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2 >
이안이 반색하며 물었다.
“오, 빡빡이도 아는 사람이야?”
이안의 물음에 빡빡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셀라무스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그럼?”
빡빡이의 말이 이어졌다.
[고대의 중부대륙 중립부족들 중 하나의 이름이지.]
잠시 생각한 이안이 다시 물었다.
“사막전사들… 같은 건가?”
이번에는 카이자르가 대답했다.
“맞다, 영주놈아. 지금 카이몬 제국을 돕고 있는 사막전사들의 부족 이름이 ‘마젤란’이라면, ‘셀라무스’라는 또다른 사막부족도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만약 셀라무스의 제단에서 ‘마젤란의 징표’와 같은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었으니까.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셀라무스의 징표 같은 건 없어?”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카이자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아쉽게도 그런 건 없을 거다. 셀라무스의 일족은 오래 전에 멸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쩝. 좋다가 말았네. 그런데 왜 내가 흥미로워할 만한 곳이라고 한 거지?”
“마젤란의 징표처럼 중립부족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아티펙트는 없더라도, 다른 능력을 가진 아티펙트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카이자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내가 처음 발견하는 장소라면 하다못해 뭔가 최초발견 보상이라도 있겠지.’
그리고 빡빡이가 한마디를 더 부언했다.
그것은 이안이 무척이나 솔깃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셀라무스 부족은, 고대 중부대륙을 호령하던 강력한 중립부족 중, 유일하게 소환술사들 만으로 구성된 부족이었다.]
이안의 고개가 빡빡이를 향해 휙 돌아갔다.
“뭐? 정말?!”
그리고 카이자르를 슬쩍 째려봤다.
“가신님아,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빼먹으면 어떡해?”
하지만 카이자르는 그저 어깨를 으쓱 해 보일 뿐이었다.
* * *
“자, 이제부터는 각자의 갈 길을 가도록 하십시오! 전선에 남아 카이몬 제국군과 맞서 싸울 이들은 저기 막사에 가서 용병등록을 하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제국 소속 영지에 몸을 의탁하는 게 좋을 겁니다.”
수석 황실기사의 말에, 줄지어 서 있던 일행이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동부대륙에서 출발해 중부대륙에 도착한 루스펠 제국의 지원군.
그리고 지원군의 행렬에 합류해 중부대륙으로 넘어온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 또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훗, 드디어 중부대륙 입성인가!”
일행에서 떨어져 나온 카노엘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크, 낭만적인 사막이군. 중부대륙의 몬스터들이 그렇게 경험치를 많이 준다던데. 이제 광랩만이 남은 건가?”
카노엘은 씨익 웃으며 옆을 따라오는 레드 드레이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용용아, 너도 마음에 들지?”
드레이크는 바로 카노엘의 영혼의 듀오라고 할 수 있는 용용이!
크르르르-!
드레이크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카노엘은 드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중얼거렸다.
“흠, 근데 사냥터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르는데…. 접속 종료하고 커뮤니티부터 뒤져봐야 하나?”
그런데 그 때, 카노엘의 시야에 두 명의 남자가 걸어 나오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어왔다.
카노엘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용병등록 하고 최전선에서 싸울 거야?”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소릴 하냐. 지금 카이몬에 연전연패중인데, 최전방 전투에 참여하는 건 자살행위지.”
“그래도 보상이 엄청 짭짤해서 참여하는 게 나쁘진 않다고 하던데?”
“모르는 소리. 초기에야 그랬지만, 지금은 너무 압도적으로 밀려서 보상도 별로 못 받는다더라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카노엘은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음… 전쟁에 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가 보군.’
두 남자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흠… 그래?”
“그렇다니까.”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난 아마 후방에 있는 거대길드 영지로 가서 세이브 포인트 등록하고 근처에서 사냥할까 생각중이야.”
“오호, 그것도 괜찮아 보이네. 근데 나는 파이로 영지는 한번 가보고 싶어. 거기 들렸다가 가자.”
“파이로 영지? 아… 로터스 길드 영지 말하는 거구나. 나도 거기 가보고 싶긴 한데… 그거 좀 위험할 수도 있어.”
“왜?”
“아마 지금쯤 카이몬 제국군이 그 근방 거점지들을 대부분 점령했을 거거든. 운 좋게 제국군을 안 마주치면 괜찮겠지만… 마주치면 그대로 끔살이니까.”
“흠… 그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카노엘은 돌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행선지를 정한 까닭이었다.
카노엘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내가 그걸 잊고 있었다니…! 중부대륙 까지 왔는데 나의 우상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지!’
카노엘이 말한 우상이란 다름아닌 이안이었다.
카노엘은 유캐스트에서 이안의 전투영상을 몇 번 시청한 뒤, 이안의 완벽한 팬이 된 것이었다.
소환수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며 전장을 지배하는 이안의 전투능력은, 그의 이상향과 완벽히 일치했다.
‘좋아, 이제 파이로 영지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되겠어!’
카노엘은 전방에서 걸어오는 기사 유저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막 중부대륙에 도착해 행색이 깔끔한 다른 유저들과는 달리, 그의 갑옷은 온통 모래투성이였다.
딱 봐도 중부대륙에서 이미 오랜 기간 머물고 있는 유저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저기… 죄송하지만 뭐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파이로 영지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알고 싶어서요.”
카노엘의 말에 그의 행색을 한번 훑어 본 남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파이로 영지요? 로터스 길드의 영지 말하시는 거 맞죠?”
“네. 맞아요.”
“흠… 레벨이 너무 낮으신데….”
남자의 시선은 카노엘의 아이디와 레벨을 향해 있었다.
[소환술사 카노엘 - Lv 100]
당황한 카노엘이 머뭇거리자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뭐 그래도 장비는 진짜 최상급으로만 싹 다 맞추셨네요. 컨트롤만 좀 되시면 어찌어찌 가실 수도 있을 듯.”
현실에서 SH전자의 상속자인 카노엘에게 100레벨 대의 최상급 장비들 정도는 그야말로 껌 값 이었고, 당연하겠지만 모든 부위를 최상급의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있었던 것.
카노엘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다행이네요. 제가 또 컨트롤은 나쁘지 않아서. 후후.”
피식 웃은 남자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쪽으로 쭉 나가셔서…”
* * *
스르륵-
“어, 어라?”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발 밑에 있던 모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카이자르, 이쪽으로 가도 되는 거 맞아?”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다. 내가 네놈에게 거짓말을 쳐서 뭐할까.”
말을 마치고 성큼 성큼 앞으로 걸어가는 카이자르.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래질 수 밖에 없었다.
쏴아아-!
모래가 소용돌이의 모양으로 휘몰아치며 카이자르를 빨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이자르는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땅으로 꺼졌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었다.
“헉…!”
당황하고 있는 이안의 옆에서 빡빡이가 입을 열었다.
[주인, 저 안쪽에서 카이자르의 힘이 느껴진다. 저기가 카이자르가 말한 제단의 입구인 것 같다.]
“그, 그래?”
모래속에 집어삼켜지는 광경이 제법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발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안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밑에 이상한 사막괴수 같은게 있어서 먹히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이안이 다섯 걸음도 채 옮기기 전.
“으아악-!”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이안의 신형이 사막의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폴린과 세리아도 걸음을 옮겼다.
스스슥-
잠시 후, 일행을 모두 집어삼킨(?) 모래더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상태로 돌아갔다.
* * *
[고대 소환술의 역사가 담겨있는 ‘셀라무스의 제단’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0만 만큼 증가합니다.]
[모든 전투능력이 10만큼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통솔력과 친화력이 각각 50만큼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연이어 울려 퍼지는 시스템 메시지 소리와 함께, 이안은 어두컴컴한 비동 안으로 떨어졌다.
쿵-
[무방비상태에서의 낙하로 인해 생명력이 175만큼 감소합니다.]
온 몸에 모래투성이를 한 채 바닥에 곤두박질 친 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 놔, 꼭 이렇게 정신사납고 불친절할 수 밖에 없는거야?”
하지만 투덜거리는 입과는 별개로, 표정은 싱글벙글 하고 있었다.
최초발견으로 얻은 보상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대단했으니까.
‘이게 웬 떡이냐…! 딴건 몰라도 통솔력이랑 친화력만큼은 진짜 꿀이네.’
잠시 후 일행이 전부 모이자, 이안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이자르, 여기가 네가 말했던 그 제단이 맞는 거야?”
이안의 물음에 카이자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도 당시에 전장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찾게 된 장소다.”
카이자르를 필두로 일행은 천천히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어두컴컴했던 비동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음… 저 안쪽에 확실히 뭐가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그 때, 반갑지 않은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산소가 부족한 밀폐된 지하공간입니다.]
[움직임이 10%만큼 느려지며, 초당 최대 생명력의 0.1%만큼씩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27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야, 산소부족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거야?”
초당 0.1%만큼씩 생명력이 감소한다면 17분 정도면 생명력이 전부 고갈된다는 의미.
물론 생명력 회복 아이템이나 스킬로 버틸 수는 있었지만, 모든 인원의 생명력이 전부 감소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환경임에는 틀림 없었다.
카이자르가 이안을 비웃었다.
“수련이 부족하군. 나는 이 정도의 산소량이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다.”
그러고 일행 중 유일하게 카이자르만 멀쩡한 상태였다.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괴물….’
생명력 관리를 해 주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자, 비동은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의 눈 앞에 탁 트인 공간이 나왔고, 그 중앙에는 커다란 황금빛의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은 마치 승천을 위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박도를 등에 멘 노인이 서 있었다.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카이자르에게 물었다.
“가신님, 저 노인 알아?”
카이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다.”
잠시 뜸을 들인 카이자르가 씨익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와 검을 맞대고 아직까지 살아있는 유일한 노친네라고 할 수 있지.”
< (7). 중부 대륙의 소환술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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