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3 >
카이자르의 말에 이안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카이자르랑 싸워서 살아남은 거면… 최소 비슷한 레벨이라는 건가?’
어쨌든 무서운(?) 인물인 것은 분명했고, 이안은 당장이라도 전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스킬 쿨타임들을 체크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이안과는 달리, 카이자르는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노인네.”
그리고 카이자르를 슬쩍 쳐다본 노인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놈아, 말은 바르게 해야지. 내가 지금 살아있냐? 죽어있지. 내가 유령이 아니었으면 십년 전에 네놈 손에 죽었을 거 아냐.]
투덜거리는 그를 보며 카이자르는 피식 웃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이안도 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노인의 시선이 이안을 향해 움직였다.
[이 꼬마는 뭐야? 제자라도 거둔 건가? 아, 아니겠군. 소환술사를 제자로 거뒀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야.]
실소를 지은 카이자르가 짧게 대꾸했다.
“내가 모시는 영주놈이다.”
이안이 조용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영주님 이라고 좀 해주면 안 될까?”
“싫다. 그러기엔 네놈이 너무 약해.”
“….”
카이자르가 노인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노망난 노인네 정도만큼이라도 강해지면 한번 고려해 보겠다.”
“크흠….”
이안의 시선이 노인을 향했고, 자연히 그를 보고 있었던 노인과 두 눈이 마주쳤다.
이안이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아저씨라니! 나는 셀라무스 부족의 수호자, 이클립스다. 그나저나 카이자르를 가신으로 둔 영주라니. 그런 게 가능할 줄이야. 저 무식한 놈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용하군.]
“….”
속사포처럼 쉬지 않고 말을 쏘아대는 이클립스.
이안은 ‘전설등급 아이템 하나 조공하면 되던데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되삼키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그런데 그럼 아저씨도 소환술사예요?”
이클립스가 버럭하며 대꾸했다.
[아저씨 아니라니까! 이클립스라고 불러라. 내 명예로운 이름이다.]
이안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 알겠어요, 이클립스. 대답이나 해 줘요.”
[그래. 나는 소환술사다. 하지만 용맹한 전사이기도 하지.]
이클립스의 말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듀얼 클래스라도 된다는 건가?’
흥미로운 표정이 된 이안이 질문하려는 찰나, 카이자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클립스, 어떤가.”
[뭐가?]
“우리 영주놈 이라면 셀라무스의 시험대에 오를 자격이 있냐고 물은 거다.”
당연하겠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벙찐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했고, 잠시 후 이클립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흠… 확실히….]
이안을 아래위로 쭉 훑어 본 이클립스의 말이 이어졌다.
[확실히 무식한 네놈보다는 낫겠군.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면 기회를 줘볼 만 해.]
카이자르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고, 이안은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옆에 있던 폴린에게 물었다.
“폴린, 넌 쟤들이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폴린이 알 리 없었다.
“아뇨,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 앞에 돌연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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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무스 부족의 시험(히든, 연계 퀘스트)-
고대 중부대륙에는 수많은 중립부족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수위권의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부족인 셀라무스는 임모탈의 저주에 물든 거신족과 맞서 싸우다가 멸족하게 되었고, 그 유지만이 지하의 제단을 통해 남게 되었다.
셀라무스 부족의 수호자인 이클립스는, 당신에게서 셀라무스의 영광과 소환술사의 영광을 되찾아 줄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당신을 시험하고자 한다.
그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면 중부대륙의 모래 속에 사장된 셀라무스 부족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조건 :
중부대륙에서 일정치 이상의 전공 포인트를 얻은 소환술사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셀라무스의 비전이 담긴 스킬북(랜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무기류 중 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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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창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이안.
하지만 사실 맨 윗줄에 떠 있는 히든, 연계 퀘스트 라는 부분만으로도 이안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보상도 저것만 읽어서는 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엄청나게 좋은 거겠지?’
이클립스가 이안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부대륙에서 온 소환술사여, 셀라무스의 시험에 응하겠는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무게있는 목소리와 말투.
이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한번 해 보죠 뭐.”
* * *
“아오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 괴물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카이자르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파이로 영지 바깥으로 뛰쳐나온 훈이는 근방의 던전들을 돌며 열심히 사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레벨 1도 올리기 힘들겠는데…. 이안 놈이랑 같이 공성전 하면서 먹었던 경험치가 정말 꿀이었어.’
바로 어제.
훈이는 카이자르가 가진 홀드림의 왕관에 담겨있던 어둠의 기운을 목패에 전부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유(?)를 얻기 위해 카이자르에게 도전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압도적인 패배.
훈이는 비장의 한수로 남겨뒀던 명성 10만을 이용한 강제 계약파기를 시도해 봤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명성 10만과 함께 주종계약이 파기되는 건, 카이자르의 쪽에서 원할 때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발람이 훈이를 향해 말했다.
[방법은 임모탈님의 권능을 온전히 얻는 것 뿐이다, 훈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카이자르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발람의 말에 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임모탈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카이자르가 준 3일로는 임모탈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턱 도 없이 부족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사냥이라도 마구잡이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이로 영지가 안정되고 나면, 이안놈을 꼬셔서 같이 임모탈 퀘스트를 하자고 해야 겠어.”
발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이안 영주가 돕는다면 퀘스트를 성공시키는 것도 더 수월해질 것이다.]
“못된 이안놈이 도와 주려나….”
그런데 그 때, 발람과 대화하며 구시렁거리던 훈이의 시야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130레벨 정도 되어 보이는 샌드 스콜피온과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 한 마리의 레드 드레이크와 소환술사.
흥미가 동한 훈이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쟤는 뭐하는 놈일까? 100레벨짜리 소환술사가 대체 왜 중부대륙 한복판에서 저러고 있는 거지?”
멀리서 대충 보아도 엉성한 컨트롤과 전투능력.
물론 최근 들어 소환술사라고는 이안만 계속 눈앞에서 보아온 만큼, 훈이의 눈이 높기는 했다.
하지만, 눈 앞의 소환술사가 이상한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발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나저나 저 드레이크는 이안 영주가 가진 드레이크와 비슷하게 생겼군. 덩치는 좀 작지만 말이지.]
한편, 두 사람이 구경중인 의문의(?) 남자는, 다름 아닌 카노엘 이었다.
“용용아, 꼬리부터 공격해야 할 것 같아!”
크르릉-!
“내가 앞에서 공격을 잘 막아볼게!”
훈이가 바로 뒤까지 다가오는 것 조차 모를 정도로, 혼신을 다해 거대전갈과 사투를 벌이는 카노엘.
그런데 잠시 후, 뭔가를 발견한 훈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 저건!!”
발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는가, 훈이.]
“발람, 혹시 저 벨트 보여?”
그에 발람의 시선이 카노엘이 장비하고 있는 벨트를 향해 움직였다.
[…!]
“맞지? 저거 어둠군주의 맹약이야. 분명…!”
어둠군주의 맹약은 훈이가 진행해야 할 임모탈 퀘스트에서 필수로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흑마법사도 아닌 놈이 대체 왜 저걸 장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훈이는 망설임 없이 등에 메고 있던 지팡이를 빼어 들며 스콜피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에 당황한 발람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는가, 훈이!]
훈이는 흑마법을 캐스팅하며 소리쳤다.
“일단 저 놈부터 살려놓고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 * *
우우웅-
쿠쿵- 그그긍-!
낮은 공명음, 그리고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공터 뒤쪽의 바윗덩이가 양쪽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클립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들어오시게 이안.]
“그러죠.”
별 생각 없이 이클립스를 따라 들어가던 이안은 잠시 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셀라무스 시험의 관문 첫 번째 영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소환수를 부릴 수 없는 공간입니다.]
[소환된 모든 소환수들이 아공간으로 역소환됩니다.]
[모든 장비의 능력치가 무력화됩니다.]
[보유중인 스킬이 모두 봉인됩니다.]
[셀라무스 시험의 관문에서는 관문 내에서 주어진 장비와 스킬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손 발을 전부 꽁꽁 묶는 무지막지한 패널티!
다른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소환수를 소환할 수 없는 패널티는 이안에게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아니, 소환술사가 소환수 없이 뭘 하라는거야?’
이안은 당황한 표정으로 이클립스를 응시했다.
“이게… 뭔가요?”
많은 의미가 담긴 이안의 물음에, 이클립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기는, 방금 확인한 그대로일세. 우리 셀라무스 부족은 어떤 장비나 소환수의 도움 없이도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갈 줄 알아야 진정한 전사로 인정하지.]
“그게 무슨….”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스킬창과 아이템창을 열어본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스킬들은 전부 봉인되어 있었으며, 아이템들의 능력치는 전부 0으로 치환되어 있었다.
이클립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다른건 그렇다 쳐도, 소환술사가 소환수 없이 뭘 하라는 겁니까?”
이클립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자네의 능력에 달린 거지. 참고로 나 또한 소환술사이지만, 이 모든 패널티를 안고 시험관을 전부 통과했다네.]
말을 마치며 공간의 뒤편으로 걸어나가는 이클립스.
이안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화를 삭혔다.
'아니, 너님이야 개발사에서 만든 npc니까 그게 가능했겠지…!'
그리고 그가 나가자마자 이안이 서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지름 20m정도 되는 공간에 푸른 막이 생겨났다.
‘그리퍼를 만날 때 뚫었었던 차원의 마탑이랑 비슷한 방식인가…?’
완전히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이안은, 조금씩 긴장을 풀고 곧 등장할 적을 상대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번 관문에서 사용할 무기를 하나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당황스러운 공간에 들어온 뒤로 본 메시지 중, 처음으로 나타난 긍정적인(?) 메시지.
하지만 다음 순간, 밝아졌던 이안의 표정은 다시금 구겨질 수 밖에 없었다.
[상자 안에는 각각 다른 종류의 무기가 들어있으며, 선택하기 전까지는 내용물을 알 수 없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이안의 앞에는 다섯 개의 검은 상자가 나타났다.
‘뭐 이렇게 불친절한 시스템이 다 있어!’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이안은 천천히 하나의 상자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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