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어둠의 군주 -1 >
어둠의 군주인 임모탈이 잠들어있는 장소답게, 첨탑 내부는 무척이나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첨탑 안에 등장하는 평균적인 몬스터 레벨은 150~170 사이로, 중부대륙의 히든 던전 치고는 낮은 편.
그러나 다른 던전들에 비해 몬스터의 개체수가 두 배 이상 많아서 오히려 난이도는 더 어려웠다.
이것은 언데드들이 주로 출몰하는 던전의 특징이었다.
‘여기 완전 꿀 던전 이잖아?’
하지만 이안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몰이사냥과 다대다 전투에 최적화되어있는 이안의 특성상, 평균레벨이 낮고 개체수가 많은 이런 던전 이야 말로 최적의 사냥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1:1전투에 특화되어있는 암살자 클래스에게는 아마도 지옥 같은 사냥터로 느껴질 것이었다.
“훈이, 넌 딜 욕심 좀 내지 말고 몬스터나 최대한 많이 좀 몰아와봐. 자꾸 딜 넣으려고 하니까 대열이 깨지잖아. 사냥 효율도 떨어지고.”
이안의 핀잔에 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쳇, 알겠어.”
훈이는 시야 구석에 띄워 놓은 파티 구성원의 데미지 게이지를 확인하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DPS는 물론 누적 피해량을 보아도, 이안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DPS란 Damage Per Sec 의 약자, 즉 ‘초당 적에게 입힌 평균 피해량’ 이었다.
훈이는 이안을 힐끗 보며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저 괴물은 대체 그동안 얼마나 더 강해진 거야? 내가 알기로 DPS에 가신들이 공격한 피해량은 포함이 안 될텐데….’
소환술사가 PVE에 가장 강력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흑마법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훈이도 욕심을 내서 이안과 딜량 경쟁을 한번 해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 났기 때문에 깔끔히 포기해 버렸다.
아예 다른 영역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역시 임모탈의 권능을 빨리 손에 넣어야 해.’
이안과의 경쟁은 어둠의 군주가 된 뒤로 미루기로 한(?) 훈이는, 빠르게 스컬들을 컨트롤해 맵에 흩어져 있는 몬스터들을 몰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냥하는 모습을, 카노엘은 입을 쩍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다.
‘와… 경험치 오르는 것 봐…. 버스 제대로네 진짜.’
카노엘이 하는 것이라고는, 이안이 광역스킬들을 발동시키는 타이밍에 맞춰 용용이의 브레스를 한 번씩 얹어주는 정도였다.
그 마저도 이안의 레이크가 뿜는 브레스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위력이었지만.
“어비스 홀!”
쿠오오오-!
세리아도 이안과 함께 사냥하면서 컨트롤 능력이 제법 늘어서, 떡대의 어비스홀을 적재적소에 잘 발동시켜 주었다.
그리고 어비스홀이 발동될 때면, 여지없이 광역 딜링 스킬이 그 위를 뒤덮었다.
콰아아앙-!
[어둠의 주술사를 처치했습니다.]
[어둠의 마검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가 1547989만큼 증가합니다.]
[경험치가 1772534만큼 증가합니다.]
:
:
여럿이 나눠먹음에도 백만 단위로 빠르게 차오르는 경험치를 보며, 이안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임모탈인지 뭔지, 만나기 전에 잘하면 170레벨 찍을 수 있겠어.’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천문학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레벨업은 할 때마다 매번 뿌듯했다.
특히 십의 자리가 바뀔 때는 그냥 레벨업을 할 때 보다도 더욱 기분이 좋았다.
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이랄까.
“지금 우리가 몇층에 있는 거지?”
이안의 물음에 훈이가 곧바로 대답했다.
“36층이야.”
옆에 있던 카노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휴, 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걸까요? 50층은 돼야 끝나려나?”
이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 정도까지 있을 것 같은데… 제 마음 같아선 100층까지 있으면 좋겠군요.”
“네에? 대체 왜요?”
“이만한 사냥터 찾기도 힘들잖아요. 지금 최초발견 버프까지 씌워져 있구요. 퀘스트 깨는 김에 경험치도 쌓고 좋죠 뭘.”
이안의 말에 카노엘은 질린 표정이 되었고, 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훈이는 언데드들을 열심히 컨트롤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100층이라니. 그럴 리는 없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잖아?’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 * *
“으아… 난 더 못가! 못 간다고!”
맵에 있던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한 훈이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후우…. 이안님, 조금만 쉬었다 가는 게 어떨까요?”
훈이의 옆에 털썩 앉아,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는 카노엘.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이리들 약해빠졌어. 이제 사냥 시작한지 10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열 시간이 넘게 부대끼며 사냥하다보니, 이안은 카노엘과도 제법 친해져, 말을 놓게 되었다.
카노엘도 이안과 다섯 살이나 차이 났기 때문에, 별 거리낌은 없었다.
“….”
할 말이 없어진 카노엘과 훈이는 동시에 침묵에 빠졌고,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뭐 그럼 잠깐만 쉬자. 몇 층까지 있을지 모르니까 잠깐 쉬는 것도 괜찮겠지. 100층이 끝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세 사람이 올라서 있는 층은 87층.
100층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에, 두 사람은 질겁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밖에서 봤을 때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고!”
“맞아요… 그건 인간적으로 말도 안 돼….”
두 사람에게 유일하게 희망적인 것은, 50층이 넘어선 이후로 맵이 계속 조금씩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맵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첨탑의 뾰족한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자, 다 쉬었으면 빨리 움직이자. 오늘 자기 전에는 임모탈인지 뭔지 잡아야 될 거 아니야.”
그래도 임모탈이라는 말에 힘을 얻은 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임모탈 잡아야지. 내가 그놈 때문에 벌써 몇 달째 고생중인데.”
하지만 카노엘은 여전히 힘이 나질 않는지, 다리를 후들거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으… 으으….”
그렇게 두어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일행은 쉬지 않고 탑을 오른 끝에, 드디어 100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위로 올라가는 길은 없었고,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의 앞으로 다가간 훈이는, 인벤토리에서 기괴한 형태를 가진 나무로 된 아이템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지팡이라기에는 조금 짧고, 완드 라고 하기엔 길다란 알 수 없는 물체를 꺼내든 훈이는, 마법진의 중앙으로 걸어가 그 물건을 바닥에 꼽았다.
“자, 이제 임모탈을 소환 하는 거야?”
이안의 물음에 훈이가 대답했다.
“소환 한다기 보다는… 깨워낸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마법진 뒤로 물러선 훈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시동어를 외기 시작했다.
[어둠의 군주 임모탈… 이시여, 모든 준비를 마친 그대의 후예가 어둠의 성지에 도달했나이다…!]
웅웅거리며 사방으로 목소리가 퍼지는 걸로 봐서 시스템이 훈이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평소에 워낙 진지한(?) 자세로 역할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그였기에 하나도 위화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여하튼, 특이한 놈이라니까.”
이안과 카노엘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잠시 후, 복잡하게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따라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그리고 마법진을 그리는 선과 선이 만나는 꼭짓점마다 둥글게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허공으로 그 빛이 쏘아져 나왔다.
“오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그 광경을 보고있던 훈이가 낮은 목소리로 감탄사를 흘렸고, 이안과 카노엘 또한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허공으로 쏘아진 빛은 하나의 커다란 포탈을 만들어 내었다.
“아무래도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 거 같지?”
이안의 물음에 훈이가 대답하려던 찰나, 허공에서 웅웅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한 죽음과 어둠의 세계를 본 적이 있는가.]
맵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차갑고 칼칼한 목소리.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내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대에게 내 전부를 주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어둠의 포탈은 일행을 전부 집어삼켰다.
* * *
쓰아아아-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음침하고 괴기한 바람소리들.
어둠으로 뒤덮힌 이공간에 떨어진 일행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에서 싸워야 하는 거야?”
누구를 향해 묻는 것인지 모를 훈이의 말에, 이안이 짧게 대답했다.
“정신 차려 인마. 자그마치 트리플S등급 난이도인 퀘스트야. 잠깐 사이에 골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난이도라고.”
이안의 경고에, 훈이와 카노엘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을 경계했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조금씩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간지훈이’ 라고 했나.]
“그렇다.”
이안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웃음이 새어나올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 아이디가 간지훈이였지… 저건 여러번 들어도 왜 적응이 안 되냐.’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고작 이 정도의 전력으로 나의 시험에 도전하다니. 그 베짱 하나는 높이 사도록 하지.]
비웃는 듯한 그 목소리에, 훈이가 지지 않고 대답했다.
“최소한의 전력으로 그대의 시험을 통과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둠의 군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어둠의 마도사로서, 나의 자존심이다.”
B급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를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뱉어내는 훈이를 보며, 이안과 카노엘을 혀를 내둘렀다.
‘와씨, 부끄러움은 왜 우리 몫인 거냐.’
이번에는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는 것도 분명 아니었다.
양 손을 쥐락펴락하며 오그라드는 손가락을 겨우 진정시킨 이안.
그와 별개로 훈이는, 이미 자신의 역할에 100% 몰입해 있었다.
[크하하핫! 이거 참 재밌는 인간이군. 마음에 들어. 어쩐지 즐거운 승부가 될 것 같군.]
임모탈의 말이 끝나자, 새카만 어둠 속에서 부터 희뿌연 회색 빛이 일행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희미하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던 그 빛무리는, 잠시 후 커다란 스컬 메이지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앙상한 뼈다귀 위에 살짝 띄워진 형태로 감겨진 보랏빛의 로브.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한 그것은, 리치킹을 연상케 했다.
그는 앙상한 턱관절을 천천히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자 이제부터, 그대가 과연 어둠의 군주가 될 능력이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겠다!]
한편, 임모탈의 위압적인 모습을 한 차례 노려본 이안은, 라이를 제외하고 소환했던 모든 소환수를 소환해제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환하지 않고 있었던 카르세우스를 소환했다.
[크오오오오!]
이제 통솔력이 제법 올라, 카르세우스와 라이 까지는 동시에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드래곤을 발견한 임모탈이, 새하얀 흰자위를 희번득거렸다.
< (7). 어둠의 군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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