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뜻밖의 유명세 -1 >
* * *
LB소프트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던전 공략왕 이벤트.
이 이벤트의 순위는 LB소프트에서 정한 점수 산출 방식에 따라 정해진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전체 유저 추천 수. (300점 만점)
2. 유저 평가단 점수. (100점 만점)
3. LB소프트 심사위원 점수. (100점 만점)
총 500점 만점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공략 순으로 순위가 매겨지며, 평가단과 심사위원이 점수를 매기는 기준에는 공략의 실제 활용 가능성, 작성에 들어간 정성과 노력, 가독성 등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많은 점수가 배정되어있는 유저들의 추천수였다.
추천수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가장 추천수가 높은 공략글이 300점 만점이며, 그 아래로 1위 추천글 대비 추천수 비율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게 된다.
최근 한창 던전 공략에 재미를 붙인 민아는 이 공략왕 이벤트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공략작성이 아닌 공략글로 올라와있는 정보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괜찮은 정보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한국대학교의 가상현실과 1학년인 민아는 제법 고레벨의 유저였다.
그녀의 레벨은 이제 100대 초반.
다른 100레벨대의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포를란 던전이었다.
어제 처음으로 포를란 던전을 트라이했던 그녀는 다섯 번의 공략기회 모두 턱도 없이 부족한 기록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그것은 그녀의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함께 도전한 파트너도 그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이었기에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었다.
“최소 클리어 경험 한번이라도 생겨야 좀 괜찮은 파트너를 구할 수 있을 텐데… 공략왕 이벤트에 포를란 던전 공략들도 많이 올라왔겠지? 공략이라도 보면 좀 나아지려나….”
마침 공강시간이 제법 길게 비는지라, 민아는 과실에서 노트북을 펴고 이벤트 게시판에 올라온 공략들을 쭈욱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포를란 던전에 대한 공략들이 제일 많네. 여기가 제일 핫 하기는 하지.”
카일란이 나온지도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100레벨 전후의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초창기 유저들은 물론 후발주자들도 하드유저들은 다들 100레벨 이상이 된 시점인 것.
그렇기에 100~120레벨까지 필요한 무지막지한 경험치들 중 상당부분을 책임져 주는 포를란 던전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다.
“어디 볼까…?”
그렇게 공략의 제목들을 쭉 훑어보던 그녀의 눈에 눈에 띄게 자극적인(?) 제목이 들어왔다.
[제목 - 포를란 던전이 제일 쉬웠어요.]
[부제 - 클리어 랭킹 1위가 말하는 포를란 던전의 모든 것.]
[-15분 클리어 영상 첨부-]
“…? 15분 클리어 영상이라고?”
민아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랭킹 1위가 와서 던전 돌고 간 건가? 아니지, 이거 121레벨부턴 못 들어오는 던전인 걸로 아는데…?”
50분이라는 제한시간동안 세 번째 페이즈조차 구경해보지 못한 그녀로서는 15분이라는 기록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사실 그녀가 체감하기로는 15분이라는 기록은 랭킹 1위가 와도 불가능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민아의 마우스가 게시글의 제목을 향해 움직였다.
딸깍-
그리고 게시물에 들어가자마자 역시나 가장 궁금했던 ‘15분 클리어영상’ 이라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민아는 아래 내용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우선 클리어 영상부터 클릭했다.
“어디 한번 볼까?”
그런데 잠시 후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실수로 노트북의 사운드를 줄여놓지 않아 엄청나게 큰 소리가 과실에 울려퍼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포를란 영웅의 무덤’에 입장합니다.]
영상의 주인공이 던전에 입장하며 울려 퍼지는 시스템 메시지가 그대로 과실에 퍼져 버린 것.
민아는 당황해서 황급히 볼륨을 줄였지만, 이미 퍼져나간 소리를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엄습하는 민망함.
‘아, 이거 진짜 민망하네.’
하지만 그녀의 민망함과는 별개로 공강 시간이라 과실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그 소리를 듣고 민아의 자리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너무도 익숙한 카일란의 시스템 메시지!
“야, 이민아. 너도 카일란 했었냐?”
“그러게. 우리 과에 안하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동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다가오자, 민아는 멋쩍은 표정이 되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응 나도 카일란 하고 있지.”
“직업이 뭔데?”
“난 마법사.”
“오… 레벨은?”
“얼마 전에 세 자리 수 찍었어.”
“오올….”
의외로 높은 민아의 레벨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 정도의 고레벨 유저는 흔했기에 곧 그들의 관심은 노트북 안의 영상으로 돌아갔다.
“야 저거 영상 뭐야?”
“아, 이번에 공략왕 이벤트에 올라온 포를란 던전 공략영상인데, 랭킹1위가 올렸나봐. 15분 컷이래.”
그 말에 민아의 주위로 모였던 이들 중 유일하게 포를란 던전에 들어가 본 우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라고? 15분?”
“응.”
“그게 가능해?”
“나도 몰라. 지금부터 이거 보면 알겠지.”
다른 친구들은 포를란 던전을 경험해 본 일이 없었기에,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민아의 노트북 화면을 향했고, 곧 영상이 시작되었다.
“어? 얘들아 저기 저사람… 어디서 많이 본 얼굴 아니냐?”
“누구? 여자?”
“아니, 마법사 여자 말고 저 남자 소환술사.”
그 말에 민아의 시선이 소환술사를 향했다.
그리고 곧 그녀는 어디서 본 얼굴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 저거 진성이 아니야?”
“…?!”
“맞네, 박진성.”
“걔 맨날 강의실 맨 뒤에서 자는 애 맞지?”
“응 맞아.”
가상현실과의 인원은 한 학번 당 총 50명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기들은 대부분 서로 친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겉도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었는데, 가상현실과의 몇 안 되는 아웃사이더 중 한 사람이 진성이었던 것.
유현을 포함한 두셋 정도를 제외하고는 진성이 카일란을 플레이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동영상의 주인공이 같은 과 학생이라는 것까지 밝혀지자, 그들의 흥미도는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동영상이 플레이되는 15분 동안, 그들은 단 한순간도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 *
“뭐야, 또 퀘스트하러 간다고?”
“응. 제국퀘 하나 얻어걸려서.”
“….”
이안과 함께 영주성에서 밀린 내정을 처리하던 헤르스는, 제국 퀘스트 때문에 남부 대륙으로 내려간다는 이안의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야, 네가 영주잖아. 언제부턴가 내정 다 나한테 떠넘기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내가 영지에 도움 될 만한 것들 다 물어오잖아 인마. 올리버스 마을도 그렇고….”
틀린 부분 하나 없는 이안의 말에 헤르스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입맛을 다셨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안이 퀘스트 도중에 찾아낸 숨겨진 해안도시인 올리버스 마을은, 보면 볼수록 알토란같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등급은 ‘촌락’에 불과한데, 넓이는 어지간한 영지 이상으로 크고, 인구수, 치안도 등 많은 부분에서 오히려 로터스 영지를 상회하는 수치를 보유하고 있는 알짜배기 마을!
로터스 길드원들이 대거 투입되어 올리버스 마을과 로터스 영지의 우호도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곧 있으면 병합될 수 있을 것이었다.
“무튼, 좀 있다가 바로 남부 대륙으로 내려갈 생각이니까, 상의해야 할 부분 있으면 지금 다 얘기해 놓자.”
“뭐 당장 그런 건 없긴 한데….”
말꼬리를 흐리며 뭔가를 생각하던 헤르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시작이네?”
“뭐가?”
“그거 공략 왕 이벤트 있잖아.”
그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아까 시간 맞춰서 게시물 올렸어.”
헤르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몇 등… 이나 할 것 같아?”
그리고 이안은 피식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뭐 그런 걸 묻냐. 당연 1등이지.”
* * *
위이이잉-
잘 준비를 마치고 공략왕 이벤트에 올려놓은 게시물들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 진성은 뜬금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보며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어? 전화올 데가 없는데… 누구지?”
최근 들어 가끔 하린에게 전화가 오곤 하긴 했지만, 번호를 확인하니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진성은 잠시 고민했다.
“뭐 대출전화 이런 건가? 받지 말까?”
하지만 오랜만에 온 반가운(?) 전화를 그냥 무시하기엔 어쩐지 아쉬웠기 때문에 진성은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스팸 전화면 욕이나 찰지게 해줘야지.’
“여보세요?”
그리고 역시나, 전화 넘어로 무척이나 단아하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네, 안녕하세요. 박진성씨 맞으신가요?]
진성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역시 스팸전화인가?’
“네, 그런데요?”
스팸전화라 판단한 진성이 무슨 욕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 넘어로 의외의 내용이 들려왔다.
[아, 진성씨 맞으시군요. 그럼 카일란 플레이어 아이디가 ‘이안’ 맞으시죠?]
진성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진성은 헛기침을 한번 한 뒤 대답했다.
“크흠, 네. 제가 이안이 맞는데요, 무슨 일이죠?”
그러자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오…! 제가 잘 찾았네요. 반갑습니다, 전 유캐스트의 네임드 업로더인 소진 이라고 해요.]
“네…?”
[아, 평소에 유캐스트 잘 안 보시나 봐요?]
뭔가 약장수 같은 사람에게 말려드는 기분이 느껴지긴 했지만, 카일란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기에 진성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정했다.
“뭐, 가끔 보기는 하는데 그렇게 즐겨보지는 않아서요. 그런데 제게는 어떤 용건으로…?”
[다름이 아니구요, 진성씨가 몇 주 전에 보여줬던 1:30의 영지전 전투씬을 어떤 분이 직캠으로 찍어서 올리셨는데, 제가 그걸 재가공해서 다시 업로드 했었거든요.]
그녀의 말에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1:30 영지전이라면… 폴라리스 길드랑 했던 첫 경기 말하는 건가? 일단 무슨 용건인지나 들어봐야지.’
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그 영상으로 제법 큰 수익을 얻어서 진성씨에게도 어느 정도 입금해 드리려구요.]
“네…?”
그리고 소진이라 자신을 소개한 여자의 설명이 잠시동안 이어졌다.
10분 정도에 걸친 제법 자세한 설명이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촬영자로부터 저작권을 넘겨받았기 때문에, 굳이 진성의 몫을 챙겨주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진성과 계속해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주게 되었다.
자신과 전속계약을 맺고 계속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 라는 제안.
진성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유캐스트 영상 조횟수가 얼마나 나왔기에 제법 큰 수익을 얻었다는 거지?’
진성은 유캐스트의 수익구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소진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이번 영상으로 얻으신 소득 중에 제 몫으로 떨어지는 돈이 얼마나 되는데요?”
진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지 말이 없던 소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 이백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정도가 입금될 거예요. 전체 매출의 10% 정도죠.]
“…?!”
순간 벙찐 표정이 된 진성은 수화기를 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백만원이라고? 10%가 이백만원이면 영상 하나로 2천만원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는 거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익은 그 절반수준인 천 만원 정도였고, 매출이 이천만원이라는 이야기였지만, 그것만 해도 진성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잠시동안 진성이 말이 없자, 전화 넘어로 소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혹시 10%가 너무 짜다고 생각하시는 거면 당연해요. 이번이야 정식으로 진성씨와 계약을 맺고 작업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분배 비율이 적은 거구요, 본격적으로 저와 작업하시기 시작하면 한 30% 정도 까지는 진성씨의 몫으로 돌아갈 거예요. 제 몫이 한 20% 정도가 될 거고, 나머지가 제작비용과 유캐스트에 떼이는 비용이죠.]
하지만 소진의 걱정과 다르게 진성은 생각지도 못한 수익에 행복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카일란의 최상위권 플레이어인 진성에게 이백만원이 큰 돈은 아니었지만, 고작 영상 하나 올려놓은 것으로 이 정도의 돈이 들어올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그냥 게임만 했을 뿐인데 공돈이 200만원이나 생긴 게 아닌가?
“그럼 제가 소진님이랑 계약하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건가요?”
긍정적인 진성의 반응에, 소진이 잽싸게 대답했다.
[진성씨는 앞으로 게임 플레이하실 때, 항상 캡슐에 내장되어있는 플레이어 캠을 활성화시키고 게임하시면 돼요. 일주일 단위로 캠 영상을 제게 전송해 주시면 제가 편집해서 유캐스트에 업로드 할 거예요. 진성씨 이름으로 유캐스트 페이지도 하나 개설될 거구요.]
진성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난 손해볼 게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
일주일에 한번 파일 전송하는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 외에는 게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소진의 말이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영상을 계속 업로드하면, 제 생각에 매 달 500만원 정도는 가져가실 수 있으실 거예요. 물론 이것도 최소치로 잡은 겁니다. 앞으로 진성씨가 더 유명한 플레이어가 된다면 수익이 더 커질 여지도 분명히 있어요.]
진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진성이 기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거면 평생 게임만 하면서 살 수도 있겠어!’
물론 게임 내에서 획득한 아이템과 재화들을 팔아도 제법 큰 돈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진성은 씀씀이가 무척이나 큰 편이었고, 돈이 모이는 족족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거나 게임 내 컨텐츠를 이용하는데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소진의 이러한 제안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그녀의 제안을 수락해 버리려던 진성은 잠시 멈칫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지만 이 한통화로 모든 걸 결정해버릴 순 없지.’
진성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흠, 좋습니다. 지금 당장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그럼 만나서 계약조건 같은 걸 자세히 좀 들어보고 싶은데요.”
그리고 소진의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부탁하고 싶었어요. 시간 언제가 괜찮으세요 진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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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뜻밖의 유명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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