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27화 (156/1,027)

< (1). 파스칼 군도 -3 >

*          *          *

파스칼의 뇌옥은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뇌옥에 잠입하자마자 나타난 세 갈래 길.

이안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오른쪽 길로 한번 가보자.”

그 말에 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남작님 길을 아세요?”

“아니, 모르죠.”

“…?”

“하나씩 다 가보면 맞는 길을 찾을 수 있겠죠 뭐.”

태연한 이안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딱히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 이안의 말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무슨 미로도 아니고, 너무한 거 아냐…?”

이안의 중얼거림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갈래길이 연이어 계속해서 나타난 것이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다보니, 도저히 이안의 말처럼 길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앉아서 생각을 좀 해보죠.”

이안의 말에 폴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한다고 뭐가 나올까요?”

“그건 모르죠….”

이안은 등에 메고 있던 뿍뿍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뿍뿍이를 본 순간, 이안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어차피 감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면… 뿍뿍이를 한번 따라가 볼 까요?”

이번엔 잠자코 있던 세리아가 물었다.

“뿍뿍이요? 아 그 머리 큰 거북이!”

세리아의 말에 등껍질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뿍뿍이가 세리아를 째려봤다.

찌릿-

하지만 세리아는 아랑곳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거북이가 길 잘 찾아요?”

“음…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미발견 던전 같은 걸 찾아내거든.”

“아….”

이안은 뿍뿍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입을 열었다.

“뿍뿍아.”

뿍-

“형이 지금 길을 잃었거든.”

길을 잃었다는 말에, 뿍뿍이가 비웃음을 날렸다.

뿌뿍-

“길 좀 찾아줘라 뿍뿍아. 잘 찾으면 미트볼 원 없이 먹여줄게. 어때?”

이안이 지금껏 제안한 적 없었던 미트볼 백지수표!

뿍뿍이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뿍뿍-!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포로들이 갇혀있는 장소에 미트볼이라도 쌓여있었으면, 뿍뿍이가 냄새 맡고 잘 찾아갈 텐데 말이야.’

그때 세리아에 비해 비교적 똑똑한 폴린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 거북이가 뭘 찾아야 하는지는 알까요?”

“아뇨, 당연히 모르겠죠.”

“그럼 어떻게…?”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이안은 뿍뿍이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뿍뿍아,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줘. 아무나 찾기만 하면 돼.”

뿍-

이안의 의중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일단 뿍뿍이에게 선두를 맡긴 일행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뿍뿍이의 능력인지 아니면 운인지, 전방 멀찍한 곳에 카이몬 제국의 문양이 그려진 갑주를 입고 있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찾긴 찾았네요, 포로들을 찾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용히 지나가긴 힘들 것 같습니다 남작님.”

폴린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이안이 뿍뿍이에게 사람을 찾으라 한 목적은, 물론 포로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포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이것은 이안이 예상했던 전개였다.

‘좋아, 한번 시작해 볼까?’

확인된 병사들의 레벨은 130남짓.

일행보다는 대체로 높은 레벨이었지만, 폴린의 레벨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싸워볼 만 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안의 전투력도 일반적인 120레벨대 초반 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세리아, 직접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진 말고, 소환수들 치유를 우선적으로 해줘. 알겠지?”

세리아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주님!”

그리고 이안은 지금껏 조용히 뒤를 따라오던 두 선원들에게 얘기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분명 침입을 알리기 위해 이탈하는 인원이 한둘 정도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그를 쫓아주세요.”

“도망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죠?”

한 선원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도망칠 수 있게 해 주고 그 뒤를 쫓으면서 가는 길에 표식을 남겨 주세요.”

이것이 바로 이안이 노렸던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처음 뇌옥에 잠입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작전이었다.

도망치는 병사들을 따라가 포로들이 갇혀있는 위치를 찾으려 한 것.

그동안은 카이몬 소속 NPC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서 써먹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뿍뿍이에게 아무나 찾으라 했던 것이었다.

이안의 말을 곧바로 이해한 둘의 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남작님!”

그제야 이안의 생각을 이해한 폴린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폐하의 신뢰를 받으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좋은 계획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전투가 시작됐다.

뇌옥의 공간 자체가 너무 좁아서 덩치가 큰 떡대는 소환할 수 없었고, 나머지 소환수들을 전부 다 소환한 이안은 곧장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침입자다!”

그리고 이안일행을 발견한 병사들은 곧바로 마주 공격해 왔다.

“라이, 할리! 안쪽으로 파고들어!”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면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안은 일단 전장을 난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허엉-!

역시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건 라이였다.

[소환수 ‘라이’가 ‘파스칼 뇌옥 간수병’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파스칼 뇌옥 간수병’의 생명력이 15640만큼 감소합니다.]

갑작스런 습격에 우왕좌왕 하는 간수병들의 사이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라이!

천장고가 낮은 공간 탓에 마음껏 날아다닐 수 없는 핀은 생각보다 큰 활약을 벌이고 있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전방을 향해 모든 정령마력을 쏟아 부은 이안의 시선이 폴린을 향했다.

‘어디 170레벨대 황실기사는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볼까…?’

그리고 이안이 확인한 폴린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길다란 창을 휘두르며 130레벨대의 병사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황실기사의 위용!

“오오….”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저런 NPC 하나만 가신으로 들일 수 있으면….’

헬라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레벨값 하는 폴린의 모습에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그 때.

폴린의 창극에 맺힌 누런 기운이 크게 일렁이며 커다란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흐으읍!”

그리고 폴린이 창극을 바닥에 내려치자, 황금빛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이어지는 정적.

폴린의 창끝에서 뻗어나온 광역공격에 당한 모든 카이몬 제국의 간수병들이 잿빛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었기에, 생명력이 최대치까지 가득 차있는 병사는 없었지만, 단 한방에 모두가 전멸해 버린 것은 충분히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거… 사기 아냐…?’

정확히 얼마정도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림잡아 3만 이상은 깎여나가는 듯 보이는 병사들의 생명력을 보며, 이안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폴린이 멋쩍은 표정으로 이안에게 다가왔다.

“저… 남작님…. 다 죽어버렸는데 어쩌죠…?”

폴린의 목소리에 멍해 있던 이안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두 명의 선원이 눈에 들어왔다.

“남작님, 살아서 도망간 간수병이 없습니다…!”

“….”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잠시 당황했던 이안은, 뿍뿍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휴우…. 뿍뿍아, 다시 찾아보자.”

뿍뿍-

뿍뿍이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앞장섰고, 일행은 다시 뿍뿍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획은 조금 틀어졌지만, 그래도 폴린이 생각보다 더 엄청난 전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          *          *

진성의 집.

“오오…!”

원룸에 들여온 신형캡슐을 보며, 진성은 황홀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좋냐?”

공략왕 이벤트의 보상으로 얻은 세 대의 캡슐 중, 가장 먼저 배송된 한 대는 당연히 진성의 집으로 도착했다.

캡슐은 크기나 무게가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유현이 설치를 도와주기 위해 진성의 집에 함께 온 것.

신형캡슐이 궁금하다며 따라온 하린은 덤이었다.

“좋지 그럼 안 좋냐. 나한테 감사해라 인마.”

“물론. 네 덕에 이런 초 호화 캡슐도 얻어 보고… 흐흐….”

남은 두 대의 캡슐 중 한 대는 길드마스터인 유현에게로, 나머지 한 대는 이안과 함께 던전을 돌면서 지대한 공을 세운 피올란에게로 돌아간 것.

그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하린도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좋겠다… 나는 구형 캡슐이라도 갖고 싶은데….”

그 말에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하린이 너 캡슐 없어?”

“응, 없어.”

“그럼 항상 캡슐방 가서 게임하는 거였어?”

진성도 제법 놀란 표정이 되었다.

캡슐방에서만 플레이하는 거 치고는 하린의 레벨이 엄청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에… 정말이야? 근데 캡슐방에서만 하는 거 치고는 하린이도 접속시간 되게 긴데….”

두 사람의 말에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캡슐방에서만 하는 건 아니고, 사촌동생네 집에 캡슐이 두 대 있는데, 낮 시간에는 보통 내가 가서 쓰거든. 하나가 이모 꺼라서. 이모가 낮에는 일 나가셔서 집에 안 계셔.”

그제야 납득이 됐다는 듯, 진성과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캡슐방 가격이 오죽 비싸야지. 그 돈 내고 캡슐방 쓸 바엔 그냥 한 대 사는 게 나으니깐. 우리 같은 헤비 유저들은.”

그리고 진성이 하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린아, 그럼 내가 원래 쓰던 캡슐 너 줄까?”

진성의 파격적인 제안에, 하린과 유현이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구형이라고는 하지만 진성이 쓰던 캡슐도 중고로 팔면 2~3백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수 천 만원 짜리 신형캡슐로 한껏 기분이 좋아진 진성에게 중고캡슐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2~3백만원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중고장터에 팔려고 기웃거리는 시간에 사냥을 하는 게 더 이득이지.’

어쩌면 귀찮음이 더 컸는지도 몰랐다.

한편 의외의 제안에 잠시 당황했던 하린은 감격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이거 나 가져도 돼?”

진성은 순간 아주 조금 고민했지만,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써 하린아.”

그러자 옆에 서있던 유현이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진성을 놀렸다.

“오… 박진성…! 여자친구라고 챙겨 주는 거냐?”

여자친구라는 말에 잠시 움찔한 진성이었지만, 곧 멋쩍은 웃음으로 어색함을 무마했다.

“하… 하하….”

그런데 그때, 하린이 의외의 말을 꺼내었다.

“고맙기는 한데… 생각해보니 나 이 캡슐 못 받을 것 같아.”

그에 당황한 진성과 유현이 동시에 물었다.

“아니 왜?”

“왜?”

“음… 그게 우리집에 캡슐이 없는 이유가, 아버지께서 게임하는걸 좀 많이 싫어하셔서 그런 거거든…. 돈이 없어서 못 샀던 게 아니고….”

“아….”

안타까운 하린의 말에 진성과 유현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진성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정 잘 알지….’

어찌 보면 진성이 악착같이 대학공부를 한 이유도, 게임을 싫어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으니, 진성으로서는 무척이나 공감이 잘 되었다.

“그럼 어쩌나… 이거 팔아야하나…?”

진성의 중얼거림.

하린이 은근슬쩍 진성의 옆으로 다가가 팔을 잡아 끌었다.

“아니, 팔지는 마.”

“에… 그럼?”

“그냥 네 방에 캡슐 두 개 두자. 방 넓어서 자리도 충분하네.”

“응? 두 개 둬서 뭐해. 혼자서 캐릭터 두 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물음에 하린이 은근슬쩍 진성의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앞으로 내가 여기 와서 게임하게.”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경악에 찬 목소리.

“에엑…?!”

그것은 유현의 목소리였다.

“아니, 하린아. 그… 그러니까 진성이네 집에 매일 와서 게임하겠다고?”

당황한 것은 진성도 마찬가지였다.

“야, 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그… 렇게 매일 오고 그러면….”

하지만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하린이 진성의 코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럼 뭐 어때서. 네가 날 덮치기라도 할거야…?”

< (1). 파스칼 군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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