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21화 (150/1,027)

< (7). 라이의 활약 -2 >

*          *          *

“이안님, 오늘 자신만만한데요?”

포를란 던전 앞에 선 두 사람.

피올란의 말에 이안은 씨익 웃어 보였다.

“믿는 구석이 생겼거든요.”

“믿는 구석이요?”

피올란은 이안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네. 후후….”

“뭔데요?”

“그건 들어가서 보여드리도록 하죠.”

이안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클리어 랭킹의 목록을 한번 확인해 보았다.

오랜만에 온 포를란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세워진 기록들이 궁금했던 것이었다.

‘어디, 내 기록 깬 사람은 나왔으려나?’

그리고 기록을 확인한 이안은 여유만만한 표정이 되었다.

예전처럼 랭킹창 전체가 이안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1위에는 여전히 이안과 피올란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2위랑 3분 가까이 차이가 나네. 오늘 아주 제대로 차이 벌려줘야지.’

이안은 피올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 다섯 판 연달아 가능 하시죠?”

그 말에 피올란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안님 독점해 보겠어요.”

말을 하며 찡긋해 보이는 피올란.

이안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야에 던전의 입장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포를란 영웅의 무덤’ 던전에 입장합니다.]

*          *          *

이안과 피올란은 포를란 던전을 한두 번 돌아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지금껏 수없이 많은 사냥에서 손발을 맞춰본 사이.

이안과 피올란은 현재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파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작부터 능숙하게 움직였다.

이안은 이전처럼 할리를 이용해 빠르게 협곡을 뚫고 들어가 메인 페이즈가 진행되는 홀까지 이동했고, 피올란은 공간이동을 이용해 이안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이안이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하는 순간, 피올란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크르르-

외형이 완벽히 달라져 있는 라이를 발견한 것.

“이안님, 라이… 진화한 거예요?”

이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 퀘스트 하고 진화했어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이안은 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이야, 다 쓸어 버리자.”

[알겠다 주인.]

첫 번째 페이즈인 협곡의 몬스터들은 예전처럼 레이크와 핀의 협공으로 순식간에 쓸어 담았다.

좁은 협곡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광역스킬을 이용해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것.

하지만 이전에는 이렇게 광역스킬들을 전부 사용하고 나면,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기 전까지 사냥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안은 이 구간을 라이에게 맡기려는 것이었다.

아우우-!

라이의 하울링이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소환수 ‘라이’가 고유능력 ‘펜리르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모든 전투능력치가 50%만큼 상승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치명타 확률이 30%만큼 상승합니다.]

라이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하얀 불길이 더욱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자마자 라이가 날뛰기 시작했다.

“이안님, 전처럼 저는 영웅의 성소 보호하면 되는 건가요?”

피올란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싸우시면 되요. 성소 생각하지 마시고 딜 넣으세요. 어차피 여기까지 접근도 못 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안의 말 대로였다.

라이는 마치 어린아이 상대하듯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럼 빙하의 장막만 사용해 놓을게요.”

“오케이!”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능력치를 가진 라이가 모든 전투능력이 50%만큼 상승하자, 그야말로 괴물 같은 전투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촤아악-!

라이의 커다란 앞발이 그어질 때 마다 생명력이 약한 가고일 같은 몬스터들은 그대로 즉사했다.

[소환수 ‘라이’가 스노우 가고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노우 가고일’의 생명력이 20795 감소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공격이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고유능력 ‘펜리르의 분노’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5초만큼 감소합니다.]

[‘스노우 가고일’을 처치했습니다.]

펜리르의 분노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0분이었다.

그리고 지속시간은 3분.

그렇다면 지속시간이 끝나면 7분동안은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지만, 펜리르의 분노에 붙어있는 ‘치명타시 재사용대기시간 5초 회복’ 이라는 부가효과 덕에 3분의 시간이면 거의 모든 재사용대기시간을 회복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한 능력이라는 이야기.

“라이야, 어둠잠식은 있다가 보스 나오면 쓰자.”

[그러도록 하겠다, 주인.]

라이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이안의 다른 소환수들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라이를 제외한 소환수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제 레벨이 많이 올라 110레벨 가까이 도달한 핀의 전투력이었다.

핀은 자신도 전설등급의 소환수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었다.

‘이러면 몰아서 잡을 필요도 없잖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순식간에 두 번째 페이즈까지 정리한 이안.

피올란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저 스킬 세 개도 캐스팅 못했는데 두 번째 페이즈가 끝났네요?”

10분도 채 되기 전에 끝나버린 두 번째 페이즈.

기록을 확인한 이안도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00:08:15]

“여기서 줄인 시간만 3분이 넘네요. 원래 하던 대로만 해도 S등급은 충분할 듯 한데요?”

이안의 말 대로였다.

피올란과 처음 도전했을 때 두 번째 페이즈까지의 기록이 13분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였다.

“허얼… 이러다가 20분 찍는 거 아니에요?”

S등급 클리어의 제한시간은 25분.

하지만 이 기세로 계속 시간을 줄인다면 20분 이하로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이안은 씨익 웃어보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번 해 볼까요?”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세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

[‘증오의 거인’들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안은 생각을 정리했다.

‘원래는 할리의 무한스턴에 의존했던 페이즈 이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점사로 하나씩 녹이면 되겠어.’

워낙 강력해진 소환수들의 공격력 덕분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거인들이 등장하자마자, 이안은 세 놈 중 생명력이 가장 약한 오른쪽의 거인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떡대, 어비스홀로 나머지 두 놈을 잠시 묶어!”

드르륵-!

이안의 말에 떡대는 움직여 아껴 두었던 어비스 홀을 사용했고, 둘은 정확히 어비스홀의 범위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피올란님, 단일 공격마법 중에 제일 강한 걸로!”

“넷!”

일반 몬스터였더라면 제법 긴 시간 묶어둘 수 있을 테지만, 셋의 거인들은 준 보스급의 몬스터였기 때문에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서 금방 풀어질 것이었다.

이안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공격을 퍼부었다.

쾅- 콰쾅-!

진화한 라이와, 레벨이 많이 오른 핀.

그리고 전체적으로 소환수 전용 아이템까지 착용하여 비약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한 이안의 소환수들은 순식간에 거인 하나를 제거해 버렸다.

쿵-

[‘증오의 거인(야크람)’을 처치하셨습니다.]

그에 맞춰 떡대의 어비스홀이 터졌고, 이안은 재빨리 가장 위협적인 중앙의 거대한 거인을 향해 포커싱을 바꾸었다.

“이안님! 옆으로!”

피올란의 말에 몸을 피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광역마법에 잘못 맞으면 아군이라도 제법 커다란 피해를 입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피올란의 빙계마법이 거인들을 정확히 강타했고, 마법의 발동이 끝나자 가장 앞쪽에 있던 라이가 기다렸다는 듯,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촤라락-!

5m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들어간 라이는 거인의 가드를 뚫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라이의 길다란 발톱이 거인의 복부에 틀어박히자, 거인은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

그리고 다음 순간 내려쳐지는 거인의 오른손.

그 궤적에 라이가 노출되자 이안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라이야, 오른쪽!”

이안은 라이에게 공격을 피하라는 의미에서 명령을 한 것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라이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팔을 들어 거인의 공격을 막는 라이!

[소환수 ‘라이’가 증오의 거인(카라한)에게 공격당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라이’의 생명력이 15892만큼 감소합니다.]

막긴 했지만, 애초에 방어력 자체가 높은 편이 아닌 라이는 적잖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이안은 당황했다.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맞아준 거지?’

하지만 의문은 잠시.

이어지는 라이의 다음 공격을 보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라이가 두 세 번의 연속공격으로 방금 입은 피해를 순식간에 전부 다 회복해 버린 것이었다.

고유능력 ‘흡혈’의 위력이었다.

‘내가 흡혈을 잊고 있었네…. 하긴 방금의 경우에는 피한다고 뒤로 빠졌으면 적잖이 딜로스가 생겼을 테니까. 라이의 판단이 맞지.’

그렇게 이안과 피올란의 파티는 세 번째 페이즈까지도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다.

[증오의 거인들을 모두 처치하셨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피올란과 이안의 시선이 다시 경과시간을 향해 움직였다.

[00:14:29]

피올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록이 가능한 거였다니….”

이제는 S등급은 일도 아닌 상황.

반쯤 농담으로 말했던 20분 클리어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전의 끝에서 포를란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천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포를란의 영웅이 깨어납니다.]

*          *          *

드르르르륵-

밀가루 반죽용 기계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실습실.

하린은 베이킹 클래스의 과제를 하기 위해 열심히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실습실에는 하린과 그녀의 단짝친구인 예정이 함께 있었다.

“하린아, 거의 다 되가?”

“응. 이제 틀에 부어서 오븐에 돌리기만 하면 돼. 너는?”

예정은 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빙긋 웃었다.

“나는 끝났지롱!”

“어어, 벌써?”

“응? 벌써라니. 네가 늦은 거야.”

오븐에서 자신의 빵들을 꺼낸 예정은 보기 좋게 포장을 한 뒤, 하린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하린의 실습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머핀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야, 이러니까 늦지.”

“뭐가.”

“거의 내 두 배는 만들었네. 뭐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누구 주려고?”

예정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하린이 머뭇거리자 장난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뭐야, 진짜 누구 줄 사람이라도 있나본데?”

당황한 하린은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뭐 아니야. 딱 보니 그렇구만. 요게… 남자친구 언제 만들었대? 어떻게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예정을 보며, 하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예정아… 사실 나 고민이 좀 있어.”

의외의 전개에 살짝 당황한 예정은 멈칫 하며 하린의 옆에 의자를 빼어 자리에 앉았다.

“고민? 무슨 고민인데?”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하린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린의 고민은 다른 것이 아니고 진성과의 어정쩡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한참을 하린의 이야기를 듣던 예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진성이면… 그 저번에 점심 같이 먹었던 그 가상현실과 남자애? 걔랑 사귄다구?”

그에 하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귀엽기 그지없는 하린의 모습에, 예정은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야, 이 바보야. 그게 어떻게 사귀는 거야. 아무리 봐도 아직 사귀는 건 아닌데.”

그 말에 하린은 더욱 울상이 되었다.

“그… 런가? 그럼 어떻게 해?”

예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우리 하린이 진짜 얼굴 값 못하네. 내가 너같이 생겼으면 지금보다 한 세배는 더 방탕하게 살았겠다, 이것아.”

그 말에 하린이 예정을 째려보았다.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괜찮은 생각 있으면 얘기 좀 해봐 이예정.”

사실 예정도 못난 외모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하린에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숙맥에 가까운 하린과는 다르게 연애도 제법 많이 해본 그녀였기에, 하린은 은근히 예정이 괜찮은 해결책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음… 괜찮은 생각이라….”

잠시 뜸을 들이던 예정이 말을 이었다.

“하굣길에 춥다고 손 좀 잡아 달라 해.”

“뭐? 지금 10월인데?”

“10월이 대수냐. 한여름이라도 난 할 수 있다.”

“안 돼. 그건.”

“왜?”

하린이 얼굴을 붉혔다.

“부끄… 럽잖아.”

“….”

잠시 말을 잃었던 예정이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때?”

“말해봐.”

“공포영화 같은 거 보러가서 무서운 장면 나오면 확 끌어안아 버리는 거야.”

“…더 어렵잖아….”

이런 저런 제안을 몇 가지 더 하다 지친 예정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내가 얘기 들어보니까, 그 진성이라는 애. 이제 막 대학교 들어와서 연애도 한 번 못 해본게 분명해.”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럴 거야.”

“게다가 분명히 중고등학교도 남중남고 나왔을 걸?”

하린의 눈이 좀 더 커졌다.

“어, 어떻게 알았어?”

예전에 진성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었던 것.

당황하는 하린에게 예정은 으쓱 하며 말을 이었다.

“그야 척하면 척이지. 아무튼 더 고통 받고 싶지 않으면 네가 먼저 들이대. 내가 말해준 대로 하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

자신감 있게 말하는 예정.

반면 하린은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 차이는 거 아닐까?”

그 말에 예정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정도로 예쁜 애가 그렇게 들이대는데 싫다는 남자가 어딨겠냐?”

“그래도….”

“걔가 고자가 아니고서야 무조건 성공이야.”

하린은 불현 듯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혹시 진성이… 고자는 아니겠지…?’

*          *          *

< (7). 라이의 활약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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