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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81화 (208/1,027)

< (4). 사면초가 (下) -1 >

[2… 1… 오픈!]

그긍- 그그긍-!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바위 긁히는 소리.

요새 한쪽을 막고 있던 차단기가 올라가면서 전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안쪽에 타워가 더 있었잖아?!”

“제길! 어쩐지 다크루나 길드원들한테 들었던 것 보다 방어타워가 적더라니!”

첫 번째 방어선에 있던 경계타워들은, 이미 카이몬제국 연합군에 의해 거의 다 파괴된 상태.

이제야 안심하고 싸워볼까 했던 유저들은 새로이 드러난 방어타워들을 발견하고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게다가 원소타워야! 뒤로 빠져!”

“뒤쪽도 막혔어!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그리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카이몬 유저들의 머리 위로 원소타워들의 공격이 분사되었다.

화르륵-!

콰콰콰쾅-!

게다가 미리 후방으로 빠져있던 마법사들은,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광역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마나의 공명음!

연이어 쏟아지는 광역 마법세례에, 요새 동남쪽을 가득 메우고 있던 카이몬 제국군은 한순간에 새까만 재가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지직- 쾅!

눈 깜짝할 새에 수천이 넘는 어마어마한 병력이 증발해 버렸고, 후방에 빠져있던 카이몬 연합군의 수뇌부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하… 저것들은 또 어떻게 공략해야 돼?”

1차 방어성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낮지 않은 2차 방어벽과, 그 사이사이에 포문을 열고 있는 원소타워들.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기엔 너무 많은 병력을 잃은 제국군의 수뇌부는,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전장에서 돌아온 이라한이 돌연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여긴 일단 둡시다.”

“네? 이대로 물러나자고요?”

이라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북쪽과 서쪽은 아직 1차 방어선도 뚫지 못했습니다. 우선 그쪽을 지원하고 나서 2차 방어벽을 뚫기로 하죠.”

“음… 그게 나으려나?”

“물론 이대로 밀어붙이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피해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광역타워들 파괴력 보시지 않았습니까, 다들. 그리고 이제 반나절 정도 후에는 전투를 중지해야 할 텐데… 그 때까지 저 무식한 타워들을 넘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가상현실게임이라고 해서 현실의 피로도가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게임폐인들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최소한의 일정은 소화해야 했다.

한 끼 정도 굶는 것이야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이 많은 인원이 날밤까지 새며 공성전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흠… 그러면 일단 오늘은 최대한 1차 방어벽을 전부 뚫는 선에서 마무리를 보자는 거죠?”

“그렇습니다. 너무 서두를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이라한의 말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 듣고 보니 이라한님의 말이 일리가 있네요.”

“십만이 넘는 전력이면 오늘 내로 충분히 파이로 영지 탈환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정도로 저항이 거셀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연합군의 수뇌부는 이라한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신속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비공개 상태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샤크란의 레벨은 162 정도였고, 이안의 레벨은 153이었다.

둘의 레벨은 실제로 10레벨 정도가 차이 나는 상태.

10레벨도 충분히 큰 차이기는 했지만, 대중은 둘의 레벨차이를 더 크게 알고 있었다.

“미친! 이안 뭐 치트키라도 친 거 아니야? 샤크란이랑 어떻게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거지?”

“지금 공식적으로 공개되어있는 최상위권 레벨대가 160 정도니까, 샤크란님 레벨은 160 정도이겠고…. 이안님 레벨은 몇쯤 되려나?”

“지금 소환술사 랭킹 1위로 등록되어있는 로렌님이 134레벨이네요.”

“헐, 그럼 이안 레벨은 아무리 높게 쳐 줘야 140정도인거 아니야?”

“그렇겠죠? 140도 진짜 높게 친 거죠. 전 높아봐야 136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20레벨 정도가 낮은, 게다가 대인 전투에서 사제를 제외하면 가장 허약하다는 소환술사 클래스로 샤크란을 상대하고 있는 이안.

일반적인 유저들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의 전투는 위와 같이 해석되었고,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소환술사 라는 클래스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그리고 이러한 절대적인 흥미로움에 인해, 두 사람의 주변에서 전투하던 이들은 싸우던 것도 잊은 채 아예 넋놓고 둘의 전투를 구경했다.

콰콰쾅-!

샤크란이 쏘아 보낸 붉은 검기 덩어리가 빡빡이의 몸에 맞으며 흡수되었다.

“후, 이번엔 단기 무적 스킬인가?”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런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샤크란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쌍검을 고쳐 잡았다.

“소환술사는 이런 점이 까다롭군. 소환수마다 보유스킬이 다 다르니 전투 자체에 적응하는 데 까지 꽤 시간이 걸려. 변수도 많고.” “후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어.”

이안은 창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샤크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놈이 쓰는 분신은, 분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거의 본체랑 다를 것 없는 전투력을 갖고 있다.’

샤크란의 히든클래스가 뭔지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스킬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환영의 무사’ 정도의 이름이 붙어있을 것 같았다.

샤크란은 본체를 포함해 총 다섯 개의 분신을 사용했으며, 어떤 조건이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신과 본체의 위치를 거의 자유자제로 스왑(swap)하고 있었다.

‘결국 시간 내에 분신을 다 제거해야만 놈을 죽일 수 있는 건가?’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된 지는 이제 십 오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이안은 다섯 개의 분신 중에 두 개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고, 샤크란은 이안의 소환수들 중 할리를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등하거나 오히려 이안이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이안은 자신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놈의 분신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만 돌아오면 힘들게 없앤 두 개의 분신이 다시 복구되겠지.’

반면에 생명력이 전부 소진 되서 역소환된 할리의 경우는 패널티가 풀리기 전까지 다시 소환할 수 없었다.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스킬의 패널티로 인해 죽기 직전 역소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다가 상황 봐서 뒤로 빠져야겠군.’

아직까지 샤크란을 혼자의 힘으로 잡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이안은 생각을 정리하고 전황을 살폈다.

‘거의 반나절 동안 제1 방어벽을 지켜낸 것만 해도 충분히 선전한 거니까.’

쾅 콰쾅-!

이안과 샤크란은 계속해서 부딪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과 소환수들. 그리고 샤크란과 그의 분신들이 뒤엉키며 파티 전투 같은 느낌이 연출되었다.

이안과 샤크란은 전투가 지속될수록 서로에게 더욱 감탄했다.

‘저 분신들… 어느 정도의 AI는 있겠지만, 소환수랑 비슷한 수준이겠지. 결국 저 정도 컨트롤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일일이 유저가 전투명령을 내려주고 있다는 건데….’

이안은 샤크란의 분신 컨트롤 능력에 놀라고 있었고, 샤크란은 이안의 소환수 통제 능력에 놀라는 것이었다.

서로가 비슷한 난이도의 컨트롤을 하다 보니 상대의 전투능력을 더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후, 이렇게 즐거운 전투는 오랜만이야.”

샤크란의 말에 이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마찬가지.”

이안은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시간과 지속시간을 한 차례 체크한 뒤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제 2분 정도면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지속시간이 끝나겠어. 아쉽지만 그 전에는 몸을 피해야겠군.’

이안이 천천히 뒤로 빠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헤르스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헤르스 : 진성아, 지금 동서쪽 방어벽 완전히 뚫려서 2차 방어벽 가동시켰다. 너도 슬슬 뒤로 빠져야 할 거야. 이쪽에 주둔해 있던 병력이 다 서쪽으로 움직였어. 포위되면 위험하다.]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한 메시지.

이안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후, 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전황을 계속 체크했어야 하는데… 대인전투가 재밌어서 여기 너무 빠져있었네.’

이안은 빡빡이와 라이, 레이크에게 샤크란을 잠시 맡겨두고는 빠르게 후방으로 빠져 나갔다.

그러자 샤크란이 이안을 향해 검기를 쏘아 보내며 소리쳤다.

“어딜 도망가는 거냐! 전투는 마무리 지어야지!”

이안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틀어 검기를 피해내고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핀의 위에 올라탔다.

“이대로 있으면 포위될 텐데, 그럴 순 없지.”

핀의 위에 올라탄 이안은 빠르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고, 때맞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스킬의 지속시간이 끝납니다.]

[모든 효과가 사라집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즉시, 이안은 핀을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을 소환해제 했다.

“소환해제!”

그러자 샤크란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라이와 빡빡이, 그리고 레이크가 하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전장의 상공으로 순식간에 올라온 이안은, 지휘관의 위엄 효과를 켜고 분주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2차 방어벽을 발동시킬 겁니다! 모두 뒤쪽으로 빠져주세요!]

이안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로터스 길드의 병력들.

이안과 손발을 맞춰본 적이 없는 타 길드의 유저들 또한 처음에만 조금 우왕좌왕했을 뿐, 금방 적응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파이로 영지의 모든 1차 방어선은 완벽히 오픈되었고, 2차 방어선 안쪽으로 모든 방어병력이 이동했다.

그리고 자연히, 전투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와씨, 우리 지금 전투 시작한지 8시간 지난 거 아냐?”

“미쳤네. 무슨 공성전을 8시간을 해. 게다가 아직 끝난 것도 아니야.”

양측 진영 할 것 없이 지칠대로 지친 유저들은 축 늘어져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결국 카이몬 제국의 연합군은 일단 말머리를 돌려 야영지로 향했다.

각자 정비를 위해 마을로 돌아서는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저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마디씩 했다.

“난 지금 어이가 없네. 무슨 십만이 넘는 병력으로 1/10 수준 병력밖에 없는 방어성을 못 뚫고 이러고 있냐.”

“내말이. 진짜 무슨 방어요새에 저렇게 투자를 많이 했지? 내가 지금까지 공성전 수십 번은 뛰어봤는데, 이런 방어요새는 처음이야.”

수뇌부 역시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전체적으로 당황하는 분위기였으나, 그래도 1차 방어벽을 격파했다는 성과가 있었으니 이제 하루 이틀이면 점령이 가능하리라는 긍정적인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파이로 영지 공성전의 첫날이 지나갔다.

*          *          *

“벌써 3일 쨉니다. 사무엘님.”

중부대륙 극동부에 있는 오클란 길드의 대영지.

그리고 영주성 안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클란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사무엘진과, 스플렌더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마틴이었다.

“후,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군요.”

마틴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니 카이몬 연합군 머저리들은 대체 왜 열 배의 전력으로 저렇게 빌빌거리고 있는 건지….”

연합군이 파이로 영지를 공격하기 시작한지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첫째 날에 첫 번째 방어성을 뚫리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두 번째 방어성은 견고한 상태.

그리고 파이로 영지가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루스펠 제국의 기득권층이었던 거대 길드들은 불안해져만 갔다.

하루, 하루 버틸 때마다 파이로 영지가 얻는 이득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견고한 방어요새를 통해, 로터스 길드는 자신들보다 훨씬 덩치 큰 적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큰 전쟁보상이 더욱 불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흠… 오늘을 기점으로 로터스 길드가 길드랭킹 20위권 안쪽으로 진입했더군요.”

길드 랭킹 시스템은 매일 자정을 기점으로 갱신된다.

그리고 오늘 날짜 기준으로, 로터스 길드는 19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러게 그 때 로이첸님이 돕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한다니까… 쯧….”

사무엘진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사무엘진은 나름 머리를 쓴 것이었다.

로이첸이 벨리언트 길드의 전력으로 로터스 길드를 돕겠다고 했을 때, 못이기는 척 했던 것도 사실 그의 머릿속에 구상되어있던 전략의 일부였다.

‘어차피 승산 없는 싸움, 벨리언트 길드가 뛰어들어 길드 전력이나 좀 소모시키길 바랬는데….’

루스펠 제국의 3대 길드의 전력은 거의 엇비슷했다. 그래서 약간의 차이로도 금방 순위가 뒤집히는 만큼, 사무엘진은 벨리언트 길드의 전력이 조금 약화되기를 바랬던 것이었다.

하지만 약화되기는커녕, 공성전에 참여한 벨리언트 길드는 오히려 많은 이득을 취하고 세 길드 중 가장 위 순위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사무엘진과 마틴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사무엘진이 마틴을 슬쩍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손을 좀 써보겠습니다.”

그에 마틴의 두 눈이 살짝 빛났다.

“뭔가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사무엘진은 대답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4). 사면초가 (下)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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