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신룡 카르세우스 -1 >
카이자르는 루스펠 제국의 모든 npc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한 강자였다.
그런 카이자르가 과연 전설등급 무기 하나를 대가로 이안의 가신이 되어 주었을까?
애초에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카이자르는 처음부터 이안에게 깃들어 있던 전쟁의 신의 힘을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이자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정확히 말하면, 이안이 아닌 이안이 지닌 신룡의 알에 깃들어있던 힘이었지만.
‘드디어 내가 느꼈었던 미지의 힘의 실체를 보게 되는 건가?’
카이자르는 자신의 몸을 휘감는 보랏빛의 사슬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슬에 휘감긴 그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으아아! 저게 뭐야?! 드래곤을 소환했잖아!”
“진짜 드래곤이야? 드래곤은 아직 몬스터로 등장한 적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테이밍한거야?!”
난데없는 드래곤의 등장에, 유저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드래곤의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레벨정보를 보고서는 소리쳤다.
“그런데 저 드래곤, 레벨이 1이잖아?!”
“어엇? 정말 그러네? 괜히 쫄았어!”
혼비백산했던 유저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신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크롸롸롸롸-!!
허공을 향해 힘차게 포효하는 전쟁의 드래곤, 카르세우스.
그러자 카이자르의 몸이 보랏빛으로 휩싸이며 드래곤에게 빨려들어갔고, 드래곤의 레벨이 바뀌었다.
[워 드래곤 카르세우스 - 레벨 : 128]
원래 크기의 거의 세 배 가깝게 거대해진 카르세우스가 허공으로 머리를 치켜들었다.
크오오오-
그리고 그 입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보랏빛의 수증기와 빛줄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직감한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미친! 브레스다! 피해!!!”
“드래곤 레벨 1이라며! 맞아도 안 아픈 거 아니야?”
“아냐, 어떤 멍청이가 잘못 봤나봐! 레벨 128이라고 되어있어!”
“음… 그래도 나보다 10레벨이나 낮네. 맞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넌 한번 맞아보던가 등신아! 으악!”
수천, 수만의 병력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는 카르세우스!
그리고 그것은 카이몬 제국에게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콰아아아-
카르세우스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보랏빛 기류가 쏟아져 나왔고, 브레스에 닿은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해일처럼 덮치는 이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을 수 있던 유저는 140레벨대 이상의 기사클래스 뿐이었다.
“크윽! 무슨 데미지가 이래?”
“와, 내 방패 내구도 한방에 아작 났잖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가 거대한 대검을 치켜들고 뛰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온 몸이 보랏빛으로 불타고 있는 한 인영.
그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살아남으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후웅- 후우웅-!
조금 특이한 것은, 검을 휘두르는 보랏빛의 남자와 블랙 드래곤의 심장이 보랏빛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카이자르와 카르세우스가 일체화 된 것이었다.
[캬아아오오-!]
한 순간에 전장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놓은 신룡의 등장.
이 기회를 놓칠 이안이 아니었다.
[기사 분들 앞으로 전진 하세요! 지금이라면 전부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안의 외침에 멍하니 있던 방어군이 카이몬 제국 연합군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고, 기세에 완벽히 압도당한 제국군은 허둥지둥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안은 신룡과 카이자르를 유심이 살펴보며 머리를 회전시켰다.
‘확실히 강력하기는 하지만, 레벨이 128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적들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건 아니야.’
그렇다면 제국군은 어째서 저렇게 혼비백산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우선 브레스가 너무 강력했고, 처음 보는 종류의 위압적으로 거대한 드래곤의 기세에 눌려버린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브레스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엄청나게 긴 고유능력이었다.
그리고 브레스 없는 지금의 카르세우스라면, 카이몬 제국 최고레벨대의 랭커들 몇 명만 붙어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혼란에 빠진 카이몬 제국 연합군에게 그러한 판단력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으며, 한번 밀려나가기 시작한 그들은 무기력하게 승기를 내어주고야 말았다.
그렇게 파이로 영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 * *
거의 일주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 동안의 공성전이 막을 내렸다.
공성전이 치러진 기간은 일반적인 공성전과 별 다를 것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 결과와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로터스 길드와 파이로영지는,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2만여 정도의 병력으로 열 배에 가까운 연합군 병력을 막아낸 것.
만약 이 공성전 결과에 사전 배팅을 할 수 있었다면, 배당이 아마 수백만 배는 되었을 것이었다.
- 와씨, 파이로 영지가 그럼 카이몬 제국 전체를 막아낸거야?
- 그렇다고 봐야지 뭐. 카이몬 연합군도 진짜 무능력하네. 열 배가 넘는 전력으로 어떻게 못 뚫을 수가 있지?
- 그러니까 말이야. 문까지 따고도 못 밀었으면 말 다했지 뭐.
- 윗님들 말 엄청 막하시네. 공성전 제대로 보기는 봤음? 카이몬이 무능한 게 아니고, 로터스 길드가 진짜 대단한 거임.
- 아니지, 로터스가 대단한 게 아니라, 이안이 쩌는 거지. 보니까 이안 혼자서 다 해 먹었더만.
- 크으, 그나저나 님덜, 그 마지막 전투에서 등장했던 드래곤은 뭐였음? 그거 진짜 이안 소환수야?
- 몰라. 그건 의견이 분분하던데. 이안이 특수한 일회용 소환스크롤을 사용했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말 많음.
- 그런가? 어쨌든 신룡인지 뭐시기 때문에 히든 퀘스트도 여러 개 생성됐다던데?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 뿐 아니라, 관련 각종 커뮤니티가 전부 난리 났고, 해외 언론들도 공성전의 영상을 자국으로 퍼 나르고 있었다.
특히, 신룡 카르세우스와 카이자르의 활약으로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켰던 마지막 전투.
다이나믹함의 극치를 보여줬던 이 전투의 영상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넷 상에 퍼지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출나게 높은 조횟수를 기록하는 영상은 없었다.
진성의 원룸 근처에 있는, 복층으로 지어진 한적한 카페.
카페 구석에는 한 남녀가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는 마주앉아 무언가를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름아닌 진성과 소진이었다.
“진성씨, 그러니까 이 부분만 따로 잘라서 스페셜 영상으로 만들자는 거죠?”
“예. 제가 구독자라면, 귀찮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감상 안 할 겁니다. 계속 치고받고 싸우는데, 이게 뭐가 재밌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봐요? 이거 그냥 틀어놓으면 러닝타임만 30시간은 될 텐데.”
진성과 소진은, 이안의 개인 영상을 어떤 식으로 편집해서 업로드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원래는 소진이 알아서 편집해서 올리고, 진성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이번 전투 영상은 화제성이 큰 만큼 더욱 신중하게 작업하기로 한 것이었다.
소진은 이번 영상을 정말 최고의 퀄리티로 만들어서 업로드 할 생각이었다.
“아뇨, 그건 진성씨 생각이고요. 이 영상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보고싶은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진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죠?”
“그야, 개인화면으로 볼 수 있는 진성씨의 전투장면은, 초보자인 제가 보기에도 억 소리 날 정도로 화려하거든요. 진성씨의 움직임을 보고 배워보려는 유저들도 많아요 요즘은.”
“흐음….”
진성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그냥 몸으로 느껴야지.’
소진이 들었다면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내용.
진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이렇게 하죠. 전체 영상을 편집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마지막 공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50분만 따로 빼서, 고퀄리티 편집을 먼저 합시다.”
소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걸 먼저 배포하자는 거죠?”
“네. 가장 핫한 지금 타이밍에, 최대한 빨리 영상을 올려야 효과가 가장 좋을 테니까요.”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도록 하죠.”
“오케이, 그럼 나머지는 평소처럼 알아서 해 주시는 걸로 하고… 영상은 언제쯤 나올까요 그럼?”
이안의 물음에 소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빠르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오전 중으론 나올 겁니다.”
그에 이안이 휘둥그래진 눈을 하고는 되물었다.
“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작업이 되요? 지금까지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 걸리지 않았어요?”
“후후, 제가 드디어 팀을 꾸렸거든요. 이제 저 혼자 작업 안합니다. 이안님 덕에 돈을 제법 모아서 이번에 아예 사업자를 하나 냈어요.”
“오호…!”
훈훈한 덕담을 몇 차례 나눈 두 사람은, 탁자 위의 커피를 전부 마신 뒤 헤어졌다.
그리고 소진과 헤어져서 집으로 향하던 이안은, 곧 벌릴 돈을 생각하며 히히덕 거렸다.
“흐흐, 이번엔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이제 딱히 현질해서 사고 싶은 아이템도 없는데….”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현실에는 사고 싶은 아이템(?)이 더욱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통장에 돈 좀 넣어드릴까?”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돈이 어디서 났나며 도둑놈 취급 하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흠, 일단 모아놓지 뭐. 하린이랑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야지.”
* * *
카이몬 연합군은 완전히 물러났다.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뇌부에서 파이로 영지 하나를 잡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덕분에 파이로 영지는 이전보다 더욱 많은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쪽으로 석재 남은 거 전부 가져와! 여기부터 보수하는게 옳을 것 같다고!”
“오케이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로터스 길드로부터 일정 보수를 받고, 무너진 파이로 요새의 보수공사를 돕는 건축가들부터.
“샌드 스콜피온의 맹독, 소량부터 대량까지 판매합니다! 스콜피온이 잡기는 쉬워도, 맹독은 드랍률 엄청 낮다는 거 다들 아시죠?”
“사막전사의 언월도 팝니다! 유일등급 두 자루, 영웅등급도 한 자루 있습니다!”
영지 중앙의 광장에 모인, 장사하는 상인들까지.
파이로 영지는 어느 북부대륙의 영지들 보다도 더욱 활기를 띄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공성전으로 인해 로터스 길드는 엄청난 자본과 힘을 축척할 수 있었고, 이 모든 요소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안은 모든 상황이 완벽할 정도로 좋게 흘러갔음에도, 속 안에 진 응어리가 하나 있었다.
‘내가 또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까.’
아직 누군지 완벽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루스펠 제국 소속인 게 확실한 요새 잠입 암살자.
그의 정체와 소속을 밝혀 제대로 보복을 해 줘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체도 모른 체 이대로 넘어가면, 언젠가는 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니까.’
이안은 자신의 기억력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총 동원해 그를 찾기 시작했다.
< (5). 신룡 카르세우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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