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45화 (173/1,027)

< (7). 성배 쟁탈전 (中) -3 >

*          *          *

“뭐야, 진짜 전쟁이라도 시작되는 거야?”

마을과 마을을 이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제국 병사들의 행렬.

유저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제국 군대를 바라보며 수근거렸다.

“와, 이 정도 규모 전쟁이라니. 나도 참전해보고싶다…!”

“참전이라니, 이 친구 꿈도 그쿠만. 난 그냥 근처에 가서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네…. 진짜 엄청나겠지?”

“아서라 이것들아. 우리 레벨로는 중부대륙이 아니라 불모지도 못 들어가. 시카르사막 잡몹한테 한 대 맞고 사망할걸?”

“야, 그래도 내 레벨이 90인데 설마 한방에 사망하겠어?”

“응, 충분히.”

“….”

카이몬제국과 루스펠제국의 전쟁선포는 멋들어진 영상으로 제작되어 게임방송사를 통해 일괄적으로 방영되었으며,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들의 관심사가 모두 중부대륙으로 쏠렸다.

카일란 사상 최초로 벌어지는 두 거대제국간의 대규모 전투!

그리고 그 전투에 관련된 퀘스트를 받았거나, 직접 참전하는 극소수의 상위유저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 중부대륙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최소 120레벨 이상은 되어야했으니까.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다.

“아니, 무슨 신규 컨텐츠라고 업데이트 한 게 극소수 최상위 랭커들만을 위한 잔치잖아?”

“그러니까요. 이번에도 신규직업이라도 나오나 하면서 기대했는데… 신규직업은커녕, 저 같은 50레벨 유저는 새로워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저기… 님들. 있는 컨텐츠는 다 하시고 지금 불평하시는 거 맞죠? 전 아직 할게 너무 많아서 딱히 불만이 생기지도 않던데….”

“….”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수순.

카일란에서 현재 120레벨이 넘는 유저는 상위 0.1% 정도의 극소수에 불과했다.

가장 빨리 서버를 오픈한 한국서버와 유럽, 북미서버가 이 정도수준이니, 뒤늦게 오픈한 해외서버들은 더욱 불만이 심했다.

신규서버의 경우에는 단 한명도 중부대륙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유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유저들의 불만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제국의 곳곳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전쟁 관련 퀘스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얼마 뒤면, 제국 병사로 있는 내 하나뿐인 아들놈이 중부대륙으로 파견 나간다네. 아들을 위해 근사한 장비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혹시 철광석을 7개만 구해다 줄 수 있겠는가?]

보상이 제법 후한 재료채집 퀘스트부터…

[자네, 기골이 장대한 게… 조금만 배우면 싸움 좀 하게 생겼어. 어떤가, 우리 루스펠 제국의 근위대로 들어와 실력을 뽐내보는 것은! 열심히 노력한다면 십인장, 백인장을 넘어 장교가 될 수도 있다네.]

제국의 병사로 취직할 수 있는 기회까지!

승급의 기회도 있었으니, 병사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창출되는 새로운 퀘스트들과 컨텐츠들에, 유저들은 금방 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제국의 병사나 대장장이, 마법사, 기사 등.

제국 소속으로 취직(?)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은 유저들에게 각광받았다.

유저의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계급이나 직군이 다 달랐지만, 제국 황실과 관련된 일자리(?)를 얻으면 제국 공헌도도 조금씩 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다른 퀘스트들을 진행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명성보상이 좋았기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서 너도나도 취직 열풍이 불어 닥칠 정도였다.

심지어 커뮤니티의 실시간 채팅방 에서는 직업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 님들 저, 곧 있으면 십인장으로 승진합니다. 레벨 40인데 십인장이라니, 쩔지 않나요?

- 윗분, 보아하니 중앙 근위병 소속 아니네요. 40레벨에 십인장 찍으신 거 보면… 지방 중소영지 자경단 소속이신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 하… 이님 예리하시네….

- 예리하긴 무슨... 모르는게 이상한거죠.

- 후후, 님들. 놀라지 마시길. 전 테스트 보자마자 곧바로 중앙 제국군 소속 십인장으로 취직했습니다. 주급이 40만골드나 된답니다. 크하핫!

- 헐, 윗분 혹시 직업이랑 레벨 좀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 전 지금 107레벨 전사클래스 유접니다.

- 헐! 말도 안 돼. 난 112레벨인데 십인장 실전면접에서 떨어졌는데…!

- 후후, 이게 피지컬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 인증샷 올리시기 전까지 전 못믿습니다.

- 하하, 이사람들 안되겠네. 잠시만 기다리시죠, 스샷 가져옵니다.

이렇게 신규업데이트로 인해, 카일란이 전반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고, 그렇지 않아도 가상현실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던 카일란은 더욱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게임채널은 어디를 틀어도 중부대륙에서 벌어지고있는 전쟁에 대한 정보들과 이야기를 다뤘으며, 이미 출시 1년이 다 되어가는 게임임에도, 신규유저는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과 로터스 길드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었다.

*          *          *

“뿍뿍아, 미트볼 줄게 숨어있지 말고 나와 봐!”

“박뿍뿍 어디있니!”

“박뿍뿍은 뭐냐.”

“니가 뿍뿍이 형이라며, 그래서 너랑 같은 박씨인 줄 알았지.”

“….”

정비가 끝난 제국기사들이 전부 떠나고, 로터스 길드원들은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사라진 뿍뿍이를 찾아 던전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느 때 처럼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환수 ‘뿍뿍이’가 소환해제를 거부합니다.]

[소환수 ‘뿍뿍이’를 소환해제 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소환해제를 거부했다고? 미트볼보다 맛있는 거라도 발견했나?’

속절없이 가고 있는 시간이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냥에 들어가기 전 뿍뿍이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이안은 길드원들과 함께 열심히 뿍뿍이를 찾았다.

그리고 아예 사냥을 하지 않는것도 아니었다.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마주치는 몬스터들은 잡으면서 이동해야 했으니까.

“영주놈아, 그 못생긴 거북이는 왜 그렇게 열심히 찾는 거냐.”

카이자르의 말에 옆에 있던 세리아가 이안 대신 대꾸했다.

“못생겼다뇨! 우리 뿍뿍이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하… 그 거북이랑 내 부하놈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신체 비율도 비슷한 것 같고….”

카이자르의 말에 옆에 따라오던 훈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날 그런 대두 거북이랑 비교하다니… 너무하는 것 같다 주군.”

“또 말이 짧아졌다. 맞고 싶냐?”

“….”

훈이는 지금까지 당해보지 못했던 참을 수 없는 수모(?)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생각했다.

‘저 괴물같은 놈 못이길 것 같으면… 어둠의 기운만 전부 흡수하고 명성치 10만 날려서 계약 해지해야겠어.’

하지만 훈이의 이 생각은 무척이나 잘못된 발상이었다.

아니,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불가능한 발상이랄까.

이것은 훈이가 계약내용을 잘못 읽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로 카이자르로부터 계약을 파기당한다면 명성이 10만 감소합니다.’ 라는 계약 내용.

이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명성 10만을 대가로 카이자르에게서 벗어나는 상황은 훈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이자르가 훈이에게 흥미를 잃어 계약을 파기할 경우, 명성 10만도 함께 날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잘못 읽은 훈이는, 명성 10만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며 꿋꿋이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길드원 중 한명이 큰 목소리로 이안을 불렀다.

“어, 이안님! 저쪽에 저거 뭐죠?”

“뭐가요?”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곳을 향해 돌아갔다.

“저기 밝게 빛나는 거요. 저쪽 코너 안쪽에서 은은하게 빛이 반짝이는 것 같은데요?”

“한번 가 보죠.”

이안을 위시한 일행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시야가 없는 그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고, 이곳은 평균레벨대가 140이 넘는 초 고레벨의 사냥터였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코너를 돌자, 일행의 시야에 익숙한 뒷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뿍뿍아,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것은 바로 뿍뿍이의 뒷모습!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뿍뿍이와 대치중인 몬스터(?)의 모습이었다.

이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쟤… 뿍뿍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좁은 통로 앞에서 뿍뿍이와 대치중인 몬스터는, 뿍뿍이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바다거북이었던 것.

하지만 짙은 남색의 등껍질을 가진 뿍뿍이와 달리, 상대 거북이는 온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 거북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도드라지는 뿍뿍이의 대두가 금빛으로 번쩍이니 그 외모가 정말 압권 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런데 이안의 옆을 잠자코 따라오던 라이가 뜬금없이 이안을 향해 물었다.

[주인.]

“라이야 왜?”

[혹시 저 거북이가 지난번에 주인이 말했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거북 빡빡이인가?]

“뭐…?”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서 이름이 빡빡이인가 보군. 그런데 저 거북이가 왜 여기 있지? 주인이 저번에 빡빡이는 북부대륙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

라이의 말에 순간 당황한 표정이 된 이안.

그리고 옆에 있던 피올란이 물었다.

“이안님, 빡빡이는 또 뭐예요? 그런 거북이도 있었어요?”

헤르스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심을 보였다.

“뭐야, 뿍뿍이 친구도 있었어? 저 황금 거북이, 네가 아는 거북이야?”

두 사람의 질문에 잠시 멍해있던 이안은 문득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지어냈던 ‘잘생긴 거북 빡빡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이게 뭐지…?’

라이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뿍뿍이보다 잘생긴 것 같긴 하군. 반짝이는 머리를 한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다.]

라이의 말을 들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황금거북과 대치 중이던 뿍뿍이가 고개를 돌리고 째려봤다.

찌릿!

“진성아, 쟤 표정 되게 진지한데? 미트볼 먹을 때 말고는 저렇게 진지한 표정 처음 본다.”

“저두요….”

이안이 대답했다.

“나도 그래….”

거슬리는 소리만 골라서하는 일행을 한번 씩 째려봐준 뿍뿍이가 황금 거북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행은 전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무협지의 주인공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불구대천지수를 만났을 때의 표정이 이러할까!

뿍뿍이는 비장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카이자르 마저도 흥미롭게 두 대두 거북이의 일기토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뿍- 뿌뿍-!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호기롭게 외치는 뿍뿍이.

그리고 그에 맞서 빡빡이(?)도 입을 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빡빡이는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알았다.

빡빡이는 뿍뿍이 대신 이안을 응시하며 입을열었다.

[인간이여, 나를 알고 있는가?]

“응…?”

[빡빡이라… 나에게 그렇게 멋진 이름이 있었다니!]

“푸웁…!”

이안은 이 진지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 (7). 성배 쟁탈전 (中)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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