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대 격전지 -2 >
* * *
루스펠 제국 황성 안쪽에는 황실 마법사들이 거주하는 황실 마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마탑 바로 앞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는데, 이곳은 황실 마법사들이 대규모 마법을 실험하는 장소이자, 광역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이안과 로터스 길드원들을 비롯한 수백의 황실 근위기사들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총 100명만이 이동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안 자작님.”
“조금 애매한데….”
광역 텔레포트는 한번에 여러 명을 지정 좌표로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고위 마법이다.
막대한 마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했고, 이동해야 하는 인원이 늘어나거나 거리가 멀어질 때 마다 그 필요 마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제한적인 마법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때 천공의 고원의 좌표를 알아왔던 것이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습니다.”
헬라임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천공의 고원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이니까요.”
자작으로 승급한 뒤로는, 황실 근위기사단장인 헬라임도 이안을 제법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다.
그것은 제법 뿌듯한 일이었다.
이안은 헤르스를 향해 돌아봤다.
“유현아. 아무래도 우리 길드는 한 열 명 정도만 끼는게 좋을 것 같아.”
“흠… 그럼 나머지 인원들은 제국 원정대에 합류해서 후발대로 와야 하는 건가?”
이동에 100명의 인원제한이 걸린다면, 가장 강한 전력으로 구성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중부 대륙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원정대에 지원한 로터스 길드의 길드원들은 거의 110레벨 이상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150레벨대인 황실 근위기사들에 비하자면 약한 게 사실이었다.
이안은 헤르스와 피올란을 비롯해 120레벨이 넘거나 그에 근접한 수뇌부 몇몇만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이번에 선발대에 합류해서 넘어가면 막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나 혼자만 성장해서는 이제 의미가 없으니까.’
이안과 헤르스는 선발대로 광역 텔레포트에 합류할 열 명의 인원을 신중히 골랐다.
수뇌부가 전부 합류해 버리면 후발대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클로반형이랑 카윈이 후발대를 이끌어 주는 거로 하자 그럼.”
이안의 말에 클로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렇게 할게.”
“그리고 올리버스 영지랑, 로터스 영지에 있는 병사들 중에 100레벨 넘은 병사들도 전부 끌고 와.”
그 말에 클로반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영지가 좀 위험하지 않을까?”
“아냐. 어차피 이제 주변에 카이몬 제국 소속의 영지는 하나도 안 남았고, 그렇다고 영지도 없는 허약한 길드에게 당할 정도로 영지 방어력이 약하지는 않으니까.”
처음 북부대륙이 열렸을 때에는, 양 측 제국 소속의 길드들이 중구난방으로 거점지를 차지했기 때문에, 로터스 영지의 주변에도 카이몬 제국 소속의 영지가 몇 개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 루스펠 제국에 가까운 위치의 영지들은 전부 루스펠 소속의 고위길드나, 루스펠 제국 원정대에 의해 함락되었고 안정을 찾게 된 것이었다.
북부대륙에도 결국 국경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터스 길드가 조심해야 하는 영지전은, 같은 루스펠 소속의 길드들 중 아직 영지가 없는 길드들의 도전이었는데, 로터스 영지의 방어력이 그 정도의 도전은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안의 말에 클로반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수고하라고, 이안 자작님.”
클로반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고, 조금 어수선했던 장내는 일사분란하게 정리되었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공터에 100여명의 인원이 가지런히 도열하자, 이안이 수석 마법사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와 동시에 발 아래에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안을 제외한 로터스 길드원들은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기 때문에,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오… 이거 멋진데?”
헤르스의 말에 이안이 실소를 흘렸다.
“곧 있으면 별로 안 멋질걸?”
“그게 무슨…?”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헤르스는 이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피이잉-!
새하얀 섬광에 휩싸이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시야.
예고 없이 엄습한 어지럼증에, 헤르스가 절규했다.
“야이 씨 미리 말해줬어야지!”
그리고 잠시 후.
널따란 공터에 도열해 있던 100명의 선발대가 신기루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선발대가 순간이동한 장소는, 바로 그리핀이 부화했던 곳인 천공의 제단이었다.
100명의 선발대가 하나 둘 제단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이안과 카이자르였다.
“감회가 새롭군. 이 땅을 다시 밟게 될 줄이야.”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카이자르에게, 이안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신님은 여기 와 본 적이 있나봐?”
조금씩 짧아지는 이안의 말.
말해놓고도 조금 긴장한 이안은 카이자르의 반응을 살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10년 전. 카일란 여신님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 까지, 이곳은 지옥이었다.”
“음…?”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었고, 루스펠과 카이몬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안간 힘을 썼지. 그 결과 서로의 수도까지 위험해 진 적도 있었고.”
별 생각 없이 물었던 이안이었지만, 카이자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흥미가 동했다.
“근데 가신님은 평민이라며? 어쩌다 루스펠 제국의 편에서 싸우게 된 거지?”
카이자르는 검을 뽑아들고는 앞으로 성큼 성큼 움직이며 대답했다.
“나는 용병이었다.”
“그렇군.”
그런데 그 순간, 제단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카이자르를 보며 이안은 당황했다.
“아니, 가신님! 그렇게 혼자 움직이면 어떡해. 여긴 천공의 고원이라고.”
이미 천공의 고원의 무서움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이안.
180레벨대의 거대한 사막 호랑이인 파챠오와, 200레벨에 육박하는 도마뱀, 테라노돈을 떠올린 이안이 카이자르를 말렸지만, 카이자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영주놈아, 그거 아냐?”
“뭐?”
“파챠오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 조금 있다가 내가 구워준다.”
“….”
휙 하고 거의 건물 3~4층 높이인 제단 바깥으로 뛰어내리는 카이자르.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동안 모든 인원이 제단에 도착했다.
헬라임이 이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자작님, 카이자르는 어디 가는 겁니까?”
그에 이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파챠오 고기가 먹고 싶다네요.”
“….”
어차피 카이자르는 이안이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헬라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헬라임경.”
“말씀하십시오, 자작님.”
“카이자르… 혼자 나가서 위험하지는 않겠죠…?”
이안이 추측하기로, 카이자르와 헬라임의 무력은 비슷해 보였다.
헬라임의 레벨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에 정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그 정황상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안의 기억으로는 헬라임조차도 이 천공의 고원에서는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그렇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이안의 의중을 파악한 헬라임이 웃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천공의 고원에는 저나 카이자르를 위협할 만한 존재가 없을 겁니다. 안심하시지요. 지난번에야 그리핀의 알을 지켜야 했기에 조심스레 움직였던 겁니다.”
“아하….”
그리고 돌아선 헬라임은 어느새 도열해 있는 기사단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최대한 빠르게 중부 대륙까지 진입한다.”
* * *
“후후훗. 으하하핫!”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진 검정색 로브와, 끝에 어두운 기운이 일렁이는 칠흑빛의 지팡이.
자칭 최강의 흑마법사(?) 간지훈이는 눈 앞에 보이는 천공의 사막에 발을 내딛으며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천공의 사막을 발견한건 아마 내가 최초겠지? 크흐흐…. 최초 필드 발견 보상으로는 뭐가 나올까?’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킨 간지훈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천공의 사막에 진입하셨습니다.]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로 인해, 움직임이 1%만큼 둔해집니다.]
훈이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처음이 아니야…?!”
순간 밀려드는 상실감.
“아니, 업데이트에 맞춰서 이런 히든 퀘스트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거야?!”
그런데 그 때.
투덜거리는 훈이의 옆으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뭐하는가, 훈이. 어둠의 주인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시간이 없다.]
“알겠어. 재촉하지 마, 발람.”
놀랍게도 훈이의 옆에 나타난 것은 흑마법사들이 꿈에도 그린다는 언데드인 데스나이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일반적인 데스나이트는 온 몸이 칠흑빛인데 반해, 훈이의 옆에 나타난 그림자는 흑빛과 황금빛을 동시에 가진 갑주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
“시카르 고대의 무덤을 찾으면 되는 거지?”
훈이의 말에 데스나이트 ‘발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위치는?”
[시카르 고대의 유적. 중부대륙으로 진입해야 한다.]
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빨리 가자.”
그런데 앞으로 움직이려던 발람이 문득 자리에 멈춰섰다.
[훈이, 전방에 적들이 나타났다.]
“그러네. 몽크들이군.”
몽크는 말 그대로 수도승의 모습을 한 몬스터였다.
그렇다고 진짜 수도승, 즉 인간형 몬스터는 아니었고, 미이라의 외모를 가진 몬스터들이었다.
스슥- 스스슥-
사막 모래 속에서 솟아오르는 수 많은 몽크들.
몽크는 130레벨부터, 높게는 140레벨 후반대 까지의 강력한 몬스터들이었지만, 훈이는 조금도 위축된 기색이 아니었다.
훈이가 팔목에 채워져 있는 묵빛의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시동어를 외쳤다.
“억울한 망자의 원혼들이여… 사막의 힘을 빌어 현신하라!”
그러자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라도 되듯, 사막의 모레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해골병사의 모습이 되어 사막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크흐흣, 역시. 임모탈(immortal)의 권능은 위대하군.”
몽크들을 향해 달려드는 수백의 사막 해골전사들을 보며, 훈이는 음침하게 웃었다.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은 설정극.
하지만 데스나이트 발람은, 그런 훈이의 설정극에 훌륭히 제 역할을 해 주었다.
[그렇다. 임모탈님의 힘은 위대하지. 훈이, 네가 어둠의 제국을 다시 건설해 줄 것이라 믿는다.]
훈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발람. 나 훈이, 임모탈의 유지를 이어 이 땅을 어둠으로 물들일 것이다.”
두 주종(?)이 진지하게 상황극을 벌이는 동안, 임모탈의 권능으로 소환된 사막의 해골병사들은 몽크들을 훌륭히 상대해 나가고 있었다.
훈이는 그 광경을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데스나이트 발람.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곧 '이안'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 (5). 대 격전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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