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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83화 (210/1,027)

< (4). 사면초가 (下) -3 >

사실 암살자가 침투하여 성문을 여는 작전은, 최근 몇 몇 공성전에서 이미 쓰였던 방식이었다.

또한 그 때마다 효과도 탁월했었다.

그래서 파이로 영지 또한 암살자가 쉽게 침투할 수 없도록, 디텍팅 타워를 촘촘히 박아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같은 편인 루스펠제국 소속의 암살자가 이런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다는 거지.’

이안은 범인이 아군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고 해도 뚫을 수 없을 만큼, 성채 전면의 디텍팅타워 배치는 정말 완벽했으니까.

그리고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때 그 놈이 분명해.’

셀라무스 퀘스트를 완료한 뒤 귀환하던 도중 성 밖에서 마주쳤던 암살자.

이안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너무 안일했어. 그 때 조금 더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사실 안일했다기보다는 너무 정신이 없던 상황이었다.

이안이 복귀하던 타이밍은 공성전이 발발하기 정말 직전의 상황이었고, 정체모를 의문의 암살자를 신경 쓰기엔 공성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었다.

‘일단 이 상황부터 버텨내고, 그 뒤를 생각해보자.’

디텍팅 타워가 아무리 촘촘히 박혀있다고 하더라도, 영지 안쪽에서 잠입한 암살자의 움직임까지 전부 잡아낼 정도는 아니었고, 덕분에 이런 대 참사가 벌어진 것.

하지만 이안은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았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은 아니니까.

‘빡빡이 재소환 가능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이안은 모든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과 소환수들의 소환 가능 시간을 체크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핀의 위에 올라탄 이안은 허공으로 빠르게 솟구쳐 올라갔다.

“핀, 성문 위쪽으로 최대한 높게 올라가자!”

꾸루룩-!

새까만 점이 될 만큼 높은 지점까지 올라선 이안은, 일전에 했던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빡빡이를 낙하시켰다.

쐐애애액-!

거칠은 파공음과 함께 성문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빡빡이의 거구!

잠시 후, 성문에 도달하기 직전, 빡빡이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전장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미친, 이게 뭐야?!”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성벽 위에 웅크린 자세 그대로 떨어져 내린 빡빡이.

어느새 따라 내려온 이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무너져라…!’

그리고 이안의 기도(?)가 먹히기라도 한 것인지, 성벽에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무너진다…! 피해!!”

성문을 통해 들어오던 카이몬제국 연합군의 유저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로의 넓이에 비해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있어서인지, 절반 이상의 유저가 몸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깔려버리고 말았다.

쿠구구궁-!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휴, 그래도 다행이야.’

환하게 열려있던 성문은 막혀버렸지만, 무너져 내린 위쪽으로 제국군의 병력들은 여전히 유입되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양호한 수준이었기에, 방어군은 한시름 돌릴 수 있었다.

“이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여긴 왜 이렇게 난장판인가?”

어느새 나타난 카이자르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이안에게 물었고,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명하자면 길어. 일단 막아보자고.”

창대를 길게 늘어뜨리며 전장을 향해 뛰어내리는 이안.

그리고 그를 따라 카이자르도 대검을 뽑아들고는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원 없이 싸울 수 있겠군. 확실히 수성전 보다는 백병전이 재밌는 법이지.”

한동안 성벽 위에서 기어오르는 적들만 상대하는 게 지루했던 모양인지, 카이자르는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어군은 밀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          *          *

시끌벅적 떠들어대며 공성전을 관람하던 가상현실과의 학생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정적 속에서 굳은 자세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제발….”

아그작!

세원은 민아의 입에서 들려오는 과자 부서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얌마, 좀 조용히 먹어. 지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아 알았어요, 죄송….”

조용히 있던 수철 또한 한마디 거들었다.

“으… 제발 막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숨죽여 관람하기를 이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민아가 갑자기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입을 열었다.

“오빠! 저기! 저거 뭐에요?”

“뭔데?”

순간 과실 안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민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향했고, 그 곳에는 이안이 있었다.

“얌마, 진성이잖아. 뭐긴 뭐야.”

세원의 핀잔에, 유심히 화면을 보던 수철이 고개를 갸웃 하며 대답했다.

“전장에서 계속해서 뭔가 보라색 빛줄기 같은게 진성이를 향해 빨려들어가는데요?”

그리고 화면을 다시 확인한 세원 또한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어? 그러네?”

열심히 창대를 휘두르며 연합군과 드잡이질을 하는 이안.

이안의 하복부를 향해 보랏빛 기운이 계속해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종래에는 그 기운이 모여 구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과실 안에는 탄성이 울려 퍼졌다.

“오와! 저게 뭐야?!”

*          *          *

‘뭐지? 신룡…?!’

정신없이 싸우느라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변화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이안은, 문득 허리춤에 모이고 있는 보랏빛 기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콰아앙-!

달려드는 적을 처치한 이안은 뒤로 살짝 빠지며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카르세우스의 알 - 부화율 : 99.99% (부화중)]

“…!!”

그야말로 이안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환수의 부화!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신룡이 부화한다는 사실 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도움이 될 부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엄청난 놈이 나온다고 해도 1레벨을 어디다 써먹어?’

게다가 처음 태어났을 때 얼마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날지도 알 수 없는 노릇.

신룡이 태어나더라도 잠재력이 100이 되기 전엔 1레벨도 올릴 생각이 없었기에, 지금 상황에서 신룡의 부화는 그야말로 의미없는 것이었다.

희박한 확률로 모태 잠재력 100을 가진 개체일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제길, 일단 싸우자…!”

이안은 창대를 고쳐쥐고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은 신룡의 부화에 신경쓸 시간에, 당장 적 유저 한명이라도 게임아웃 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쾅- 콰쾅-!

이안은 뒤쪽에서 자신을 서포팅하고 있던 세리아를 향해 물었다.

“세리아, 3차 방어선 준비가 얼마나 됐는지, 좀 알아봐줄 수 있겠어?”

“네, 영주님! 알아보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답한 뒤 빠르게 와이번에 탑승하여 날아가는 세리아.

이안은 자신의 남아있는 생명력 게이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이를 악물었다.

‘남은 생명력은 한 5만 정도… 이정도면 좀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내가 지금 뒤로 빠질 수는 없으니까.’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적들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조금은 어색했던 창이라는 무기에, 이제는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이는 이안이었다.

촤라라락-!

“저기, 이안이다! 저놈부터 잡아!”

그런데 그 때, 정신없이 싸우던 이안의 시야에 생각지도 못한 시스템 메시지들이 연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보여준 당신의 용맹함으로 인해, 전쟁의 신이 깨어납니다.]

[신룡 카르세우스 알의 부화율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안 뿐만 아니라 모든 유저들의 시야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대 전설 속의 일곱 신룡 중 첫 번째 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쿠오오오-!

굉음과 함께 이안을 중심으로 강렬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이안을 중심으로 10m~20m정도 안쪽에 있던 유저들은, 몰아치는 광풍으로 인해 바깥으로 밀려 나갔고, 그 모습을 발견한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저 미친놈이 또 이상한 짓 한다!”

“피해! 또 뭔 짓 할지 몰라!”

아직까지 빡빡이 메테오가 너무 강렬히 남아있었는지, 이안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기이한 광경에,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슬금슬금 이안과의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정작 당황한 것은 이안이었다.

‘어어? 몸은 또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온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버렸기 때문.

이안의 몸은 조금씩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자연히 그를 향해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이안이다! 궁수랑 마법사들 뭐해! 저놈부터 포격해!”

허공에 무방비 상태로 떠오른 이안을 발견한 카이몬의 유저들은 일제히 이안을 향해 원거리 공격을 했다.

쾅- 콰쾅-!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투사체들은 이안의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허공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후우웅-!

전장의 곳곳에서 보랏빛 기류들이 계속해서 이안을 향해 빨려 들어갔고, 그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덕분에 시간을 제대로 끌고있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제 곧 있으면 3차 방어선의 방어준비가 다 끝날 테니까.’

이안은 아예 편한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인벤토리에서 멋대로 튀어나온 신룡의 알이, 이안의 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우우웅-

신룡의 알은 커다란 공명음을 울리며 제자리에서 진동하기 시작했고, 원래도 작지 않았던 그 크기가 점점 더 확장되기 시작했다.

‘신룡이라서 그런지 부화하는 것도 정말 요란하구만.’

일찍이 전설등급의 소환수인 핀의 부화장면도 눈 앞에서 봤던 이안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핀이 부화하는 모습도, 지금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화려했었으니까.

‘어라, 근데 이번에는 알 자체가 모습이 변하는 건가?’

알을 깨고 새끼용이 나타날 줄 알았던 이안은, 하얗게 빛나는 알의 외형 자체가 꿈틀대며 바뀌는 것을 보고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앞에 당황스러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술사의 통솔력 부족으로, 전쟁의 용 카르세우스를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이 강제로 역소환됩니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치명적인 상황!

한참 싸우고 있던 소환수들이 소환해제 당하면, 이안의 전력은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아니, 지금 나와 봤자 레벨 1 짜리 꼬꼬마인 주제에…!’

소환수를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통솔력은, 당연히 해당 소환수의 레벨에 비례해 증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룡이긴 해도, 통솔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 없던 이안이었다.

‘그래도 모든 통솔력을 동원하면 신룡을 소환할 수는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사실 이안은 몰랐지만, 지금 이안의 통솔력을 전부 동원하더라도 신룡을 소환하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그걸 가능케 해주는 것은, 드래곤 타입의 소환수들을 소환하는데 필요한 통솔력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드래곤 테이머의 머리장식’ 아이템 덕분이었던 것이다.

아마 통솔력이 부족했더라면, 아예 부화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편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커다란 수박 정도의 크기였던 신룡의 알은, 어느새 드레이크 킹인 레이크의 몸집보다 더 커진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새하얀 빛으로 휘감겨 있던 묵빛의 드래곤의 시선이, 천천히 이안을 향해 돌아갔다.

[그대가… 날 깨운 인간인가…?]

전국에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이 전장 속.

게다가 위엄이 철철 흘러넘치는 드래곤의 앞이었기에, 이안은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싶었다.

이안은 속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열심히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 간지가 나려나?’

하지만 이안은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마치 황제의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처럼, 이안의 입은 이미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 전룡 카르세우스여.”

우우웅-!

이안의,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의 대답에, 카르세우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캬아아오오-!

그리고 카르세우스의 말이 이어졌다.

[후후, 이곳은 전장이로군. 끈적한 피 냄새, 그리고 용맹스런 함성소리.]

한 차례, 전장을 내려다 본 카르세우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

하지만 멋들어진 위용을 뽐내며 이안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카르세우스의 레벨은 당연히 1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소환수의 정보는 확인해 볼 수 있었기에, 이안은 이미 카르세우스의 정보창을 훑어본 것이었다.

‘아오, 이 멍청이가. 대체 뭐가 있어야 할 곳 인거야?’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1레벨인 카르세우스의 공격력은 세 자릿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이없어하는 이안의 속마음과는 별개로, 이안의 입은 진중한(?) 목소리로 카르세우스에게 말했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대가 있어야 할 곳. 그대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

쿠오오오-!

허공을 향해 한번 더 포효한 카르세우스는, 이안의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이 전투, 내가 승리로 이끌어 주도록 하지.]

“그대를 믿겠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멋진 장면!

물론 오그라드는 대사와는 별개로, 이안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어휴, 이 허세 쩌는 용가리 놈.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하지만 그 때.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내 영혼의 동반자가 이곳에 있다. 나는 아직 힘을 전부 되찾지 못했으니, 그의 힘을 빌리도록 하겠다.]

“그러도록 하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안의 대답과 함께, 카르세우스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르세우스의 몸에서 뻗어 나간 보랏빛 사슬이 한 남자의 몸을 거칠게 휘감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카이자르였다.

< (4). 사면초가 (下)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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