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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72화 (199/1,027)

< (1). 셀라무스 최강의 전사 -2 >

‘됐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이안은 손 끝에 느껴지는 감각을 확신했다.

‘어차피 속도로 놈을 이길 수 없다면 명중률과 속사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옳아.’

움직이는 물체를 쏘아 맞추기 힘들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그 대상이 200km/h 도 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비행하는 화살이라면 말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날아드는 화살을 맞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쾅-!

강한 힘이 담긴 화살이 허공에서 만나며 그 계획이 현실화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한 발의 화살이 굉음을 뚫고 날아가 셀라무스 전사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화살에 걸린 강한 힘 때문에 약간의 피해를 입은 셀라무스 전사의 입에서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윽….”

투기장 바깥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클립스 또한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오… 저런 방법을 쓸 줄이야.]

어지간한 베짱과 자신감이 아니면 시도할 수 조차 없는 방식.

사실 중력 외에는 화살의 궤적에 아무런 외부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투기장이었기에, 그리고 투사체의 피격판정이 현실보다 후한 가상현실게임이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어쨌든 이안의 궁술이 묘기 수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핑- 피핑-!

자세를 고정시킨 채로 계속해서 화살을 날리는 이안.

몸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니 명중률이 배 이상 정확해짐은 물론, 연사 속도도 더 빨라졌다.

물론 이안도 상대의 화살을 100% 다 맞춰서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은 요격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몸을 비틀거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엇비슷한 능력치 덕에 백중세를 이루고 있던 둘의 전투가 점점 이안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묵묵히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카이자르가 이클립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떤가, 이클립스.”

카이자르의 물음에 이클립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인정해야겠군.]

그리고 허공에 떠 있던 이클립스의 신형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곧 내 차례가 오겠군. 준비해야겠어.]

카이자르는 이클립스와 이안을 번갈아 한 번씩 응시한 후 씨익 웃어 보이며 다시 전투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          *          *

“흐음… 이곳이 바로 지난 번 다크루나 길드의 공격을 막아낸 요새란 말이지…?”

파이로 영지의 방어요새.

방어벽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선 한 남자가 천천히 요새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모든 개인설정을 비공개로 돌려놨는지 아무런 정보도 떠 있지 않은 사내.

게다가 흑의무복에 검정색 복면까지 둘러 정체를 완벽히 숨긴 그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안 쪽으로 들어가 구조를 봐야 하는데….”

파이로 영지는 루스펠 제국의 유저라면 누구든 출입이 허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 겹의 높다란 방어벽으로 구성되어있는 방어 요새는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철통같은 방어를 위해 복잡하게 설계된 요새의 내부 구조가 밖으로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요새 안쪽에 들어가려면, 로터스 길드의 길드원이거나 길드마스터인 헤르스의 허가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지 망설임 없이 성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르륵-

사내의 신형이 어둠 속에 녹아들기라도 하듯 점점 투명해졌다.

바로 암살자의 대표능력 중 하나랄 수 있는 은신.

그는 은신을 사용해 투명해진 채로 빠르게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디텍터 능력이 있는 방어타워의 시야만 조심하면 되겠지.’

방어타워 중에는 투명을 감지할 수 있는 디텍팅 능력이 탑재된 것들이 있었다.

전투력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짓지는 않는 방어타워.

그래도 파이로 영지 요새에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신중했다.

‘대체 이 정도 규모의 방어력을 이렇게 단기간 안에 갖춰 낼 수 있었던 거지?’

사내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요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구조를 눈에 담기 시작했다.

투명화의 시간이 끝날 때 마다 경비병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는 그의 동작은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날렵하고 조용했다.

‘음… 저기는 어떤 방향으로든 들어갈 수 없겠군.’

사방이 디텍팅 타워로 둘러싸여 있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요새 전체를 탐색하는데 성공한 그는 조용한 걸음으로 성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탓-!

까마득히 높은 성벽 위에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는 남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다면 즉사를 면하기 힘들만큼 높은 높이였지만, 그는 여유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스르륵-

떨어지던 남자의 몸 주변으로 까만 안개가 피어나더니, 돌연 까마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까악- 깍-!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새까만 깃털을 가진 까마귀는, 어둠 속으로 날갯짓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          *          *

가장 자신있는 무기인 활을 사용하여 B등급의 셀라무스 전사를 가볍게 이긴 이안.

[B등급의 셀라무스 전사를 성공적으로 제압하셨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데 성공하셨으므로, A랭크를 건너뜁니다.]

압도적인 차이로 A랭크마저 건너 뛰어버린 그가 다음으로 만나게 된 상대는, 다름 아닌 이클립스였다.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음… 당신이 S등급 심판자였나요?”

그리고 그 물음에 셀라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이안.]

한 번의 랭크전투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이안의 손에 들려있는 ‘정령왕의 심판대궁’.

그리고 이클립스의 어깨 넘어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심판검.

이안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심판궁과, 이클립스의 심판대검을 번갈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는 지금까지처럼 같은 조건에서 진행되지는 않나보군요.”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빠르군.]

후웅-

등에 메어져 있던 대검을 빼어 들어 허공에 이리저리 휘두르는 그를 보며 이안은 식은땀을 흘렸다.

‘뭐야? 힘 스텟이 얼마나 높으면 저걸 한손으로 저렇게 가볍게 휘둘러?’

이클립스의 말이 이어졌다.

[이 마지막 전투는, 내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전투일세.]

“…?”

[아무리 전투감각이 좋아도, 나와 자네의 레벨차이는 잔재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든.]

말이 끝나자마자 이클립스의 위로 떠오른 그의 정보.

이안은 어이가 없어서 두 눈을 꿈뻑거렸다.

[이클립스(소환술사) - Lv 250]

카이자르 이후로 처음 보는 250대의 레벨.

이안은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눌러 참았다.

‘아니 무슨 해결이 가능한 퀘스트를 줘야지 이런 언벨런스한 스테이지 구성이 어디 있어?’

이클립스의 말 그대로, 아무리 날고 기는 이안이더라도 100레벨 차이는 극복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안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말 대로네요. 어차피 결과가 정해져 있는 싸움… 할 필요가 있을 까요?”

이클립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승패는 결정되어 있지만, 자네가 싸울 이유는 남아있다네.]

“뭔데요?”

[자네는 여기서 날 이길 필요가 없어. 내게 인정받기만 하면 S랭크의 자격이 주어질 걸세.]

그 말에 이안의 아쉬워하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오, 그런 거라면…!”

[정확히 말하면 내게 인정받는 게 아니라 선조들의 인정이라고 해야겠지만….]

“뭐가 됐던 알겠어요. 일단 최선을 한번 다 해 보죠.”

이안은 손에 든 장궁을 빙글빙글 돌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클립스 또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이클립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투기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3… 2… 1…]

이안은 재빨리 화살을 시위에 걸었고.

피이잉-!

이안의 화살이 활 시위를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 수 있겠군.]

거대한 대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이안의 화살을 튕겨내는 이클립스.

이클립스가 예고했던 것처럼, 그와 이안의 전투 스텟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그의 공격을 쉽게 허용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후우웅-!

전투능력이 민첩성에 몰려있는 이안의 스텟구성은, 언제나처럼 강자와의 전투에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쾅-!

이클립스의 대검이 투기장 바닥을 때리며 굉음이 울려퍼지고, 사방으로 돌가루가 튀어나갔다.

팅- 티팅-!

달려드는 이클립스를 따돌리며 한번에 두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걸어 발사하는 이안.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전투를 벌일 땐, 두 발 이상의 화살을 시위에 거는 것은 이안도 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명중률의 극심한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초 단거리에서 전투를 벌여야 할 때는 얘기가 달랐다.

두 발, 아니 세 발의 화살을 시위에 걸더라도 1~2m 전방의 목표물 정도는 맞출 능력이 이안에게는 있었다.

타탕-!

이안의 화살이 이클립스의 검면을 맞추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잔재주를 사용하는 군 이안.]

이안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짧게 대꾸했다.

“고급 기술입니다만.”

두 사람의 공방전은 10여 분이 넘게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100레벨이나 차이나는 적을 상대로 엄청난 선전을 하는 이안.

이것이 가능한 데에는, 이안의 뛰어난 컨트롤 능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일단 양 측 모두 무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비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고, 기본공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수한 컨트롤 능력이 더 빛을 발하게 된 탓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안은 결국 이클립스에게 제대로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쾅-!

“으윽-!”

이클립스의 공격 단 한방에 뒤쪽으로 쭉 밀려나 바닥을 구른 이안.

D등급 셀라무스 전사를 상대할 때 이안이 보여줬던 만큼의 큰 기술은 아니었지만, 워낙 능력치가 높은 이클립스였기에 짧은 궤적의 공격도 데미지가 엄청났다.

이안은 깜빡이기 시작하는 자신의 생명력 게이지 바를 보며 투덜거렸다.

“아니 뭐 이렇게 무식하게 센 겁니까?”

이클립스는 검을 고쳐 잡으며 카이자르를 힐끗 쳐다봤다.

[저 놈 보다는 약할걸.]

그리고 다시 달려드는 이클립스.

이제까지와는 달라진 그의 기세를 보며 이안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지금까지 봐준 거였어.’

이클립스는 조금씩 더 빠르고 강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이안을 압박했다.

이안이 보기에 이클립스는 당장 전투를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이안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기만 할 뿐, 결정적인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분 정도를 더 싸웠을까?

이안으로서는 뭔가 농락당하는 기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소환수의 힘을 빌리지 않은 대인 전투를 하면서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잊고 있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느낌.

그런데 그 때, 이안은 몸 속으로 스며드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또 뭐지?’

그와 동시에 이안의 시야에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셀라무스 고대의 전사들이 당신의 전투능력을 인정합니다.]

[내면에 갇혀있던 잠재력이 개방됩니다.]

[모든 전투능력이 50%만큼 상승합니다.]

이안의 온 몸에 황금빛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 (1). 셀라무스 최강의 전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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