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전쟁기지 -3 >
* * *
중부대륙은 무척이나 넓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아직까지는 텅텅 비어있는 무주공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어있는 거점지까지 넘쳐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일정 이상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거점 포인트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데, 그 조건 중 하나인 인구수치와 자원수치가 충족되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중부대륙에 존재하는 거점지는 대륙의 중앙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약 50여개.
사실 랭킹 100위권도 간당간당하는 로터스 길드의 입장에서는 거점지 하나를 점령하여 유지시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성아, 우리는 차라리 거점지가 좀 늘어난 다음에 노려보는 게 낫지 않을까?”
헤르스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어. 그때쯤 되면 최상위권 길드들과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져 있겠지.”
헤르스의 말처럼, 거점지는 시간이 지나면 늘어난다.
존재하는 거점지들이 발전하면 자연히 인구밀도가 늘어나고, 자원이 풍족해지며, 그것은 주변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기다렸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수월하게 거점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내기만 하면, 이번만큼 치고 올라가기 좋은 기회도 없을 거야.’
중부대륙에 거점지를 하나 추가시키면, 북부대륙에 있는 로터스 영지의 등급도 대영지로 승급시킬 수가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봤을 때 중부대륙의 거점지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피올란이 이안에게 물었다.
“생각해 둔 위치는 있으세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양측 제국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방지역 근처에 괜찮은 거점이 한 군데 있더라구요.”
그 말에 피올란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네에? 거긴 너무 전방 아닌가요? 잘못해서 제국군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초토화될 텐데….”
하지만 이 부분은 이안도 충분히 생각했던 부분이었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시 열었다.
“확실히 위험성이 크기는 하죠. 대신에 장점도 있습니다.”
헤르스가 물었다.
“장점이 뭔데?”
“일단, 방금 피올란님이 말씀하셨던 리스크 때문에 길드간 경쟁률이 무척이나 낮아. 아마 타이탄이나 다크루나 길드에서도 이런 애매한 영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전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카이몬 제국의 제국군만 잘 막아내면 되는 거지.”
피올란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리 있네요. 하지만 그 정도 이점만으로는 매리트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제국군에게 수시로 공격받는다면 거점지 발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테니까요. 매번 초토화될 텐데, 작물이 자라고 인구가 늘어날 시간이 있겠어요?”
헤르스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쓸 데 없이 자원만 낭비하는 게 될 수도 있어. 자원이 없으면 병력을 생산하는것도 불가능하니까.”
두 사람의 걱정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거점지는 점령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점령한 뒤에 유지하고, 투자한 비용 이상을 창출해 내기 위해선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원은… 전공포인트로 수급하면 됩니다.”
바로, 빡빡이 덕에 찾아낸 전쟁교역소의 존재가 이안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줬던 것.
전쟁교역소에 대해 모르는 헤르스와 피올란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고, 헤르스가 물었다.
“전공포인트로 자원수급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전공포인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 오기 직전에.”
그리고 이안은 두 사람에게 전쟁교역소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피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해볼 만 한 전략이네요. 전공 포인트 수급량이 식량 소모량보다 많기만 하다면요.”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죠. 그 부분이 가장 큰 관건이죠. 하지만 최전방에서 계속해서 카이몬 제국군들을 막아내다 보면 전공포인트는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안의 경험상 적국 소속의 유저나 NPC를 잡으면 일반 몬스터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전공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하는 말이었다.
“흐음….”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은 세 사람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루스펠 제국군의 행렬에 합류하여 중부대륙 진입에 성공한 길드 후발대 인원까지 모두 도착했으며, 전력이 다 모인 로터스길드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최전방의 거점지였다.
* * *
“솔린, 저 깃발이 뭔지 아나?”
둔덕 아래쪽으로 제법 큰 규모의 유저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이라한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이 시점에 중부대륙에 들어와 있을 만한 길드라면 최상위권 길드일 것임이 분명한데, 완전히 처음 보는 길드문양이기 때문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스터. 확실한건 20위권 길드에는 저런 깃발이 없습니다.”
솔린과 이라한,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깃발은 다름아닌 로터스의 깃발이었다.
그리고 로터스 길드는 최전방의 거점지에 자리를 잡고 점령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라한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지금 한번 길드목록 열어서 찾아보도록. 못해도 30위권 안에는 있을 테니, 금방 찾겠지.”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하지만 솔린이 로터스 길드의 길드마크를 찾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로터스 길드의 순위가 100위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마스터님.”
“왜그래?”
“저 길드마크… 로터스 길드 라는 곳의 길드문양입니다.”
이라한의 두 눈이 약간 커졌다.
“로터스?”
“예, 마스터.”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데?”
“그러실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길드랭킹이 107위에 랭크되어있으니까요.”
“….”
이라한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곧 다시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한번 덮쳐 볼까? 어떻게 생각해 솔린.”
지금 다크루나길드의 주요전력은 각각 거점지를 지키느라 많이 빠져나가있었지만, 정찰대의 전력만으로도 107위 길드 정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라한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하지만 솔린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금은 자제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마스터.”
이라한이 피식 웃었다.
“저 뒤쪽의 루스펠 제국군 때문에?”
이라한이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루스펠의 제국군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자칫 대규모 전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단 점령한 세 개의 거점을 완벽히 안정권으로 만들기 전 까지는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라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하긴, 저 거점지는 빼앗아봐야 이득될 것도 없으니까. 전장 한복판에 거점지라니… 길드마스터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덜떨어진 건지, 무모한건지….”
하지만 혀를 차는 이라한과는 달리, 솔린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100위권의 길드라면 어차피 제대로 된 거점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틈새시장을 노린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 저기서 얻어낼 게 없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솔린을 향해 이라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린.”
“예, 마스터.”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럼 이 기회에 마젠다의 징표나 한번 시험해 볼까?”
생각지 못한 이라한의 말에, 솔린의 커다란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사막전사들을 써보시려는 겁니까?”
이라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생각대로라면 사막전사들 만으로도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단 말이지.”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마스터.”
솔린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 또한 새로운 전력이 된 ‘사막전사’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 * *
[‘홀드림의 성배’를 사용합니다.]
[거신족 황제인 ‘홀드림’의 영혼이 담긴 성수가 척박한 대지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거점지 점령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듭니다.]
[거점지 점령까지 남은 시간 : 05:24:33]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기가 막히는 아티펙트란 말이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우리 길드가 10위권 길드만큼 강했으면, 성배 빨로 거점지 서너 군데 정도는 추가로 점령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성배가 적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것만은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은 옆에서 놀고 있던 뿍뿍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뿍뿍이 너는 요즘 팔자 좋다?”
뿍-?
“너 요즘 실업자잖아. 내가 근접전을 거의 안하니까 말이야.”
뿍뿍이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뿍- 뿌뿍-!
“형이 미안하다. 빨리 네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뿍뿍아 금방 일자리 창출 해줄 테니까.”
떨리는 눈망울로 고개를 거세게 젓는 뿍뿍이.
뿍- 뿌뿍-!
그런 그를 보며 옆에 있던 빡빡이가 이안을 불렀다.
[주인.]
“왜, 빡빡아.”
[뿍뿍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음…?”
의외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세… 이상한 소리내는 대두 거북이… 라는 정도?”
그 대답에 분노한 뿍뿍이가 이안에게로 달려들었다.
뿍- 뿌뿍-!
무시무시한 기세로 이안의 정강이에 박치기를 하는 뿍뿍.
하지만 데미지가 있을 리 없었다.
피식 웃은 이안이 빡빡이를 향해 물었다.
“빡빡이, 너는 얘에 대해서 아는게 좀 있어?”
빡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형제의 종족이기 때문에 몇 가지 아는 것이 있다.]
이안이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오, 뭔데?”
빡빡이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사막의 종족이지만, 뿍뿍이는 심연의 종족이다. 심연의 종족이 귀룡이 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귀룡’이라는 말에 이안의 표정이 일변했다.
‘귀룡이 되는 거라면… 분명 진화를 말하는 거겠지?’
이안이 얼른 빡빡이를 향해 다시 물었다.
“어떤 방법인데? 빨리 알려줘. 저 식충이 빨리 진화시켜서 부려먹어야 한단 말이야.”
찌릿-
뿍뿍이가 이안을 째려 봤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빡빡이의 말이 이어졌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진화했던 것처럼 귀룡의 여의주를 얻어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룡의 여의주를 사용해 진화한다면 승천은 할 수 없게 되지.]
“승천…?”
[그렇다. 승천하기 위해선 여의주의 힘의 도움 없이 진화에 성공해야 한다. 여의주는 일생에 단 한번만 사용이 가능한데, 진화에 여의주를 사용해 버리면 승천할 때는 여의주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안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천’이라는 개념이 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승천이 뭔데? 승천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이안의 물음에 빡빡이가 천천히 대답했다.
[나도 전설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승천에 성공한 귀룡은 귀룡들의 왕이자 신적인 존재가 된다고 들었다. 심연의 종족인 뿍뿍이가 승천에 성공한다면 물의 힘을 자유자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룡이 될 것 같다.]
“오…!”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잘 모르고 들어도 엄청난 스케일이 느껴지는 빡빡이의 설명에 이안의 입이 쩍 벌어졌다.
뿍…?
게다가 별로 관심이 없던 뿍뿍이조차도 빡빡이의 말에 제법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 여의주 말고 뿍뿍이가 귀룡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줘봐.”
이안의 재촉에, 빡빡이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주인, 혹시 내가 주었던 ‘귀혼’이라는 물건을 기억하는가?]
이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혼은 뿍뿍이에게 착용시켜놓고 유용하게 사용 중인 부적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응. 물론 기억하지.”
[그 귀혼은 내가 지난 몇 백년에 걸쳐 만들어낸 ‘에너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귀혼을 총 세 개 모아서 ‘물의 제단’ 이라는 곳에 찾아가면 아마 뿍뿍이가 귀룡이 될 수 있을 거다.]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차라리 레벨업이라던가 퀘스트를 해야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해 내서 뿍뿍이를 진화시키겠는데, 귀혼이라는 아이템은 어디서 구해야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귀혼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데?”
빡빡이가 뿍뿍이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뿍뿍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면 나처럼 내단을 가지고 있는 동족을 찾아가 양보 받아야 하지.]
이안의 시선이 뿍뿍이를 향했다.
“야, 뿍뿍아. 너 내단 있냐?”
순간 흠칫 놀란 표정이 된 뿍뿍이.
뿌욱?
그 모습에서 느낌이 온 이안은 뿍뿍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야, 있으면 빨리 뱉어 봐. 너 진화할 수 있다잖아. 저기 빡빡이처럼 멋있어질 수 있는 거야.”
억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뿍뿍이.
그런데 그 때, 멀찍이서 길드원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안님! 큰일났습니다!”
“네?”
“서쪽에서 사막전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안의 시선이 길드원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돌아갔고, 그곳에는 수십은 되어 보이는 사막전사들이 거점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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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쟁기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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