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전쟁기지 -1 >
사막 한복판에 펄럭이는 오클란 길드의 깃발.
그리고 백여 명이 넘는 많은 유저들과, 수백 이상의 길드 사병들이 그 깃발 아래서 중부대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후우, 확실히 다른 지역이랑은 몬스터 수준이 차원이 다르네요.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열 명이 넘게 아웃 당하다니.”
선두에서 대열을 이끌던 여성 기사 유저의 말에, 림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리히나님. 아무래도 몬스터 레벨대 자체가 기존 사냥터들에 비해 워낙 높으니까요.”
리히나는 오클란 길드의 창립멤버중 하나이자 랭커인, 길드의 수뇌부였다.
그리고 이번 중부대륙 일차 원정대의 총 책임을 그녀가 맡고 있었다.
림롱은 그녀를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나저나 림롱님은 확실히 다른 암살자 클래스 유저들이랑 다르네요. 마스터께서 신뢰하시는 이유가 있었어요.”
“후후… 어떤 점이요?”
“암살자 클래스 유저들이 PVE에서 제대로 능력발휘가 안된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잖아요. 광역 공격기도 거의 없고, 근접형 클래스가 몸은 또 워낙 종이몸이니….”
그녀의 말 처럼 암살자클래스는 PVE에서 가장 배척받는 클래스였다. 이번 중부대륙 원정에서도 암살자 클래스들은 많이 배제당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었다.
림롱이 웃으며 말했다.
“다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어느 정도 불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극복할 방법도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때, 멀찍이서 정찰병 하나가 뛰어 돌아왔다.
“충! 리히나님. 정찰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리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고했다. 보고하도록.”
잠시 숨을 고른 병사의 말이 이어졌다.
“전방으로 10여분 정도 이동하면 스콜피언 퀸의 둥지가 있습니다. 몬스터 평균 레벨대는 160정도. 상대한다면 승리할 확률이 높겠으나, 스콜피온 퀸의 레벨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아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이기더라도 피해가 막심하겠군.”
리히나의 말에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리히나님. 우회해서 진군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옆에 서있던 림롱이 거들었다.
“던전 최초발견 보상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전력을 아껴서 거점지를 먼저 점령해야 할 때입니다 리히나님.”
리히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의 시선이 병사를 향해 다시 돌아갔다.
“스콜피온 둥지 말고는 목적지까지 큰 무리 없이 진행 가능하겠지?”
“그렇습니다.”
“우회해서 돌아간다면 도착하는데까지 소요되는 예상 시간은?”
“반나절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좋아.”
정찰병의 보고가 끝나자, 오클란 길드의 병력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미리 보아뒀던 최전방의 거점지였다.
* * *
‘이거 완전 땡잡았잖아?’
얼떨결에 얻은 소환수 ‘빡빡이’의 정보를 확인하던 이안은 말려 올라가는 양 쪽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빡빡이는 무려 ‘전설’등급의 소환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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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빡이(황금귀룡) -
레벨 : 150
분류 : 신수
등급 : 전설
성격 : 신중한
진화불가
공격력 : 2730
방어력 : 3825
민첩성 : 1575
지 능 : 2355
생명력 : 183300 / 183300
고유능력
* 사막의 수호자(패시브)
1분에 한번 씩 모래로 만들어진 보호막을 생성하여 피해를 흡수한다.
보호막은 최대 생명력의 30%만큼의 피해를 흡수하며, 20초 동안 지속된다.
* 절대방어 (재사용 대기 시간 2분)
10초 동안 ‘무적’ 상태가 된다.
‘무적’ 상태일 때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으며,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이 된다.
하지만 절대방어가 지속되는 동안은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
* 귀룡의 가호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
2분 동안 지정한 대상의 피해를 대신 받는다.
귀룡은 지정 대상이 입었어야 할 원래 피해의 150%만큼의 피해를 입게 되며, 귀룡의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지면, 스킬이 자동으로 해제된다.
* 귀룡의 포효 (재사용 대기시간 2분)
넓은 범위의 적들을 도발하여, 귀룡을 공격하게 만든다. ‘도발’상태는 30초 동안 이어지며, 도발에 당한 상대는 움직임이 40%만큼 느려진다.
(유저를 상대로는 효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오랜 시간동안 유적의 무덤에서 유물들을 수호해 왔던 고대의 신수이다.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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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라이나 핀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능력치를 자랑하는 빡빡이.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진화불가’ 라는 부분이었다.
‘전설등급에 진화가능 이었으면 신화등급 한번 만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라이의 경우는 ‘완전체’ 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었다.
늑대류의 소환수들 중 라이보다 더 높은 단계로 진화가 가능한 개체는 아예 없다는 이야기.
그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귀룡이나 그리핀의 경우에는 더 높은 단계로 진화가 가능한 개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아쉬웠던 것이다.
‘어쨌든 떡대 하나로는 탱킹이 부족한 걸 느끼고 있었는데, 정말 잘 됐어.’
18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생명력에 4천에 육박하는 방어력.
150이나 되는 높은 레벨을 감안해도 역시 압도적인 능력치였다.
“와아, 축하드려요 영주님. 빡빡이 너무 멋져요!”
빡빡이의 앞으로 다가간 세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거대한 등껍질의 옆쪽을 쓰다듬었다.
이안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세리아.”
그리고 뒤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훈이가 투덜거렸다.
“운 좋은 놈. 말도 안 되게 빨리 성장한게 다 운빨이었어.”
훈이의 비아냥에도 이안은 어깨를 으쓱 해 보일 뿐이었다.
“운도 실력이야 꼬마야.”
“쳇.”
그리고 못마땅한 표정을 한 거북이 한 마리도 있었다.
뿍- 뿌뿍-!
질투에 찬 표정으로 빡빡이를 째려보는 뿍뿍이.
이제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빡빡이보다 잘생겨지는 것은 요원해졌음을 깨달았는지, 뿍뿍이는 무척이나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피식 웃으며 뿍뿍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여운 녀석.”
뿍- 뿌뿍-!
뿍뿍이는 토라져서 껍질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고, 이안은 늠름한 모습을 한 빡빡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전투에 모든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할 수가 없겠는걸?’
템빨과 히든스텟빨로 지금껏 부족한 줄 몰랐던 통솔력이 드디어 한계치 이상으로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소환수 소지 제한을 무한대로 만들어주는 드래곤 테이머의 깃털장식 덕분에 획득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소환은 불가능했다.
이안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돈 탈탈 털어서 템 싹 갈아엎어도 커버하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에 빡빡이와 즐겁게 대화중인 세리아가 들어왔다.
‘아, 혹시 세리아라면…!’
이안이 세리아를 불렀다.
“세리아!”
“넵, 영주님!”
“혹시 너 통솔력에 여유 좀 있어?”
이안의 생각은 간단했다. 소환수 하나를 세리아한테 양도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어차피 세리아도 이안의 가신이었으니, 그렇게 하면 모든 소환수를 전부 운용할 수 있으리라.
‘세리아 레벨도 이제 130 가까이 되니까… 분명 통솔력이 남을거야. 세리아가 운용하는 소환수는 블루와이번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세리아는 이안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주님. 저 통솔력 여유 많아요. 왜 그러세요?”
이안이 밝게 웃으며 세리아에게 말했다.
“세리아, 그럼 이제부터 네가 떡대를 좀 보살펴줄래?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떡대를 세리아에게 양도하고 나면, 장비 몇 개만 바꿔 착용해서 통솔력을 늘리는 정도로 모든 소환수의 운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물론, 세리아는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영주님! 정말 감사드려요!”
행복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있는 떡대를 바라보는 세리아.
그렇게 떡대를 세리아에게 양도한 이안은 정비를 마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점지 점령을 위한 사전작업을 시작해야할 때였다.
* * *
“솔린. 너무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
이라한의 말에 솔린은 고개를 떨구며 나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그들이 황제 직속의 근위기사단인줄을 몰랐습니다.”
이라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판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피해 정도가 컸기 때문이었다.
수십명의 정예길드원의 몰살.
하루동안 그들의 전력에 공백이 생겼음은 물론, 레벨도 전체적으로 하나씩 떨어졌으니, 이것은 엄청난 피해였다.
게다가 단 한명의 기사도 죽이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화가 났다.
“후우… 이제와서 어쩔 수는 없겠지.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릴 수 밖에.”
이라한은 시작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거점지를 최소 세 개 이상 점령하고 시작하려 했는데… 이렇게 되면 무리해도 두 개 까지 밖에 관리할 수가 없겠어.’
경쟁길드인 타이탄길드는 이미 두 개의 거점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며, 추가로 거점지 하나를 더 늘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기에 더욱 배가 아팠다.
‘그래도 루스펠 제국 길드놈들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도 못했던데…. 그게 그나마 위안이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라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루스펠 제국의 대표길드인 스플렌더, 오클란. 그리고 밸리언트 길드.
그들은 나름대로 5대 길드 중 하나라며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라한은 한번도 그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판단은 항상 한 발씩 늦었으며, 객관적인 전력도 많이 떨어졌다.
소속국가가 달랐기 때문에 아직 투기장에서 만난 적은 없었지만 붙는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지전이야 방어길드의 이점 때문에 쉽게 이기지 못했었지만, 이제 중부대륙에서 벌어질 필드전에서는 전부 다 박살내 줄 자신이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있는 이라한을 향해, 솔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마스터.”
이라한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말해라.”
“제가 접속불가시간이 끝난 뒤에 이쪽으로 이동해 오던 중, 흥미로운 장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라한의 두 눈이 살짝 떠졌다.
“흥미로운 장소?”
“네, 그렇습니다. 주변에 타이탄 길드 녀석들이 몰려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확실히 무언가 있어 보이는 구조물이었습니다.”
이라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오호, 구조물이라…. 이름이 뭔지는 봤고?”
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름은 확인했습니다. ‘전쟁의 탑’ 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라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제기랄!”
노성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에 움찔한 솔린이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이라한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샤크란 이놈이, 이제 정보공유조차 하지 않는다 이거지…?’
타이탄 길드와 다크루나길드는 경쟁구도의 길드였고, 당연히 지금까지 서로를 견제해왔다.
하지만 중부대륙으로의 진출은 제국간의 싸움이었기에 이와 관련된 정보들은 공유하기로 사전에 길드 마스터끼리 합의를 봤었는데, 샤크란이 그것을 어긴 것이었다.
이라한이 솔린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솔린.”
“예, 마스터.”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다. 준비해.”
이라한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짐작했기에, 솔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라한은 걸음을 옮기며 한마디 덧붙였다.
“수뇌부 전부 집합시켜. 다 같이 움직여야 하니까.”
* * *
< (2). 전쟁기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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