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위험한 도박 -1 >
로렌 : 정말… 우리 뿍뿍이, 라이를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피올란 : 그럼요. 이안님은 덤으로 만날 수 있구요. 게다가 이안님이 공헌도가 높은 분들은 직접 제작하신 부적도 하나씩 드린다고 했습니다.
로렌 : 오… 그런…! 이안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부적이라면… 그 경매장에도 없어서 못 판다는…!
제작스킬을 배운 뒤 이안은 틈날 때 마다 부적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사용하기 애매한 능력치의 부적들을 죄다 경매장에 올려서 일정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인기가 엄청나서 경매장에 올렸다 하면 곧바로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찍어내는 부적 양이 워낙 많아서, 부적판매는 이안의 가신인 세리아에게 전부 위임되어 있었고, 피올란이 세리아와 접촉해서 팬클럽의 회원들에게 줄 선물(?)을 미리 확보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선물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피올란 : 후후, 저희 길드에서 미리 확보해 놓은 부적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신상품인 뿍뿍이문양, 라이문양의 부적도 준비되어 있죠.
로렌 : …!! 저, 정말인가요?! 시, 신상이라구요?!
피올란 : 어때요 로렌님. 이정도면 러블리안 회원님들의 마음이 제법 동하겠죠?
로렌 : 물론이죠! 그저 이안님의 존안과 뿍뿍이의 뿍소리만 들을 수 있어도 달려갈 팬클럽 회원들이 수두룩 할건데요. 심지어 이안님 손으로 직접 제작한 신상 부적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라니…!
피올란 : 좋아요, 역시 로렌님! 감사해요! 그럼, 회장님만 믿도록 하겠습니다.
로렌 : 감사는 제가 드려야 할 것 같군요, 피올란님. 이번 거사(?)가 끝나면 회원등급을 올려드리도록 하죠.
피올란 : 영광입니다 회장님.
피올란이 이렇듯 이안 팬클럽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녀 또한 러블리안의 회원이었기 때문.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가입한 팬 카페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열렬히 활동 중인 네임드 팬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피올란이 뿌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후후, 좋아. 역시 먹힐 줄 알았어.”
러블리안의 회원들이 몰려온다면 노동력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팬 카페의 유저들 중에는 고레벨 유저도 다수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중부대륙에 오기 힘든 낮은 레벨의 유저들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 넘어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안님을 구워삶아야 하는데….”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남아있었다.
흥이 난(?) 피올란이 공수표를 던진 탓이었다.
“그래도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인데, 군말 없이 해 주시겠지?”
바로, 뿍뿍이와 라이의 문양이 담긴 부적.
그것은 애초에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즉흥적으로 던진 말이었나…? 뿍뿍이 문양 부적이 만들기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피올란은 조금 불안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젓고 이안이 있는 막사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 * *
“그러니까… 제가 팬클럽이 있었다는 거죠?”
“몇 번을 물어봐요 이안님. 그렇다니까.”
“그리고 그 팬클럽 분들이 기꺼이 우릴 도와주기로 했고…?”
“네. 그렇죠.”
이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 지금부터 하루 종일 부적만 그려야 되겠네요.”
오전부터 잡혀 있던 길드사냥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진 이안을 보며, 피올란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 하하…. 요 며칠동안 죽어라 사냥만 하셨으니, 좀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이안이 오른쪽에 앉아 실실 웃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헤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현아.”
“응?”
“지금 최전방 전선은 어디까지 밀렸냐?”
잠시 품 속에서 지도를 꺼내 뭔가를 확인한 헤르스가 천천히 대답했다.
“으음… 그저께 확인했을 때 보다 1500m정도 더 동쪽으로 밀렸네.”
이안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후, 생각보다 더 빠르게 밀려내려오네. 주변에 사막전사나 중립npc들 현황은 어때? 오늘 공격 들어올 일은 없겠어?”
중부대륙의 곳곳에는 어느 진영에도 우호적이지 않은 중립 npc들이 많았다.
사막전사또한 그들 부족 중 하나였지만, 마젤란의 징표로 인해 카이몬 제국에 우호적인 부족으로 바뀌게 된 것이었고, 그들 외에도 크로우 도적단이나 스콜피온 주술단 등, 알려진 중립 npc들도 꽤 많았다.
아직 카이몬 제국의 군대로부터는 안정권에 있었지만, 언제 중립 부족들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르는 것이었기에, 이안이 물어본 것이었다.
“응, 주변에 발견된 중립npc들은 없어. 어제 이미 한 차례 막아냈잖아. 그리고 만약 공격 들어온다고 해도, 이제 방어 타워들을 워낙 많이 지어놔서 어지간한 규모의 공격은 쉽게 막을 수 있어 걱정 마.”
뭔가 핑계를 만들어 노가다의 늪에서 빠져나가려는 이안의 속셈을 파악한 피올란이 재빨리 거들었다.
“그래요. 이안님 없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마요.”
“하아….”
한숨을 쉬는 이안을 보며, 피올란이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 하루 제작스킬 숙련도 올린다고 생각하고… 힘 좀 내봐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피올란님.”
“네.”
“오늘 길드사냥에서 미샬님은 빼 줘요.”
뜬금없는 이안의 말에 피올란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미샬님은 왜요. 미샬님 화염마법이 광역사냥에 정말 도움 많이 되는데….”
하지만 이안에게는 미샬이 꼭 필요했다.
“미샬님이 있어야 뿍뿍이문양이던 라이 문양이던 만들 수 있어요….”
“…?”
“문양 제가 디자인하면 아마 라이 문양은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완성될 걸요?”
“아… 그런 이유라면 뭐….”
그제야 미샬이 디자인 전공이었던 것을 기억해 낸 피올란이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헤르스가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럼, 미샬님이랑 오붓한 시간 보내라.”
이안이 인벤토리 안에서 부적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그 뒤로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 요새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안의 팬클럽을 통해 퍼진 특별한 이벤트(?)는 공식 커뮤니티를 거쳐 빠르게 퍼져나갔고, 심지어 피올란이 언급했던 적 없던 내용까지 와전되어 알려졌다.
예를 들면,
- 뿍뿍이 문양 부적은 이안님이 이번 작업에 참여한 유저들에게만 선물해 주기 위해 특별히 만드신 리미티드 에디션이래!
- 이번 성벽 쌓기 작업에 참여한 유저들을 로터스 길드에 받아주신다는 얘기도 있어!
와 같은….
어찌 되었든, 로터스 길드의 성벽 증축공사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게 되었고, 이안의 팬클럽이 아님에도 인근 중부대륙에서 사냥중이다가 호기심에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를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공사현장의 한복판에서, 이안은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교수님, 그러니까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쌓아 올리면 된다는 거죠?”
“그렇지. 젊은 친구가 말귀를 잘 알아 들어서 좋구만. 여기는 이런 식으로 뚫어 놔야 일단 적들이 진입해도 손쉽게 고립시킬 수가 있어.”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안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진욱 교수의 초빙을 받은 한국대학교의 건축과 교수였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십니다, 교수님. 정말 이대로 완성되기만 한다면 백만대군도 막아낼 수 있겠어요.”
“크하핫, 자네 마음에 드는구만. 가상현실과 학생이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교수님.”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우리 건축과로 전과하는 건 어떤가. 자네같이 똘똘한 인재를 제자로 두고싶은 데 말이지.”
이안은 식은땀을 닦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건 좀….”
유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규모의 건설 현장 이다보니, 여기저기서 자잘한 문제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로터스 길드의 풍족했던 자금도 빠르게 축나기 시작했지만 이안은 만들어지는 요새(?)를 보며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생각보다 공사속도가 빠르잖아? 확실히 전선이 여기까지 밀려내려오기 전에 완공할 수 있겠어.’
이안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로 올라가 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성벽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흐흐, 이제 성벽 안쪽으로 전쟁교역소만 집어넣을 수 있으면 완벽하겠군. 2차 외벽까지 지어지면 충분히 범위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
전쟁교역소가 거점지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일단, 전쟁교역소의 이점을 로터스 길드에서 독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요, 둘째로는 거점지가 적들에게 완벽하게 둘러싸여서 고립되더라도 자원의 자체수급이 가능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방어전만 계속 해도 전공 포인트는 넘칠 정도로 쌓일 테니까 말이지.’
중부대륙에서는 모든 전투에서 보상으로 전공포인트를 획득할 수가 있다.
심지어 적국의 npc나 유저를 상대하면 그 보상이 더욱 커졌으니, 끝없는 전쟁이 곧바로 자원수급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였다.
‘전쟁교역소와 가까운 곳으로 거점지를 점령한게 정말 신의 한수였어.’
당시에는 그저 이동이 편하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거점지를 고른 것이었지만, 이렇게 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님!”
이안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뒤쪽을 향해 돌아갔고, 와이번의 등에 올라탄 로렌이 이안의 옆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로렌님?”
와이번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린 로렌이, 이안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로렌이에요. 절 어떻게 알고 계세요?”
초롱초롱한 눈을 한 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이안은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하, 하하…. 로렌님이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소환술사 랭킹 1위이신 분을 제가 모를 리가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로렌님.”
이안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로렌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를 찾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던 것.
‘소환수 알 에 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얻었다고 했던 소환술사 이름이 로렌이었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꼼꼼한 이안의 기억력.
그는 오래 전, 심연의 호수를 건너는 배 위에서 짧게 들었던 그 이름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그의 말에, 로렌의 커다란 두 눈에 더욱 생기가 돌았다.
“이안님이 절 알고 계셨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나저나 제가 소환술사 랭킹 1위라니요. 1위가 이안님인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걸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재잘재잘 말을 잇는 그녀를 보며 이안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런가요?”
그렇게 잠시 동안 로렌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던 그 때.
멀찍이서 무척이나 익숙한 여성의 실루엣이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박진성,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리고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의 낯빛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 (5). 위험한 도박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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