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어둠의 제왕 -1 >
* * *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올리버스 마을로 돌아온 이안은 곧바로 이카엘의 집을 찾았다.
이카엘은 돌아온 이안을 반갑게 맞았다.
“그래, 확실히 준비는 끝난 것 같군.”
라이의 이마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한 이카엘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한 것 같습니다.”
이안의 말에 이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네, 이안. 이제 오르빌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줘야겠지.”
이카엘은 잠시 뜸을 들였고, 이안은 가만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오르빌은 월광의 봉우리 꼭대기에 봉인되어 있다네.”
“월광의 봉우리요?”
“그렇다네. 월광의 봉우리는 포를라스 고원의 최남단에 있지.”
잠시 뜸을 들인 이카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봉우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뾰족하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를 본 적이 없는가?”
“음….”
이안은 대충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
하린의 요리재료 때문에 포를라스 고원은 이미 지리가 빠삭했던 것.
‘지난번에 하린이랑 올라가보려다가 길이 없어서 되돌아왔던… 그곳인 것 같은데….’
물론 그리핀을 타면 올라갈 수 있지만, 그때는 그 위에 그렇게까지 해서 올라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었던 것이다.
“그럼 거기 가면 오르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이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잠시 기다리게.”
말을 한 이카엘은 품 속에서 희미한 빛을 품고 있는 작은 조약돌 하나를 꺼내어 이안에게 건네었다.
“봉우리에 올라가 꼭대기에 있는 공터 중앙에 가면, 자네 허리 정도 높이의 작은 제단이 있다네. 그 가운데 이 돌을 끼우면 봉우리 전체에 걸려 있던 결계가 해제될 거야.”
이안은 이카엘에게서 하얀 조약돌을 받아들었다.
특이한 것은, 조약돌에서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거기 올라갈 방법은 있는가? 벽을 타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텐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핀이 있었다.
“네. 제게 방법이 있으니 그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 좋아.”
“그건 그렇고 혹시 주의할 점이 있나요?”
“음… 주의할 점이라….”
이카엘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일단 첫 번째는, 최대한 빨리 가야한다는 것일세.”
“네?”
이카엘은 하늘을 가리켰다.
저녁이었기에 중천에 덩그라니 걸려있는 둥근 달이 보였다.
“이틀 뒤가 만월이기 때문일세. 만월이 되면 오르빌의 모든 능력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한다네.”
“…그렇군요.”
그냥 상대해도 버거운 상대임이 분명한데, 무려 두 배의 능력치상승이라니.
‘그 전에 무조건 끝내야겠네.’
이카엘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바로 가지는 말고, 내일 아침 해가 뜨거든 가시게.”
“밤이 되어도 힘이 강해지나 보네요.”
이안의 짐작에 이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능력치가 밤에 더 강력해지는 것은 아니네만, 그에게는 어둠 속에서만 쓸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 있어. 가능한 낮에 상대하도록 하게.”
“그 능력이란 게 뭔가요?”
“‘어둠잠식’ 이라고 온 몸이 시커먼 안개로 변하는 능력일세. 오르빌이 어둠잠식 상태가 되면, 모든 공격의 70%를 무효화시키지.”
“아….”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속시간이 얼마나 긴지는 몰라도… 이거 사기 스킬이잖아? 어디서 구할 수 없나. 어둠잠식인지 뭔지….’
이후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더 들은 이안은 일단 포를라스 고원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 바로 상대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 위치 바로 앞까지 가서 로그아웃해 놓고, 내일 아침에 접속해서 곧바로 트라이할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오르빌인지 뭔지, 후딱 잡아버려야지.’
* * *
“뭐? 축제?”
“그래, 축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의아한 표정으로 멀뚱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진성을 보며, 유현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무슨 상관이긴 인마, 너는 우리학교 학생 아니냐?”
진성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거 필참이야? 내가 지금 수업 듣는 시간도 아까운데 그런 것 까지 참가해야겠냐.”
진성의 불평에 유현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어쩌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진성이는 무조건 참가시켜야 하는데….’
축제는 3일 동안 진행되며, 여러 가지 일정이 있었지만, 진성을 필요로 하는 행사가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 번째 날 체육대회 때 열리는 E-스포츠 대회.
E-스포츠 대회에서는 총 열 종류나 되는 게임종목의 과별 순위를 가려 최종 점수에 따라 시상식이 열리게 되는데, 그 상금과 특전이 제법 컸다.
‘꼭 상금이 아니더라도… 교수님들 기대도 꽤 크시고….’
과가 생긴 첫 해인 만큼, 교수들은 축제를 통해서 학교에 가상현실과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것이었다.
유현은 진성을 차근차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축제 둘째 날 e-스포츠 대회를 하는데, 거기서 우승하면 다음 학기 장학금도 일부 나오고… ”
그렇게 십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길고 집요한 유현의 설득에 진성은 결국 둘째 날만 축제에 오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e스포츠 대회는 좀 흥미가 동하니까….’
설명을 들어 보니, 카일란을 포함 열 가지 종목 중에, 진성이 플레이해보지 않은 게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진성은 과거 추억 속의 게임들도 오랜만에 해 볼 겸, 유현의 제안을 승낙했다.
막상 좋게 생각하고 나니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 * *
“이 정도면 어둠은 전부 걷혔다고 봐도 되겠지?”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집으로 달려와 카일란에 접속한 이안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였고, 하늘에는 이미 해가 중천까지 떠 있었다.
“좋아.”
이안은 소환수들 중 우선 핀만을 소환했다.
“핀, 소환!”
꾸룩- 꾹꾹-!
소환된 핀이 반갑게 이안의 앞으로 날아와 앉았다.
이제는 덩치가 이안보다도 더 커져서, 어께에 앉는다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이안은 여전히 핀이 귀여웠다.
“핀아, 저 위로 날 좀 데려다 줘.”
꾸룩-!
이안이 등 위에 올라타자, 핀은 조심스레 날갯짓을 시작했다.
펄럭- 펄럭-
핀의 등 위에 타는 것은 아직까지 숙련이 덜 되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안정된 자세였다.
“핀아 속도 조금만 더 내볼래?”
이안의 말에 핀은 기다렸다는 듯, 날갯짓을 조금씩 빠르게 하기 시작했다.
“읍!”
이안은 순간적으로 전면에서 날아드는 강풍에, 재빨리 자세를 낮추었다.
‘후, 핀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니까 진짜 빠르구나.’
역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낙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높이에선 떨어지면 바로 낙사겠지….’
이안은 몸의 균형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핀의 등 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렸했다.
그리고 잠시 후, 까마득히 높은 봉우리 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밑에서 볼땐 엄청 뾰족해 보였는데… 그래도 올라오니 공간이 제법 넓네. 다행이야.”
소환수를 여럿 부려야 하는 이안의 입장에서는 공간이 좁을수록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탈하면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인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이안은 모든 소환수들을 전부 다 소환했다.
그리고 품 속에서 이카엘에게서 받은 조약돌을 꺼내었다.
‘이게 결계를 해제하는 열쇄란 말이지…?’
이안은 성큼성큼 공터의 중앙을 향해 다가갔다.
그 곳에는 이카엘이 말했던 것처럼, 낮은 높이의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다가가서 그 위를 확인하자마자, 이안은 조약돌이 들어갈 자리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겠지?’
작고 둥근 홈 같은 곳에 올려놓자, 조약돌은 데굴데굴 굴러서 제단 가운데의 나선형 홀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그긍-!
제단 안쪽에서 기계음 같은 것이 울려퍼지자, 이안은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당황한 표저이 되었다.
“음…?”
그런데 그 때.
제단 안쪽에서 새하얀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포를라스 어둠의 결계가 발동합니다.]
우우웅-!
‘뭐지? 결계가 해제된 게 아니라 발동되었다고?’
뭔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다들 전투준비…!”
그러나 다음 순간.
생각지도 못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이안의 발 밑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
“이게 뭐야…?!”
그리고 높게 솟은 봉우리가 아래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쿵- 쿠궁!
이안은 일단 떡대를 소환해제 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나 레이크, 할리 등은 무너지는 바위들을 이리저리 타고 다니면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떡대의 경우에는 그러기에 민첩성이 너무 낮을뿐더러, 덩치도 너무 컸다.
“떡대 소환해제!”
떡대를 소환해제한 이안은 서둘러 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무너지는 제단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소환수들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실수로 추락이라도 할 것 같으면 바로 소환해제 하기 위해서였다.
콰앙- 쾅-!
거대한 봉우리가 무너져 내리자 엄청난 굉음과 먼지구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안은 그 와중에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계가 해제되었으니, 분명 오르빌이 어디선가 나타날 거야…!’
핀의 등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인 상황.
이안은 결국 할리나 라이와 같이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해 바윗덩이 사이로 추락하는 레이크까지 소환해제 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큰일이네. 떡대랑 레이크 없이 오르빌이랑 싸워야 한다니….’
그리고 십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부 다 무너져 버린 봉우리는 돌 무더기가 되어 거대한 언덕이 되었다.
“핀, 내려줘.”
그리고 이안도 핀의 등 위에서 내려와 돌 무더기 위에 발을 디뎠다.
‘아니 근데 오르빌은 대체 언제 나온다는 거야?’
그런데 그 때.
우우웅-!
기이한 공명음이 울려퍼지며, 돌 무더기의 중앙으로 엄청난 힘의 보랏빛 빛줄기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아아-
‘…?!’
이안은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방에서 빨려드는 빛줄기들은 마치 유성우같이 거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여든 빛줄기들은 바위 무더기 한 가운데에 모여 커다란 구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커다란 빛의 구체 안에 희미하게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오르빌…?’
이안이 안력을 돋워 빛 속의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그 때.
커다란 굉음을 내며 빛 줄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콰앙-!!!
폭발로 인해 사방으로 비산하는 바윗덩어리들이 이안과 소환수들과 연속해서 충돌했다.
[커다란 충격을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970만큼 감소합니다.]
[커다란 충격을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225만큼 감소합니다.]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생명력이 깎여 나가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기랄, 뭐 이래?!’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우우-!!
돌 무더기가 터져 나온 자리에 둥 둥 떠오른 거대한 그림자.
오르빌의 포효가 허공에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퍼엉-!
[‘다크 펜리르 오르빌’이 고유능력 ‘어둠방출’을 사용합니다.]
[‘어둠방출’에 당해 생명력이 6718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니, 이게 무슨 미친 데미지야?!”
단 한방에 빈사상태가 된 라이.
할리와 핀은 라이만큼 종이 몸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 반 이상의 생명력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세상이, 어둠 속에 잠식됩니다.]
< (6). 어둠의 제왕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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