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어둠의 제왕 -3 >
[소환수 ‘라이’를 소환해제할 수 없습니다.]
당황해서 멍한 표정이 되어버린 이안.
그리고 그렇게 두 마리의 늑대가 허공에서 뒤엉켰다.
콰앙-!
[소환수 ‘라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라이’의 생명력이 26794만큼 감소합니다.]
물론 오르빌도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라이도 필사적으로 물어뜯었으니까.
하지만 오르빌이 죽음에 이를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라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후우, 라이야 왜 그랬니… 이래봐야 어차피 못 이기는데 말이야.”
이안은 괜히 눈물도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어차피 게임 속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라이의 충성심이 제법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무함이 급격히 몰려왔다.
‘음, 그런데 왜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안 뜨지?’
라이의 남은 생명력은 분명 0.
붉은 갈기도 전부 잿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사망했음이 분명한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안이 의아함을 느끼고 있던 그 때.
사망을 알리는 메시지 대신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블러디홀’의 숨겨진 기운이 개방됩니다.]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블러디홀 이라면… 블러디 펜리르 샬로스 에게서 받은 부적이었던 것 같은데.’
샬로스가 핏빛 혈족의 상징이라 했던 그 아이템.
이안은 의외의 상황에 기대감 어린 표정이 되었다.
[소환수 ‘라이’의 생명력이 블러디 홀의 힘에 의해 채워집니다.]
크르르-
그리고 사망한 줄만 알았던 라이의 몸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리고 잿빛으로 물들어 있던 라이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안이 전에도 많이 봐 왔던 장면이었다.
‘설마…!’
이안은 서둘러 라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금빛으로 떠올라 있는 한 줄의 글귀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진화 중.]
이안은 멀찍이 선 채로 라이를 응시하는 오르빌을 불안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런데 진화하는 도중에 공격받아서 죽거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충분히 걱정될만한 상황.
하지만 왜인지, 오르빌은 움직이지 않고 초점 없는 눈으로 라이가 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긴장된 상황이 이어지고.
곧 떠오른 라이의 몸이 환하게 빛나며 사방으로 빛이 폭사되었다.
[핏빛 갈기 늑대, ‘라이’ 가 블러디 펜리르로 진화했습니다.]
아우우-!
붉은 빛이 온 몸에 휘감긴 라이가, 허공을 향해 하울링을 하며 오르빌을 노려보았다.
라이의 이름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일등급을 안 거치고 바로 영웅등급으로 진화하다니…!’
이안은 감격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정보창을 열어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 볼 시간은 없었지만, 라이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만 보아도, 충분히 그 강력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
다가오는 라이를 발견한 오르빌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더욱 흉포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샬로스… 샬로스인가….]
오르빌의 입이 처음으로 열리며 낮게 긁히는 칼칼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라이의 입에서도 늑대의 울음소리가 아닌 이안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이 흘러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샬로스가 아니다 형제여….]
캬아오-!
그리고 라이의 말에, 오르빌의 안광이 시퍼렇게 폭사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어라!]
타탓-!
오르빌이 순식간에 라이를 향해 거리를 좁혀 왔다.
하지만 라이 또한 피하는 대신, 으르렁거리며 오르빌에 맞서기 시작했다.
쾅- 콰쾅-!
늑대들의 앞발이 만들어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폭음이 울려퍼졌고, 이안의 두 눈은 휘둥그래졌다.
‘아니, 라이가 아무리 진화를 했다고 해도… 영웅등급일 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거지?’
떠오르는 시스템메시지에 보이는 피해량이나 전투능력이 핀이나 할리도 월등히 상회할 수준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곧 라이의 상태창에 띄워져 있는 버프아이콘을 보고 깨달았다.
[버프 / 펜리르의 제단 : 모든 전투능력치 +150%]
그제야 말도 안 되게 강력했던 오르빌의 능력치도 설명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만 펜리르에 한해서 걸리는 버프인가보네.’
상황이 이해가 된 이안은 핀과 할리에게도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핀, 할리! 라이를 도와!”
동등하게 버프를 받은 상황이었고, 라이와 오르빌 모두 펜리르. 게다가 레벨도 같았지만 어쨌든 오르빌이 라이에 비해 한 등급 높은 전설등급이었기 때문에 라이가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할리와 핀까지 가세하자 기세등등하던 오르빌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크으… 이럴수가….]
어느새 오르빌의 생명력은 거의 다 깎여 나갔고, 그 증거로 오르빌의 이름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일족의 절대자가 광기에 사로잡힌 한심한 녀석이라니,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라이의 두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소환수 ‘라이’가 고유능력 ‘피의 심판’을 사용합니다.]
[라이의 생명력이 낮아질수록 모든 능력치가 강화되며, 생명력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적에게 입힌 모든 피해의 50%를 회복합니다.]
[‘피의 심판’은 5분 동안 지속됩니다.]
쾅- 콰쾅-!
이안조차도 알지 못하는 라이의 새로운 고유능력.
그리고 세 소환수의 합공에 오르빌은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쿵-
[‘다크 펜리르 오르빌’을 처치했습니다. 1127423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 이안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진짜 장난 아니네. 이번엔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안은 진이 빠졌는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오르빌의 사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다크 펜리르 오르빌’ 로부터 87886골드를 획득합니다.]
[‘다크 펜리르의 대검’을 획득합니다.]
[‘펜리르의 원혼’을 획득합니다.]
“어어…?”
획득한 아이템 목록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다크 펜리르의 대검 이라는 이름의 아이템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이템 이름이 붉은색이잖아?”
아이템 이름의 색상은 그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붉은 색은 이안이 머리에 쓰고 있는 전설등급의 아이템인 머리장식과 같은 색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안은 아이템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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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펜리르의 대검 -
분류 - 양손 검
등급 - 전설
착용제한 - 힘 650 이상
‘전사’ 클래스만 착용 가능
공격력 - 2585~3730
내구도 - 175/175
옵션 - 모든 전투 능력치 +85%
민첩 +5
고유능력
* 어둠방출
공격시 30%의 확률로 사방 5m의 범위에 어둠을 방출한다. 방출된 어둠은 적들에게 공격력의 250%만큼의 피해를 입히며, 3초간 방어력을 30% 하락시킨다.
* 씻을 수 없는 상처
다크 펜리르의 대검에 입은 피해 중 10%만큼은 30분간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 계정 귀속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랍되지 않는다.
전설의 펜리르의 원혼이 담긴 대검이다.
강인한 전사의 손에 쥐여진다면 무엇이든 베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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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저 웃음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의 옵션.
그런데 문제는 이안이 착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라는 점이었다.
‘하… 전사클래스 전용 아이템이라니….’
게다가 계정귀속 옵션 때문에 팔아버릴 수도 없는 상황.
‘전설 등급 아이템들은 거의 계정귀속으로 떨어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네. 그래도 뭐, 어떻게든 쓸 일이 있겠지.’
이안은 일단 아쉬움은 뒤로 한 채, 펜리르의 원혼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샬로스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광기에 사로잡힌 ‘펜리르의 원혼’을 해방시켰습니다.]
이안의 손을 벗어난 시커먼 구슬은 허공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샬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안의 앞에 반투명한 형체를 지닌 하나의 유령이 두둥실 떠올랐다.
샬로스의 원혼이 울긋불긋한 색상이었다면, 오르빌의 원혼은 회백색을 띄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달랐다.
[고맙다 인간.]
오르빌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오르빌의 말이 이어졌다.
[날 광기의 속박으로부터 구해낸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군.]
그리고 그의 시선이 이안의 곁에 서있는 라이를 향해 옮겨졌다.
[너는… 피의 일족…. 샬로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녀석인가.]
라이가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그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오르빌은 라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그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너는… 강하군. 어쩌면 과거의 샬로스보다 더.]
두 펜리르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투지를 불태우는 라이의 모습에, 오르빌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후후… 좋아. 피의 일족이라면 그정도의 투기는 가지고 있어야지.]
오르빌은 이안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 그대의 이름은 뭔가.]
라이가 말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이던 이안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나는 이안이다.”
[그렇군. 이안, 덕분에 내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고맙다.]
“별 말씀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안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오르빌을 응시했다.
‘이미 라이는 진화시켰으니까… 이놈한테 뭘 받아낼 수 있으려나?’
그리고 오르빌이 건넨 것은, 샬로스가 이안에게 건네었던, 그리고 라이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물건과 비슷하게 생긴 구체였다.
[‘다크 홀’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안이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오르빌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우리 어둠의 일족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보아하니 샬로스에게서 피의 일족의 물건은 이미 받은 모양이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오르빌은 멀뚱히 서 있는 라이를 응시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어쩌면… 100년만에 진정한 의미에서 일족의 절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오르빌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곳에는 새하얗고 동그란 물체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저게 뭐지?”
[보면 안다 인간.]
그 둥근 물체는 조금씩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사이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그 둥근 구체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오….”
시간은 아직 오후 1시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르빌 덕에 아직까지 하늘은 어두웠고, 그 시커먼 하늘 위에 떠있는 하얀 물체는 마치 새하얀 보름달을 연상시켰다.
[100년만에 세 가지 힘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군.]
아직까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멀뚱한 표정으로 오르빌을 응시했고, 오르빌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뭐지?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데?’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옆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의 하울링이 울려퍼졌다.
아우우-!!
화들짝 놀란 이안은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하얀 빛을 사방으로 내뿜기 시작한 라이가 서 있었다.
[난,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녀석은 진짜가 되겠어.]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오르빌.
그리고 하늘에 떠오른 하얀 구체에서 라이를 향해 강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어…!”
그 눈부신 빛에 이안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얇게 떠진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어왔다.
[블러디 펜리르(Bloody Fenrir), ‘라이’ 가 소버린 펜리르(Sovereign Fenrir) 로 진화했습니다.]
< (6). 어둠의 제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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