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사면초가 (中) -3 >
상대는 140레벨 중반 정도의 고레벨 유저들.
하지만 이제 150레벨도 넘은 이안의 눈에, 제대로 된 컨트롤 능력을 갖추지 못한 140레벨대의 유저는 어린아이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친 놈! 죽여 버리자!”
“소환술사 나부랭이가 입만 살아가지고…!”
일단 이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사 유저와 기사유저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안은 할리를 탄 채로 그들을 향해 마주 뛰어들었다.
‘어디, 몸 좀 풀어볼까?’
아무래도 비교적 움직임이 빠른 전사유저가 먼저 이안과 맞닥뜨렸고, 두 사람의 무기가 빠르게 움직이며 부딪히기 시작했다.
깡- 까강-!
하지만 몇 차례 공방을 주고받기도 전에, 남자의 어깻죽지를 깊숙이 찌르는 이안의 창.
푸욱-!
지그재그로 비틀려있는 날카로운 창날에 꿰뚫리자, 남자의 생명력이 한 순간에 쭉 빠져나갔다.
“으윽-!”
그리고 창대를 한 바퀴 돌려 곧바로 연속 타격을 입히는 이안!
심지어 무기의 고유능력인 ‘심판의 번개’까지 발동되자, 남자는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번쩍- 콰아앙-!
[고유능력 ‘심판의 번개’가 발동됩니다.]
[카이몬 제국의 유저 ‘세르비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이몬 제국의 유저 ‘세르비콘’의 생명력이 27980만큼 감소합니다.]
[광역 폭발로 인해, ‘세르비콘’의 생명력이 추가로 13780만큼 감소합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난 채 뒤쪽으로 튕겨져 나가는 그를 향해, 이안은 그대로 창을 투척했다.
쐐애액-!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대로 가슴팍을 꿰뚫는 이안의 창.
[카이몬 제국의 유저 ‘세르비콘’을 처치하셨습니다.]
[명성을 1252만큼 획득합니다.]
[전공 포인트를 679만큼 획득합니다.]
창에 가슴팍을 뚫린 채 회색 빛깔로 변해버린 남자.
이안은 빠르게 달려가 창을 뽑아들고는 허공에서 휘휘 돌렸다.
“뭐 이렇게 허약한 거야?”
이안은 계속해서 광역도발을 시전하며 당황한 채 굳어있는 기사를 향해 창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주춤했던 남자가 다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이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같이 달려든 기사유저가 어떻게 손 써볼 새도 없이 당해버린 것이었다.
‘크으, 역시 좋은 아이템이 손맛도 다르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나온 데에는, 이안과 남자의 실력 차이가 너무 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거기에 창이라는 무기가 검에 비해서 더 긴 레인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안은 할리의 위에서 공격하는 위치적 이점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순삭’이라는 표현이 완벽히 들어맞는 상황.
바로 앞까지 다가온 기사 유저가 이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 머저리가 방심했을 뿐이야. 네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이안.”
“그래? 그럼 네가 한번 증명해 보던가.”
이안의 입장에서는 비웃음만 나오는 소리였다.
‘누가 누구 앞에서 방심을 해?’
이안은 창대를 고쳐 쥐며 남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빠르게 한 명이라도 더 줄여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깡- 까앙-!
남자는 이안의 쉴 새 없는 공격을 나름대로 잘 방어했다.
‘그래도 기사 클래스라 이건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의 창극이 방패와 검 사이에 드러난 틈을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푸욱-!
이안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카이트 실드가 멋있긴 하지만, 마상전투가 아니고서는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왜 쓰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연 모양을 닮은 카이트 실드는 아래로 길쭉하게 늘어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볍고 둥근 라운드 실드에 비해 유저의 움직임에 제약을 줄 수 밖에 없는 형태인 것이다.
애초에 카이트 실드는, 말에 올랐을 때 무방비가 될 수 밖에 없는 하반신을 가리기 위해 길쭉하게 디자인된 방패였다.
백병전에서 쓸 만한 방어구가 아닌 것이다.
깡 까가강-!
한번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하자, 남자는 연속해서 창날에 베이기 시작했고.
쾅-!
연이어 터지는 심판의 번개에, 까맣게 타 버리고 말았다.
털썩-
채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에 140레벨대의 유저 둘을 게임아웃 시켜버린 이안.
그 모습을 지켜본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은 환호했으며,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와… 쩌, 쩐다.”
“미친, 쟤 소환술사 맞아? 창으로 찌르는 데미지가 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 되게 나오는 거지?”
“그거야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으니까 그렇죠. 템도 좋은 것 같고…. 가슴팍에 저런 식으로 창날이 파고 들어가면 소환술사가 아니라 마법사나 사제가 찌른 창에도 크리티컬 데미지 입을 듯요.”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안은 아예 전장을 헤집어놓으며 적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주로 이안의 타겟이 되는 이들은 140레벨 이상의 고레벨 유저였다.
130레벨대의 유저들이나, 일반 제국병사들은 이안이 아니더라도 이 전장에 참여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상대할 만 했지만, 140레벨 이상의 유저들은 조금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미친, 합공해! 일단 저놈부터 잡아!”
“죽여!! 법사들 뭐해, 광역 메즈기라도 걸어봐!”
“멍청아, 여기 중부 대륙이야! 광역스킬 발동되면 우리도 같이 걸려!”
무너진 성벽.
그 아래 산처럼 쌓여있는 성벽의 잔해들을 밟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안은 카이몬 제국 유저들을 끊임없이 도륙했다.
크아앙-!
이안이 등에서 뛰어내린 뒤부터는 할리 또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으며, 라이는 이안보다도 더 위협적인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씨, 저거 번개 떨어지는 거 뭐야? 소환술사 스킬 중에 저런 것도 있어?”
“글쎄…? 있을지도 모르지. 소환수 고유스킬이나 전설급 아이템에 붙어있는 고유능력일수도 있고?”
“진짜 대박이다. 혼자 다 해 먹네 정말.”
유저들은 각자의 전투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이안을 한번씩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으며, 허공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전투영상을 찍던 촬영수정들도 어느새 이안의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후… 땀 좀 나는데?”
한바탕 미친 듯이 전장을 활보한 이안은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후방으로 빠져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이안이 한참 싸우는 동안, 서쪽 성벽 외에도 두 군데 정도가 더 무너져 내렸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다가 방어선을 뒤로 물려야 겠어.’
지금이야 좁은 공간의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적이 침입할 수 없어서 막아내고 있었지만, 구멍이 더 생기면 지금처럼 막기는 힘들 것이었다.
병력의 절대적인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
이안은 전장을 한 차례 훑어보며, 가장 위험해 보이는 방어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전장 한쪽에서 커다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이안, 어딜 도망가려는 거냐!]
일순간 전장의 모든 시선이 사자후가 터져나온 방향을 향해 모아졌고,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
그리고 이안은 쌍검을 든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검붉은 갑주 위로 붉은 빛이 일렁이는 위압적인 모습의 남자.
이안은 어쩐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뭐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남자의 사자후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파스칼 군도에서의 못 다한 싸움을 마무리 지어야지 않겠나!]
남자의 입에서 묵직하게 터져 나오는 일갈!
이안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 그 뇌옥 안에서 만났던 카이몬 제국의 유저…!’
이안은 창대를 꽉 말아 쥐었다.
묘한 호승심과 함께, 흥분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안의 발걸음이 그를 향해 움직였다.
“하하, 오랜만이야. 그 땐 갑자기 사라져서 당황했었어.”
그는 이안의 기억 속에 있는 유저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정교한 컨트롤과 전투능력을 보여줬던 유저였다.
이안은 진심으로 그가 반가웠다.
“후후, 자신감 넘치는 태도 하나만큼은 달라진 게 없군.”
전장 한복판에서 마주선 두 사람.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조그맣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샤크란이다…! 샤크란이 이안이랑 맞부딪혔어!”
공성전이 지속되는 상황임에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흥미로운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안 또한 샤크란 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더욱 흥미가 동했다.
‘어쩐지, 강하더라니… 최상급 랭커셨구만.’
타이탄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샤크란은 이안 또한 잘 알고 있는 네임드였던 것.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대….’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결국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스킬을 사용하였다.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스킬을 사용합니다.]
[20분간 모든 전투능력치가 40%만큼 상승합니다.]
[‘민첩’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모든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15레벨만큼 증가합니다.]
[사용 중인 무기와 관련된 숙련도인 ‘창술’의 레벨이 중급 5레벨로 설정됩니다.]
이안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아우라.
그것을 본 샤크란이 피식 웃었다.
“후후, 못 보던 사이에 신기한 스킬을 얻었군.”
이안 또한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너 또한 그때와는 다르겠지.”
샤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두 사람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은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요새 서쪽 지역에서 이안이 활약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전체적인 전황은 로터스 길드에게 조금씩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십만 대군 중 절반에 가까운 전력이 일차 방어선을 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나마도 서쪽 지역을 잘 틀어막고 있는 이안과, 북쪽 지역을 휩쓸고 다니는 중인 카이자르가 있었기에 가능한 수준.
동남쪽의 일차 방어선이 더 이상 적들을 막아내기에 여의치 않다는 생각이 들자, 헤르스는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제 1구역 방어선에 머물러 계신 분들 지금부터 순차적으로 후퇴합니다. 정확히 3분 뒤 차단기를 내릴 겁니다.]
이안과 헤르스는 요새를 설계할 당시, 지형지물로 완벽히 막혀있는 북동쪽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을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설계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많은 적침을 허용하고 있는 구역이 바로 헤르스가 있는 1구역 이었다.
헤르스는 조금씩 뒤로 빠져나가며 천천히 방어군을 물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차단기가 내려갑니다! 차단기가 내려가면 원소타워들이 작동되기 시작할 테니, 그 전에 전부 뒤쪽으로 빠지셔야 합니다!]
원소타워는 기본 경계타워들과는 달리 광역 속성 데미지를 입히는 타워였다.
특히 가장 화력이 강력한 플레임 타워의 범위 안에 들어가면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전부 통구이가 될 수 있었다.
헤르스는 시간을 보며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그리고 헤르스가 알려주는 카운트에 맞춰, 방어군들은 열심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방어군이 뒤쪽으로 후퇴하는 것은 아니었다.
뒤쪽으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유저들은, 오히려 더 앞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적을 하나라도 더 사살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다.
최전방의 라인이 무리해서 뒤쪽으로 빠진다면 적들도 낌새를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잠시 후, 헤르스의 카운트가 끝나며 요새에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3). 사면초가 (中) -3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