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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56화 (184/1,027)

< (3). 고립, 그리고 위기 -3 >

*          *          *

카일란 사상 최대의 대규모 전투.

아니, 이것은 비단 카일란 뿐 아니라 모든 가상현실 게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라 할 수 있었다.

양 제국 병사들의 숫자만 해도 각각 삼만 여 명!

기사단의 숫자도 각각 일천에 가까울 정도인 데다가, 전쟁에 참여한 유저들도 수천이 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인원이 맞붙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카이몬 제국 놈들을 모조리 베어 넘겨라!”

“후퇴는 없다! 루스펠 전사들의 위용을 드높여라!”

“와아아…!”

전투에 참여한 유저들은, 실감날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된 대규모 전투 속에서 극도의 짜릿함을 느꼈다.

“진짜 전쟁에 참여한 것 같잖아?”

“그러니까. 필드사냥보다 힘들기는 한데, 사냥이랑은 또 다른 긴장감이 있는데?”

이 전장에서 유저들의 포지션은 병사들과 기사들의 중간쯤 되는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병사들의 레벨은 110~130 정도였고, 기사들의 레벨은 150~180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병사들보다 낮은 레벨의 유저도 있었지만, 그들은 금방 도태되어 한 줌 재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콰아앙-!

[카이몬 제국기사의 검격에 직격당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36478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어, 사망하셨습니다. 전장에서 이탈합니다.]

특히 방어력이 낮은 마법사나 궁수 클래스 같은 경우는, 고레벨 기사에게 한 대만 맞아도 그대로 게임아웃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공격에 맞아도, 맞는 이의 방어력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었다.

[소환수 ‘빡빡이’가 카이몬 제국기사의 고유능력, 영혼꿰뚫기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빡빡이’의 생명력이 5768만큼 감소합니다.]

방어력이 4천에 육박하는 빡빡이의 위용!

기본공격도 아니고, 스킬공격에 당했음에도 5천 밖에 피해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며,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빡빡이 줄 부적에는 꼭 생명력 재생 옵션을 달아야겠어. 잘 나오지는 않지만 말이야.’

방어력과 생명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빡빡이에게 상급 재생옵션이 붙은 부적을 달아준다면 그 효율이 엄청날 것임은 자명했다.

패시브 스킬 덕에 1분에 한번씩 보호막도 생기기 때문에, 좋은 재생옵션이 있으면 보호막이 유지되는 동안 잃었던 생명력을 전부 회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투 끝나면 부적 노가다만 몇 시간 정도 해야겠어.’

그동안 틈날 때 마다 부적제작도 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영웅등급 이상의 부적도 제법 만들어내는 이안.

빡빡이에게도 그동안 만들어놨던 부적 중 괜찮은 아이템으로 착용시켜 주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빡빡이의 넓은 등껍질 위에 올라탄 이안이 명령을 내렸다.

“빡빡아, 라이에게 귀룡의 가호!”

[알겠다 주인.]

그리고 빡빡이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기류가 라이에게로 쏘아지며 허공을 누렇게 물들였다.

[소환수 ‘빡빡이’가 소환수 ‘라이’에게 고유능력 ‘귀룡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2분 동안 ‘라이’의 피해를 ‘빡빡이’가 대신 받습니다.(‘빡빡이’는 원래 피해의 150%만큼의 피해를 입게 되며,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지면 스킬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스킬이 발동된 것을 확인한 이안이 뒤돌아 세리아에게 명령했다.

“세리아, 떡대는 살짝 뒤쪽으로 물리고, 소환수 회복스킬 빡빡이에게 집중시켜줘!”

“옛, 영주님!”

아무리 빡빡이라도 라이가 입는 피해를 대신 입다보면 생명력이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귀룡의 가호 스킬이 발동하는 동안만큼은, 빡빡이에게 회복스킬을 집중시켜야 했다.

그리고 라이는 이안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전장으로 뛰어들어 적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소환수 ‘라이’가 카이몬 제국 병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이몬 제국병사의 생명력이 27638만큼 감소합니다.]

[카이몬 제국병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198079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치를 3000만큼 획득합니다.]

[루스펠 제국 황실 공헌도를 500만큼 획득합니다.]

라이가 병사들을 처치할 때마다 주르륵 밀려 올라가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힐끗 확인한 이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전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많이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전투 자체를 승리로 이끄는게 가장 중요하니까…!’

이안이 전투에 참여한 목적 중 가장 큰 것은 최전방 전선을 유지시키는 것이었기에, 이안은 전장 전체의 흐름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멀찍한 곳에, 이안의 눈에 낯익은 뒷모습이 들어왔다.

‘아오, 쟨 또 왜 저기있어…! 내 말좀 듣지…!’

그 뒷모습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카이자르.

카이자르는 이안이 참여하는 전장에 항상 함께하기는 했지만, 제멋대로였기에 이안의 명령을 전혀 듣지 않았다.

이안이 동쪽으로 움직이라고 하면 일부러 서쪽으로 움직이는 수준.

오히려 이안과 친밀도가 높은 일반 제국기사들이 가신인 카이자르보다 이안의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것 같기도 할 정도였다.

‘아, 몰라. 그래도 경험치 명성치는 다 들어오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서쪽 전선에 카이자르만 투입되어도 다시 균형이 맞아질 것 같았지만, 카이자르는 신나게 중앙전선의 기사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차라리 내가 카이자르의 움직임에 맞춰서 이동해야겠어.’

이안은 병사들을 향해 분쇄 스킬을 뿌리던 핀을 불렀다.

“핀아, 이리 와봐!”

꾸룩- 꾸룩-!

이안의 명령에 쏜살같이 다가온 핀.

이안은 핀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준 뒤, 능숙한 몸놀림으로 핀의 등 위로 올라탔다.

“세리아, 여기는 너한테 맡길게. 빡빡이랑 떡대 잘 치료해주면서 버텨봐! 할리도 도와줄거야.”

“예, 영주님! 맡겨만 주세요!”

이안은 앞쪽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폴린에게도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폴린! 이쪽 전선은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전방 뚫린다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라인 유지해 줘.”

폴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영주님! 알겠습니다!”

든든한 가신들에게 전장을 맡긴 이안은 핀을 타고 쏜살같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끼아아오-!

창공의 제왕 답게 우렁찬 목소리로 포효하는 핀!

이안은 전장을 내려다 보며 마력의 구체와 전류증식을 열심히 뿌려대기 시작했다.

‘역시 전류증식만큼 대규모 전투에 효과적인 광역 상태이상 스킬은 없는 것 같아. 게다가 이런 난전이라면 더 좋지…!’

그렇게 이안은 효과적으로 전장 전체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npc나 유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재적소에 디버프 스킬이나 상태이상 공격스킬을 뿌려주며 간접적으로 전장을 휘어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모습에 가장 먼저 위협을 느낀 것은 카이몬제국의 유저들이었다.

“저거 뭐냐? 루스펠제국 전투형 NPC 중에 그리핀 타고 다니는 것도 있었어?”

“뭐야, 나도 처음 보는데? 정말 그리핀 라이더가 있네?”

이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저들은 그리핀을 타고 허공을 누비며 야금야금 전투를 방해하는 이안의 존재가 NPC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중 이안을 아는 유저도 존재했다.

“저 유저! 이안이야! 그리핀 타고 다니면서 전기 뿌리는 영상 본 적 있어!”

“정말이잖아? 저거 보라색 구체 맞으면 제법 아프니까 다들 피해!”

퍼어엉-!

이 커다란 전장에서 유저 한 사람의 전투력이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미미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안만큼은 누가 보더라도 전투 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안은 강력한 아군을 적절히 이용했으며, 위협적인 적들을 교묘히 고립시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투가 진행되자, 전장은 조금씩 루스펠 제국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열심히 싸우던 루스펠 소속의 유저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 드디어 우리도 한번 이겨보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진짜 이길 것 같은데?”

“전쟁 시작하고 3일 내내 연패만 했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저기 그리핀 라이더 안보이냐? 저 사람이 진짜 대박인 것 같아. 나 아까 저분 덕에 두 번이나 살았어.”

“저 사람이라니! 저 분이 바로 소환술사 랭킹 1위 이안님이라고. 내가 저번에 전투영상 봤다고 말했잖아. 진짜 쩐다니까? 나 전투 끝날 때 까지 살아있으면 사인이라도 하나 받을 생각이야.”

“아, 정말? 저 유저가 네가 말했던 그 이안이었어?”

핀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할리의 위에 올라 타 전장을 누비기도 하는 이안을, 유저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야, 이안 저사람 보면 소환술사 진짜 사기클래스 인 것 같은데, 왜 맨날 소환술사 게시판 징징이들은 징징대는거냐?”

한 유저의 말에, 그의 친구인 듯 보이는 기사 유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 저 플레이가 쉬워 보이냐 지금? 소환수들 자체 AI가 있어서 그냥 둬도 어느 정도 싸워주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명령 내려주지 않으면 저 정도 컨트롤 안 나와. 이안 저 사람이 대단한 거야.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뻘짓 하는 소환수가 단 한 마리도 없어. 게다가 소환수들 등급도 최소 영웅등급인 것 같고….”

그렇게 이안이 쉬지 않고 모든 정신력을 쏟아 전장을 누빈 끝에, 결국 루스펠 제국은 완벽히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껏 카이몬 제국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었던 사막 전사들이 등장해 주지 않은 것도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의 활약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세! 전투 끝날 때 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대박이야! 나도 살았어! 크하하핫!”

“야, 넌 레벨 120도 안 되잖아.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거야?”

“크크크, 이안님 졸졸 따라다녔지 뭐. 이안님이 세 번이나 살려주셨다고! 이안갓!”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은, 처음 전투에 참여한 3천여 명의 30% 수준인 9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승리진영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유저가 10%이상 살아남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오늘의 전투는 그야말로 대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전투로 얼마나 밀어낼 수 있었으려나…?’

이안은 맵을 열어 새롭게 형성된 최전방 대치선과 거점지의 거리를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오늘도 패배했다면 정말로 거점지가 위험할 뻔 한 것이었다.

‘좋아, 앞으로 한 이틀정도만 더 연승하면 우리 거점지를 위험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어.’

이안은 자신의 능력으로 대규모 전투에서도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척이나 뿌듯했다.

‘경험치도 쏠쏠하고… 며칠만 최전선에서 용병으로 뛰어야겠어.’

하지만 순조롭게만 보였던 이안의 계획은, 곧바로 다음 날 깨질 수 밖에 없었다.

*          *          *

이안 : 뭐라고? 거점지가 공격받았다고?

헤르스 : 그렇다니까. 너 없는 사이에 사막전사들이 공격해왔어. 지난번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네가 없어서 그런지 피해가 제법 있다.

이안 :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오늘 전투로 최전선이랑 거리가 3km도 넘게 벌어졌는데 사막전사들이 어떻게 쳐들어 온 거야?

피올란 : 아무래도 다크루나 길드에서 직접 사막전사들을 움직인 모양이에요. 아니면 마젤란의 징표에 어떤 특수한 능력이라도 있던가….

이안 : 특수한 능력이요? 어떤…?

피올란 : 예를 들면 특정 거리 내의 어떤 지점으로 사막전사들을 소환한다던가 하는…?

이안 : 아… 돌겠네. 그럼 내일부터는 저도 거점지로 돌아가야겠네요?

헤르스 :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다. 네가 있고 없고가 차이가 제법 크니까….

전투에 승리한 것을 자랑하기 위해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얼굴이 굳어졌다.

“아… 마젤란의 징표인지 뭔지, 그거 뭐하는 아이템인지 세부정보 볼 방법 없나? 미치겠네.”

지금 로터스 길드의 중부대륙 거점지는 빠르게 건물들을 올리며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건물들을 올리는 데 필요한 자원과 재화는 물론 전쟁교역소를 통해 수급한 것들이었다.

길드원들이 거점지 주변의 몬스터들을 토벌하며 얻은 전공포인트를 전부 자원으로 교환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오면… 생산건물 올릴 게 아니라 방어타워부터 먼저 지어야겠는데…? 노동력에 투자도 더 많이 해야겠고….’

그렇다고 지어지고 있는 생산건물을 취소하는 것은 너무 큰 낭비였으니, 어디선가 추가로 더 자원을 수급해야만 했다.

채팅창을 끄고 거점지로 향하는 이안의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북부대륙에서 자원을 끌어와야 한다는 이야긴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이안이 누군가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안 : 교수님, 저 진성입니다. 혹시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건 이제 마무리 되어 가나요?

< (3). 고립, 그리고 위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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