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초보 역술가 -2 >
* * *
“뭐? 던전 공략 왕?”
“응. 그렇다니까? 이건 내가볼 때 완벽히 너를 위한 이벤트라고. 박진성 저격이야.”
유현의 말에 옆에 있던 하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나도 유현이랑 같은 생각! 진성이 너 포를란 던전 최고기록 보유자잖아. 포를란 던전이 가장 인기있는 던전 중 하나니까, 네가 공략 쓰면 무조건 일등 할 것 같은데?”
사실 두 사람이 열심히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진성의 두 눈은 이미 이벤트 내용이 설명되어있는 홈페이지 안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공지사항을 읽어 내려가는 진성을 보며 유현이 피식 웃었다.
“어때. 확실히 끌리지?”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런데 이거 기한이… 이제 10일 정도 남은건가? 맞지?”
진성의 말에 유현이 대답했다.
“응, 맞아.”
“흐음….”
갑자기 생각에 잠긴 진성을 보며 유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성아 혹시 지금 뭐 중요한 퀘스트 하던 거라도 있어?”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의 진화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퀘스트였으니,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은 더욱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오래 걸리는 퀘스트야? 공략 제대로 작성하려면 최소 3일은 잡아야 할 텐데….”
유현이 불안해하던 말던 진성은 속으로 퀘스트에 소요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오르빌을 잡기만 하면 되는 거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지. 하지만 또 무슨 연계 퀘스트가 있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데….’
하지만 그렇다고 최신형 캡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최신형 캡슐의 각종 편리한 기능보다도, 이안이 가장 원하는 건 2%의 추가 싱크로율이었다.
그게 이안의 사냥효율을 더 올려줄 것이었으니까.
이안은 중간에 퀘스트를 잠시 중단하더라도 공략왕 이벤트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정지었다.
“그래, 최신형캡슐은 나도 탐나던 거니까…. 무조건 하긴 해야겠어.”
긍정적인 대답에 유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피올란님이 너 퀘스트 끝내고 돌아오면 공략이벤트 참여하는 김에 S클래스 클리어도 트라이해 보자고 그러더라고. 어때, 가능하겠어?”
“음…. 확실히 포를란 던전 S클래스 클리어 영상을 첨부한다면 승산이 훨씬 높아지긴 할 것 같네.”
이안과 피올란의 최대 기록은 26~7분 정도였다.
포를란 던전의 S등급 컷은 25분.
고작 2분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였지만, 클리어 속도를 이미 한계까지 올린 지금, 2분을 더 단축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대한 빨리 오르빌을 잡고, 라이의 진화에 대한 단서를 얻어내야겠어. 만약 라이를 진화시킬 수 있다면 25분 컷도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겠지.’
원래도 의욕적이었지만, 약간의 동기부여까지 더 생기자 진성의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 * *
“세리아, 블루와이번은 레벨 좀 많이 올렸어?”
“음… 이제 90레벨 됐어요. 제법 빨리 올렸죠? 헤헤….”
“그러네. 지난번에 내가 준 아이템들은 다 착용하고 있지?”
“그럼요! 얼마 전에는 통솔력 무지 많이 올려주는 영웅등급 반지도 하나 얻었어요.”
세리아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얻은 반지를 보여주었다.
‘어…? 이거 뭐야. 엄청나게 좋잖아!’
이안은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 그래 정말 좋네. 통솔력이 15%나 올라가다니….”
물론 이안이 끼고 있는 결혼반지가 더 좋은 아이템이기는 했지만, 반지는 양 손에 하나씩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리아의 반지도 탐이 났다.
‘참아야 하느니….’
영주씩이나 되어서 가신의 아이템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
이안의 속도 모르는 순진한 세리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맞죠, 맞죠! 역시 좋은 아이템이 맞았다니까!”
그리고 이안의 반지가 눈에 들어온 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그런데 영주님 쓰고 계신 반지는 뭐예요? 엄청나게 예쁘잖아! 아이템 이름이 뭐예요?”
이안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이거… 그 뭐였더라, 숲의 결혼반지 였던가….”
결혼반지라는 말에 세리아의 두 눈이 게슴츠레 해 졌다.
“결혼반지요? 영주님… 아직 결혼 안 하신 걸로 아는데…?!”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는 세리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은 등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 그게… 그냥 좋은 아이템이여서 끼고 있는 거랄까…?”
던전에 들어가기 전.
이안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계속해서 재잘대는 세리아를 보며 다른 가신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세리아님이 원래 저런 면이 있으셨나…?”
“글쎄요, 저도 영지전 이후로 이렇게 영주님까지 함께 사냥하는 건 처음인지라….”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기 전, 잠시동안 실랑이가 있었지만, 던전에 입장하자 이안의 눈빛 부터가 달라졌다.
그리고 던전에서의 사냥은 무척이나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고레벨대의 던전이 아니었기 때문.
던전이 발견된 지역이 북부대륙에서 크게 깊숙한 곳이 아닌, 로터스 영지의 근방이었기에 그런듯 했다.
등장 몬스터들은 이안 혼자서 사냥해도 아무 어려움이 없을 만한 110레벨대의 스노우가고일들.
게다가 가신들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세리아! 희귀등급 이상은 죽이면 안 돼!”
“넵!”
수많은 스노우 가고일들 사이에는 드문드문 한 마리씩 청백색의 외피를 가진 가고일이 등장했다.
그것은 ‘프로즌 가고일’ 이라는 이름의 몬스터였는데, 프로즌 가고일은 희귀등급의 몬스터였기 때문에 이안이 상위등급의 영혼구슬을 만들기 위한 좋은 재료였다.
“말라임.”
“예 영주님!”
“넌 아예 앞서 이동하면서 프로즌 가고일이 있는 위치 좀 미리 찾아 줘.”
“알겠습니다!.”
사냥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이안의 파티는 점점 더 체계적이고 빠르게 던전을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이 넘도록,
던전에서의 사냥은 계속되었다.
* * *
“후… 어디보자. 영혼구슬이 몇 개나 모였지?”
이안이 인벤토리를 열자, 이틀간 노가다의 흔적들이 한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음, 백색 영혼구슬 58개, 청색 영혼구슬 16개. 녹색 영혼구슬이 3개네.”
이안의 끔찍한 한붓그리기 실력만 아니라면, 남은 소환수들의 아이템을 충분히 다 맞출 수 있을만한 양의 영혼구슬!
그런데 이안은 며칠 전과는 다르게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이안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후후, 사람은 역시 머리를 써야 해.’
이안은 실실 웃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안 : 혹시 길드원 분들 중에 디자인과 나오신 분 계신가요?
피올란 : 네? 디자인과는 왜요?
헤르스 : 뭐냐. 디자인과는 또 왜 찾아.
이안 : 아 다른 게 아니고. 이제 우리 길드도 제법 상위권으로 올라왔는데 길드마크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디자인과 나오신 분이 계시면 길드마크 의뢰 좀 하려고 했지.
카윈 : 오오…! 이안 형!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나도 그렇지 않아도 카일란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길드마크 달고 있는 게 좀 거슬렸었거든.
피올란 :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우리 길드마크가 아직도 기본 제공하는 다이아모양 마크였군요.
:
:
미샬 : 저, 이안님. 제가 디자인과출신이기는 한데….
이안 : 오오! 미샬님, 정말요?
헤르스 : 오옷! 디자인과출신이셨어요 미샬님?
카윈 : 미샬님 재능기부 고고!
이안 : 아무리 길드원이셔도 기부는 좀 그러니까… 멋지게 디자인해 주시면 제가 얼마전에 얻은 영웅등급 마법사 전용 로브 하나 드릴게요.
마샬 : 오! 정말요?
이안 :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좀 멋지게 디자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샬 : 맡겨만 주세요!
그렇게 이안은 마샬로부터 얻은 길드마크를 앞으로 자신의 부적과 주술문양에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조금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로브를 선물로 드렸으니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친 이안은 길드창을 열어 길드마크를 시야 상단에 띄워 놓았다.
‘크으… 역시 디자인과는 다르다니까?’
이안의 소환수인 핀을 모티브로 그린 황금빛 독수리 문양은, 모든 길드원들의 마음에 쏙 드는 멋진 형태였다.
루스펠 제국을 상징하는 문양도 그리핀이기는 했지만, 루스펠의 문양은 그리핀의 몸 전체가 그려진 문양이었고, 로터스 길드의 문양은 허공을 향해 부리를 치켜든 핀의 머리를 확대해 그린 뒤, 심플하게 바꾼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안은 문양의 심플함이 마음에 들었다.
‘복잡했으면 따라그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이안은 비장한 표정으로 한지를 꺼내어 일단 문양을 보고 베끼는 연습을 시작했다.
“후….”
그렇게 삼십분 정도를 연습하자,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이안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 생산직업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이안은 새삼 고급 5레벨까지나 요리의 숙련도를 올린 하린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래도 이정도면 실패는 뜨지 않겠지 이제?”
조금 엉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안이 며칠 전 그렸던 부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
이안은 이쯤에서 타협을 하고는 아이템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성공! / 합성부적(이름변경가능)을 제작하셨습니다! - 등급 : 일반]
[대성공! / 합성부적(이름변경가능)을 제작하셨습니다! - 등급 : 희귀]
[성공! / 합성주술문양(이름변경가능)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등급 : 일반]
:
:
그리고 결과는 이안이 생각했던 수준 이상이었다.
“으하핫! 단 한 개도 실패하지 않았다니…!”
예술점수가 부족하여 능력치가 조금 떨어지는 부적은 몇 개 있었지만, 최소한 실패해서 영혼구슬을 날려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던 것!
게다가 몇 개는 ‘대성공’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르기도 했으니, 이안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어디 한번 대성공한 아이템 구경 좀 해볼까?’
이안은 아이템의 정보를 띄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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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성부적(이름 변경 가능) -
분류 - 부적(Charm)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소환수’에 한해 착용가능.
내구도 - 55/55
옵션 - 공격력 + 15% (+5%)
민첩성 + 12% (+3%)
생명력 재생 + 2% (+0.5%)
* 매 공격시마다 피해량의 3%를 생명력으로 회복한다.
초보 역술가 ‘이안’에 의해 제작된 부적이다.
멋들어진 그리핀의 기상이 느껴지는 훌륭한 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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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이안은 감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만들었던 부적과는 정말 비교도 안 되게 옵션이 좋은 것이었다.
게다가 ‘대성공’의 효과 때문인지, 백색의 영혼구슬들을 재료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희귀’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되었다.
‘마샬님, 감사합니다…!’
정보창 마지막에 쓰여 있는 ‘훌륭한 부적’ 이라는 말이 그의 심금을 울렸다.
‘음… 일반등급의 아이템은 옵션이 두개 붙어있었는데, 희귀등급의 아이템은 옵션이 세개씩 붙네? 밑에 추가로 고유능력도 하나 생겼고….’
열정적으로 제작에 열을 올리며, 일반등급의 영혼구슬을 전부 다 소모한 이안은 다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몇 개 없는 희귀등급의 구슬들을 꺼내어 들었다.
‘이 정도 연습했으면 이제 상등급 구슬들을 좀 써 봐도 되겠지?’
“후우…!”
심호흡을 한번 한 이안은 온 정신을 붓 끝에 집중하여 문양을 그려 내려갔다.
50개가 넘었던 백색의 영혼구슬과는 달리, 청색의 영혼구슬은 16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금방 모든 구슬을 소모하여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실패는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대성공’도 한번 띄우는데 성공했다.
‘이거 제작도 생각보다 재밌는데?’
며칠 전과 달리 잘 되기 시작하자, 흥이 난 이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만들어진 아이템들의 성능을 확인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이안은 중얼거리며 던전에서 단 세 개밖에 구하지 못한 녹색의 영혼구슬들을 꺼내었다.
‘대성공… 가잣!’
붓을 든 이안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청색의 영혼구슬로 만들어진 아이템들 중 대성공을 띄운 아이템이 ‘유일’등급으로 제작되었으니, 녹색의 영혼구슬로 만들어진 아이템은 ‘영웅’등급으로 제작될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마치 복권의 마지막 숫자 하나를 확인할 때에 비견될 만한 엄청난 긴장감!
이안은 마른침을 한 차례 삼킨 뒤, 흰 한지 위에 천천히 문양을 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성공! / 합성주술문양(이름변경가능)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등급 : 영웅]
[숙련도에 비해 뛰어난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여 ‘제작’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영웅 등급의 주술문양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여 ‘초급 주술문양 제작술 lv1’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초급 주술문양 제작술의 레벨이 lv2로 상승했습니다.]
이안은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든 채, 함박웃음을 지었다.
“으하핫! 영웅등급이라니…!!”
그리고 잠시 후.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동일한 문양을 계속해서 연마하여, ‘장인정신’이 발동합니다.]
[‘영매사’클래스의 특수스킬 ‘영혼감응’을 획득했습니다.]
[해당 문양이 ‘고유문양’으로 등록됩니다. (문양등급 : 일반)]
[‘고유문양’을 연마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문양의 이름을 정하십시오.]
< (5). 초보 역술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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