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37화 (166/1,027)

< (5). 대 격전지 -1 >

*          *          *

카이자르와 폴린의 존재는, 패키지 게임에서의 ‘치트키’에 버금갈 정도의 이점을 이안에게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신님… 영지 방어전 해야 하는데…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싫다. 귀찮아.”

영주성 뒷마당 정자에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카이자르.

이안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논리를 펼쳤다.

“아니, 영지 뺏기면 거기 누워있지도 못합니다.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카이자르를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가라, 영주 놈아. 빨리 가서 내 잠자리를 지키도록.”

“….”

박물관에 전시된 석고상마냥, 같은 자세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누워있는 카이자르.

결국 이안은 카이자르를 포기하고 영지 방어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준비 됐습니다, 영주님.”

그래도 명령을 충실히 잘 이행하는 폴린을 보며, 이안은 위안을 얻었다.

‘그래, 폴린만 있어도 어디야. 폴린만 도와줘도 어지간한 영지전에서 질 일은 없겠지.’

카이자르를 대동하고 중부대륙 거점지 영토전쟁을 휩쓸고 다닐 꿈에 부풀어 있던 이안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폴린. 가자.”

*          *          *

오랜만의 영지 방어전.

오래 끌 것도 없이, 단 세 번의 경기로 로터스 길드는 영지방어에 성공했다.

상대 길드는 예전 폴라리스 길드보다도 더 약한 수준의 길드였고, 그동안 힘을 많이 비축한 로터스 길드는 전력을 다 사용해 보지도 않고 방어에 성공한 것.

게다가 영지방어전이 끝나는 날,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올리버스 마을의 병합도 함께 이루어졌다.

[올리버스 마을(등급 : 촌락)을 로터스 길드의 영지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점지의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정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올리버스’라는 이름이 유지됩니다.)]

잠시 어떤 이름을 지어볼까 고민하던 이안.

그 모습을 본 헤르스가 일침을 날렸다.

“야 됐다. 올리버스 이름 괜찮고만 뭘 새로 지으려고 그래. 뿍뿍이 같은 이름 지을라고.”

헤르스의 말에 옆에 한가로이 배 깔고 엎어져 있던 뿍뿍이의 시선이 움직였다.

찌릿-

하지만 헤르스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안도 선선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럼 이름은 그냥 두지 뭐.”

이름을 올리버스로 확정하자, 연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올리버스’촌락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길드원 중, 올리버스 촌락의 지도자가 될 유저를 선택하십시오.]

이안이 고개를 돌려 헤르스를 보았다.

“야, 네가 할래?”

그 말에 헤르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클로반 형 주자. 난 아직 작위 받으려면 좀 더 걸려. 지금 작위 있는 게 클로반 형이니까, 그 형지도자 임명하면 곧바로 올리버스도 영지 등급으로 올릴 수 있을 거야.”

“아, 너 아직 작위 못 받았냐?”

“응. 아마 몇 주일 내로는 되지 않을까 싶네.”

그 외에 몇 가지 자잘한 설정을 더 마치고 나자, 클로반이 올리버스의 촌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보상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 규모가 확장되어, 길드명성이 1만 만큼 상승합니다.]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가 2개 이상이 되어, 로터스 영지가 ‘핵심 거점지’로 지정됩니다.]

[로터스 영지와 올리버스 촌락의 교역이 활성화됩니다.]

[문화 포인트가 15만큼 증가합니다.]

[경제 포인트가 15만큼 증가합니다.]

:

:

추가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생산성 향상을 보며,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대영지로 승급시킬 수 있는 조건이나 한번 확인해 볼까?’

그리고 정보 탭을 누르자, 대영지로의 승급조건들이 쭉 떠올랐다.

[-‘대영지’ 승격 조건-]

[핵심 거점지의 지도자 유저 레벨 130 이상.]

[해당 거점지의 지도자 유저 작위 ‘자작’ 이상.]

[길드 소속 거점지 개수 3개 이상.]

[모든 길드 소속의 거점지가 ‘영지’ 등급 이상]

[길드명성 50만 이상.]

이안과 함께 승격 조건들을 확인한 헤르스가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되게 까다롭네. 일단 첫 번째 조건이….”

헤르스의 시선이 이안을 향했다.

“네 레벨이 130이 넘어야 한다는 건데, 너 레벨 몇이냐 지금.”

“127이다. 아마 곧 128 될 듯.”

“…?”

첫 번째 조건부터 아직 턱도 없음을 어필하려 했던 헤르스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야, 너 120레벨 찍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서 127레벨이야? 대체 레벨업 어떻게 한 거냐?”

그리고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안.

“제국 퀘스트 한다고 좀 굴러다녔더니…. 무튼, 130레벨은 조만간 찍으면 되는 거고. 다른 조건들이나 생각해보자.”

잠시 벙찐 표정이 된 헤르스.

“그래 뭐…. 너 때문에 당황하는 게 한두번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곧, 그러려니 수긍하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자작이니까 두 번째 조건은 충족 한 거고.”

“그렇지.”

“음… 세 번째, 네 번째 조건 종합해서 얘기하면, 영지등급 이상의 거점이 세 군데 있어야 한다는 건데, 한 군데만 더 늘리면 되겠네 이건. 올리버스는 곧 영지등급 될 테니까.”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지금 제일 시급한 게 거점지 하나 늘리는거고, 두 번째로 해야할 게 길드 명성 올리는 거야. 지금 길드명성 몇이냐 우리.”

“42만이네.”

“8만정도면 길드전 한 20번 정도 하면 되려나…?”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안을 보며 헤르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야, 20번 하면이 아니라 20번 연속해서 이기면 이라고 정정해줄래?”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거, 뭐… 이기면 되지.”

“….”

“그리고 나한테 길드명성 올릴 다른 방법도 있어.”

“무슨 방법…?”

이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중앙 대륙 진출.”

“뭐…? 거기 불모지랑 시카르 사막 뚫어야 갈 수 있잖아?”

헤르스의 반문에 이안은 인벤토리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붉은 천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런 두루마리.

그것을 펼쳐 보이며, 이안이 덧붙였다.

“제국 기사단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          *          *

“영주님, 길마님이 부르십니다.”

스플렌더 길드와 한국서버 길드랭킹 3,4위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오클란 길드.

1위와 2위를 차지한 다크루나 길드와 타이탄 길드가 카이몬 제국의 소속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오클란 길드는 루스펠 소속 길드 중 최강의 길드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암살자 유저랭킹 1위인 ‘림롱’은 이 오클란 길드의 수뇌부로 들어와 있었다.

레벨은 아직 120대 초반으로 오클란 길드의 최상위권 유저들에 비해 10레벨 이상 떨어지는 그였지만, 한 클래스 전체에서 랭킹 1위라는 점과, 타고난 전투감각 덕에 림롱은 오클란 길드 내에서도 제법 영향력 있는 유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가도록 할게요.”

오클란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사무엘 진’은 한국 서버 궁사 클래스 랭킹 1위에 빛나는 최고레벨의 유저였다.

타이탄 길드의 마스터이자, 전사랭킹 1위인 샤크란이 천부적인 전투감각과 카리스마로 길드를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이라면, 사무엘진은 그 반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전투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사무엘 진의 능력은 그런 게임 내적인 능력 보다는 통찰력과 정보력, 그리고 전략으로 길드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였다.

그리고 림롱은, 그런 사무엘 진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중용되고 있었다.

그것은 오클란 길드 소속의 거점지 다섯 군데 중에서 한 곳의 지도자 자리를 림롱에게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진님, 찾으셨다구요?”

영주성 안으로 들어온 림롱을 발견한 사무엘 진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오, 림롱님 오셨군요.”

“원정 출발이 2시간 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림롱의 말에 사무엘 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보를 하나 입수해서요.”

“어떤…?”

“다크루나길드와 타이탄 길드의 원정대가 벌써 중부대륙에 근접했다는 정봅니다.”

“…!”

중부대륙에 진입하기 위해선 시카르 사막과 천공의 고원을 뚫어야 한다.

그것은 대륙 동쪽에서 진입해야 하는 카이몬 소속의 길드들이나, 서쪽으로 진입해야 하는 루스펠 소속의 길드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사막은 중부대륙의 양 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뚫고 들어간 거죠?”

“피해를 좀 감수하더라도, 무리해서 진입한 모양입니다. 그들의 전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적잖은 데미지를 입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클란 길드는 중부대륙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철저한 준비를 선행했다.

한 달 이상 모든 길드원이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준비했고, 그 동한 비축해둔 재화를 풀어 모든 길드원들의 장비를 최고수준으로 세팅시켰다.

반면에 타이탄이나 다크루나 길드에서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끝난 직후에 곧바로 진입을 시도했으리라.

“흠… 선점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 거로군요.”

사무엘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들의 선택도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림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죠? 일단 중부대륙까지 뚫지만 했다면, 중부대륙에 있는 거점지를 선점해서 그쪽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을 충당하면 되지 않나요?”

사무엘 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마 그럴 수 없을 겁니다.”

“…?”

“중부 대륙의 땅은 무척이나 척박하죠. 거기서 자원을 충당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그 설명에도 불구하고 림롱은 아직 의문점이 남았다.

“북부대륙도 처음에는 춥고 척박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충분히 많은 자원들이 수급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무엘 진이 고개를 저었다.

“북부랑 중부대륙은 다릅니다.”

“…?”

“척박한 것은 비슷하지만, 북부대륙에는 원래부터 거주하던 npc들이 있었고, 반면에 중부대륙은 정말 아무것도 없지요.”

그제야 그의 말을 전부 수긍한 림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게 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겠군요.”

“아마, 타이탄 놈들이나 다크루나 놈들. 고생 좀 할 겁니다. 후후….”

“그럼 이제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사무엘 진의 말이 이어졌다.

“원래 계획보다 더 늦게 이동합니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불렀습니다.”

다시 의아한 표정이 된 림롱.

사무엘 진의 말이 이어졌다.

“왜죠?”

“루스펠 진영의 다른 길드들이 카이몬 제국 진영에서 먼저 도달했다는 정보를 듣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다른 길드들이 뚫어놓은 그 뒤를 바짝 쫓으면서, 피해를 최소화시켜서 중부대륙에 입성할 겁니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봐야 다크루나 놈들이나 타이탄보다 빨리 도착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간단히 정리하면, 어차피 선이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자는 이야기.

하지만 사무엘 진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는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는 ‘전공포인트’ 라는 새로운 재화의 존재.

둘째는 타이탄길드와 다크루나길드보다 먼저 중부대륙에 도착한 유저가 있을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 (5). 대 격전지 -1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