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셀라무스 최강의 전사 -1 (8권 시작) >
카노엘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훈이를 보고 있었다.
‘엄청난 실력자야. 이렇게 강한 흑마법사는 처음 봤어…!’
이안의,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의 가신인 카이자르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존재감이 없었던 훈이.
하지만 사실 훈이는 한국서버 내에서 손에 꼽을 강력한 흑마법사였다.
훈이의 레벨은 무려 145.
130레벨 정도의 샌드 스콜피온 정도는 순식간에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옆에 있던 170레벨 대 데스 나이트 발람의 전투력도 한 몫 하기는 했다.
훈이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카노엘에게 말했다.
“아니, 님은 쪼렙 주제에 중부대륙에는 왜 왔어요? 그 레벨에는 그냥 북부대륙에서 파티 구해서 던전 도는 게 레벨 업 더 빠를 텐데….”
“네? 여기가 북부대륙 경험치에 10배도 넘게 주는데요?”
“아니 그거야 살아서 제대로 사냥을 할 때 얘기죠. 님 싸우는 거 보니까 위태위태 하던데… 경험치 1% 올릴때마다 한번씩 죽을 듯. 아… 아니다. 한 마리는 잡을 수 있으려나?”
정곡을 찌르는 훈이의 냉정한 말에, 카노엘은 살짝 움찔 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대답했다.
“제가 님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제법 경험치 좀 올렸어요.”
훈이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카노엘을 응시했다.
‘으음… 샌드 스콜피온한테 쩔쩔 매는 걸로 봐서는 별로 신뢰가 안 가는데….’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훈이는 대충 수긍하고는 말을 이었다.
“뭐, 그랬다면 다행이구요.”
훈이의 시선이 카노엘이 허리에 차고 있는 어둠군주의 맹약을 향해 돌아갔다.
“그나저나 그 벨트는 어디서 났어요?”
훈이의 말에 자신의 벨트를 한번 확인한 카노엘은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아, 이거. 여기 오기 바로 전날 임모탈의 하수인 던전 공략 갔었거든요.”
훈이의 눈빛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그… 런데요?”
임모탈의 하수인 던전은 유저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유명한 던전이었다.
80~100레벨 사이의 유저들이 주로 가는 던전이었는데, 비교적 전투력이 약하면서 경험치는 많이 주는 스켈레톤 병사들이 주 몬스터였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특히 흑마법사들은 관련 퀘스트도 많아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코스.
그리고 훈이는, 하수인 던전 마지막층에 나오는 에픽 몬스터가 카노엘이 장착하고 있는 벨트인 ‘어둠군주의 맹약’을 드랍 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서 어둠군주의 맹약을 먹을 확률은 진짜 로또 수준인데…. 드랍률이 0.1%였던가…?’
훈이는 수십번도 넘게 클리어했던 던전인 임모탈의 하수인 던전.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도 먹을 수 없었던 아이템을, 저 어벙한 소환술사가 얻었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노엘의 염장질은 이제 시작이었다.
“거기 마지막 층에서 사냥하다가 스켈레톤 메이지인가? 75레벨짜리 해골 잡으니까 주더라고요. 이거 진짜 멋지게 생겼죠?”
해맑게 웃으며 벨트를 자랑하는 카노엘.
훈이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번 했다.
“해, 해골이 그냥 줬다구요?”
카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주던데요? 저도 일반 몹한테서 전설등급 아이템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무튼 엄청 기뻤어요.”
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얼간이… 죽여버릴까…?’
마침 중부대륙은 아무런 패널티 없이 플레이어 킬이 가능한 PK존이었고, 훈이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저 벨트를 떨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어진 카노엘의 말을 들은 순간,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때 파티 하셨던 흑마법사분이 이거 팔라고 하셨었는데, 계정귀속 옵션이 붙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못 팔았어요.”
“아… 그렇구나….”
계정귀속 아이템이라는 말은, 거래가 불가능함은 물론 죽는다고 해서 드랍 되는 아이템도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경매장에 올라와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계정귀속 아이템이 아닌 줄 알았는데… 옵션이 랜덤으로 부여되는 방식인 가 보군.’
훈이는 속으로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아… 저것만 있으면 임모탈 퀘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
한편 방금 한 말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카노엘은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어둠군주의 맹약이 비싼 이유가 있더라구요. 이거 착용한 뒤로 스킬 데미지도 확실히 강해진 것 같고 캐스팅 속도도 빨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훈이의 한숨은 더 짙어졌다.
‘후… 저 바보… 그냥 죽여 버릴까?’
어둠군주의 맹약이 비싼 이유는 바로 어둠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2배로 빠르게 만들어주는 특수옵션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 즉, 소환술사인 카노엘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아이템이라는 이야기인 것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겜알못 버프인건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전설같이 내려오는 이야기.
게임을 잘 못할수록 아이템 드랍 운이 좋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를, 이로서 훈이는 맹신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그런 거였어. 난 너무 고수라서 아이템 운이 지금까지 없었던 거야.’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훈이를 보며, 카노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님. 아이디가 뭐에요?”
훈이는 이안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비공개로 해 놓았기 때문에 닉네임이 노출되지 않았다.
훈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제 아이디는 알아서 뭐 하시게요.”
“그래도 구해주신 은인인데, 아이디는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지금까지 게임하면서 이렇게 강력한 흑마법사는 처음 봤거든요.”
그러자 칭찬 한마디에 우쭐한 훈이의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크하핫, 사람 보는 눈은 있으시군요. 저는 간지훈이 라고 합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슬쩍 돌리는 발람.
[‘간지’ 라는 말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돋는다 훈이.]
발람의 말에 훈이가 으쓱 하며 대답했다.
“너무 멋있어서 그런 거야 발람.”
[그, 그런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둘의 앞에서 눈을 빛내는 카노엘.
“오… 역시, 아이디도 멋집니다.”
카노엘의 진심어린(?) 아부에, 훈이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이제 보니 뭔가 좀 아는 분이셨군요.”
“후후, 감사합니다.”
카노엘의 현실 나이는 열 다섯.
훈이의 코드와 맞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나이였다.
카노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훈이님, 혹시 이 벨트가 필요하신 겁니까?”
카노엘의 말에 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예. 지금 진행 중인 히든 퀘스트가 있는데, 그 벨트가 있어야만 진행이 가능하거든요.”
카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흐음… 그런 일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카노엘이 훈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훈이님.”
“예, 카노엘님.”
“제가 이렇게 사막 한가운데서 구명지은을 입었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하도록 하죠.”
“어떤…?”
훈이의 떨리는 눈빛이 카노엘을 향했고, 카노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벨트, 제가 새 거로 하나 경매장에서 구입해서 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포션값도 아껴가며 사냥하는 훈이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
훈이가 카노엘의 손을 덥썩 잡았다.
“형님!”
* * *
이안의 눈 앞에 떠오른 다섯 종류의 무기는 각각 쌍수단검, 지팡이, 너클, 그리고 장궁과 장창이었다.
이안은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제일 스텐다드한 무기가 빠져있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검이 없었던 것.
이안은 고민했다.
‘이번에 활을 들면 더 어려운 단계에서 쓸 수가 없을 텐데….’
아무래도 가장 자신 있는 무기는 활이었지만, 최고 등급까지 통과해 낼 생각인 이안으로서는 활을 아껴둘 필요가 있었다.
이안이 이클립스를 향해 물었다.
“이번 단계를 성공하고 나면, 제가 고른 무기 이외에 네 개의 무기 중에 고르게 되는 건가요?”
이클립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세. 자네가 고른 무기를 제외한 나머지 종류의 무기들이 랜덤으로 다시 5개가 나타나게 되지.]
이안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다음 선택지에 활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데….’
카일란 내에는 십팔반 병기가 전부 존재할 정도로 무기 종류가 다양했기 때문에, 다음 선택지에 활이 또 등장하지 않을 확률도 적지 않았다.
‘그래, 쓸 수 있을 때 잡는 게 옳겠지.’
이안은 결국 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공명음이 울려 퍼지며, 이안의 손 안으로 빨려들어오듯 쥐여지는 장궁.
[‘정령왕의 심판대궁’ 무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심판검과 마찬가지로 대궁 또한 멋들어지고 고급스러운 외형을 자랑했다.
이안은 그것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퀘스트 보상으로 요놈이나 나왔으면 좋겠네.’
아이템 옵션은 봉인되어있기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어마어마한 부가능력들이 붙어 있으리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생겨난 화살통이 이안의 등 뒤에 자연스럽게 매여졌다.
이클립스가 이안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며 사라졌다.
[그럼, 무운을 비네.]
그리고 그 자리에 천천히 그 생성되는 푸른 인영.
이안은 재빨리 화살을 빼어 들어 시위에 걸었다.
[B랭크의 셀라무스 전사가 나타납니다.]
[3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후읍.”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이안은 활 시위를 천천히 당겨 셀라무스 전사를 향해 겨누었다.
[3… 2… 1…]
그리고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그대로 시위를 놓으며 몸을 날렸다.
피이잉-!
허공을 찢으며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
화살은 정확히 셀라무스 전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지만, 화살을 쏘아낸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쎄에엑-!
간발의 차이로 허공에서 교차되며 날아드는 화살.
하지만 화살 두 발은 모두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 채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굴려 화살을 피한 둘은 다시 서로를 조준했다.
피잉-
피이잉-!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
한 발의 화살도 서로를 건들지는 못했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좁아지고 있었다.
‘예측샷도 곧잘 피하는데…? 이놈에 몸뚱이가 민첩성이 워낙 높아서 맞추기가 힘들어.’
둘은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고, 이안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명중률이나 회피능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속사능력이 내가 좀 더 나은 것 같은데….’
상대를 향한 냉정한 분석.
‘그렇다면 내가 더 나은 부분으로 승부를 봐야겠지.’
이안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탓-!
돌연 투기장 한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은 이안.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이안을 보며, 셀라무스 전사는 잠시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곧바로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한 자리에 멈춰 자리를 잡은 지금만큼 이안을 맞추기 쉬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이잉-!
하지만 당연히 이안은 아무 생각없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정신을 극도로 집중시킨 이안은 활 시위에 걸려 있던 화살을 그대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뽑아든 한 자루의 화살이, 그 궤적을 따라 그대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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