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철옹성 -4 >
[다크루나 길드마스터 ‘이라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라한의 생명력이 10349만큼 감소합니다.]
자세가 흐트러지자 라이 또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이라한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다.
[소환수 ‘라이’가 다크루나 길드마스터 ‘이라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라한의 생명력이 21554만큼 감소합니다.]
한 순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이라한의 생명력 게이지!
이라한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안을 보며 물었다.
“네놈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냐. 루스펠 제국에 이정도로 잘 싸우는 놈이 있을 줄이야….”
이안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글세… 그것보다 난 네놈 스텟창이나 한번 열어보고 싶어. 대체 능력치가 몇 이나 되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이라한이 말을 걸며 시간을 끈다고 생각한 이안은 대꾸하면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안이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퍼어엉-!
갑작스레 뒤쪽에서 튀어나온 철갑기사가 이안의 앞을 막아서며 몸을 부딪혀 온 것.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뒤쪽으로 물러선 이안은 철갑기사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 - Lv 175]
하지만 레벨을 제외한 모든 정보가 비공개 처리되어있었기에, 이안은 철갑기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그가 유저가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이건 또 뭐지…?’
당황한 표정이 된 이안을, 이라한이 가볍게 비웃어 주었다.
“왜 네놈만 가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 말에 곧바로 철갑기사의 정체를 알아챈 이안은 멋쩍은 표정이 되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철갑기사는 바로 이라한의 가신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라한의 뒤쪽에서 그의 가신인 듯 보이는 NPC들이 대여섯 정도 모습을 드러냈다.
가신들의 평균레벨은 거의 폴린과 맞먹는 정도의 수준.
“크흐음….”
이렇게 되면 이안 혼자의 힘으로 이라한을 상대하는 것은 확실히 역부족이었고, 이안은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도 우리 깡패 같은 가신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안은 카이자르가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카이자르는 새까만 돌덩이로 변한 청동거인의 위를 뛰어다니며 다크루나 길드의 병력을 휘젓고 있었다.
‘저쪽으로 이라한을 유인해야 하나?’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라한이 돌연 가신들을 뒤로 물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이런 전개는 정말 상상도 못했지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가야겠군.”
이안이 그를 비웃었다.
“누가 그냥 보내준대?”
아직도 일천이 넘게 남아있는 병력들과 140레벨이 넘는 고 레벨의 다크루나 유저들.
다 이긴 전투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경험치와 전공 포인트 덩어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안은 절대로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레벨업이 또 코앞인데 어림없지.’
하지만 이라한은 여전히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이 비싼 스크롤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다음에 보자고 그럼.”
이라한은 품 속에서 보랏빛으로 빛나는 스크롤을 쭉 찢으며 주문을 외웠고, 그 순간 전장에 있던 모든 다크루나 길드 소속 병력의 몸이 보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보랏빛의 빛줄기!
슈우웅-!
허공을 가득 메운 보랏빛 기둥들은 잠시 후 사라졌고, 그와 함께 다크루나 길드의 모든 병력이 전장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안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헐… 광역 귀환스크롤이라니…! 갑부자식.”
광역 귀환 스크롤은 한 장에 150만 골드에 육박하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사실 다크루나 길드의 입장에서는 모조리 전멸 당하느니 귀환스크롤을 사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지만, 그것은 다크루나 길드가 최상위 랭크 길드였기 때문이었지,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어지간한 상위권 길드만 해도 귀환 스크롤은 함부로 사용할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이었으니까.
광역 귀환 스크롤은, 이안만 해도 구입조차 해 본 일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어쨌든… 이긴 건가 그럼?”
이안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둘러보았다.
요새 안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유저들과 병사들은 모두 로터스 길드 소속.
이안은 활대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리둥절해 있던 길드원들이 이안의 외침에 확실히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와아아!!”
“우리가 다크루나 길드를 이겼다!!”
방어요새 구축을 위해 근 보름간 해온 피땀 어린 노가다의 결실.
랭킹 1위 길드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자부심에, 길드원들은 모두 감격했다.
피해도 제법 있었지만, 처치한 적들의 숫자에 비하면 미미하달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이 전투로 인해 얻은 보상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단적인 예로, 140이 넘은 이안의 레벨이 두 계단이나 오른 것이었다.
‘처음부터 게이지가 90%이상 차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벨 하나 이상의 경험치가 차오르다니, 엄청나네.’
그런데 그 때, 장내에 빼곡이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의 위로 보랏빛 기운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안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혹시, 잘하면…?!’
이안의 눈에만 보이는 보랏빛의 기운들은 그의 인벤토리를 향해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이안은 재빨리 인벤토리를 열어 카르세우스 알의 부화율을 확인해 보았다.
[카르세우스의 알 - 부화율 : 93%]
그리고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쩝… 그래도 아직 부화는 아니네.”
하지만 60% 초반 대 였던 부화율이 90%대가 넘어간 것을 보니 기분은 무척이나 좋아졌다.
‘이제 수성전 한두 번이면 신룡을 볼 수 있는 건가?’
과연 신룡의 알 안에는 어떤 사랑스러운 소환수가 들어있을지.
이안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 * *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는 그 커다란 서버가 버벅거릴 정도로 난리가 났다.
YTBC의 공성전 중계영상의 풀 버전이 커뮤니티의 메인 게시판에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게시물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다윗에게 무너진 골리앗]
부제 - 이안을 넘지 못한 다크루나.
누가 보더라도 무척이나 자극적인 제목.
‘로터스’ 라는 길드네임은 그리 유명하지 못했지만 ‘이안’이라는 유저네임은 어지간한 최상위 랭커 못지않게 유명했다.
그야말로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클릭해보지 않고는 못 베길 그런 제목인 것이었다.
조횟수는 순식간에 몇 백만을 돌파했고, 영상은 카일란의 해외 커뮤니티에도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 와… 미쳤다! 이건 그냥 이안 혼자서 케리 한 거네. 제목이 과장이 아니다 진심.
- 아니, 혹시 이안 레벨 몇인지 아는 분 계심? 어떻게 소환술사가 이라한 상대로 저렇게 싸울 수가 있지?
- 저기 보면 170레벨대 기사랑 합공하고 있잖아요. 이안 혼자서 싸운 거라고 보긴 좀 그럼.
- 저 폴린이라는 기사는 이안님 가신인 것 같은데…?
- 무튼 이라한님은 가신 없이 싸웠으니, 둘의 대결 자체는 이라한님이 이겼다고 보는 게 맞을 듯요.
- 아니, 이 사람들은 무슨 당연한 걸 가지고 싸우고 있어? 이라한이 이안보다 족히 20레벨은 높을 건데 그럼 이안보다 약하겠음?
-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안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아직 140은 안 될 텐데, 대체 이라한이랑 어떻게 저 정도로 호각으로 싸우는 거지?
- 아 몰라, 소환술사 사기직업! 개발사는 소환술사 너프하라!
- 옳소, 소환술사 너프하라!
- 이 멍청이들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그러게. 소환술사를 너프해야 되는 게 아니고, 이안을 너프 해야 할 듯.
- 윗분 말에 동의합니다. 이안님 반사 신경이랑 임기응변 능력이 사기임. 전 빡빡이 메테오로 수십 명 잡는 거 보고 그때 이미 지렸음.
- 하, 근데 이거 너무 카메라가 멀리서 찍어서 이안님이랑 이라한님 전투씬이 제대로 안 보이네요. 이안님 개인 전투영상 안 올라오려나? 보고 싶은데….
- 그거 곧 소진님이 편집해서 올려주시지 않을까요? 이안님 영상 업로더 소진님이 전담해서 계속 올리시던데.
- 아, 그래요? 굳굳. 올라오면 바로 그것부터 보러 가야지.
이번 공성전으로 인해 이제 이안은 완벽히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이전까지는 소환술사 클래스와 신규클래스 유저들 사이에서 추앙받는 존재였다면, 이제 기성 유저들의 입에도 이안이라는 아이디가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만큼 다크루나길드의 패배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 * *
“어후, 이거 복구 작업도 일이네 일이야.”
이안은 길드원들과 함께 부서진 방어타워들을 복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처음 지을 때 보다야 훨씬 쉽고 빠르게 지어 올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량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헤르스가 웃으며 말했다.
“야, 그래도 이거 진짜 제대로 남는 장사 아니냐?”
“뭐가?”
“이번 수성전으로 얻은 전공포인트만 자원으로 다 바꿔도 잃은 것 보다 얻은 게 더 많은 수준이야. 게다가 방어타워들 중에는 경험치가 꽉 차서 레벨업된 것들도 제법 있더라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이게 처음부터 내 계획이었으니까.”
영지 내에 있는 전쟁교역소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그게 곧 자원이 되어 돌아왔으니까.
파이로 영지는 수성에 한번 성공할 때마다 계속해서 방어력이 더 강력해질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테크의 방어타워를 생성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여유가 생기면 전투유닛 생산건물의 시설레벨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이로영지는 점점 더 견고한 철옹성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진짜 다크루나를 이기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그 말에 헤르스가 투덜거렸다.
“누가 안심한대? 일단 승리했으니 기분 좀 내보는 거지.”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앞으로 한 두어번만 더 확실히 막아내면… 그때는 정말 안심해도 될 것 같아.”
“두어번…?”
헤르스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한 두 차례 정도는 이번보다 더 힘든 전투가 될 지도 몰라.”
“왜? 카이몬 제국군 때문에?”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이번에 다크루나 길드에서 공성에 실패하고 되돌아갔으니, 아마 일반 길드에서는 섣불리 우리 요새를 공격하려 하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겠지. 현 시점에 다크루나보다 강한 전력을 가진 길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안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마 며칠 동안은 계속 잠잠할 거고… 최전선에 있는 다른 거점지들이 싹 다 점령당하고 나면, 다시 우리 영지가 타겟이 되겠지.”
이안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헤르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후, 그때는 정말 사방에서 적이 밀려 들겠군.”
이번 수성전은 그래도 전면에서 밀려오는 적만을 상대하면 되는 방어전이었다.
그렇기에 로터스 길드도 방어타워를 전부 전면에 배치하였고, 병력도 전면에 집중하여 적들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최전선의 모든 거점지가 점령되고 난 뒤라면, 파이로 영지는 그야말로 적진 한가운데 덩그라니 남게 될 것이고, 사방에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봐야지.”
이안의 말에 헤르스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처럼 이건 진짜 둘도 없는 기회다.”
“그렇지. 이 요새만 끝까지 지켜내면, 우리도 타이탄이나 다크루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길드를 성장시킬 수 있어.”
이안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중부대륙에서 무지막지한 레벨과 규모를 자랑하는 카이몬 제국군을 상대로 연이은 승리를 얻어낸다면, 로터스 길드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방어타워 수리작업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적들의 움직임을 보면, 한동안 공격받을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제 기습이 있을지 모르니 방어선 구축은 최대한 빨리 끝내 놓아야 했다.
< (6). 철옹성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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