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3 >
“마력의 구체!”
이안의 지팡이를 타고 마력의 구체가 연달아 쏘아져 나갔다.
펑- 퍼펑-!
거기에 할리의 공격까지 들어가자 남자의 생명력도 한번에 2만 이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후우….”
순식간에 정령마력을 전부 다 퍼부은 이안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마력의 구체로 인해 환원되는 정령마력 덕에 금세 절반 정도의 마력은 차올랐지만, 상대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초간의 짧은 기절상태에서 벗어난 괴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안을 노려보았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그의 말에 이안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가?”
“소환술사가 이렇게 강할 수 있다는 게.”
“….”
기존의 직업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늦게 생겨난 클래스인 소환술사.
사실 지금 이안이 소환술사 클래스로 120레벨 이상을 찍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이안의 전투력은 120레벨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느끼는 놀라움은 더욱 큰 것이었다.
게다가 신규직업 중에서도 소환술사는 PvP에 가장 약한 직업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도 일반적인 상식선상에서 성장한 케이스는 아니니까… 그렇게 따지면 소환술사가 이 정도의 전투력을 보이는 것도 가능한 범주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안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물론 그가 강하기는 하지만, 저렇게 자화자찬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라이랑 핀만 있었어도 이미 게임오버 당했을 녀석이 말만 많네…. 뭐? 상식선상이 아니라고?’
이안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게이지가 깜빡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잘난 척은 그만하고, 빨리 끝내자. 이 형이 지금 갈 길이 좀 바쁘거든.”
그 말에 괴인은 비틀린 표정으로 실소를 지었다.
“후후, 잘난 척이라…. 너야말로 뭔가 착각하고 있나보군.”
“뭐가?”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상대. 그것은 내가 아니다.”
생각지 못한 괴인의 말에,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무슨 소리야?”
그리고 괴인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상대하고 있는 건 나의 환영일 뿐.”
“…?!”
“그나저나, 아쉽게 됐어. 환영만으로도 어줍잖은 소환술사 하나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나도 진행하던 퀘스트가 있어서 말이야.”
그제야 이안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놈의 온 몸이 검붉은 빛으로 계속 빛나고 있잖아?’
처음에는 스킬이나 버프효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해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환영이라는 말을 들은 뒤 다시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
그 때, 괴인의 검이 기습적으로 이안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앙-!
빠르게 쏘아지는 검기!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이안은 여유있게 괴인의 공격을 피해 내었다.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비겁하긴.”
이안의 핀잔에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맞았으면 실망했을 거다.”
그리고 괴인의 신형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이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주 지 마음대로구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상대를 죽여서 떨어지는 아이템이라도 챙기려 했던 이안은, 사라지는 환영을 보자 허공에 삽질한 기분이 된 것이었다.
“후후… 덕분에 즐거웠다. 머지않아 또 보게 되겠군.”
괴인의 신형이 허공에서 완전히 지워지자, 이안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아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덤비질 말던가!”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생명력만 고갈되었으니, 이안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그런데 대체 저 놈은 뭐지? 환영이 본체의 어느 정도 수준의 전투력을 갖는 건지를 알 수가 없으니….’
본체가 환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면, 카이몬 제국의 최상위 랭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만큼 괴인이 사용하는 스킬의 위력은 대단했고, 전투감각은 뛰어났으니까.
어쨌든 이안은 서둘러 움직여 카이자르가 묶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뜻밖의 훼방을 받기는 했지만, 퀘스트가 가장 우선이었다.
“음…”
그런데 그 때, 어느새 고개를 들고 이안을 지켜보고 있던 백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열쇠는 저 석벽 뒤쪽에 걸려있다, 꼬마야.]
그리고 순간 마주친 눈빛.
그 시퍼런 안광에 이안은 살짝 움찔했다.
“열쇠요?”
[그래. 그게 있어야 이걸 풀지.]
말을 하며 남자는 자신의 손에 채워져 있는 묵직한 쇳덩이를 흔들었다.
[열쇠를 빨리 가져와야 할 거다. 시간이 없어.]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안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서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딸깍-
그리고 가져온 열쇠를 이용해 커다란 자물쇠를 풀어내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쇳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남자는 자유로워진 양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음… 십년 만인가….]
이안이 물었다.
“그, 어르신 허리에 묶여있는 사슬은 어떻게 풀 수 있죠?”
두 손은 자유로워졌지만, 아직까지 허리에 둘둘 감겨있는 쇠사슬.
이안의 말을 들은 그는 피식 웃더니 두 손으로 사슬을 움켜쥐었다.
우드득-!
놀랍게도 양 손으로 사슬을 우그러뜨리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남자를 보며,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당황하는 이안을 향해 다가온 남자가 이안을 향해 물었다.
[꼬마야, 가지고 있는 무기 아무거나 줘봐라. 검이면 가장 좋다.]
이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거의 날강도 수준이잖아?’
하지만 차마 맨손으로 쇠사슬을 우그러뜨리는 괴물에게 말대꾸를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잠, 잠깐만요. 아마 있을 거예요.”
얼마 전 오르빌에게서 얻었던 전설등급의 대검이 떠올랐지만, 주기도 아까울 뿐더러 그것은 어차피 계정귀속 아이템이었다.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얼마 전 사냥 도중에 나온 유일등급의 대검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넘겼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검이군.]
그리고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이안을 향해 말했다.
[이제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나가서 다른 포로들을 구출하도록.]
“그게 무슨…?”
이제 강력한 NPC빨로 좀 쉽게 퀘스트를 진행해보나 했던 이안은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이 들어온 반대편 석벽에 있던 철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콰앙-!
그리고 나타난 한 남자.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런, 이런. 쥐새끼가 한 마리 숨어 들었었군.]
카이몬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은빛 갑주.
그리고 시퍼렇게 빛나는 대검.
이안을 노려보는 은빛 갑주의 사내, 라크로뮤가 검을 치켜들자, 이제껏 가만히 서있던 남자가 이안에게서 받은 검을 뽑아들고 라크로뮤의 앞을 막아섰다.
[네 상대는 나다, 라크로뮤.]
남자, 카이자르의 말에, 라크로뮤가 피식 웃으며 대응했다.
[십년 전이었다면 모르되, 지금도 날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카이자르.]
[십년이 아니라 백년이 지나도, 넌 나를 이길 수 없다 라크로뮤.]
후우웅-!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석옥 전체가 진동할 만큼 커다란 울림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이안은 그 틈을 타 할리를 타고 석옥 밖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머지 포로들부터 다 구출하고 생각하자.’
그리고 이안이 석옥 밖으로 빠져나오자, 퀘스트의 진행상황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전쟁포로 구출하기’ 퀘스트]
[진행률 - 1/77(1.29%)]
[필수조건 달성률 - 1/2(50.00%)]
* * *
“이팀장, 예고편 이제 방영 시작해야 되니까 빨리 준비해!”
“예, 지금 세팅 거의 끝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후가공 없이 LB쪽에서 전송되서 오는 대로 바로바로 송출 하는겁니까?”
“지금 영상 편집하고 뭐 하고 할 시간이 어딨어? 들어오는 대로 곧바로 내보내. 어차피 2차 업데이트가 궁금한 시청자들은 가장 빨리 송출해주는 채널에 전부 다 몰릴 거야.”
게임방송 채널 중 요즘 가장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방송국인 YTBC.
방송국 내 스텝들은 근 한달 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게임 ‘카일란’의 2차 대규모 업데이트의 예고편 격인 영상을 LB소프트로부터 받는 날이었기 때문.
특이점은, 보통 게임의 예고편 영상의 경우 게임사에서 직접 제작한 시네마틱 영상을 송출해 주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2차 대규모 업데이트의 예고영상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2차 업데이트 시나리오의 중심이 되는 게임 내의 NPC들의 시점에서 촬영된 영상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방영된다는 점이었다.
LB소프트에서 각 방송국마다 송출해주는 영상이 각기 다 다른 NPC의 시점의 영상이었고, 이러한 방식은 처음이었기에 방송국의 관계자들도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20초 뒤, 송출 시작 합니다…!”
“오케이! 카운트 시작해!”
“13… 12… 11….”
* * *
[십년 만의 제국 간 전쟁이 해전으로 시작될 줄이야. 설레지 않나, 로스터.]
[그렇습니다, 제독. 그동안 갈고닦은 저희 해군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족히 수 십 척은 되어 보이는, 바다를 새까맣게 메우고 있는 전함들.
그리고 그 전함들의 닻에는 카이몬 제국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로스터, 파스칼 군도에 접근해 있는 루스펠의 전함이 몇 척이라 했지?]
[갈레온선 세 척입니다 제독.]
함대의 중단 쯤 늠름한 위용을 뽐내며 물살을 가르고 있는 대장선.
쏴아아-!
그 갑판 위에 선 두 사람은 느긋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뒤쪽에서 말을 받아주는 이는 카이몬 제국 제 1함대의 함장인 로스터였고, 그 앞에 서 있는 흑발의 사내는 카이몬의 해군제독인 하르윈 이었다.
[갈레온 세 척이라….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놈들이 움직인 이유는 뻔하겠지.]
[아무래도 신탁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오…!”
불타는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벗어난 야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친구들과 치킨집에 들어온 한수는 치킨집 벽에 걸려있는 tv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저거 카일란 아니냐? 무슨 영상이지?”
그의 옆에서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며 묻는 친구에게, 한수가 빠르게 대답했다.
“카일란 영상 맞다. YTBC 채널이네. 아마 이번에 2차 대규모 업데이트 예고영상 방영한다더니, 그거 같은데?”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민규가 두 사람의 대화에 고개를 돌려 TV를 응시했다.
“크으, 이건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저기 깃발 보니까 카이몬 제국 전함들이네.”
웅장한 위용의 전함들.
그리고 그 전함의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카일란의 고퀄리티 영상을 보며, 한수들은 치킨을 뜯는것도 잊은 채 영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루스펠 제국이랑 해전이라도 벌이려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으, 난 루스펠 국적인데 저거 전쟁 결과가 일반 유저들한테도 영향을 미치려나?”
“그건 아니지 않을까? 어느 한쪽으로 밸런스가 무너지면 게임이 재미없어질 텐데… 게임사에서 그렇게 만들 리가 있나.”
화면 속 전함들은 차츰 수 많은 섬들이 솟아있는 군도의 사이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어떤 하나의 섬에 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전투.
어느새 그들 뿐 아니라 치킨집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 * *
<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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