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성배 쟁탈전 (下) -1 >
* * *
“뿍, 뿌뿍!”
‘어디선가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뿍!’
여느 때처럼 전투가 끝나자마자 미트볼을 맛있게 먹고 있던 뿍뿍이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강렬한 기운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
뿍뿍이는 눈 앞의 미트볼을 전부 입 안으로 쑤셔 넣은 뒤 이안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뿌뿍!”
‘주인, 나 잠시 일 좀 보고 오겠뿍!’
물론 정신이 없었던 이안이 뿍뿍이의 보고(?)를 들었을 리 없었지만, 뿍뿍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보고는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
뿍뿍이는 신이 난 걸음으로 쪼르르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제법 맛있는 영약이 있을 것 같뿍!’
할리와 핀을 얻은 이후부터였을까?
이안은 어느 순간부터 전투 중에 뿍뿍이를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소환수들이 많아지고, 대부분 원거리 스킬로 전투를 하다보니, 크게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뿍뿍이를 등에 메지 않고 사냥하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오래 매달려 있었더니 답답해 죽겠뿍!’
하지만 중부대륙에 오고 난 뒤부터는, 사냥터 자체가 무척이나 고레벨 사냥터였고, 한시도 방심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이안이 뿍뿍이를 계속해서 등에 메고 있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이안이 뿍뿍이를 내려놓은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고, 중부대륙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뿍뿍이는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설렌다뿍! 미트볼보다 맛있는 거였으면 좋겠뿍!’
이안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뿍뿍이는 자유(?)를 얻은 뒤부터 종종 이안 몰래 마실을 나가 영약들을 캐어 먹곤 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오는 이 거대한 던전에는, 곳곳에 뿍뿍이가 탐을 낼 만한 영약들이 산재해 있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더욱 정확히 느껴지는 미지의 향기들이 뿍뿍이의 짧은 다리를 더욱 빨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단 하나 찾았뿍!’
그 통통한 몸집으로 용케 벽 사이를 타고 기어 올라간 뿍뿍이는, 동굴의 벽에 자라있는 오색 빛깔의 풀뿌리를 파 내어 먹기 시작했다.
“뿍! 뿌뿍!”
‘음, 이 향기! 혀를 타고 느껴지는 식감이 아주 일품이다 뿍!’
대륙 곳곳에 산재해 있는 영약들을 맛보는 것은, 식탐거북 뿍뿍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입에 착착 감기는 자극적인 맛의 미트볼 보다 뿍뿍이를 만족시켜주는 것은 거의 찾기 힘들었지만, 약초들을 맛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가끔 잘못된 약초를 섭취해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통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일탈은 뿍뿍이에게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뱃속에 대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뿍!’
약초를 섭취할 때 마다 신비로운 에너지가 뿍뿍이의 온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던 것.
뿍뿍이는 게 눈 감추듯 커다란 약초 뿌리를 전부 삼켜버린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뿍뿍이의 눈 앞에 귀찮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천년오색초를 섭취했습니다. 주인 ‘이안’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약초를 먹을 때 마다 떠오르는 이 귀찮은 메시지.
뿍뿍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다뿍! 주인이 알면 자기 것도 가져오라고 할 거다뿍! 나 혼자 다 먹을 거다뿍!’
그러자 메시지는 사라졌고, 뿍뿍이는 또 다시 빠르게 다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주인이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을 거다뿍. 그 전에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뿍!’
그 짧은 다리에서 나오는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빨리 움직여 던전 안의 약초들을 섭취하고 다니던 뿍뿍!
그리고 잠시 후.
뿍뿍이의 우려대로 알 수 없는 힘이 뿍뿍이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주인인 이안이 자신을 소환해제 하기 위해 명령을 내린 것이리라.
뿍뿍이는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완강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싫다뿍! 더 먹을거다뿍!’
그러자 놀랍게도, 뿍뿍이를 감싸던 푸른빛이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소환해제 명령을 성공적으로 거부한 뿍뿍이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도 날 방해할 수 없뿍!’
당당한 자태로 또다시 찾은 영약을 섭취하기 시작한 뿍뿍.
원래 처음에는, 뿍뿍이에게 이안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영약을 섭취하며 점점 힘이 강해지자 이 알 수 없는 에너지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뿍뿍이는 작은 꿈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영약을 더 섭취하면, 악덕 주인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뿍!’
임금지급에 인색한 악덕 업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거북노동자 뿍뿍이.
여러 의미에서 영약 채집은, 뿍뿍이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이질적인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 내용은, 뿍뿍이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렇게 멋진 외모를 가진 거북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군!]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외모칭찬!
뿍뿍이는 약초를 씹던 것도 잊고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렇게 구석진 곳에 내 멋진 외모를 알아봐주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뿍!’
그리고 마주친 시선.
하지만 뿍뿍이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무언가에 순간적으로 눈이 부셨기 때문이었다.
“뿍- 뿌뿍-!”
잠시 후, 흐려졌던 뿍뿍이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상대를 확인한 뿍뿍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뿍! 저렇게 멋진 거북이는 처음봤뿍!’
뿍뿍이의 눈 앞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등껍질과 크고 아름다운 머리를 가진 황금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나르시스트 거북인 뿍뿍으로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외모!
순간, 뿍뿍이의 뇌리를 강타하는 한 마디가 있었다.
[뿍뿍이 너,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진 거북이가 누군지 알아?]
몇 달 전, 악덕 주인에게서 들었던 믿기 힘들었던 이야기.
[저 북부대륙에 빡빡이라는 거북이가 있는데, 그 거북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거북이라 하더라고.]
이안에게서 들었던 멋진 거북 이야기를 떠올린 뿍뿍이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황금거북을 노려보았다.
상대는 이안이 말했던 빡빡이임이 분명했다.
‘빡빡이…!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뿍!’
뿍뿍이를 다이어트와 식단조절의 세계에 입문시켰던 악덕 거북이 빡빡이.
뿍뿍이는 그 이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의지를 다졌다.
‘저 느끼하게 생긴 거북놈만 제거하면, 난 다시 마음껏 미트볼을 먹을 수 있겠뿍…!’
그리고 그렇게 두 거북의 일기토가 시작되기 직전.
이안과 일행이 뿍뿍이의 뒤에 나타났다.
* * *
중부대륙의 고대 유적지는 사막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주변에는 수많은 모래언덕이 솟아 있었는데, 그 중 한 언덕의 모퉁이에 커다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새하얀 바탕에 새까만 초승달이 그려진 길드깃발.
그것은 바로 랭킹 1위 길드인 다크루나 길드의 깃발이었다.
“솔린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옆에 있던 유저의 말에, 솔린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마스터께서 오시기 전 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좋아.”
솔린은 다크루나길드의 제1 정찰조장을 맡고 있는 고레벨의 여성 전사 유저였다.
그녀의 레벨은 139.
그리고 139레벨이라는 수치는 현 시점에서 종합랭킹이 거의 50위에 근접할 정도의 초 고레벨이었다.
‘이제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솔린은 던전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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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거신족의 무덤
던전 등급 : 영웅
던전 레벨 : 170
던전 보스 : 홀드림 lv270
클리어 여부 : 클리어 된 던전
최초 클리어 유저 : 알 수 없음
고대 거신족의 지도자였던 ‘홀드림’의 무덤이다.
보스를 처치하면 낮은 확률로 홀드림의 보물들을 획득할 수 있다.
* 최초 클리어시 ‘홀드림의 성배’ 획득.
* ‘홀드림의 성배’ 아이템은 최초 클리어시에만 드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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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쭉 확인한 솔린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최초 클리어 유저가 왜 알 수 없음 이라고 뜨는 거지?”
원래 던전의 최초 클리어 유저는, 보스가 죽기 전 마지막 타격을 가한 유저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정보를 비공개로 해놓은 유저라고 하더라도, '***(비공개)' 와 같은 식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솔린이 당황한 것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길드원이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아, 보스 막타를 NPC가 치면 그렇게 표기되나 보더라구요. 전에 본 적 있습니다.”
“아아….”
그제야 이해가 된 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클리어 된 던전 이라고 떠 있으니… 곧 있으면 NPC건 누구건 바깥으로 나오겠지.’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솔린님, 저기 누군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길드원의 말에 솔린의 시선이 유적지 무덤의 출구를 향해 돌아갔다.
“곧바로 공격할까요?”
그의 물음에 솔린이 한쪽 손을 들어 저지했다.
“잠시, 기다려 보자. 유저가 아닐 것 같아.”
무덤의 출구를 따라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제국기사들.
그리고 기사들의 갑주에 그려진 문양을 확인한 솔린은, 그들이 루스펠 제국 소속의 기사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루스펠 소속의 길드에서 단독으로 이렇게 빨리 중부대륙에 진입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루스펠 소속의 길드 중 가장 랭킹이 높은 길드는 스플랜더 길드로, 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하지만 1,2위를 다투는 다크루나 길드나 타이탄 길드와 비교하면, 전력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50위권의 유저들이 대부분 두 개의 거대길드에 속해있었기 때문.
솔린은 잠시 고민했다.
‘제국 기사들이라면 최소 140레벨 이상일 텐데… 지금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놈들을 그냥 보내버린다면 당연히 성배는 얻을 수 없겠지.’
일반 길드도 아니고, 제국 기사단에 성배를 빼앗긴다면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었다.
솔린은 당연히 제국 기사단에서 성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클리어가 끝난 던전의 안쪽에서 누군가 남아 사냥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한 것.
‘지금 길드 전력이 50명 정도에… 곧 있으면 이라한님이 본대를 끌고 오실 테니까….’
루스펠 제국기사단의 숫자는 얼추 100여명 정도 되어 보였고, 그 정도면 수적 우세로 어떻게 싸워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본대가 전부 도착한다면 130레벨 이상의 유저만 세어도 200명은 넘을 테니까.
“마스터께선 얼마나 걸리신다고 하셨지?”
“10여분 정도면 도착하신답니다.”
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싸워 보자.”
솔린의 말에 그 옆에 몸을 숨기고 앉아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스르릉-
그녀가 허리춤에서 길다란 장검을 뽑아 치켜들자, 대열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의 뿔피리가 울려퍼졌다.
뿌우우-!
[‘승리의 뿔피리’의 ‘사기진작’ 효과로 인해, 모든 길드원들의 전투능력이 5%만큼 상승합니다.]
[모든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10%만큼 빨라집니다.]
[‘사기진작’ 효과는 10분동안 지속되며, 적을 하나 처치할 때 마다 지속시간이 5초씩 증가합니다.]
그리고 뿔피리 소리를 들은 루스펠 제국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래언덕 위로 향했다.
“돌격…!”
와아아-!!!
그렇게 중부대륙에서의 양 제국간의 첫 번째 전투는, 다크루나길드와 루스펠 제국기사단 사이의 싸움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훗날 다크루나 길드원들 사이에서 ‘중부대륙의 악몽’ 이라고 불리웠던 재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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