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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29화 (158/1,027)

<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2 >

*          *          *

선원이 함장 로란트에게서 받은 신호탄을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피이잉- 펑!

하늘을 붉게 수놓는 붉은 폭죽의 세례.

달려드는 적을 처치한 폴린의 시선이 슬쩍 허공을 향했다.

“으음… 남작님이 좀 늦어지시는 것 같긴 한데….”

이안이 핀을 타고 내부로 진입한지 10여분 정도가 지났다.

뭐라도 결과가 나왔어야 할 만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안쪽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폴린은 조금 걱정 어린 표정이 되었다.

“걱정 마세요, 폴린경. 영주님께선 잘 하고 계실 거예요.”

뒤에서 열심히 서포팅을 하던 세리아의 말에, 폴린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의 시선이 뇌옥 안쪽을 향했다.

‘어찌됐든 신호탄이 쏘아졌으니, 이제 원군이 올 테지.’

원군이 오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포로들을 구출해야 할 텐데….’

다시 달려드는 간수병 무리들을 보며, 폴린은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          *          *

“넌… 뭐지?”

“그러는 넌 뭔데?”

괴인의 물음에 이안은 퉁명스런 어투로 대꾸했다.

NPC 주제에(?) 너무 건방졌기 때문에 심사가 꼬인 것이었다.

사실 건방짐이 문제였다고 하기 보단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이리라.

하지만 괴인의 다음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은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재밌군. 보아하니 루스펠 제국 소속의 유저인 것 같은데, 파스칼 군도까지 들어오다니. 그쪽 제국 퀘스트라도 받은 건가?”

우선 유저라는 말.

그리고 퀘스트라는 말.

이 두 단어는 NPC라면 절대로 쓰지 않는 단어였다.

고로, 상대는 유저라는 소리.

‘제기랄, 뭐지 이건. 이렇게 꼬일 수도 있나…?’

게다가 적국인 카이몬 제국의 유저임이 분명했다.

상대진영의 유저가 제대로 훼방을 놓으려 작정한다면, 적잖이 골치아파질 것이다.

일단 이안은 상대를 떠보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쪽은, 카이몬 제국 소속 유저인가본데… 그쪽도 제국 퀘스트인가?”

괴인의 한 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렇다면?”

이안이 조심스레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하는게 최우선이었다.

“그럼 우리 피차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게 어때? 굳이 싸우지 않고도 서로 퀘스트만 완료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말을 하면서도 이안은 불안했다.

상대의 퀘스트가 자신을 막아야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농후했기에.

하지만 괴인의 대답은 이안의 예상범주를 벗어난 방향으로 흘러갔다.

“글쎄. 사실 지금 내가 그냥 지나쳐도 내 퀘스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는 손에 들린 길다란 장검을 이안의 미간에 겨누었다.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은걸…?”

그리고 이안의 입에서는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제기랄, 좀 윈윈 하자니까.”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을 터.

이안은 전투자세를  잡으며 상대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해 놓았는지, 레벨과 이름조차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한번 놀아볼까…?”

말을 마친 그가 이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안은 할리와 함께 그를 마주 공격했다.

곧바로 공간왜곡으로 줄행랑 치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약한 놈일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건 이안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깡- 까강-!

이안의 지팡이와 상대의 검이 부대끼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이몬 제국의 유저(알 수 없음) 에게 공격당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2985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한 차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이안은, 개빨리 할리의 등 위에 올라탔다.

‘역시 강적이다. 대충 보니 전사클래스 인 것 같고… 그렇다면 민첩성으로 압도하는 방법밖에…!’

“할리, 바람의 수호자!”

이안의 명령에 할리가 커다랗게 울부짖었다.

크허엉-

[소환수 ‘할리’가 ‘바람의 수호자’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나머지 전투능력치를 합한 수치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2분 동안 5725만큼 증가합니다.]

그 동한 제법 많은 레벨이 오른 덕에, 바람의 가호를 사용한 할리의 민첩성은 거의 8천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할리의 네 다리에 휘감기는 새하얀 바람의 기운.

그 모습을 본 상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호, 할리칸이라니. 할리칸을 소환수로 부리는 소환술사가 있을 줄이야.”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야생의 할리칸의 레벨은 150.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가 140레벨 언저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상대가 놀라건 말건,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전류증식!”

이안은 괴인을 향해 전류증식과 마력의 구체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펑- 퍼펑-!

하지만 괴인은 이안의 공격들을 어렵지 않게 피해 내었다.

‘뭐지, 전사 치고는 민첩성 스텟이 많이 높아보이는데….’

공격을 피한 상대는 이안을 향해 빠르게 쇄도해 왔다.

“환린참격!”

붉은 빛으로 빛나는 괴인의 장검.

이안은 본능적으로 맞부딪히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할리, 피해!”

그리고 사기적인 순발력 능력치를 가진 할리는 다행히도 그 공격을 쉽게 피해낼 수 있었다.

파아앙-!

괴인의 장검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검기가 줄기줄기 허공에 뿌려지며, 석옥의 벽을 잘게 썰며 지나갔다.

쩌저적-!

마치 두부조각처럼 조각나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석벽.

그것을 본 이안은 기겁을 했다.

‘브레스나 분쇄가 터져도 저 정도 파괴력은 아닐 텐데….’

할리의 바람의 수호자가 지속되는 2분이었다.

그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 된다 생각한 이안이 할리의 등에서 뛰어 내리며 곧바로 괴인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안의 의중을 파악한 할리가 빠르게 괴인의 뒤로 돌아 들어가며 앞발을 휘둘렀다.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펼쳐지는 할리와 이안의 양동공격.

퍼엉-!

[소환수 ‘할리’가 ‘공허의 환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공허의 환영’의 생명력이 9685만큼 감소합니다.]

단기적이지만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순발력 스텟이 생긴 할리의 공격을 괴인은 피해내지 못했고, 그 공격 한 번에 벽을 향해 튕겨져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안은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뭐야, 공허의 환영? 왜 타게팅 대상이 저런 이름으로 뜨는 거지? 유저가 아니었나?’

유저였다면 이름이 뜨거나, 정보가 비공개 상태라면 ‘알 수 없음’이라는 글귀가 떠야 정상이었는데 공허의 환영 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떠오르니 의아한 것이었다.

그리고 할리의 공격에 생각보다 맥 없이 튕겨나간 것도 조금은 의문 스러웠다.

‘전사클래스가 아까 그 정도의 공격력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라면 피지컬이 이렇게 약하진 않을 텐데….’

방금 할리의 공격에 튕겨나가 벽에 틀어박힌 괴인의 모습은 흡사 궁사나 암살자 정도의 피지컬로 느껴졌다.

이안이 재차 공격을 시도하려 할 때, 몸을 털며 일어난 괴인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한 건 정말 오랜만이군.”

하지만 이안은 그의 말에 대꾸해 줄 시간이 없었다.

할리의 고유능력, ‘바람의 수호자’ 효과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데미지를 입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유로운 척 하긴!”

이안의 지팡이에서 또다시 투사체들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괴인의 이동경로를 철저히 계산한 공격이었다.

타탓-!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해 몸을 움직인 괴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할리와 정면으로 맞닥드렸다.

크허엉-!

커다랗게 포효하며 앞발을 내지르는 할리.

하지만 이번에는 괴인도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았다.

촤아악-!

워낙 할리의 민첩성이 빨랐기 때문에 완전히 피해내지는 못했지만, 옆구리를 스치는 정도로 할리의 공격을 피해내는 데 성공한 것.

게다가 오히려 남자의 검극이 할리의 어깻죽지에 틀어박혔다.

[소환수 ‘할리’가 ‘공허의 환영’에게 공격당해 생명력이 8982만큼 감소합니다.]

[소환수 ‘할리’가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소환수 ‘할리’의 생명력이 2196만큼 감소합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남자의 반격.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실력이… 진짜배기잖아?’

할리가 입은 피해량에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9천 정도의 공격력은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한 수준이랄 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남자의 움직임은 정말 예술에 가까웠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순발력이 8천에 육박하는 할리의 앞발을 피해내고, 역공까지 성공시켰으니.

‘하지만 스텟이 압도적인 수준이 아닌 이상, 충분히 해 볼 만 하다…!’

카일란에서 유저의 강력함은 두 가지 요소에서 결정된다.

하나는 당연히 무지막지한 레벨과 성능 좋은 템들로 인한 막대한 능력치와 특별한 스킬들.

그리고 또 하나는 유저의 전투 능력.

이안은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레벨대의, 그리고 체력이나 방어력보다는 비교적 공격력에 투자를 많이 한 전사클래스의 유저라고 짐작했다.

‘컨트롤 능력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지.’

오히려 지금 두 자리 수 랭킹 안에 들어있는 130레벨 후반대의 유저였다면 아무리 이안이라도 상대하기 힘들었으리라.

컨트롤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치의 차이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번 격돌한 뒤, 이안은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귀찮은 자식, 너 때문에 지금 퀘스트 늦어지고 있잖아!”

이안은 진심어린 분노(?)를 담아 할리와 함께 다시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소극적이었던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자신감 넘치는 이안의 움직임을 본 남자는 피식 웃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설마 내가 방금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남자의 입이 다시 열렸다.

“연환격…!”

순간, 이안은 코앞에 달려들던 남자의 신영이 양 옆으로 길게 늘어나는 듯 한 착각을 느꼈다.

‘뭐, 뭐지?’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검격.

쾅- 콰콰쾅-!

연환격이라는 스킬의 이름답게, 그의 공격은 한 번에 커다란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핀의 분쇄처럼 도트 데미지로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어오는 시스템 메시지!

[(알 수 없음)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892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827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191만큼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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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2~3만 가까운 무지막지한 양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 이안은 당황했다.

‘후, 너무 얕봤나?’

하지만 당황했다고 해서, 움직임이 굳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안의 몸에 베어 있는 본능과도 같은 컨트롤 감각이 저절로 할리와 이안을 컨트롤한 것.

펑- 퍼펑-!

스킬을 한번 제대로 허용한 대신, 이안의 스킬들과 할리의 공격도 정확히 적중되었다.

[소환수 ‘할리’의 고유능력, ‘후려치기’ 가 발동합니다.]

[‘공허의 환영’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할리의 고유능력인 후려치기가 발동한 것.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칠 이안이 아니었다.

<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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