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신룡 카르세우스 -2 >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루스펠 제국 소속 고레벨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일단 팩트는, 놈이 암살자라는 것. 그리고 루스펠 제국 소속이라는 것. 무기는 쌍륜을 썼던 걸로 기억하지만, 암살자야 언제든 무기를 바꿔가면서 사용하니까 그건 단서가 되기 힘들겠지.’
생각나는 것들을 쭉 나열해보니 핵심적인 정보는 많지 않았다.
‘단서가 많지는 않아도, 고레벨 암살자는 몇 없으니까 의외로 찾기 쉬울 수도 있어.’
이안은 찬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놈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까…?’
정보수집은 길드원들에게 부탁해 놓았고, 그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 또한 카윈에게 부탁해 놓았으니, 이안은 다른 부분을 파고들어 볼 생각이었다.
‘파이로 영지가 함락되었을 때 가장 이득을 볼 만한 단체, 혹은 인물.’
이안은 지금 해야 할 일이 뭔지를 깨달았다.
‘일단 카이몬 제국 연합군이 가장 이득인 것이야 당연한 사실이고, 중요한 건 카이몬 쪽에서 먼저 의문의 암살자에게 딜을 했는지, 아니면 루스펠제국 소속인 모종의 세력이 먼저 카이몬 쪽에 제안을 했을지 인데….’
이안은 카이몬 연합군과 의문의 암살자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부분은 기정사실이라 생각했다.
암살자가 만약 모종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카이몬 쪽에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크리티컬한 세작 역할을 제안하면, 분명 엄청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헤르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야, 유현아. 바쁘냐?]
그리고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헤르스 : 아니, 방금 사냥 끝나고 영지 돌아오는 길이야. 왜? 무슨 일 있어?]
[이안 :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부탁할 게 좀 있어서.]
[헤르스 : 뭔데? 뜬금없이.]
[이안 : 너 혹시 카이몬 제국 쪽에 아는 네임드 유저 있어?]
[헤르스 : 으음… 글쎄? 그건 왜?]
[이안 : 이번 공성전에서 우리 뒤통수 친 새끼, 잡아야 할 거 아냐. 단서를 잡기 위해서 필요하다.]
[헤르스 : 음… 나는 지인이 없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안 : 그래? 어떻게?]
[헤르스 : 길드원 분들 중에 카이몬 제국 소속이셨다가 업데이트 이후에 초기화 하고 루스펠 제국으로 국적 바꾸신 분이 한 분 있다고 들었거든.]
[이안 : 오오…!]
[헤르스 : 카이몬 제국 소속으로 계실 때 얼마나 고레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카이몬 쪽에 지인이 있겠지.]
[이안 : 그렇겠네. 레벨은 낮았어도 대규모 업데이트 전이면 카일란 초기 유저일 테니까 인맥이 있을 수도 있겠어.]
[헤르스 : 무튼 그럼 알아보고 연락 주마.]
[이안 : 오케이!]
헤르스와의 대화를 마친 이안은, 영주성 안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카이몬 연합군 수뇌부 쪽에 물어보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면 알려줄 리 없지.’
상대편 국가에 세작을 심어서 공성전에 장난질을 쳤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그쪽 입장에서도 길드위상이 많이 하락할 것이었다.
어쩌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게임 상도덕을 어긴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그쪽에서 미끼를 물 수 밖에 없게 만들면 되겠지.’
그래서 이안이 생각한 방법은 카이몬 연합군의 수뇌부 쪽에 역정보를 흘리는 것이었다.
‘로터스 길드에서 파이로 영지의 성문을 열었던 암살자가 같은 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로터스 길드가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시점에 이안에게 정보를 살짝 흘려서 그의 성질을 살살 건드려 주면 루스펠제국에 분열이 생길 것이고, 카이몬 제국 입장에서는 역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만 흘려도 충분히 먹음직스러운 떡밥이겠지.’
물론 이안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우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루스펠 내의 어떤 세력의 소행인지 알아내더라도, 경거망동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생각을 전부 정리한 이안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좋아, 이건 이제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일단 기다리면 되는 거고.”
이안은 씨익 웃으며 소환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그동안 나는 용가리나 한번 키우러 가 볼까?”
이안과 파이로 영지를 절벽 끝자락에서 회생시켜 준, 보배와도 같은 소환수.
이안은 공성전이 전부 끝난 후, 처음으로 카르세우스의 정보창을 열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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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세우스 (워 드래곤) -
레벨 : 85
분류 : 신룡
등급 : 전설
성격 : 파괴적인
진화가능
공격력 : 2992
방어력 : 1318
민첩성 : 1420
지 능 : 1658
생명력 : 89250 / 89250
고유능력
* 전쟁의 신(패시브)
150m 반경을 기준으로, 범위 내에 있는 적의 숫자에 비례해서, 범위 내의 모든 아군의 공격력을 일정 비율로 상승시킨다.
* 드래곤 스킨 (패시브)
모든 마법 공격에 대한 피해를 40%만큼 감소시키며, 물리 공격에 대한 피해를 10%만큼 감소시킨다.
10초 동안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으면, 초당 2%씩 생명력이 회복된다.
* 드래곤 피어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50m 안에 있는 모든 적을 ‘공포’ 상태에 빠지게 한다. 적보다 레벨이 높을수록 ‘공포’에 걸리게 할 확률이 높으며, ‘공포’ 상태가 되면 100초 동안 카르세우스를 공격할 수 없게 된다.
(적의 면역력을 무시하고 적용된다.)
* 드래곤 브레스 (재사용 대기시간 120분)
전방 50m 내의 부채꼴 범위에 강력한 용의 숨결을 내뿜는다. 카르세우스 공격력의 2370% 만큼의 위력을 가지며, 추가로 10초 동안, 위력의 40%만큼 지속피해를 입힌다.
(유저를 상대로는 효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 폴리모프 (재사용 대기 시간 없음)
카르세우스는 폴리모프를 사용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이 되면, 모든 전투 능력치가 30%만큼 하락하며, 고유능력 중 액티브 스킬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전설 속 일곱 신룡 중 하나이자, 전쟁의 신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은 전룡 카르세우스이다.
아직 힘을 전부 되찾지 못해 불완전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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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드래곤다운 화려한 정보창.
하지만 이안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잠재력이 100인 상태에서 레벨업을 했어야 하는데…!’
카르세우스의 모태 잠재력은 98이었고, 덕분에 거의 60~70레벨 정도까지 잠재력이 2만큼 부족한 상태에서 레벨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이안의 의지와 상관없이 카이자르와 감응해서 전투를 하는 동안 레벨이 올라 버린 것.
어차피 잠재력 100과 98의 차이는 미미했고, 이안이 변태처럼 손해 본 능력치를 계산해본 결과, 모든 능력치를 합해봐야 10도 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
하지만 이안은 괜히 찜찜했고, 덕분에 카르세우스의 별명은 ‘모질이’가 되었다.
이름을 모질이로 짓고 싶었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이 있는 개체였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모질이 소환!”
[소환수 ‘카르세우스’가 소환 명령을 거부합니다.]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투덜거렸다.
“역시… 이름을 모질이로 지었어야 했어. 그랬으면 명령 거부 못 할텐데….”
피식 웃은 이안은 다시 소환 명령을 발동했다.
“카르세우스, 소환!”
우우웅-
그리고 이안의 앞에, 어두운 보랏빛의 눈동자와 머리색을 가진 근육질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언짢아 보였다.
[나는 워 드래곤 카르세우스다, 주인.]
“알고 있어.”
[그렇다면 그런 별명은 부르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카르세우스의 토라진(?) 모습이 귀여운 이안은 싱글 싱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모질이인걸 어떡해?”
[후우… 난 모자라지 않다. 난 완벽한 드래곤이다!]
“아냐, 공격력이 3 정도. 방어력이랑 순발력은 각각 2 정도씩 모자라는 걸?”
[….]
할 말을 잃어버린 카르세우스를 보며, 이안은 피식 웃었다.
“모질아, 우리 레벨이나 올리러 갈까?”
[싫다. 난 모질이가 아니다.]
날카롭게 생긴 얼굴로 인상을 팍 찡그리는 카르세우스를 보며,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알겠어, 카르세우스. 사냥하러 가자.”
이안이 문을 열고 나가자, 카르세우스는 못이기는 척 그를 따라 걸어 나갔다.
카르세우스는 싸우는 걸 제일 좋아하는 드래곤이었다.
* * *
“어떻습니까, 이라한님. 제법 괜찮은 생각인 것 같지 않습니까?”
카이몬 제국 연합군의 임시 막사.
막사 안에는 제국 소속 상위 길드의 길드마스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무엇인가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흠…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긴 하군요. 잘하면 손 한번 안 대고도 코를 풀 수 있으니….”
“이안이 공성전에서 보여줬던 그 드래곤을 또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로터스 길드의 전력은 뛰어납니다.”
“그렇죠.”
“이번 일을 계기로 놈들을 이간질시켜, 이안이 스플렌더나 오클란을 공격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후방 방어선을 쉽게 뚫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파이로 영지의 공략이 실패로 돌아간 뒤, 카이몬 제국의 연합군은 노선을 아예 바꿔버렸다.
중부지역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파이로 영지를 무시한 채, 동쪽으로 계속해서 진격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파이로 영지의 방어요새가 없는 로터스 길드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고립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테니, 아예 무시해 버리기로 한 것.
이렇게 노선까지 변경한 상태에서 로터스 길드와 루스펠 상위 길드들을 이간질시키는 것은 제법 괜찮은 전략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길드의 마스터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구석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샤크란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샤크란님, 어디 가시는지요?”
이라한의 물음에 샤크란이 한 차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게 이런 머리싸움은 적성에 맞질 않아서 말이지요. 세일론이 저 대신 들어줄 겁니다.”
“크흠….”
샤크란은 팔을 휘휘 저으며 막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아서 들 결정해서 통보만 해 주시길. 그럼 전 이만 가봅니다.”
샤크란이 막사를 나서고 나자, 이라한은 잠시 언짢은 표정이 되었지만 곧 다시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십분쯤 뒤.
회의는 이안이 예측했던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대신에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도 하나 생겨나고 말았다.
이 작은 씨앗은, 이후 대륙의 구도에 커다란 변화를 잉태하고 말았다.
< (5). 신룡 카르세우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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