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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77화 (204/1,027)

< (2). 사면초가 (上) -3 >

*          *          *

루스펠 제국의 거대 길드들은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로터스 길드의 파이로 영지를 카이몬에 내어주자는 암묵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로이첸은 결국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최소 단일 길드가 대영지와 공국을 넘어 왕국의 단계까지 성장하기 전 까지는 계속해서 두 거대 제국간의 전쟁구도가 지속될 거야.’

두 거대제국의 대립구도가 지속되는 한, 세력싸움에서 밀린다면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중립지역인 중부대륙의 대부분을 빼앗긴다면 성장 측면에서 앞으로 카이몬 제국과의 차이가 계속 벌어질 게 분명했다.

‘로터스 길드와 파이로 영지마저 이대로 버려진다면… 루스펠 제국의 중상위권 길드들은 상위길드들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겠지.’

그것은 곧 제국 내 분열로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최악의 결과가 도출될 것이었다.

‘우리 길드라도 나서서 로터스를 도와야 해.’

로이첸은 길드 전체 회의를 열었고, 현재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 뒤 길드원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기본적으로 패배할 확률이 높은, 아니 패배가 거의 확실한 구도인 전투.

그런 전투를 지원하자는 얘기에 길드원들이 달가워할 리 없었지만, 로이첸은 결국 길드원들을 전원 설득해 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100% 대의적 차원의 이유만으로 설득한 것은 아니었다.

로이첸이 길드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로 평소에 벨리언트 길드는 나머지 두 길드와 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벨리언트 길드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데 목적을 둔 유저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반해, 오클란 길드와 스플렌더 길드는 철저히 손익을 따져가며 플레이하는 직업성 게이머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벨리언트의 길드원들은 오클란과 스플렌더의 약삭빠른 처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로는 ‘명분’ 이었다.

이 전투를 지원한다면, 실질적인 이득은 없더라도 루스펠 제국 내에서 벨리언트 길드의 인지도가 더 올라갈 것이었다.

또한 현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거대길드에 대한 비난도 피해갈 수 있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생각보다 강력한 로터스 길드의 ‘전력’ 이었다.

헤르스를 통해 알게 된 파이로 영지에 구축된 방어전력의 수준은, 벨리언트 길드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질 때는 지더라도 허무하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것이다.

어느 정도 팽팽한 전투를 지속시킬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대규모 전투에서는 얻는 것도 많을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데스 패널티를 입더라도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가능했다.

죽어서 잃어버릴 아이템과 경험치 만큼, 싸움으로 전리품을 획득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정말 재밌는 전투가 될 수 있겠어. 어쨌든 결론은 내려졌고, 그렇다면 더 이상 재고 따질 것은 없지.’

다른 거대길드들에게 통보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오클란 길드의 마스터인 사무엘 진 만이 우려를 표했지만, 적극적으로 벨리언트 길드를 막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경쟁길드인 벨리언트가 로터스를 돕는답시고 피해를 입을 것으로 생각한 길드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극적으로 벨리언트 길드의 정예 병력이 파이로 영지에 합류하게 되었고, 로터스를 돕겠다며 손을 내민 것은 벨리언트 뿐만이 아니었다.

최전방의 거점지를 잃은 수 많은 중상위권 길드의 유저들 또한 로터스를 돕기 위해 파이로 영지에 하나 둘 모여들었고, 그렇게 모인 병력은 거의 1만에 육박하고 있었으며, 밤이 깊어갈수록 인원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          *          *

둥- 둥- 둥-

사막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침.

전고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카일란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대규모의 공성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카이몬 제국에 모인 연합군의 병력은 총 13만.

파이로 영지에 모인 방어군의 숫자도 1만 5천으로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었으나, 13만의 병력에 비하면 정말 볼품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발 맞춰 움직이는 10만 대군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고, 긴장이 감도는 이 사막의 하늘에는 수많은 촬영수정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위이잉-

이번 전투는 특정 길드대 길드의 전투라고 할 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딱히 촬영에 제한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도 촬영수정을 띄운 것이었다.

촬영수정은 무척 비싼 가격이었고, 전쟁 중에 무리해서 촬영을 시도하다가 파괴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라도, 이 전투는 영상으로 담을 가치가 있었다.

파이로 영지 요새의 가장 높은 경계탑.

그 위에 선 이안은 전방에 다가오는 카이몬 제국군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엄청나긴 하네요. 이런 규모의 공성전이라니.”

이안의 옆에 서 있던 로이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오길 잘 했어요. 이런 전투라면 승패를 떠나서 참전할 가치가 있지요.”

하얗게 빛나는 검신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는 로이첸.

그를 보며 이안이 짧게 대꾸했다.

“승패를 왜 떠납니까?”

“…?”

이안이 마주 웃어 보였다.

“우리가 이길 건데.”

이안의 패기 넘치는 대답에, 로이첸은 기분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그런 자신감 좋습니다. 활약 기대하도록 하지요.”

로이첸은 원래 이안이라는 인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전체 랭킹 10위권 안에 있는 그가 랭킹 목록에도 보이지 않는 유저에 관심이 갈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 참여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이안의 전투영상을 많이 찾아보았고, 이안이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임을 깨달았다.

‘최소한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의 지휘능력은 지금 이 남자보다 나은 사람을 찾기 힘들 테지.’

대인 전투력이야 이안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다크루나 길드와의 공성전에서 보여줬던 통솔력은 확실히 자신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휘 전권을 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이안은 점점 다가오는 카이몬의 대군을 한번 응시한 뒤,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카이자르가 있었다.

“카이자르.”

“왜 부르냐.”

“아까 말했던 대로, 네가 철갑기병을 좀 맡아줬으면 좋겠어.”

카이자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달라고. 내가 카이몬 놈들을 제대로 도륙 내 보일 테니까.”

오히려 씨익 웃으며 적극성마저 띄는 카이자르.

사실 여기에는 이안의 뼈아픈 지출이 있었다.

‘후… 경매장에 올라온 한혈보마인지 뭔지를 산다고 대체 돈이 얼마나 깨진 거야.’

카이자르를 부려먹기 위해서 경매장에 올라와 있던 말들 중 가장 비싸고 능력치가 뛰어난 말을 구매해서 조공한 것.

그리고, 뛰어난 명마와 함께 500기의 최정예 기마병을 이끌어 달라는 아부는 카이자르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고마워 카이자르. 가신님만 믿을게.”

“후후.”

손을 휘휘 저으며 경계탑을 내려가는 카이자르.

기묘한 주종관계를 보며 피식 웃은 로이첸이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제 자리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이안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이첸님.”

“별 말씀을.”

그렇게 경계탑 위에 있던 주요 인물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하나씩 맡긴 이안은 다시 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쉽지는 않겠지만, 병력 하나하나를 최대한 완벽하게 관리해야해. 한 사람이 십 인분을 해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니까.’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시야에 흥미로운 광경이 포착되었다.

‘저건… 뭐지?’

카이몬 제국 연합군이 진격하고 있는 뒤쪽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수백 정도 되어 보이는 그림자들.

이안은 안력을 돋워서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뭐야, 설마 그리핀?’

독수리를 닮은 외형의 비행물체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활을 든 궁수들.

처음 이안은 수백이 넘는 그리핀이라도 등장한 줄 알고 당황했으나, 조금 더 가까워지자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 진짜 당황했네. 그리핀이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어.’

처음 보는 종류의 병력이었기에 정보는 없었지만, 이안은 더욱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공중전이라….”

이안은 핀을 소환했다.

“핀, 소환!”

꾸룩- 꾸루룩-!

소환된 핀은 힘차게 울부짖으며 이안을 향해 머리를 부볐고, 이안은 능숙한 솜씨로 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짝퉁 그리핀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지.”

이안은 핀을 쓰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핀아.”

꾸루룩-!

“가자!”

꾸룩- 꾸룩!!

이안의 명령에, 핀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경계탑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리고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안을 향해 모아졌다.

“와앗! 이안님이다!”

“그리핀이다!”

요새 상공에 둥둥 뜬 이안.

그리고 성벽의 코앞까지 다가온 카이몬의 대군.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내었다.

그것은 대규모 전투에서 일정 시간동안 아군에게 효과적으로 명령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역시 고가의 아이템이었지만, 이안은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지휘관의 위엄’ 마법 스크롤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앞으로 ‘02:59:59’ 동안 모든 아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능력을 on/off 하여 명령 전달 여부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이안이 지휘관의 위엄 효과를 활성화 시켰다.

[로터스 길드원 여러분, 그리고 저희 파이로 영지를 돕기 위해 와주신 많은 루스펠 제국 유저 여러분.]

이안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파이로 영지는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그러자 점점 영지를 향해 다가오는 카이몬 제국군의 발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공성전이 시작되기 전, 꼭 전달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습니다.]

두두두두-

이제는 달리기 시작한 듯, 성벽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더욱 요란해졌고, 이안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안의 한 마디는 많은 이들의 정곡을 찔렀다.

도움을 주기 위해 온 유저들은 물론, 로터스 길드의 유저들 마저도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전투를 한 번도 시작해 본 적이 없었고,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전투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습니다.]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안의 말.

이안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창대를 머리위로 치켜들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는 이길 겁니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동시에 쩌렁쩌렁한 환호성이 요새 전체에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이안님 멋있어요!!”

“잘생겼다!!”

펄럭- 펄럭-!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이안은, 전방을 향해 창극을 뻗으며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궁수부대, 전원…!]

척- 처척-!

대부분이 로터스 영지에서 훈련된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궁수부대였지만, 사이사이에는 유저들도 제법 섞여 있었고, 그들 또한 이안의 명령에 따라 활 시위를 잡아당겼다.

[공격…!!]

슉- 슈슈슈슉-

요새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화살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카일란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2). 사면초가 (上)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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