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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34화 (163/1,027)

< (4). 작위 승급 -1 >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안의 퀘스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위태위태하던 마지막 순간에 이스룬에 주둔해 있던 루스펠의 수군들이 이안의 배를 마중 나온 것.

악착같이 이안을 쫓던 카이몬의 해군들은 일단 뱃머리를 돌리는 것을 선택했고, 곧바로 전면전이 펼쳐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안이 안도하는 이유는 전면전으로 인한 위험성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휴우, 곧바로 전면전이라도 했으면 나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게임해야 했을까?’

이미 이안의 연속 플레이타임은 3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지금도 온 몸에 밀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눈이 반쯤 감겨 있었던 것이었다.

이안은 다른 것 보다도 얼른 황성으로 돌아가 퀘스트를 완료한 뒤 눈을 붙이고 싶었다.

쏴아아-

이안이 탄 갈레온선을 필두로, 루스펠 제국의 함대가 무사히 이스룬의 항구에 도착했다.

덜컹-

항구에 정박한 배의 닻이 내려가고, 이안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먼저 내린 폴린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안의 손을 잡아 끌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남작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폴린의 말에 이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후우, 폴린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찌어찌 돌아오긴 했네요.”

이안의 축 늘어진 말에, 뒤따라 내린 카이자르가 피식 웃었다.

“뭘 그 정도 싸웠다고 힘이 하나도 없나, 내가 그 나이 때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싸워도 팔팔했구만.”

카이자르의 핀잔에 이안이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겉으로 보이는 카이자르의 나이는 많이 쳐 줘야 3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

첫 만남 때야 봉두난발로 헝클어져 있는 새하얀 백발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지 못했지만, 제대로 된 복장까지 갖춰 입고 난 지금은 이안 또래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백발도 잘 정돈되자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되었다.

“그래서 가신님은 몇 살인데요? 나랑 별 차이도 안 나는 것 같구만….”

이안의 투덜거림에, 카이자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120살인데?”

“…?”

이안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카이자르를 응시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오차범위 5년 정도는 있을지도. 나이를 대충 센 지가 벌써 몇십년 넘었거든.”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러시군요….”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뭐, 게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여러모로 괴물같은 가신님(?)을 힐끗 쳐다본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으로 가신님 잘 모셔라, 영주놈아.”

“….”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보던 폴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어찌됐든 곧바로 황성으로 이동하시죠.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폴린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예, 그러죠.”

“그러도록 하지.”

*          *          *

루스펠 제국의 황성.

그리고 그 가장 심처에 있는 황제 셀리아스의 집무실.

돌아온 이안을, 셀리아스는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 수고했네, 이안 경. 임무는 훌륭히 완수했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파스칼의 포로들을 전부 구출해 돌아왔습니다.”

지난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제국 퀘스트의 결과보고를 할 때면, 이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멋대로 움직여졌다.

착- 차착-!

절도 있는 동작으로 황제에게 예를 취하는 자신의 몸을 응시하며, 이안은 졸린 정신을 겨우 붙잡은 채 퀘스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놈에 황실 예법은 뭐가 이리 복잡한 거야? 이런 리얼리티는 필요 없는데….’

이안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세부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기획력을 보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이런 자잘한 디테일은 귀찮기까지 했다.

“이번 파스칼 뇌옥 포로 구출 작전에서는….”

심지어 이제는 퀘스트의 내용까지 알아서 보고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안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정신이 멍해서 그런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래도 알아서 해주니까 편하기는 하네….’

하지만 이안에게만 별로 메리트가 없는 것이지, 사실 카일란의 변태같이 완벽한 디테일에 열광하는 유저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훌륭하군, 훌륭해. 수고했네. 내 생각보다 더 잘해줬어. 역시 이안경이야.”

“감사합니다, 폐하.”

이안의 보고내용을 다 들은 셀리아스가 밝게 미소 지었고, 이안의 두 눈에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떠올랐다.

띠링-

[‘전쟁 포로 구출(2)’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연계 퀘스트를 모두 성공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S]

[전공 포인트를 5000만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42349000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을 25000만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26레벨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연계 제국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루스펠 제국의 황실에 대한 공헌도가 1000만큼 증가합니다.]

피곤에 쩔어 퀭해 있던 이안의 두 눈도, 보상목록이 떠오를 때 만큼은 생기가 돌았다.

‘힘들기는 했지만, 120레벨 대에 이렇게 광랩이라니… 이 정도면 할 만 하긴 한 것 같아.’

입가에 걸리는 뿌듯한 미소.

하지만 퀘스트 보상까지 전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은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참아내고 있던 졸음이, ‘퀘스트 완료’ 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일순간에 몰려들어 온 것이었다.

‘아… 침대에 누워야 하는데….’

하지만 이안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안은 점점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안’ 유저의 생체신호를 분석한 결과 ‘수면’ 상태로 판단됩니다.]

[게임 서비스 방침에 따라, ‘이안’ 유저의 접속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이안의 귓가로 희미한 셀리어스의 음성이 새어 들어왔다.

“이보게, 이안 경! 정신 차리시게!”

*          *          *

진성의 원룸 앞.

하린은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딩동-!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안의 집.

‘얘가 어딜 간 거지? 자나…? 이 시간에 집에 없을 리가 없는데….’

학교 축제에서 가상현실과에 주점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하린은 친구와 함께 놀러갔었다.

하지만 진성이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진성의 집으로 온 것.

‘지금이 아직 저녁 9시밖에 아닌데… 벌써 자는 건가?’

캡슐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더라도, 초인종을 누르면 알림이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인기척이 없다는 말은 진성이 정말 안에 없거나 자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성은 잠귀도 밝은 편이었기 때문에 어디 잠깐 나간 것이라고 판단한 하린은 도어락을 열어 비밀번호를 치기 시작했다.

삑- 삐삑-

지난 번 여분의 캡슐을 진성의 집에 두고 하린이 사용하기로 했던 이후, 진성은 하린에게 집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사실 벨을 누른 것도 ‘예의 상’ 한번 눌러본 것이었을 뿐.

“어디 잠깐 나갔나 본데…. 저녁이라도 해 놓을까?”

하린은 왠지 우렁각시가 된 듯 한 기분이 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진성의 집으로 들어갔다.

삐릭- 삐리릭-!

하린이 문을 닫자,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겼고, 현관위쪽에 있던 센서등이 켜졌다.

“지난번에 보니까 자취생 치고 제법 이것저것 많이 사다놓았던데….”

원룸 한 켠에 가방을 내려놓고 부엌 쪽으로 움직이던 하린.

그런데 그녀의 눈에, 이안의 캡슐에 파란 불빛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저거 캡슐 안에 사람이 앉아있어야 들어오는 불인데?’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된 하린은 천천히 이안의 캡슐로 다가갔다.

“게임은 꺼져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러지? 신형 기계가 벌써 오작동이라도 하는 건가?”

하린은 중얼거리며 캡슐의 오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캡슐의 문이 젖혀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캡슐 안에는 인사불성(?) 상태의 진성이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진성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자고 있어?!”

하린은 진성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보았다.

하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진성.

그녀의 큰 눈이 더욱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진성아, 어디 몸 안 좋아? 너 게임 너무 오래 하다가 탈 난거 아니야?”

아무리 흔들어도 진성이 일어나지 않자, 당황한 하린은 응급실에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가 스마트폰을 켜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드르렁- 푸우우-

곧 진성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고, 하린은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어휴….”

하린은 실소를 머금고는 캡슐 안에 있는 진성을 끌어내기 위해 한쪽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진성아, 여기서 자면 허리 디스크 걸려… 일어나! 침대로 가서 자야지.”

마치 TV시청중 쇼파에서 잠들어버린 어린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하린은 진성을 캡슐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자인 하린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진성의 몸을 쉽게 빼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으, 얘 생각보다 무겁잖아?’

그런데 그 때.

팔걸이에 얹혀 있던 진성의 팔이, 하린의 허리를 휘감는 것이 아닌가.

“어… 어어?!”

순간 진성 쪽으로 쏠려있던 하린의 상체가 무게중심을 잃으며 앞으로 쓰러졌고.

폭-

쿠션의 가볍게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하린의 몸이 진성의 위로 살짝 포개어 졌다.

당황한 하린의 새하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뭐, 뭐야? 얘 안 자고 있었던 거야?’

새빨개진 얼굴로 슬쩍 고개를 돌려 진성을 본 하린.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울려 퍼지는 진성의 코고는 소리에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얘는 게임을 얼마나 오래 했으면 이렇게 세상모르게 자는 거지?’

하린도 YTBC 채널에 진성이 등장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가 뭔가 스케일 큰 제국 퀘스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40시간에 육박할 정도로 한 번도 접속종료를 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을 뿐이었다.

“흠, 흠흠.”

어색함에 낮게 헛기침을 한 하린은 한쪽 다리를 들어 캡슐 안쪽으로 슬쩍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푹신한 캡슐의 쿠션들이 벌어지며 진성의 옆 자리로 쏙 들어가졌고, 아까보다 안정적(?)으로 진성의 품에 안긴 하린은 베시시 웃었다.

“헤헤… 잠깐만 이러고 있어볼까…?”

하린은 진성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려다가 멈칫 하고는 고개를 돌려 진성의 가슴팍에 머리를 올렸다.

진성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그래도 뽀뽀는 남자가 먼저 해야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하린은 살짝 눈을 감았다.

축제 날이라 조금 늦는다고 집에 미리 이야기 해놨기 때문에,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진성의 신형 캡슐은 침대 못지않게 안락했다.

*          *          *

< (4). 작위 승급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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