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42화 (170/1,027)

< (6). 성배 쟁탈전 (上) -3 >

*          *          *

이안의 지휘력은 놀라웠다.

소환술사 특수 스텟인 ‘통솔력’ 능력치는 그 이름에 걸맞게 많은 인원을 통제하는데 큰 효력을 발휘했으며, 평소에도 소환수 여럿을 멀티태스킹 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이안은 적재적소에 명령을 전달하며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를 이끌고 있었다.

헤르스는 전투를 계속하며 이안을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진성이놈은 분명 머리가 엄청 좋을 거야. 그 좋은 머리를 게임하는 데만 써서 문제지….’

어지러운 전장에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침착히 움직이는 것은, 어느 게임에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상현실게임에서 그 난이도는 더욱 더 어려워진다.

헤르스는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듯, 이안을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신경 쓰지?’

피씨게임과 달리,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모니터 안에 내 캐릭터의 주변 시야가 보이는 것도 아니며,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말 자신의 오감에만 의존해야 한다.

여기저기서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발밑에 광역스킬이 깔릴 지도 모르는 정신없는 전장.

이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침착해야함은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를 신경 쓸 수 있어야 한다.

헤르스는, 평소에 냉철함이나 명석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안이 이렇게 게임 내에서 전투만 시작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번 신기했다.

“라이, 핀! 너희 둘이 같이 저놈을 맡아!”

[알겠다, 주인.]

꾸루룩-!

이안은 라이와 핀을 한 조로 엮어서 중간 중간 등장하는 유일등급의 대장급 몬스터를 상대하게 했다.

대장급 몬스터의 레벨은 150~160정도.

사실, 라이와 핀의 레벨은 이안의 레벨과 거의 비슷한 120대 후반이었기에, 레벨만 놓고 본다면 둘이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없을 만한 레벨차이였다.

무려 20~30레벨의 차이.

하지만 같은 120대의 레벨이라고 해도 전설등급인 라이와 핀의 능력치는, 일반이나 유일등급의 몬스터 기준에서 150레벨을 상회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특히 라이가 가진 고유능력 중 전투능력치를 50%나 상승시켜주는 ‘펜리르의 분노’는 거의 패시브 스킬이나 다름없는 능력이었다.

10분이라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었지만 치명타가 터질 때 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감소하기 때문.

게다가 30분에 한번 사용할 수 있는 어둠잠식 능력은, 3분동안 라이를 거의 무적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날이 어두워져, 패시브 능력인 ‘달의 계승자’ 까지 발동되면 그야말로 좀비가 되어버리는 라이.

이안은 자신보다 많게는 20레벨 이상 높은 적들을 압도하는 라이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라이의 능력 활용도 확실히 적응이 됐어.’

그렇다고 전투 자체가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한 번의 전투로 제국 기사단 90명 중 다섯 명이나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전세가 기울어지고 여유가 생기자, 헬라임이 이안에게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작님. 지휘력이 이렇게 뛰어나신 줄 몰랐습니다.”

헬라임의 칭찬에 이안은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하하… 뭐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네요. 여기 마무리 되는 대로, 지하로 내려가도록 할까요?”

이안의 말에 헬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성배를 손에 넣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모든 ‘사막의 후예’들을 처치하는데 성공한 이안 일행은, 곧바로 계단을 타고 지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덤 내부는 바깥에서 본 규모에 걸맞게 무척이나 넓었으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안이 자신의 바로 뒤쪽에서 따라오던 훈이를 힐끔 보며 물었다.

“훈이, 혹시 홀드림이 잠들어있는 방이 어딘 줄 알 수 있을까?”

이안의 물음에 훈이는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안은 훈이의 옆에 둥둥 떠있는 데스나이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왠지 이 친구는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대답은 훈이 대신 발람으로부터 돌아왔다.

[나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단지 어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뿐.]

“그래?”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방향은 옳다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충분했다.

“그렇군. 알겠다.”

전방에 등장한 몬스터를 발견한 이안이 저만치 앞서 걸음을 옮기자, 발람이 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엄한 인간인 것 같다, 훈이. 어둠의 후계자에게 저리 건방진 언행이라니.]

그 말에 훈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한다, 발람. 힘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서글픈 일인 줄이야….”

마치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처럼 쓴웃음을 지은 훈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안 이 자식. 내가 임모탈의 권능만 손에 넣으면 반드시 복수할테다…!’

하지만 과연 그 복수가 잘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          *          *

지금으로부터 거의 천년 여 전.

홀드림은 고대 중앙대륙을 지배하던 거신족의 황제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하나는 중앙대륙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성군으로서의 홀드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힘에 물들어 타락하여, 나라를 망치고 스스로 자멸한 파멸의 군주 홀드림이었다.

말년의 홀드림은, 임모탈의 꼭두각시가 되어 중부 대륙에 어둠의 씨앗을 잉태시켰고, 임모탈은 홀드림을 통해 조금씩 힘을 회복해 부활을 꿈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임모탈이 홀드림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매개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왕관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저주의 왕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홀드림의 왕관.

임모탈은 잃어버린 힘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홀드림의 왕관을 찾아야 했다.

홀드림의 왕관에는, 과거에 그가 쌓아놓은 어둠의 힘이 축적되어 있었으니까.

‘드디어… 퀘스트의 끝이 보인다!’

눈 앞에 나타난 홀드림의 본체.

정확히는 머리에 씌워진 홀드림의 왕관을 보며, 훈이가 씨익 웃었다.

‘시카르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이 히든 퀘스트로 돌아올 줄은 몰랐지.’

훈이는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던 중 시카르 사막에서 길을 잃었고, 우연히 임모탈의 원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훈이가 받은 히든 퀘스트의 이름이 바로 ‘저주의 왕관’ 이었다.

‘임모탈의 권능만 얻는다면, 이안놈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훈이는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강력한 라이를 힐끗 쳐다봤다.

전투 중 이안의 전력을 탐색한답시고 열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라이가 얼마나 강력한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저 펜리르놈이 좀 강해 보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발람이 있으니까….’

설마 카이자르가 이안의 가신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훈이는 이안을 이겨 볼 생각에 히죽 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안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훈이와는 별개로, 대규모 보스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어리석은 영혼들!]

광포한 흉성을 내뿜는 홀드림.

일행은 긴장한 채, 홀드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모두 지옥으로 보내주마…!]

새하얀 빛과 시커먼 안개가 동시에 홀드림의 영혼을 감싸고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형상을 하고 있던 홀드림의 유령이, 점점 색이 짙어지며 지상에 현신하기 시작했다.

쿠웅-!

마치 포를란 던전의 거인을 보는 듯, 거대한 몸집을 가진 홀드림.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레벨을 본 순간, 이안은 식은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미친…! 레벨이 270이라고? 카이자르보다 높잖아?’

홀드림의 이름 옆에 번쩍이는 금빛으로 쓰여 있는 레벨은, 분명 27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그래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피해가 제법 있겠어.’

이안은 훈이를 슬쩍 째려봤다.

왠지 저 꼬마녀석 좋은 일만 해주는 것 같았다.

자신과 제국기사단이 아니었다면, 훈이가 어떻게 홀드림을 공격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안이 배아파 하던 그 때.

돌연 훈이가 전면으로 나서며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홀드림, 어둠의 맹약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커다랗게 소리치며 품 속에서 해골 문양이 그려진 둥그런 패를 꺼내든 훈이.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홀드림의 표정이 새하얗게 굳었다.

[이, 이 물건이 대체 왜 여기…?!]

홀드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훈이를 보며 뒷걸음질쳤다.

“내가 바로 임모탈의 후예, 간지훈이다. 이 자리에서 천년 전의 맹약을 실행하겠다!”

손 발이 오그라들어 전부 사라질 정도로, 강력한(?) 대사를 내뱉은 훈이가, 한 발자국씩 홀드림의 앞으로 다가갔다.

저벅- 저벅-

나머지 일행들은 공격하려던 것을 멈춘 채 흥미로운 표정으로 훈이를 바라보았고, 훈이가 들고 있던 해골 문양의 목패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이- 끼이익-!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괴한 소리들이 허공에 울려퍼졌고, 홀드림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 이노옴…!!]

그리고 잠시 후.

장내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어둠의 군주, 임모탈의 맹약이 시행됩니다.]

[홀드림의 왕관에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앞으로 10분 동안 홀드림의 모든 능력치가 40%만큼 감소합니다.]

[홀드림의 시야가 잠시 동안 실명 상태가 됩니다.]

어둠의 맹약으로 인해, 무지막지한 디버프가 걸려버린 홀드림!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이안은 곧바로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모두, 공격!”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기사단이 일제히 홀드림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카이자르였다.

쾅- 콰콰쾅-!

시커먼 펜리르의 대검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어둠의 파동!

[가신 카이자르가 ‘어둠방출’을 사용하여 ‘홀드림’에게 27684만큼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둠방출’의 효과로 인해 ‘홀드림’의 방어력이 3초동안 30%만큼 하락합니다.]

디버프가 중첩되고, 강력한 공격들이 연이어 홀드림을 강타하자, 그의 생명력 게이지가 빠르게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놈… 들…!]

분노에 찬 포효를 한 차례 내뱉은 홀드림이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그리고 모든 능력치 40% 감소 라는 막대한 디버프가 걸렸음에도, 홀드림은 약하지 않았다.

[소환수 떡대가 홀드림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떡대의 생명력이 41209만큼 감소합니다.]

물론 치명타가 터지기는 했지만, 단지 휘두르는 검에 맞았을 뿐인데도 4만이 넘는 생명력이 잘려 나가는 무지막지함.

이안은 홀드림의 엄청난 공격력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디버프가 안 걸렸으면 정말 엄청났겠네. 저 이상한 꼬마 녀석이 의외로 도움이 되는데?’

이안의 시선이 자동으로 훈이를 향해 돌아갔고, 훈이는 전방에서 열심히 홀드림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은, 훈이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검보라빛의 보호막을, 홀드림이 피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퀘스트 중이라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어둠의 맹약인지 뭔지, 쓸 수도 없었겠지.’

이안은 훈이에게서 관심을 끄고, 눈 앞의 홀드림을 상대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디버프가 풀리기 전인 10분 내로 홀드림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전세가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폴린! 뒤쪽 조심!”

이안의 외침에 폴린이 가까스로 허공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를 피했고, 곧이어 그의 반격이 이어졌다.

[가신 ‘폴린’이 고유능력 ‘뇌전의 심판’을 사용합니다.]

[‘홀드림’의 생명력이 17649만큼 감소합니다.]

카이자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라이나 핀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공격력을 보여주는 폴린.

이안은 경매장에 갈 일이 있으면 기특한(?) 폴린에게 장비라도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방을 향해 마력의 구체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그리고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백여명의 인원에게 둘러싸여 집중공격당한 홀드림의 신형이 천천히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270레벨의 보스몬스터라고는 해도, 치명적인 제약이 걸려있는 상태에서 수백의 공격을 받아내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쿵-

홀드림의 거구가 바닥에 쓰러지며,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졌고, 이안의 눈 위로 홀드림의 사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홀드림를 처치했습니다. 348591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타락한 고대 거신족의 군주를 처단하여 명성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NPC를 제외하더라도 10명에 가까운 파티에 나뉜 경험치 임에도 300만이 넘는 막대한 양이 쌓이는 것을 보며, 이안은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크으, 곧 있으면 130레벨도 찍을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 앞에 또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홀드림의 왕관에 깃들어 있던 어둠의 힘이 해제됩니다.]

홀드림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왕관이 허공으로 둥 둥 떠오르더니, 그 주변을 맴돌던 검보랏빛의 기류가 빠져나와 훈이의 해골목패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당황스러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홀드림의 왕관이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이를 새로운 주인으로 선택합니다.]

[홀드림의 왕관이 가신 ‘카이자르’를 선택했습니다.]

훈이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 (6). 성배 쟁탈전 (上)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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