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1 >
파스칼 뇌옥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간수병들의 숫자는 많아졌고, 중간 중간 강한 적들도 섞이기 시작했다.
특히 간수장이나 장교급의 NPC가 등장할 때면 제법 애를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경험치 한번 죽여주네.”
파스칼 뇌옥의 NPC들은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템이나 골드를 드랍하지는 않았다.
대신 동 레벨 대 일반 몬스터의 몇 배에 달하는 막대한 경험치를 쏟아내었다.
덕분에 이안의 레벨은 어느새 122.
하루 종일 전투에 전투만 거듭하며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이안의 기분이 좋은 이유였다.
‘게다가 이거, 신형 캡슐 동화율이 확실히 체감되잖아?’
신형캡슐의 가상현실 동화율은 구형 캡슐보다 2%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안은 확실히 움직임이 더 가벼워 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게임하고있을 하린이가 조금 신경쓰이긴 하지만….’
캡슐 설치를 마친 후 유현은 집으로 돌아갔고, 하린은 진성의 구형캡슐로 게임을 좀 하다 가겠다며 게임에 접속해 버렸다.
항상 혼자였던 자신의 집 안에 하린이 같이 있으니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
‘그래도 왠지 혼자 있는 것 보단 기분이 좋긴 하네. 있다가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러모로 기분 좋게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던 그 때.
폴린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걸음을 멈춰 섰다.
“남작님, 드디어 찾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코너를 돌자, 이안의 눈에도 감옥의 입구를 막고 있는 거대한 쇠창살이 들어왔다.
거의 10M는 되어 보이는 높다란 쇠창살.
그 앞에는 카이몬 제국의 문장이 그려진 제복을 입은 NPC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상급 간수병 셋에, 장교가 둘이나…. 지금까지보다 확실히 전력이 강해졌어요, 영주님.”
세리아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 그런데 상관 없어.”
이안은 씨익 웃으며 천정을 가리켰다.
“이젠 떡대도 소환할 수 있고, 핀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테니까.”
감옥의 중심부로 들어오면서 탁 트인 공간이 나온 것이었다.
중정이 뻥 뚫려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콜로세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소환수들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
덕분에 이안은 자신만만해졌다.
“폴린, 지금까지 싸웠던 것처럼, 가장 강한 적들을 좀 묶어주세요. 그럼 제가 최대한 빨리 나머지 적들을 정리하고 돕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남작님.”
라이의 무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해 지면서, 대인 전투에서의 전투력도 제법 강해진 이안이었지만, 아직까지 이안의 능력은 다수를 상대로 전투할 때 더욱 빛났다.
“그리고… 이제부턴 아마 정면으로 뚫어야 할 것 같은데….”
이안의 말에 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넓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그들이 뇌옥에 침입했다는 것이 알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다면 속전속결…!”
이안은 두 선원에게 로란트에게서 받은 신호탄을 건네었다.
“여기를 뚫는 순간, 내가 안쪽으로 잠입해서 포로들을 풀어주는 작업을 시작할거야. 그럼 이 신호탄을 허공으로 쏘아 올려 줘.”
“알겠습니다, 남작님.”
이안은 할리를 제외한 모든 소환수를 소환했다.
할리는 잠시 후 안쪽으로 진입할 때 소환할 생각이었다.
“가죠.”
이안의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행은 각자의 포지션을 잡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라이, 병사들부터 잡자!”
[알겠다, 주인.]
레이크의 브레스가 가장 먼저 적들을 덮쳤고, 라이가 뛰어들어 생명력이 많이 깎여나간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간수병들이 입고 있던 가죽갑옷은 라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무참히 찢겨 나갔고, 비교적 전투력이 강한 장교급 NPC들은 폴린이 훌륭히 상대해 주고 있었다.
“전류증식!”
이안보다 레벨대가 많이 높은 적들이었기에 전류증식의 데미지가 효과적으로 박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비’ 효과만큼은 여전히 쏠쏠했다.
[‘전류증식’ 스킬을 명중시켰습니다. ‘파스칼 뇌옥 간수병’ 에게 417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파스칼 뇌옥 간수병’이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파스칼 뇌옥 간수병’의 움직임이 30% 느려지며, ‘전격’속성의 공격에 50%의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전류증식’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적의 숫자가 많을수록 추가타의 빈도수가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발동하는 전류증식 스킬.
마비가 발동해 발이 묶인 병사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퀘스트 깨는 거 좀 미루고 여기서 사냥이나 더 할까….’
쏠쏠한 경험치에 잠시 퀘스트를 미룰 생각까지 들 정도!
하지만 이안도 처음부터 이렇게 쉬이 전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거듭되는 전투로, 병사들의 움직임 패턴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폴린과의 합이 갈수록 잘 맞아떨어졌기에 나타나는 시너지였다.
게다가….
[소환수 ‘떡대’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떡대’의 생명력이 8764만큼 감소합니다.]
집중된 공격으로 인해 소환수의 생명력이 떨어질 때면….
“소환수 치유술!”
후방에서 버프를 걸며 지원하던 세리아의 고유스킬인 ‘소환수 치유술’이 발동되었다.
[가신 ‘세리아’가 ‘소환수 치유술’을 시전합니다.]
[소환수 ‘떡대’의 생명력이 60%(47398)만큼 회복됩니다.]
120레벨 이상의 고레벨 몬스터를 상대할 때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떡대의 탱킹이, 세리아의 치유술로 인해 한층 견고해진 것.
물론 소환수 치유술에는 5분이라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파스칼 뇌옥 간수병을 처치했습니다. 134215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파스칼 뇌옥 간수장을 처치했습니다. 321132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정리된 적들을 보며, 세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핀이랑 떡대가 있으니 훨씬 수월하네요.”
특히 생명력이 8만에 육박하는 떡대가 세리아의 치유술을 받으며 버텨주니 전투가 쉬워진 것이 확실히 체감되었다.
“그렇다니까.”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때.
뇌옥 안쪽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그에 폴린이 안색을 살짝 굳히며 이안을 향해 물었다.
“안쪽에서 알아챘나봅니다 남작님. 어떻게 할까요?”
“으음….”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소란스런 전투를 벌였는데 안쪽에서 모른다면 더 이상한 것이었으니까.
‘조금 이르긴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내가 안쪽으로 침투해야겠어.’
그리고 이안은 핀을 불러서 등 위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본 세리아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영주님, 어쩌시려구요?”
“이쪽에서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난 안쪽에 들어가서 포로를 구출할거야. 포로가 구출될 때 마다 우리 전력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남작님 말씀대로만 된다면, 확실히 훨씬 쉽게 일이 풀릴 겁니다.”
이안은 라이와 레이크, 떡대는 일행에 두고 갈 생각이었다.
폴린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모든 소환수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가기에는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민첩성이 가장 뛰어난 할리랑 핀만 있으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구출이 목적이니까.’
대충 준비가 끝난 이안이 폴린에게 말했다.
“폴린, 최대한 시선을 좀 끌어주세요.”
“알겠습니다, 남작님. 하지만 안쪽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을지 몰라서… 최대한 빨리 포로들을 구출해 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폴린이 한 마디 덧붙였다.
“카이자르님만 구출되면, 아마 상황종료일겁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자르님이라… 기억하도록 하죠.”
핀의 등에 올라탄 이안은 조심스레 뇌옥 성곽의 바로 아래쪽까지 날아올랐다.
그러자, 폴린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루스펠 제국의 근위기사 폴린이 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왔노라!”
뇌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폴린의 사자후.
순식간에 간수병들의 이목이 전부 폴린에게로 쏠렸다.
‘이때다…!’
라이와 레이크, 떡대가 폴린과 함께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핀을 타고 재빨리 뇌옥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뇌옥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파수탑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공중으로 잠입을 시도했었다간 벌집이 됐겠어.’
처음 파스칼 군도에 도착했을 땐, 공중으로 뇌옥에 잠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핀의 등에 여러 명이 오를 수 없었고, 이안 혼자 들어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기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내성으로 들어와 보니 그것이 정말 잘 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핀아, 저쪽인 것 같다.”
이안은 이제 제법 핀의 등에 익숙해져 있었다.
핀의 속력이 제법 빨라졌음에도, 안정감 있는 모습이었다.
둥- 둥- 둥- 뿌우-!
이제 전면에서 전투가 시작된 것인지, 뇌옥 안쪽에서 커다란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자연히 이안과 핀 또한 적들에게 노출되었다.
“핀아,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가서 날 떨궈줘!”
아무리 그리핀이라고는 하지만, 날개를 이용해 비행하는 구조를 가진 핀의 특성상 빠른 수직 활강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위치가 노출된 지금, 느릿하게 사선비행을 하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간 화살세례에 꼼짝없이 당할 것이었다.
꾸룩-!
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울었지만,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착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핀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할리를 소환했다.
“할리, 소환!”
크허엉-!
이안이 떨어지는 지점에 소환된 할리는 빠르게 구조물들을 타고 올라가 이안을 등으로 받았다.
퍽-!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안정된 자세로 할리의 등에 탑승하는데 성공한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이것을 위해 할리를 지금까지 소환하지 않고 아껴두었던 것이었으니까.
“오케이 좋아!”
이안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뇌옥의 가장 깊숙한 곳.
저 석문만 파괴하면 카이자르가 있을 것 같았다.
“핀아, 간수병들 접근 못하게 막아줘!”
아무리 숫자가 많은 간수병들이라고는 해도, 핀이 분쇄를 사용하는 동안은 접근하기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때맞춰 사방에서 몰려드는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A구역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전장으로 쏟아지는 핀의 분쇄!
콰아아아-!
간수병들이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움찔거리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서둘러 마력의 구체를 석문에 연달아 쏘아보냈다.
쾅- 콰쾅-!
그리고 할리의 공격까지 이어지자, 커다란 석문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르릉- 퍼어엉-!
‘좋아, 생각보다 두텁지 않네.’
그리고 석문을 뚫어 내자, 그 안쪽에는 커다란 원형의 석실이 드러났고, 한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백발의 괴인이 사지가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마치 보스몬스터가 등장할 것만 같은 배경과 묘한 분위기!
그것을 본 이안은 확신했다.
‘저 자가 분명 카이자르야…!’
이안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퀘스트의 끝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헬라임의 말에 따르면 엄청나게 강력한 검사라고 했으니, 이놈만 구출해 내면…!’
그런데 그때.
이질적인 목소리가 이안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워, 워. 잠깐. 이건 뭔가 좀 흥미로운데…?”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인영.
이안의 시선이 자연히 그 방향을 향해 옮겨졌다.
저벅- 저벅-
적막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발소리.
어둠 속에서 나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의 전신은 아직 검붉은 빛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것을 본 이안은 한숨을 푹 쉬며 투덜거렸다.
“하아, 좀 쉽게 끝나나 했는데,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이안은 긴장된 눈빛으로 남자를 훑어 보았다.
여의치 않으면 곧바로 공간왜곡을 이용해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무척이나 강해보이는 상대를, 할리밖에 없는 상태에서 상대할 순 없었으니까.
어느새 이안의 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그리고 웅웅 울리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목소리로 이안을 향해 물었다.
“넌… 뭐지?”
* * *
< (2). 이안, 그리고 절대자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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