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어둠의 군주 -4 (8권 완) >
임모탈, 그리고 어둠의 군주 퀘스트.
이 퀘스트에서 사실상 최고의 이득을 취한 건 카노엘이었다.
남들은 고생이란 고생을 있는 대로 다 하고야 얻는 대륙의 영웅 퀘스트를, 훈이의 퀘스트에 숟가락 한번 얹은 것으로 얻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거금을 들여 훈이에게 장비를 사 준 것도 손해가 아닌 수준이었다.
“크으, 훈아. 내가 그럼 그 커뮤니티 영상에 있는 할아버지처럼 되는 거야?”
카노엘의 말에 훈이가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지? 드래곤 테이머라니, 뭔가 멋지네. 이안 형, 형은 안 부러워?”
세 사람은 이번 퀘스트를 하면서 제법 친해져서, 이제 형 동생 하며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었다.
좀 특이(?)하기는 하지만, 이안도 두 동생이 싫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의 첨탑’의 던전 최초발견 버프가 끝나기 전까지 사냥하자고 이안이 우기는 바람에, 며칠 더 고생하면서, 친밀도도 더욱 높아졌다.
“난 뭐, 별로 안 부럽네. 내 히든클래스에 충분히 만족해서.”
이안의 말에 훈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비상식적인 성장은 말이 되질 않으니까.”
추가로 첨탑에 있던 고 레벨의 언데드 군단까지 쓸어담은 이안은, 이제 170레벨도 훌쩍 넘어 버렸다.
레벨업이 그렇게 빠르다는 흑마법사 랭킹 1위 보다도 더 레벨이 높은 것이었다.
정말 비상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장속도였다.
세 사람은 잠시 후 파이로 영지에 도착했다.
“후, 영지 꽤 오랜만에 오네. 나 잡템 좀 팔고 영주성에 볼일 보러 가야겠어. 너희 둘은 어쩔 거야?”
이안의 물음에 카노엘이 슬쩍 훈이의 눈치를 봤고, 훈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정비 좀 하고, 이형 따라서 북부대륙 가보려고. 불쌍한 형인데, 이 어둠의 군주님이 도와줘야지.”
“그래….”
이안은 진행했던 퀘스트였기 때문에 공유받지 못했지만, 훈이는 카노엘의 퀘스트를 공유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도와준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훈이도 충분히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무튼 그럼, 나중에 봅시다.”
“오케이!”
그리고 이안이 돌아서려는데, 카노엘이 쭈뼛거리며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안형, 진짜 고마웠어. 덕분에 이제 좀 뭘 알 것 같아. 진짜 내 스승님이야.”
그 말에 이안은 피식 웃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붙어 다니면서, 이안은 쉴 새 없이 카노엘을 갈궜던 것이었다.
‘진짜 이 멍청이 플레이 하는 거 보다가 암세포 생기는 줄 알았지….’
결국 컨트롤이나 반응속도 같은 피지컬의 영역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론적인 부분은 제법 많이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 스킬운용 같은 건 사람답게 하기는 하니까….’
이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다음에 만났을 때에도 그 모양이면, 파문이다 인마.”
“그, 그래….”
잠깐의 실랑이 끝에, 두 사람과 헤어진 이안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직업의 탑 퀘스트는 또 나중으로 미뤄졌지만… 그래도 얻은 게 많은 퀘스트였어.’
일단 막대한 양의 명성과 경험치를 얻었고, 거기에 새로운 히든 퀘스트까지 추가로 받았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는데, 전설의 직업 아이템 상자에서도 제법 괜찮은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아이템의 이름은 ‘정령왕의 반지’.
카노엘이 얻은 통솔의 반지만큼 무지막지한 양의 통솔력을 올려주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통솔력 스텟 옵션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꿀 같은 옵션이 하나 붙어 있었다.
‘전설 아이템 치고는 통솔력이 조금 붙어있어서 실망했지만… 그런 꿀옵션이 붙어있을 줄은 몰랐지.’
그것은 바로, 충성도와 친밀도가 최대치인 소환수에 한해 통솔력 소모량을 15% 줄여주는 옵션.
덕분에 이안은 카르세우스를 소환하고도, 라이와 빡빡이, 그리고 할리 까지는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레벨이 한 두 개만 더 오르면 할리 대신 핀을 소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새로운 퀘스트를 위해 또 이동해 볼까?”
잡템을 다 처분한 이안은, 마지막으로 원래 쓰던 반지를 경매장에 올려놓은 뒤 장터에서 빠져나왔다.
중부대륙에서 가장 발전이 빠르고 인구가 많은 영지답게, 파이로 영지의 장터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안은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퀘스트 정보를 다시 열어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나저나 이리엘에게 가야하는데… 사랑의 숲에는 어떻게 갔었더라?”
사랑의 숲은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었다.
이계(異界)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곳.
잠시 후, 이안은 사랑의 숲에 가는 방법을 기억해 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리퍼님의 마탑까지 또 가야 하는거잖아?”
사랑의 숲에 가기 위해서는 그리퍼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그런데 그 때, 이안을 따라오던 라이가 이안에게 물었다.
[주인, 그 전에 그녀에게 연락을 해 보는 게 어떤가.]
생각지도 못했던 라이의 말에, 이안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수로 이리엘님께 연락을 해?”
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의 숲을 나오기 전에, 그녀가 통신구슬을 주인에게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
그제야 통신구슬의 존재가 생각이 난 이안은 손뼉을 탁 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맞다! 그게 있었지!”
[그렇다, 주인.]
이안은 기특한(?) 라이의 등을 열심히 쓰다듬었다.
“크으… 라이 너 엄청 똑똑하구나.”
그 말에 우쭐한 표정을 짓는 라이.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카이자르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산통을 깼다.
“내가 볼 땐 라이가 똑똑한 게 아니라, 영주놈이 멍청한 것 같다.”
* * *
이안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사랑의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리엘이 주었던 수정구는, 통신기능 뿐만 아니라 사랑의 숲으로 길을 열어주는 포탈을 생성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사랑의 숲에 도착한 이안은, 당시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긴… 역시나 불쾌한 곳이야.”
이안의 말에, 한 차례 맵을 둘러본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동감한다. 확실히 기분 나쁜 곳이군. 차라리 음침한 임모탈의 첨탑이 훨씬 운치있고 좋았던 것 같다.”
“….”
순간 카이자르르 향해 슬쩍 시선을 준 이안은 연민의 눈길을 보내었다.
‘그래도 난 이제 솔로탈출했는데… 우리 가신님은 아직도 모태솔로인 거야?’
무려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순정(?)을 지켜온 동정남 카이자르.
카이자르가 그런 이야기를 이안에게 한 적은 없었지만, 저 흔들리는 눈빛만으로도, 이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카이자르는 천 년 전에도 활약했었다니까… 최소 천 살은 넘은 건데….’
저벅- 저벅-
이리엘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은, 오래 전 사랑의 숲에 방문했을 때와 하나도 변한 것 없이 똑같았고, 카이자르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과거의 이안보다도 훨씬 숙성도(?)가 높은 모태솔로인 카이자르에게, 사랑의 숲은 정말 지옥같은 곳이었으니까.
“영주 놈아.”
“왜, 가신님?”
카이자르가 검을 뽑아 숲 건너편에 지나가는 사슴 무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 겸사겸사 사냥이라도 좀 하면서 갈까?”
“….”
“몸이 근질거리지 않아?”
“그… 글쎄….”
이안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내가 했던 요정 중매 퀘스트를 만약 카이자르가 했더라면, 그 요정놈은 아마 그 자리에서 세상을 하직했겠지….’
이안은 될 놈은 된다는 말이 어떤 건지 몸소 보여준 그 요정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카이자르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모태솔로 150년차였던 인생선배 윗슨!
‘윗슨… 그는 잘 살고 있을까? 그사이에 깨진 건 아니겠지?’
만약 개졌다고 하더라도, 이리엘이 어떻게든 둘을 다시 이어줬을 것이었다.
여기는, 사랑이 넘치는 사랑의 숲 이었으니까.
살기에 가득 찬 한 인물만 제외한다면 말이었다.
“영주 놈아. 유니콘 고기 한번 먹어보고 싶지 않냐?”
“아, 아니… 왠지 맛없을 것 같아….”
물론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이안은 강력했기 때문에 유니콘들을 사냥하려면 못 할 것은 없었다.
유니콘들의 레벨은 170대였고, 이안은 그보다 더 강력한 몬스터들도 많이 사냥해 왔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레벨을 가늠할 수 조차 없는 고대의 NPC인 이리엘.
‘여기서 깽판을 쳤다간… 퀘스트고 나발이고 이리엘한테 죽을 지도 몰라. 아니, 카이자르랑 이리엘이 멱살잡고 싸우기 시작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지겠지.’
카이자르를 겨우 진정시킨 이안은 최대한 빨리 움직여 이리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랑의 숲은… 역시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다.
* * *
보통의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개발사가 유저들의 컨텐츠 소모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게임 컨텐츠 소모속도로 전 세계 게임 개발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한국의 유저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LB소프트, 그리고 카일란은 달랐다.
LB소프트는, 카일란을 출시한 이래로 반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대규모 업데이트를 해 왔는데, 재밌는 점은 기존의 컨텐츠조차 아직 제대로 소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컨텐츠가 생긴다는 점이었다.
유저들이 정신없이 카일란의 방대한 컨텐츠를 즐기는 동안, 여지없이 그 시기는 또 한번 다가왔고, 유저들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컨텐츠가 넘쳐난다는 것은 게이머들에게 있어서 항상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LB소프트는 그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반년이 지나기 정확히 보름 전, ‘고대 대륙의 영웅들’ 이라는 떡밥을 유저들에게 뿌렸으며, 일주일 전인 오늘, 공식 업데이트 일정이 발표된 것이었다.
- 와… 미친, 난 아직 중부대륙 가보지도 못 했는데, 또 뭐가 새로 나온다고?
- 저도 마찬가지에요. 이제 겨우 컨텐츠 따라잡았나 싶었더니… 또 뭐가 나오네.
- 크으, 이래서 제가 카일란을 사랑한다니까요. 하루 종일 해도 할게 넘쳐나는 게임은 진짜 이 게임밖에 없어.
- 그러니까요. 제 친구는 아예 전투 버리고 생산 직업 쪽만 파고 있는데도, 할 게 너무 많대요.
- 흐… 이정도면 오히려 유저가 지치는 수준.
- 지치긴 왜 지쳐요, 배부른 소리 하시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면 됩니다. 이 게임을 다른 게임들처럼 있는 모든 컨텐츠 다 해보겠다고 설치면 안 돼요.
- 윗님 말에 동의함. 제가 이전에 다른 게임 할 때는 전투 직업이랑 생산직업 듀얼로 다 마스터 단계까지 찍었었는데, 카일란은 엄두도 안 나네요.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의 타이틀은, ‘차원전쟁’ 이었다.
마계를 비롯해 여러 차원계를 잇는 게이트가 순차적으로 열리게 되고, 그곳을 통해서 다른 차원계의 종족들과 싸우게 된다는 다소 간결한 설명.
일단 공개된 이계(異界)는 ‘마계’ 뿐이었고,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없을 뿐더러 무척이나 불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지만, 유저들은 열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50분짜리 티저 영상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각 직업별로 마계에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듀얼직업’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물론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마계를 탐험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유저들만이 가능한 컨텐츠였지만, 이것은 이제껏 특별한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많은 유저들을 열광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와… 저거 무슨 직업일까요?
- 어떤 거요?
- 막 빨간색 번개 같은 게 비처럼 내리는 스킬 있었잖아요. 그거 쓰는 직업이요.
- 아무래도 마법사랑 호환되는 클래스가 아닐까 싶네요.
- 크으… 간지 터진다!
- 전 그것도 멋있어보였지만, 허공에 검 다섯 개 띄워놓고 싸우는 전사 클래스 보고 충격먹었음. 이건 진짜 비주얼 쇼크야.
- 님들, 근데 전 소환술사인데, 소환술사는 왜 관련 클래스가 없었던 것 같죠?
- 그래요? 듣고 보니 그러네.
- 아뇨, 중간에 잠깐 나오긴 했어요. 좀 평범해서 다들 놓치신 듯. 그냥 마계에 나오는 마물들 테이밍해서 싸우더라고요.
- 아 들으니까 기억나네.
- 쳇, LB사는 왜 소환술사만 차별 하냐 또!
- ㅋㅋㅋㅋㅋㅋ 윗님, 제 생각에는 업데이트 초반에 또 소환술사 상향하라는 둥 별에 별 소리 다 나오다가 이안갓 등장하면 다 침묵할듯요.
- ㅋㅋㅋ 저도 동의합니다. ㅋㅋ 이안이 또 발록이라도 테이밍 해서 나타날 듯.
그렇게 수많은 유저들의 기대와 온갖 추측 속에, 업데이트 날짜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 (7). 어둠의 군주 -4 (8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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