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사면초가 (上) -1 >
최근 북부대륙 최고의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 로터스 영지.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장 커다란 화제의 중심지는 바로 로터스 조련소였다.
카일란 내의 조련소 중 유일하게 시설레벨을 MAX까지 올려 놓은 조련소.
이곳은 로터스 길드의 가장 큰 자금줄이었다.
“후후, 이거 정말 흥미로운 정보란 말이지?”
머리가 희끗희끗 한 노인 한 명이 조련소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새끼 늑대 두 마리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뭔가를 노트에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름 아닌 이진욱 교수였다.
“소환수 교배 시스템 연구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이진욱은 계속해서 로터스 조련소 안에 거주하며 조련소를 운영했고, 계속해서 소환수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소환수 교배’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교배 스킬을 얻은 뒤부터, 그는 하루 종일 그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진성이 녀석이 제안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는 이안으로부터 그간의 소환수 능력치에 대한 연구논문(?)을 넘겨받았고, 그것을 토대로 교배 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개체의 능력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분석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늑돌이A의 공격력 성장률이 3.25정도, 방어력 성장률은 1.7 정도.”
노트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소환수들의 레벨별 능력치와 성장률들.
성장률이란, 소환수가 레벨업 시 상승하는 능력치의 평균을 의미했다.
“넌 공격력이랑 순발력이 엄마를 닮았구나.”
새끼늑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이진욱.
그의 대사는 누가 본다면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만한, 그런 내용이었다.
“방어력은 아빠를 닮은 것 같고… 성격이랑 잠재력도 아빠를 닮았네?”
이진욱이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노트를 분석하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조용하던 방 안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니, 교수님. 눈코입이 닮은 것도 아니고, 방어력이 닮았다니요. 교수님도 진성이 닮아 가시는 거예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하린이었다.
“허허, 하린이 왔냐.”
자신의 핀잔에도 껄껄 웃으며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진욱을 보며, 하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랜만에 뵈었더니 한층 더 진성이화 되셨네요. 게임 중독자가 따로 없어….”
하린의 말에 이진욱은 피식 웃었다.
“에잉, 난 아직 진성이를 따라가려면 멀었지. 이제 막 게임연구의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은데… 껄껄….”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이진욱이 메모해 놓은 알 수 없는 암호(?)들이 빼곡하게 벽에 붙어 있었다.
“교수님, 이게 다 뭐예요?”
하린의 물음에 이진욱은 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후후, 같은 종류의 소환수 중에 가장 훌륭한 개체를 뽑아내기 위한 빅데이터 라고나 할까.”
그의 말에 하린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같은 소환수가 능력치가 다를 수가 있어요?”
하린은 사제이자 요리사였고, 당연히 소환술사 클래스의 전문지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 밖에 없었다.
이진욱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른 것처럼, 카일란 내의 소환수들도 각기 다른 능력치를 갖고 있단다. 내가 지금 하는 연구는, 교배를 통해서 가장 우수한 개체를 얻기 위한 연구라고 할 수 있지.”
이진욱은 신이 나서 자신이 지금껏 연구했던 내용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오… 그래요?”
하린도 처음에는 흥미롭게 그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 교수님, 정말 소환수 교배 가지고 논문이라도 한 편 쓰실 생각이신가 보네.’
어떤 면에서는 이안보다도 더 지독한 집념을 가진 이진욱.
그리고 실제로 그의 연구(?)는 제법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진욱은 서랍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어 펼쳐 보였다.
노트에는 가지런한 글씨체로 번호까지 매겨진 정보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1. 교배로 태어난 소환수의 능력치는 확실히 부모가 되는 개체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는다.
2. 교배로 태어난 소환수의 전투능력치 중 랜덤으로 두 종류의 능력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되며, 나머지 두 종류의 능력치는 교배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3. 교배로 태어난 소환수의 잠재력은 일정 확률로 수컷 개체로부터 물려받는다.
:
:
그것은 바로 이진욱이 밝혀낸(?) 교배의 원리가 정리된 노트.
하지만 하린은 고개를 픽 돌려 버렸다.
“으… 교수님. 마치 중간고사 시험범위 보는 것 같아요….”
이진욱은 껄껄 웃을 뿐이었다.
“허허… 그래? 요리과의 중간고사 범위에는 이렇게 재밌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단 말이지?”
“….”
할 말이 없어진 하린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고, 이진욱은 혼자서 신이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우리 진성이는 언제 여기 한번 들리려나. 이 노트를 얼른 보여주고 싶은데…. 분명 엄청나게 좋아할 텐데 말이야.”
하린은 진성이 좋아할 리 없을 거라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왠지 정말로 좋아할 것 같단 말이야…?’
이진욱 교수를 구슬려 진성의 게임 플레이타임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 했던 하린의 계획은, 시작해 보기도 전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 * *
“하아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난 진성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으아…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네.”
셀라무스 부족 시험의 추가 연계 퀘스트는, 당연히 시작도 해 보지 못했다.
다른 조건들은 다 제하더라도, 레벨제한 부터가 200이었으니까.
이클립스의 말에 의하면, 획득한 전사등급에 따라 연계 퀘스트의 난이도가 결정되는데, 이안이 너무 높은 등급을 얻어서 말도 안 되게 높은 레벨제한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어차피 당장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을 테지.’
연계 퀘스트까지 진행되었더라면, 못해도 며칠은 더 시간이 소요됐으리라.
그리고 카이몬 제국 연합군이 진성이 퀘스트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줄 리는 없었다.
진성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 연합군이 쳐들어 올 때가 됐는데….’
분명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연합군의 총 공세가 있을 것이었고, 진성은 그 전에 두 눈으로 영지 방어선의 전반적인 부분을 점검하고 싶었다.
“그래, 뭐 아침밥 한번 거른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간단하게 씨리얼이라도 먹으려 했던 진성은, 마음을 바꾸고는 캡슐로 들어갔다.
진성이 능숙하게 자세를 잡고 캡슐에 몸을 누이자, 캡슐의 문이 스르르 닫혔다.
[카일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환술사 ‘이안’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접속할 때 마다 미묘하게 바뀌는 멘트.
문득 신기함을 느꼈던 진성은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NPC마다 다 다른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정도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
게임에 접속한 이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안이 접속된 곳은 사막 위에 임시로 만들어진 야영지였다.
그리고 이안을 반기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냐, 영주놈아.”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이안은 살짝 인상을 썼다.
“영주님이라고는 언제 해 줄 거냐 가신님아.”
“글쎄… 내가 널 그렇게 부르게 될 날이 오긴 할까?”
카이자르의 비아냥에 발끈하려던 이안은, 문득 그의 충성도가 궁금해졌다.
‘이번 퀘스트로 인해서 조금은 올랐으려나?’
이안은 가신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개미 발자국만큼 이지만… 오르기는 했네.’
카이자르의 충성도는 무려 10/100.
‘그래도 두 자리 수가 된 건 처음이니까 만족해야 하나…?’
이나마 오른 것도, 이클립스를 상대로 선전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자, 이제 영지로 돌아가 볼까?”
이안의 말에 세리아와 폴린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영주님!”
이안은 가신들을 이끌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영지에 돌아가 요새를 점검해야 했다.
‘다른 길드원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이안은 쉴 새 없이 걸음을 옮기며 길드 채팅창을 열었다.
이안 : 다들 어제 별 일 없으셨죠?
피올란 : 네, 뭐. 별 일은 없었네요. 그나저나 이안님은 어제 종일 퀘스트 하신 거예요? 저녁 길드 사냥도 불참하시고….
이안 : 네. 생각보다 퀘스트가 좀 오래 걸려서요. 그나저나 카이몬 제국군 쪽은 아직 움직임 없나요?
클로반 : 아직까지는 잠잠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곧 쳐들어 올 거야. 이제 우리 영지 말고는 전방 거점지가 전부 다 점령당했거든.
이안 : 아하… 그렇군요. 지금 길드 채팅창 보고 계신 분들, 접속 안한 길드원들 전부 접속하라고 좀 해주세요. 오늘 내일은 최대한 접속 상태 유지해야 해요.
카윈 : 네 알겠슴다.
헤르스 : 나도 방금 접속했다. 빨리 영지로 돌아와라. 이것저것 상의할게 좀 있어.
이안 : 오케이.
채팅창을 끈 이안은 지도를 확인하며 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움직였다.
그리고 접속했던 야영지와 파이로 영지는 그리 먼 거리에 위치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은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시야에 수상한 그림자가 하나 들어왔다.
‘누구지…? 어떻게 저 쪽에서 나타나는 거지? 길드원인가?’
요새 성벽의 첨탑 밑, 귀퉁이에서 나타나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지는 검정색 그림자.
‘저 쪽에는 통로가 없을 텐데…?’
파이로 영지의 요새 설계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이안은, 요새의 모든 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우라면 첨탑 근처에서 누군가가 나타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이안은 곧바로 할리를 소환했다.
“할리, 소환!”
크르릉-!
재빨리 할리 위에 올라탄 이안은 카이자르를 향해 말했다.
“카이자르, 폴린이랑 세리아 데리고 먼저 영지에 들어가 있어.”
이안의 말에 카이자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그리고 이안은 카이자르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할리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할리! 바람의 가호!”
할리의 민첩성 극대화 고유능력까지 발동시킨 이안은 빠르게 검정색 그림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던 그림자는 이안이 쫓아오는 것을 느꼈는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한 남자의 모습.
‘뭐지…? 암살자인가…?’
검정색 도복과 복면을 비롯해, 온 몸을 검은 빛으로 도배한 사내는, 이안을 마주본 채 우뚝 서 있었다.
탓-
남자가 도망갈 생각이 없음을 느낀 이안은 할리의 등에서 내려 상대를 노려보았다.
“넌, 누구지?”
이클립스와 사투를 벌인 대가로 얻은 ‘정령왕의 심판’을 빼어 든 이안.
당장이라도 창을 휘두를 듯, 험악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안을 보며, 남자는 실소를 흘렸다.
“할리칸을 타고 다니는 소환술사라…. 네놈이 바로 그 유명한 ‘이안’ 이겠군.”
남자는 씨익 웃으며 등 뒤로 손을 뻗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양 손에 들린 것은 햇빛에 반사되어 새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쌍륜(雙輪) 이었다.
이안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묻는 말부터 먼저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안의 위협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상대는, 자세를 낮추며 이안의 두 눈을 응시했다.
“궁금하다면, 그쪽 능력으로 한번 알아 내 보시던가.”
< (2). 사면초가 (上)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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