 보이는 몸뚱아리로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것이냐, 인간.]
이안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떻게 왔긴, 마수들을 때려잡고 왔지.”
이안의 말에 악마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뭐라?! 마수들을 때려잡았다고!]
이번에는 이안이 물었다.
“그러는 넌 뭐하는 놈이냐?”
하나도 위축되지 않고 너무도 태연한 어투로 대꾸하는 이안을 보며, 악마는 분노했다.
[나는, 마계의 입구를 지키는 십이지장(十二指將) 중 하나인 얀쿤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네놈도 십이지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겠지?!]
하지만 이안은 그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99%의 데미지를 흡수해 버리는 항마력 능력치가 있는 한, 마계의 장군이건 마왕 할아버지건 두려울 게 없었다.
“십이지장은 내 뱃속에 있는 게 십이지장이고. 마계에도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네.”
이안의 비아냥에, 얀쿤은 폭발했다.
[크롸롸롸-! 크게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다…!]
양 손에 든 도끼를 허공으로 미친 듯이 휘두르는 얀쿤.
이안은 슬쩍 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레벨을 확인했다.
‘레벨이 350이라…. 카이자르보다 고 레벨인 몬스터는 정말 오랜만이군.’
카이자르의 레벨은 이제 270대 초반.
카이자르와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레벨이 높은 상대인 것이었다.
홀드림의 성배 퀘스트 이후로는 이렇게 고레벨의 몬스터를 만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안은 상대를 더욱 도발했다.
“덤벼라 원숭이.”
그리고 얀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크아아아…!]
얀쿤이 괴성을 내지르자 그의 온 몸에서 붉은 광선이 뻗어나가며 주변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쾅-!
이안은 광선이 뻗어나가는 패턴을 살피며 이리저리 피했지만, 촘촘하고 빠르게 뻗어나가는 광선에 어느 정도 피격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마계의 신장(神將) ‘얀쿤’이 고유능력 폭렬파(爆裂破)를 사용합니다.]
[마계의 신장(神將) ‘얀쿤’ 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강력한 항마력으로 인해 88605만큼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895만큼 감소했습니다.]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살짝 당황했다.
‘뭐야, 한 대 살짝 스친 것 같은데 데미지가 이렇게나 나와?’
물론 실질적으로 입은 데미지는 1천도 채 되지 않는 간지러운 수준이었지만, 항마력 없이 그냥 맞았더라면 거의 10만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데미지인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안의 현재 생명력으로는 세 방이면 그대로 사망할 만한 위력이었다.
[후우- 후우-!]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파괴적인 붉은 광선을 무작위로 쏘아내던 얀쿤이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크흠. 벌써 죽어버렸나?]
하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이안과 눈이 마주친 얀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내 폭렬참의 범위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
얀쿤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인마, 너 제법이다?”
[…?!]
잠시 당황한 표정이었던 얀쿤은, 곧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도끼를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내 도끼로 두개골을 아예 쪼개주도록 하지. 천국으로 보내주마.]
원래같았으면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들렸을 대사였겠지만, 이안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너, 큰 일 났어 인마.”
[…?]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때려줄게.”
[인간, 뭐라는 거냐.]
이안이 카이자르와 소환수들을 슬쩍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얘들아, 조져!”
* * *
이안을 단독 모니터링하기 시작한지 23시간.
파트장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이안과 얀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노려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김실장, 쟤 지금 뭐하는 거야?”
파트장의 물음에, 옆에서 졸고 있던 남자가 벌떡 고개를 들며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리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힘없이 대꾸했다.
“마족이랑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 정말 싸우고 있는 것 같아?”
“음….”
눈을 비비며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파트장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떼었다.
“불쌍한 보스몬스터 하나를 집단린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난…?”
잠시간의 침묵.
이안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얀쿤을 한동안 응시하던 둘은, 서로를 응시했다.
“얀쿤이 불쌍합니다, 파트장님.”
“난 우리가 더 불쌍해.”
“….”
“대체 이안 저놈은 어떻게 아직까지도 쌩쌩한 걸까?”
“저도 모릅니다.”
파트장이 모니터링실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부하직원들을 휙 둘러보며 힘 없이 중얼거렸다.
“여기 혹시 저 게임폐인놈 집 아는 사람 없냐? 가서 차단기라도 내려버리게.”
“….”
모두는 침묵했지만, 그것은 단지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파트장의 말에 속으로 격하게 공감하는 중이었다.
* * *
마계는 카일란에서 현존하는 최상위 난이도의 필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얀쿤은, 그런 마계에서도 100위권 안에 드는 강력한 몬스터.
그런 얀쿤이,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 정도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리고 얀쿤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이안이었다.
[크롸아악! 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건가!]
“맞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 거야.”
퍽- 퍼퍽-!
이미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까지 줄어들어 온 몸에 힘이 빠진 상대인 얀쿤.
이안은 그를 인정사정없이 공격했다.
얀쿤은 신음성을 흘리며 이안을 노려보았다.
[크으윽! 내가 방심했을 뿐이다! 네놈. 운이 좋군!]
그러자 이안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었다.
“그래?”
생각지 못했던 반응에 얀쿤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인간. 네놈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우리 마계에서도 내 공격을 그렇게까지 견뎌내는 마족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네놈 정도는 이길 수 없었을 리 없다!]
사실 350레벨인 얀쿤이 보기에, 이안의 레벨은 정말 하찮은 수준이었다.
그렇다보니 이안의 공격도 얀쿤에게 있어서 그리 큰 데미지는 아니었고, 얀쿤은 이안을 무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작지 않은 데미지라 하더라도, 99%의 피해량을 흡수해버리는 이안보다는 수십 배 큰 피해가 누적되다보니 결국 죽기 직전까지 이른 것.
이안은 열심히 변명을 하는 얀쿤을 잠시 응시하더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뭐냐, 인간!]
이안은 소환수들도 뒤로 전부 물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방심하지 않은 너와 겨루어보고 싶다.”
[…?!]
어이 없는 표정이 된 얀쿤.
그리고 그것은 카이자르와 이안의 소환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인, 왜 그러는가. 빨리 죽이고 다음 맵으로 넘어가자.]
[그래, 주인. 왜 쓸 데 없는 짓을 하는 거야?]
[영주놈아, 오늘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하지만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얀쿤을 응시하고 있는 이안!
그리고 얀쿤은 그런 이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음…! 오만한 인간이군. 하지만 그 호승심과 패기만큼은 높이 사도록 하지.]
이안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셀라무스 최고의 전사. 이번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상대해 주도록 하겠다.”
이안은 얀쿤에게 응급처치 스킬까지 걸어주며 그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둘의 생명력이 전부 회복되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오만함이 네놈을 죽게 만들 것이다!]
얀쿤의 포효.
하지만 이안은 비웃을 뿐이었다.
“네놈이 진심으로 승복할 때 까지, 난 계속 싸울 거다.”
시작된 전투.
이번에는 소환수들 마저 뒤로 물린 채, 둘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얀쿤의 쌍부와 이안의 창이 허공에서 격렬히 부딪히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이 일방적이 되어간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악! 쥐새끼 같은 놈!]
얀쿤이 휘두르는 도끼를 거의 100%에 가깝게 회피하기 시작한 이안!
사실 이안이 이런 이상한(?) 짓을 벌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차피 지금 내 플레이는 버그 성 플레이야. 지금 당장 이놈을 잡아봐야 경험치고 명성치고 아무것도 안 주는데 쉽게 죽여 버릴 수 없지. 아이템같은 걸 획득한다고 해도, LB사에서 회수해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이안은 보스몬스터가 분명한 상대의 공격패턴을 100% 익혀서, 정식으로 마계가 오픈되면 항마력 없이 그를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것은, 얀쿤의 순발력이 레벨에 비해 낮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얀쿤은 느린 대신 엄청난 맷집과 공격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노림수가 하나 더 있기도 하고….’
이안이 다시 얀쿤을 도발했다.
“좀 더 힘내봐, 친구. 실력이 형편없잖아?”
[크아아아!]
그리고 그렇게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얀쿤은 또 다시 이안 앞에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다.
“어이, 한판 더 해볼래?”
[크으…! 분하다! 다시 한번 싸워보고 싶다!]
“오케이! 고고!”
이안은 계속해서 얀쿤과의 싸움을 반복했다.
“야, 아까보다 더 형편없잖아. 또 할 거야?”
[으아아아…! 네놈, 이번에는 정말 뜨거운 맛을 보여줄 테다!]
20분 뒤.
“갈수록 못해지는데? 나 이번엔 두 대 밖에 안 맞았어. 지친거야?”
[크롸롸롸!]
15분 뒤.
“야, 너무 시시하잖아.”
[이제 그만 날 죽여 다오.]
“싫은데.”
10분 뒤.
“인마 일어나. 마계의 수문장이 왜 이렇게 근성이 없어.”
[마계 수문장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 그대의 강함을 인정한다.]
“그래?”
[그렇다. 마계에서는 힘이 곧 법이다. 나는 강자존의 법칙을 숭배하고, 강한 자를 존경한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겠다. 이제 그만 내 목을 베어라!]
“싫어.”
또 10분 뒤.
[크허어엉! 제발 죽여 달라!!]
“싫어. 두 번만 더 싸우자.”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가!]
“아직 뽕을 덜 뽑았어.”
[….]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더 흘렀을까.
그래도 매번 전력을 다해 이안을 상대하던 얀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생명력 다 채워 줬잖아. 다시 싸우자니까?”
얀쿤이 손에 들고 있던 두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주군으로 모시겠다.]
“…응…?”
[이안, 그대의 무력에 감명 받았다. 그대를 따르고 싶다.]
이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 (2). 이안의 마계탐방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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