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불패의 검사 카이자르 -2 >
* * *
“흐음, 이게 누구야. 카이자르가 아닌가.”
카이몬 제국의 제 1함대 함장인 로스터.
그의 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파스칼에 상륙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후후, 오랜만이군, 로스터.”
카이자르는 로스터의 덜렁거리는 왼쪽 팔을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십년 전 카이자르의 검에 의해 외팔이가 된 로스터는, 그를 무척이나 증오하였다.
“네놈이 여기 서있다는 건… 우리가 한발 늦었다는 얘기군.”
“그렇지, 한 발이 아니라 많이 늦었지.”
“검공께선 당하신 것인가….”
로스터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말하는 검공이란, 카이자르에게 당한 라크로뮤를 의미했다.
그리고 뒤늦게 카이자르를 따라 해안가에 도착한 이안이 할리의 등에서 내렸다.
이안은 오는 길에 전장에 들러, 핀과 라이까지 함께 데려왔다.
“흐음, 저 애송이는 누구냐 카이자르.”
로스터의 물음에 카이자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영주놈이다.”
뒤에서 그 소리를 들은 이안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카이자르가 아니었다.
“…?”
의아한 표정으로 이안을 응시하는 로스터.
그와는 별개로, 카이자르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전설등급 대검의 시커먼 검신이, 햇빛에 반사되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로스터가 카이자르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많은 병력을 상대하는 건 무리일 텐데….”
하지만 카이자르는 그에 아랑곳 않고 한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리고 칼을 든 그는 허공을 향해 검을 힘껏 휘저었다.
콰아앙-!
이어지는 폭발음.
카이몬 제국의 함대 앞 모래사장에, 횡으로 커다란 홈이 움푹 파였다.
카이자르가 씨익 웃었다.
“여길 넘어오면 죽는다, 로스터.”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뒤쪽에 서있던 이안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가신님 박력 터지네…!’
그런데 그 때, 뒤늦게 정박한 카이몬 제국의 배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리고 카이자르와 이안의 시선은 자연히 그를 향해 돌아갔다.
카이자르는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안은 그의 외모가 너무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 사람 멋지잖아…?’
새빨간 해군 제복에 멋들어지게 자란 백발, 그리고 하얀 수염까지.
멀리서 보아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남자의 모습에,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적막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카이자르였다.
그리고 카이자르의 표정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제법 심각해 보였다.
“하르윈… 할배까지 온 걸 보니, 작정하고 온 거였군.”
카이자르의 말에 로스터가 발끈했다.
“함부러 말하지 마라, 카이자르. 제독님이시다.”
“거야, 네놈들 제독인 거고 나랑은 관계없지.”
하르윈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동안 뇌옥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폴린과 세리아 등 루스펠 제국의 지원병력들도 하나 둘 이안의 뒤쪽으로 모여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안의 시선이 어림잡아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 카이몬 제국의 병사들을 향했다.
‘많기도 하네. 병력은 거의 우리 열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그나마 다행힌 건, 해안가에서 뇌옥으로 향하는 길목이 그리 넓지 않아, 한 번에 많은 병력끼리 부딪힐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수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지형.
이안은 이 와중에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뒀던 카르세우스의 알이 생각났다.
‘저 병사들 다 잡으면 신룡의 알이 깨어날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오랜만에 카르세우스 알의 정보를 한번 확인해 보았다.
---------------------------------------
- 카르세우스의 알 -
레벨 : 0
분류 : 알
등급 : 전설(고유)
성격 : 알 수 없음
부화중 (28%)
고대 전설 속에 존재하던 신룡 카르세우스가 남긴 알이다.
카르세우스의 알은 부화하기 시작했다.
워 드래곤 카르세우스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선 강력한 전쟁의 힘이 필요하다.
알을 소유한 소환술사가 강력한 적을 상대로 승리할 때 마다, 카르세우스는 조금씩 힘을 얻어 이윽고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
‘강력한 적 이라고 명시되어있기는 하지만, 몬스터를 잡을 때 보다는 확실히 인간형 적을 상대로 이겼을 때 부화율이 많이 올랐어.’
뇌옥의 간수들과의 전투가 끝나자 이제까지 20% 초반대였던 부화율이 5%도 넘게 차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이안은 욕심이 생겼다.
‘5분만 더 버티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냥 가기는 아쉽기도 하고….’
한편,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최전방까지 걸어나온 하르윈이 주름진 입을 천천히 열었다.
“카이자르, 오늘이 네놈 제삿날인가보구나.”
“후후, 글세올시다. 그건 대 봐야 아는거고.”
하르윈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놈, 버르장머리없는 건 여전하구나.”
“그러는 할배는, 노구를 이끌고 직접 나타난 걸 보니 전면전이라도 치르겠다는 건가?”
하르윈은 대답 대신 오른손이 번쩍 치켜올려졌다.
“공격하라! 루스펠의 떨거지들을 남김없이 처단하라!”
“와아아!!”
커다란 함성.
그와 동시에 대 격전이 시작되었다.
이안은 지금껏 이렇게 커다란 규모의 전투는 처음인지라 살짝 흥분되는 것도 느꼈다.
“떡대, 어비스 홀로 최대한 많이 묶어줘!”
드륵- 드르륵-
이안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떡대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쿵- 쿵-
그리고 적들의 병력이 들어닥치는 순간, 떡대의 양 팔이 앞으로 힘차게 뻗어 나갔다.
콰아아-!
떡대의 양 주먹 끝을 중심으로 형성된 심연의 회오리.
그 기류에 어림잡아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빨려 들어갔다.
병사들의 레벨은 평균 120~130은 되었지만,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상태이상 효과에 대한 저항력이 무척이나 낮은 편이었다.
그런 적들에게 떡대의 어비스홀과 이안의 전류증식의 연계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지직- 지지직-!
순식간에 발이 묶인 수십명의 카이몬 제국 병사들.
이안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레이크의 브레스를 그 위에 쏟아내려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그 때, 이안보다 한 발 빠르게,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서 날아들었다.
“하아앗!!”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이안의 가신(?) 카이자르였고, 발이 묶인 적들의 한복판으로 날아든 카이자르는 사방으로 어둠을 폭사시켰다.
콰아앙-!
그리고 그 기술의 정체를,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저거, 내가 준 칼에 붙어있던 고유능력이잖아?!’
이안이 넘겨준 전설등급의 무기인 다크 펜리르의 대검에는 ‘어둠방출’ 이라는 부가효과가 붙어 있었다.
어둠방출은 공격시마다 30%의 확률로 사방에 어둠을 방출하는 부가효과였는데, 그 효과가 무시무시했다.
[가신 카이자르가 ‘어둠방출’을 사용하여 ‘카이몬 제국 정예병’에게 27598만큼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둠방출’의 효과로 인해 ‘카이몬 제국 정예병’의 방어력이 3초동안 30%만큼 하락합니다.]
기본적으로 시전자의 공격력의 250%만큼의 피해량을 갖는 어둠방출 능력.
게다가 부가효과인 방어력 하락까지 터지니 카이몬 제국의 병사들은 마치 불판 위의 버터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이자르의 추가공격.
적진의 한복판에 착지한 카이자르가 대검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나직이 읊조렸다.
“폭룡참-!”
쾅- 콰콰쾅-!
카이자르를 중심으로 시뻘건 검기의 향연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일대의 수십이 넘는 카이몬 제국의 병사들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크으…!”
경험치 획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한 번에 셀 수 없이 많이 차오를 때의 쾌감!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이안의 귀로 카이자르의 한 마디가 틀어박혔다.
“좋아, 우리 영주. 방금 괜찮았어.”
산통이 깨진 이안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가요?”
“방금 저 돌덩이가 쓴 거. 뭐야 그거 어비스 뭐시기 있잖아.”
“….”
심지어 예술적으로 맞아 들어간 전류증식은 보지도 못하고 떡대의 어비스홀을 칭찬하는 카이자르.
이안은 잠깐 빈정이 상할 뻔했지만, 아직도 오르고 있는 경험치 게이지 바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 그래도 영주놈이라고 안한 게 어디야.’
이어서 인벤토리를 향해 빨려드는 보랏빛 기류는, 이안의 기분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라이, 핀! 우린 저쪽으로!”
[알겠다, 주인.]
꾸륵- 꾸륵-!
이안은 제국 병사들을 상대하면서도 힐끔힐끔 카이자르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감탄사를 속으로 삼켜야 했다.
‘진짜 괴물이 따로 없네….’
서걱-!
카이자르의 칼질 한방에 잿빛이 되어 사라지는 제국병사들!
그의 기본적인 공격 자체가 강력하기도 했지만, 연속으로 두세 번 어둠방출이 터지기라도 하면 일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카이자르의 활약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이안도 제법 130레벨대의 병사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전공을 올리고 있었다.
“소환수 치유술!”
뒤쪽에서 훌륭히 소환수들을 서포팅해주는 세리아.
그리고 황실 기사단의 기사답게 엄청난 맷집을 자랑하며 앞에서 적들을 막아주는 폴린과 함께 이안은 순조롭게 카이몬 제국의 병사들을 상대해 나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전황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워낙 카이몬 제국 병사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수적으로 열 배 이상이 차이 나는 병력이 끝없이 밀려들어오자, 결국 루스펠 제국군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슬쩍 퀘스트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포로들이 배에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그런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이안의 눈 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전쟁 포로 구출(1)’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A]
[전공 포인트를 2000만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24859000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을 15000만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24레벨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경험치와 함께 떠오르는 레벨업 알림 메시지.
이안은 싱글벙글한 표정이 되었다.
파스칼 군도에 와서 벌써 2레벨이나 오른 것이었다.
‘흐흐… 우리 가신님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구나…!’
영주를 막대하는 가신에 대한 서운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안은 이제 적들을 따돌리며 배로 돌아가야 했지만, 눈 앞의 경험치(?)들이 아쉬워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 조금 더 싸우고 싶은데….’
하지만 이안의 고민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연이어 퀘스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띠링-
---------------------------------------
-전쟁포로 구출하기(2)-
연계 퀘스트
전쟁 포로들이 배에 무사히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도, 카이몬 제국의 함대가 파스칼 군도에 나타났다.
그들을 따돌리고 포로들을 무사히 루스펠 황성까지 복귀시키자.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조건 : 전쟁포로 구출하기(1)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유저.
제한 시간 : 10일
보상 - 전공 포인트 2000
황실 공헌도 (클리어 등급에 따라 차등지급)
명성 (클리어 등급에 따라 차등지급)
---------------------------------------
< (3). 불패의 검사 카이자르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