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4 (7권 완) >
[이 상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세 번 째 상자에 손을 댄 이안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 뭐, 어차피 완전 랜덤이니까…. 그래도 활이나 매직완드 같은 걸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잠깐의 고민을 끝낸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걸로 한다.”
[무기 선택을 완료 하셨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는 무기.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이안이 원했던 종류의 무기가 아니었다.
‘이게 뭐야? 대검…?’
헬라임의 대검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묵빛 대검이 이안의 눈 앞에 나타난 것.
이안이 대검의 손잡이를 잡자, 다시금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령왕의 심판검’ 무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지와 함께 시커먼 색을 띄고 있던 대검에 새하얀 광채가 스며들며 눈부신 그 자태가 드러났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헛…!”
대검의 외형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검신에 황금빛으로 수놓아진 문양은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지만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옵션이 봉인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기 공격력은 남아있었다는 점.
‘무슨 대검 공격력이 1500이나 돼? 미쳤네…? 최소 전설등급 아이템이겠어.’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안의 옆에 이클립스의 환영이 나타났다.
[대검을 선택했군. 비리비리해 보이는 몸으로 심판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투를 비네.]
이안이 이클립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제 뭘 해야 하는 건데요?”
이클립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설명은 제법 길었다.
[우리 셀라무스 부족의 전사는 전투능력에 따라 총 다섯 단계로 등급이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이 D등급이며, C, B, A, S 순으로 등급이 나뉘게 되지.]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자네와 완전 같은 조건을 가진 가상의 셀라무스 전사가 상대로 등장할 것이네. D등급부터 차례로 한 단계씩 높은 등급의 전사가 등장할거야.]
이안이 질문했다.
“저와 완전 같은 등급이라면, 전투능력치도요?”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능력치가 자네와 같게 설정된 셀라무스의 전사가 등장하게 된다.]
이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능력치가 완전히 같다면… 뭐가 나오든 다 씹어 먹어 주도록 하지.’
가상현실 내에서 컨트롤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뒤쳐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이안이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렇군요. 계속 설명해 주세요.”
이클립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어느 등급의 전사까지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만… 자네가 이기는 데 성공한 등급이 자네의 등급으로 책정되며, 그 후 관문은 그 등급에 맞게 난이도가 조정될 것이네.]
“아하….”
이안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승부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S등급이 아니면 누가 S등급을 받겠어?’
사용해본적 조차 별로 없는 대검을 골랐다는 패널티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전투조건에 흥미가 동할 뿐이었다.
‘뭐 대검도 다른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많이 사용해 봤으니까.’
이클립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일단 다음 관문에 대한 설명은 자네의 등급이 매겨진 뒤에 이어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자신있어보이는 이안의 표정에, 이클립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건투를 비네. 부디 카이자르의 안목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안이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대련장의 바깥쪽에서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이안을 보고있는 카이자르가 보였다.
‘낮은 등급도 통과 못하면 카이자르가 지금보다 더 개 무시 하겠지?’
반대로 S등급이라도 얻어내면 카이자르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이안은 더욱 의지가 불타올랐다.
[시작하도록 하지.]
이클립스의 환영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서서히 나타나는 푸른 빛.
그리고 그 빛은 이내 형태를 갖추며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이안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저놈을 이기면 되는 거지?’
이안은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대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쏜살같이 앞을 향해 튀어 나갔다.
‘선빵필승이지.’
묵직한 무게 때문에 양 손을 사용하지 않고는 컨트롤이 불가능한 대검.
이안은 몸을 활처럼 휘며 오른쪽 어깨 뒤에서부터 뽑아 든 대검을 휘둘러 내리쳤다.
까앙-!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부대끼는 두 자루의 대검.
셀라무스의 전사는 여유롭게 이안의 검을 막아내며 반격을 시도했다.
‘이럴 줄 알았지.’
대검을 이용한 공격은, 필연적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공격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카운터에 당하기 쉬웠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검을 들어 이안의 공격을 막아낸 셀라무스 전사가 그대로 이안의 가슴을 향해 검극을 찔러 들어왔고….
까가가강-!
이안은 내리치던 검의 경로를 살짝 틀어 상대의 검을 밀어내었다.
“흡!”
다음 순간, 짧은 기합성과 함께 허공으로 뛰어오른 이안.
밀려 내려간 대검을 바닥에 내리 꽂으며 그 반동을 이용해 도약한 이안은 여유 있게 검을 피해내었고, 셀라무스 전사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이젠 내 차례지!’
반격에 이은 반격.
가볍게 착지한 이안은 자연스레 바닥에 누이듯 낮게 깔린 대검을 대각선으로 짧게 쳐 올렸다.
촤르륵-!
빠르게 몸을 움직였지만 옆구리를 길게 베이고 만 셀라무스 전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안 또한 검을 다시 고쳐 쥐며 상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피해를 별로 못 입혔어. 내 능력치를 그대로 가져가서 그런지 순발력이 제법 높아.’
모든 전투능력 중에 순발력이 가장 높은 이안.
그리고 그 스텟에 걸맞게 상대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민첩했다.
저벅- 저벅-
옆걸음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이안과 셀라무스 전사.
셀라무스 전사의 표정은 무표정한 반면, 이안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이었다.
다른 이점이나 불리함 없이, 오로지 컨트롤만으로 이렇게 대인 전투를 해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퀘스트의 성공여부는 둘째 치고, 이 전투 자체가 무척이나 즐거운 이안이었다.
쉬이익-!
잠시 동안의 적막을 뚫고 날아드는 셀라무스 전사의 검격.
빠르게 반응한 이안의 양 손이, 상대의 공격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깡- 까강- 깡-!
큰 동작 한번 한번이 무척이나 큰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둘은, 계속해서 짧고 간결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퍽-!
빠르게 몸을 비틀어 제대로 된 공격은 피했지만, 검면에 한쪽 어깨를 가격당한 것이었다.
이안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후, 확실히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어색하기는 하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몸이 조금씩 뒤늦게 반응하자, 이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무게중심을 잘 이용해야 하는데, 밸런스가 자꾸 무너져.’
까강- 깡-!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방전.
하지만 탐색전이 조금씩 길어지자, 이안은 슬슬 감을 찾기 시작했다.
‘계속 잽만 날리면서 간을 본다 이거지?’
대검 활용의 정석적인 모션만을 계속 취하는 상대를 보며, 이안은 슬쩍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넌 실수한 거야.’
수비적인 전투성향을 가진 상대 덕에 이안은 비교적 손쉽게 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안은 상대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계속 그렇게 간만 볼 셈이야? 이제 슬슬 제대로 공격해보지 그래.”
감정이 없을 것이 분명한 가상의 상대였기에 딱히 도발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도발이 통하기라도 한 건지 상대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대검 손잡이를 잡고 바닥에 축 늘어뜨린 이안.
빨리 검을 고쳐 쥐어 막아내지 않는다면 그대로 당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안은 여유로웠다.
‘조금 도박을 해 볼까?’
이안은 이마를 향해 쇄도하는 새하얀 검신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오히려 앞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의외의 동작에 조금 놀랐는지 셀라무스 전사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내리 그었다.
후우웅-!
하지만 그의 대검은 허공을 찢으며 공허한 소리만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잘 가라 인마!”
간발의 차로 떨어지는 대검을 피해 움직인 이안은 전력을 다해 대검을 횡으로 돌려 베었다.
후웅-!
이안은 양 손으로 대검을 쥐고 있지도 않았다.
오른 손으로 대검 손잡이를 쥔 채, 늘어뜨리고 있던 검을 있는 힘껏 휘돌려 친 것이었다.
그야말로 뒤가 없는.
공격이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모든 허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위험한 공격.
하지만 공격에 성공한다면 얘기는 달랐다.
쿠드득- 쾅!
이안이 든 대검이 그대로 셀라무스 전사의 등허리를 가격한 것이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크게 공격을 허용한 셀라무스 전사.
“커헉!”
들고 있던 검까지 놓치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이안은 씨익 웃으며 검을 들어 상대를 겨누었다.
“대검은 바로 이 맛에 쓰는 거지.”
동작이 커서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았지만, 한번 큰 공격을 맞추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그런 무기.
방금 이안이 성공시킨 정도의 공격이라면, 같은 능력치 대에서 일반적으로 입힐 수 있는 데미지의 열 배는 넘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안은 상대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봐, 아직 생명력이 남아있을 텐데… 계속 누워 있을 거야?”
이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천히 일어나는 셀라무스 전사.
하지만 곧 그는 희미한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이클립스의 환영이 다시 나타났다.
짝- 짝- 짝-
박수를 치며 나타난 이클립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놀랍군. 생각보다 전투감각이 뛰어나서 정말 놀랐어.]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칭찬에, 이안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후후, 대검이 정말 매력적인 무기이긴 하죠.”
그 말에 이클립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오… 자네, 뭔가 아는구만. 그렇지, 대검이야말로 용맹한 전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일세.]
이안은 이클립스의 등에 걸려 있는 대검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 무기가 대검이었네.’
이클립스의 말이 이어졌다.
[검이 달리 만병지왕(萬兵之王) 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검이야말로 모든 무기의 근본이 되는 병기이니까 말이야.]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클립스 말이 맞아요.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손에 들려 있던 대검이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에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 물었다.
“오호, 매번 무기가 바뀌는 건가요?”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대검을 사용하지 못해서 아쉬운가?]
이클립스는 이안이 주로 사용하던 무기가 대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이 대검을 사용하는 모습은 너무도 능숙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뇨, 오히려 재밌는데요.”
이안의 자신감이 허세라고 생각한 이클립스가 실소를 지었다.
[과연… 계속해서 그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나 지켜 보겠네.]
이클립스는 껄껄 웃으며 허공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또 다시 다섯 개의 검정색 상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D등급의 셀라무스 전사를 성공적으로 제압하셨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데 성공하셨으므로, C랭크를 건너뜁니다.]
“…?”
의외의 메시지에 두 눈이 살짝 커진 이안.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투에 사용할 무기를 골라주십시오. 이전 전투에 사용되었던 무기는 제외됩니다.]
이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고르기는 무슨. 뭔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검정색 상자들이 희미해지며 그 자리에 각각 다른 종류의 무기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4 (7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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