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고립, 그리고 위기 -1 >
“전투준비! 얼른 접속 안한 길드원들 전부 다 불러요! 어서!”
이안의 다급한 외침에, 길드 채팅방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막전사들의 숫자가 제법 많아 보였던 것이다.
‘거점지 점령 이후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만한 전력이지만… 저걸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니….’
이안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에는 새파란 빛을 뿜어내며 빛나고 있는 거대한 수정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거점지의 심장 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 크리스탈’ 이었다.
거점지 점령을 위해서는 블루 크리스탈에 길드문양을 새겨넣는 작업이 필요한데, 성배를 사용해 시간을 단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5시간은 더 필요한 상태였다.
이안은 다가오는 사막전사들을 보며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했다.
“라이, 할리, 핀 소환!”
그리고 뒤쪽에서 다가온 세리아도 떡대와 블루와이번을 소환했다.
소환된 라이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입을 열었다.
[주인, 전투인가?]
라이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저기 몰려오는 거 보이지?”
다가오는 사막전사들을 보며, 라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오랜만에 재밌는 전투가 되겠군.]
라이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빡빡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피터지게 싸웠던 걸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하지만 무려 세 시간이나 쉬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렇게 오래 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군. 몸이 근질거린다.]
[….]
이안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소환수 다운 멘트를 날리는 라이.
뿍뿍이는 어쩐지 애잔한 표정으로 라이를 응시하고 있었고, 반면에 이안은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라이 하나는 정말 잘 키웠단 말이지.'
그리고 잠시 후, 사막전사들 중 가장 선두그룹이 거점지의 지척까지 다다르자, 이안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유현아, 일단 접속해 있는 기사클래스 분들 먼저 끌고 앞으로 가서 어그로 좀 끌어줘!”
“오케이.”
그리고 빡빡이를 향해 시선이 옮겨졌다.
“빡빡아, 네가 제일 앞쪽에서 버텨줘야겠다.”
[알겠다, 주인. 그러도록 하지.]
쿵- 쿵-
빡빡이가 거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자, 세리아도 떡대에게 명령을 내려 그를 따르게 했다.
그리고 이안은 로터스 길드의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전고(戰鼓)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북소리.
둥- 둥- 둥-!
그리고 곧 이어 모든 로터스 길드 유저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용맹의 전고가 울려 퍼집니다.]
[로터스 길드 소속의 모든 병사들의 사기가 20%만큼 증가합니다.]
[로터스 길드 소속의 모든 유저들의 전투능력치가 20분 동안 15%만큼 상승합니다.]
길드버프까지 전부 다 발동시킨 이안은 이제 소환수들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보유중인 버프를 전부 다 발동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규모전투일수록 광역버프가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으니까.
“핀, 제왕의 포효!”
이안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으로 빠르게 솟구쳐 올라간 핀이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끼아아오-!
[소환수 ‘핀’의 고유능력인 ‘제왕의 포효’ 가 발동됩니다.]
[반경 50M 이내의 모든 아군의 민첩성이 10분 동안 30%만큼 증가합니다.]
[반경 50M 이내의 모든 적군의 움직임이 10분 동안 30%만큼 느려집니다.]
핀의 포효를 기점으로 그야말로 난전이 시작되었다.
이안은 직접 전투에 뛰어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전황을 살피며 전장을 지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피해를 최소화 시켜야 해. 이들만 막아낸다고 끝이 아니니까….’
비교적 단순한 전투패턴을 가진 사막전사들 이었지만, 레벨 자체가 전반적으로 로터스 길드의 전력보다 20 이상 높다보니 전투양상이 무척이나 빠듯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챙- 채앵-!
말 위에 탄 채로 하얗게 반짝이는 언월도를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사막전사들!
후웅-!
소리만 들어도 그 파괴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었기에, 로터스 길드원들은 최대한 긴장한 상태로 적들을 맞상대했다.
“피올란님! 우측 전방 지원좀 해주세요!”
“옛!”
“카윈, 너는 그 자리 계속 지켜주고… 클로반형! 놈들 수정으로 접근 못하게 좀 막아줘!”
“오케이!”
그래도 겹겹이 부여된 버프들과 이안의 일사분란한 지휘 덕인지, 로터스 길드는 사막전사들을 제법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난전 중에도, 이안의 소환수들은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새로 영입(?)된 빡빡이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소환수 ‘빡빡이’의 고유능력인 사막의 수호자 스킬이 발동됩니다.]
[소환수 ‘빡빡이’가 20초 동안 최대 생명력의 30%만큼의 피해를 흡수할 수 있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버프를 포함하면 거의 5천에 육박하는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빡빡이가, 패시브 스킬로 인해 보호막까지 생성시키자 거의 생명력이 줄어들지를 않았으며….
[소환수 ‘빡빡이’가 사막전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막전사’의 생명력이 9870만큼 감소합니다.]
그렇다고 공격력이 약한 편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딜러 겸 탱커!
이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빡빡이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레벨도 높고 등급도 높아서이긴 하겠지만… 확실히 떡대에 비해서는 훨씬 잘 버텨주네.’
게다가 지정 대상의 피해를 대신 받아주는 ‘귀룡의 가호’ 능력 덕에 라이도 전장 한복판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소환수 ‘빡빡이’가 소환수 ‘라이’에게 고유능력 ‘귀룡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2분 동안 ‘라이’의 피해를 ‘빡빡이’가 대신 받습니다.(‘빡빡이’는 원래 피해의 150%만큼의 피해를 입게 되며,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지면 스킬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이안이 라이를 향해 소리쳤다.
“라이야, 안쪽으로 가서 더 휘저어줘!”
[알겠다, 주인.]
이안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전투 초반에는 피해가 속출할 수 밖에 없었다.
중부대륙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유저들이 적응이 덜 되었는지 우왕좌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로터스 길드의 유저들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사막전사들의 숫자는 하나둘 줄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안의 귓전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의 축복!”
[길드원 ‘하린’이 ‘여신의 축복’ 스킬을 사용합니다.]
[모든 면역력이 20%만큼 증가합니다.]
이안은 그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하린이 있었다.
이안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 하린이 너도 여기 왔어?”
하린의 레벨은 중부대륙에 오기에는 너무 낮았기 때문.
그래서 하린은 로터스 영지에 남아있으라 얘기했었기에, 당연히 그쪽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었다.
놀라는 이안을 보며 하린이 양 볼을 부풀렸다.
“야, 길드원 전부 움직일 때 안 따라오면, 내가 여기 올 방법이 있겠어? 그러면 최소 몇 주일 동안은 심심하게 혼자서 게임해야 하잖아.”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위험한데….”
하린이 들고 있던 지팡이로 이안의 등허리를 가격(?) 하며 말했다.
“됐고,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빨리 전투에나 신경 써. 저기 카윈이 지금 위험하네.”
하린의 말에 이안은 반사적으로 움직여 할리와 라이에게 지시를 내렸고, 생명력이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던 카윈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제는 아예 할리의 등에 올라 타 정신없이 전장을 누비는 이안을 보며,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진짜 게임에 쓰는 에너지 반에 반 정도만이라도 나한테 투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중얼거리는 하린을 보며, 옆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던 피올란이 피식 웃었다.
“그거 너무 큰 욕심 아니예요 하린님?”
그녀의 말에 하린이 쌍심지를 켜 올렸다.
“아니, 반도 아니고, 반에 반 정도가 욕심이예요? 피올란님까지 이러시기예요?!”
하린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보며, 피올란이 실소를 흘렸다.
“이안님 인생의 거의 100%가 게임인 거 같은데… 그 1/4이면 25%나 되잖아요. 그정도면 욕심이죠.”
제법 설득력(?)있는 피올란의 논리.
하린은 순간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런가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한 시간여를 걸쳐 진행된 전투 끝에 로터스 길드는 사막전사들을 큰 피해 없이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병사들을 제법 많이 잃기는 했지만, 사망한 길드원은 서른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이 정도의 피해는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 시체로부터 빨려 들어오는 보랏빛 기류를 보며, 이안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어…? 영지전 이후로 이렇게 보랏빛 기류가 만들어진 적은 없었는데…?’
이안은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고 오랜만에 카르세우스 알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카르세우스의 알 - 부화율 : 57%]
그리고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
며칠 전 확인했을 때 40%가 채 되지 않던 부화율이 거의 20% 가깝게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체 기준이 뭘까? 어떤 전투를 해야 부화율을 빨리 채울 수 있는 거지?’
영롱하게 빛나는 신룡의 알을 보며, 이안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만 깨어나면… 이젠 진짜 최상위권 랭커들도 상대해 볼 만 하겠어.’
신룡에 대한 기대를 잠시 접어 둔 이안은 알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 장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안으로서도 중부대륙에 들어온 뒤 손에 꼽을 정도의 대규모의 전투였기에, 드랍된 전리품들도 상당했다.
마지막으로 블루 크리스탈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시간 더럽게 안 가네. 아직도 4시간 넘게 남았다니….’
거점지가 완성될 때 까지 별 탈 없기를 빌며, 이안은 소환수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 * *
중부대륙이 열리고도 한동안은 고요하기만 하던 전장 곳곳에서, 드디어 대규모의 전투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양 제국의 제국군의 후속부대까지 전부 다 중부대륙에 모였으며, 어지간한 상위권 길드들도 전부 입성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연일 커뮤니티의 메인 페이지는 중부대륙의 전투결과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되었다.
[마검사 ‘이라한’을 필두로 파죽지세의 기세를 뿜어내는 다크루나길드.]
[마젤란의 징표, 밸런스 붕괴 아이템 논란.]
[루스펠제국군 방어선, 무너지기까지 초읽기.]
컴퓨터 앞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커뮤니티를 살피던 진성이 중얼거렸다.
“음… 제국군 방어선 무너지면 안 되는데….”
대규모로 공격해 온 사막전사들을 막아낸 뒤, 자잘한 몬스터들의 침입이 있기는 했지만, 로터스 길드는 결국 거점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거점지 점령의 일등공신은 홀드림의 성배였다.
성배가 아니었더라면 거점 점령에 성공하기도 전에 카이몬 제국군에 공격당했으리라.
기사를 계속 읽어 내려가던 진성이 다시 중얼거렸다.
“이제 거점지 수성은 유현이한테 맡기고, 최전방으로 나가서 방어선 사수를 도와야 하나….”
커뮤니티 메인 기사에 언급되었듯, 카이몬제국의 전력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라한이 보유하고 있는 ‘마젤란의 징표’라는 아이템이 있었다.
마젤란의 징표로 인해 중립 NPC였던 사막전사들이 카이몬 제국의 편으로 돌아섰고, 그들이 전장 곳곳에서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탓에 루스펠 제국군이 연전연패를 하기 시작한 것.
사막전사들의 전력은 루스펠 제국군의 전력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루스펠과 카이몬 제국군의 전력이 팽팽할 정도로 막상막하였기에 무게의 추가 기울어진 것이었다.
‘거점지 사수도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얘기지… 만약 방어선 무너지고 적진 한복판에 고립되면 그땐 정말 답이 없을 거야.’
시리얼을 다 먹은 이안은 서둘러 캡슐에 들어가 앉았다.
어렵게 얻어낸 거점지를 무력하게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 (3). 고립, 그리고 위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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