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올리버스 해안마을 -3 >
* * *
“아니 뭐 이런 슈퍼 노가다가 다 있어…?”
기분 좋게 생산직업 전직 퀘스트를 시작했던 이안은 온데 간데 없었다.
어느새 퀭해진 눈으로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 이안만이 남아있을 뿐!
아니, 사냥이라기 보단 무한 포획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난 머리장식 덕분에 포획에 제한이 없어서 다행이지. 일반 소환술사였으면 통솔력 가득 찰 때마다 계속 마을에 왔다 갔다 해야 했을 거 아냐?’
전직 퀘스트의 첫 번째 내용은, 백색의 영혼구슬 100개를 모으는 작업이었다.
이 백색의 영혼구슬은 일반등급의 몬스터를 포획해서 담천에게 가져가면 담천이 영혼구슬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었는데, 아무리 흔해빠진 일반등급의 몬스터라 하더라도 100마리를 잡으려니 등골이 휘는 중이었다.
게다가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포획해 올수록 좋다고 하니, 이안의 성격상 낮은 레벨의 몬스터들을 포획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안이 포획중인 몬스터들은 올리버스 마을 주변에 서식하는 120레벨 초반대의 북부몬스터들!
단순히 사냥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고레벨의 몬스터들을 포획하고 있었으니, 이야말로 엄청난 노가다가 아닐 수 없었다.
“포획!”
[‘아이스 트롤’을 포획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안은 자신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스트롤을 보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후… 이제 얼추 다 된 건가…?”
이안은 소환수 목록을 열어 포획한 몬스터들을 하나씩 세어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노가다에 자신이 있는 이안으로서도 다시는 하고싶지 않을 만큼 고된 작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그냥 아무 몬스터나 잡아도 되는 건데 내가 사서 고생한 건 아니겠지…?’
이안은 왠지 모르게 엄습하는 불안감을 뒤로 한 채 걸음을 돌렸다.
“자 이제 돌아가 볼까?”
이안은 귀환석을 사용해 올리버스 마을로 돌아갔다.
그래도 노가다가 끝나고 나니 뿌듯한 기분은 들었다.
‘그래, 이 보람찬 기분 때문에 노가다가 즐거운 거지.’
이안은 자기합리화를 통해, 애써 지친 심신을 위로한 뒤 담천을 찾아갔다.
그리고 돌아온 이안을 발견한 담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이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예?”
‘아니, 이것보다 더 빨리 어떻게 하라는 거야? 100마리 잡는 데, 이틀 걸렸으면 빨리 한 거지!’
하지만 그것은 이안의 오해였다.
담천은 이안이 포획에 제한을 없애주는 아티펙트를 가진 줄 몰랐기 때문에, 많아야 한 5~6마리 정도 잡은 뒤 돌아올 줄 알았던 것.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몇 마리나 포획해 왔나?”
“몇 마리라뇨, 당연히 100마리 포획해 왔죠.”
“…?”
이안은 일단 소환되어있던 라이와 뿍뿍이, 그리고 핀을 전부 소환해제 해 아공간으로 보냈다.
그리고 방금 잡아온 북부지역의 몬스터들을 차례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스트롤’ 소환수를 소환하셨습니다.]
[‘예티’ 소환수를 소환하셨습니다.]
:
:
[통솔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소환수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20마리정도 꺼내자 통솔력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떴고, 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통솔력이 무척이나 높군. 12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을 스무 마리나 포획할 수 있다니…. 이러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
말을 마친 담천은 이안이 꺼내어 놓은 몬스터들의 영혼을 하나씩 빨아들여 백색의 영혼구슬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담천이 한 마리를 없앨 때 마다 한 마리씩 계속해서 소환했다.
“허허…?”
이안의 손에서 계속 새로운 소환수가 소환되자, 눈이 휘둥그래진 담천은 무언가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지만 이안은 귀찮은 관계로 대충 둘러대었다.
“제가 아티펙트가 하나 있어서 포획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 그렇군.”
30분 정도가 지나자, 이안이 포획해 온 모든 몬스터들이 영혼구슬로 변해 담천의 바구니 안에 담겼다.
작업이 끝나자 담천은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훌륭해. 무척이나 상질의 영혼들이야. 이것들이라면 제법 괜찮은 부적을 만들 수 있겠어.”
담천의 말과 함께,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백색 영혼구슬 모으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영혼봉인’ 스킬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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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봉인 -
분류 - 액티브 스킬
스킬레벨 - lv 0
숙련도 - 0%
마력소모 - 없음
포획한 소환수의 영혼을 봉인시켜 ‘영혼구슬’로 만듭니다.
재료가 되는 소환수의 등급에 따라 영혼구슬의 색깔이 결정되며, 능력치에 따라 구슬에 담긴 마력양이 결정됩니다.
* 한번 구슬로 만든 소환수는 복원할 수 없습니다.
* 영혼구슬은 역술가의 모든 생산스킬에 기본 재료가 됩니다.
* ‘영혼강화’ 스킬을 이용하여 구슬을 더 높은 등급으로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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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정보를 다 읽은 이안은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희귀등급이나 유일등급의 몬스터를 봉인하면 녹색이나 청색의 구슬이 나온다는 건가? 영혼강화 스킬은 또 뭐야. 이제 알려 주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담천의 말이 이어졌다.
“자, 이제 영혼봉인을 하는 방법을 깨달았을 테니, 영혼강화에 대해 알려 주겠네.”
“네.”
담천의 말이 이어졌다.
“내 손을 잘 보시게. 두 번은 안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말을 마친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손끝에는 하얀 빛이 엷게 어려 있었다.
이안의 시선이 담천의 양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뭐 하는 거지?’
담천의 손이 움직인 자리에 남은 빛 무리는 복잡한 문양을 그리며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문양이 완성되자, 문양의 다섯 군데의 모서리에 영혼의 구슬들이 빨려 들어가듯 박혔다.
‘설마 내가 이걸 막 직접 그리고 해야 되는 건 아니겠지…?’
어릴 적부터 손재주와는 인연이 없었던 이안.
고등학교 미술시간에도 그림만 그리면 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창작물을 탄생시키곤 했던 그가 이렇게 복잡한 문양을 그대로 그려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에게, 어느새 영혼강화를 마친 담천이 다가왔다.
“어떤가. 한번 해보겠나? 물론 쉽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야.”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그 복잡한 걸 대체 어떻게 재현하라는 거야? 정말… 1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안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손 끝에 새하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리고 마치 황제의 앞에서 작위를 받았을 때의 상황처럼, 자신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의 손은 방금 전 담천이 보여줬던 그 문양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그제야 이안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 다행이야. 퀘스트 중도 포기할 뻔 했네.’
어찌 되었든,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이안의 손은 멋들어지게 문양을 완성시켰고, 그것을 지켜본 담천은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허허… 이렇게 바로 해 낼 줄이야. 정말 놀랍군!”
그리고 이안의 눈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강화문양 그리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메시지를 본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한것도 없는데 이번엔….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리고 스킬습득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혼강화’ 스킬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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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강화 -
분류 - 액티브 스킬
스킬레벨 - lv 0
숙련도 - 0%
마력소모 - 없음
두 개 이상, 다섯 개 이하의 영혼구슬을 조합하여 더 높은 단계의 영혼구슬로 강화시킵니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강화에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며, 더 높은 등급과 영혼마력을 가진 영혼구슬이 탄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 강화에 실패할 시, 사용된 모든 영혼구슬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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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안의 손에 방금 만들어진 강화에 성공한 영혼구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안은 신기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오… 하얀 구슬들이었는데, 강화했더니 청색 구슬로 바뀌었네?’
등급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리라.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구슬을 살피는 이안을 향해, 담천이 뿌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고했네, 이안. 자네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난 소환술사였어.”
반면 이안은 생각보다 전직 퀘스트가 쉽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포획 노가다는 절대 쉽지 않았지만 말이지….’
“감사합니다 담천님. 덕분에 훌륭한 능력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내가 더 고맙구만.”
“이제 다음엔 뭘 해야하죠?”
의욕 넘치는 이안의 모습에, 담천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영매사가 되기 위한 기본은 모두 갖춰졌다네. 축하하네, 이안. 자네는 영매사가 될 자격이 있어.”
그리고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최초로 생산직업 ‘역술가(영매사)’로의 전직에 성공하셨습니다.]
[새로운 능력치, ‘손재주’가 생성됩니다.]
[새로운 능력치, ‘운’이 생성됩니다.]
[스킬창 ‘초급 부적 제작술 lv1(숙련도 0%)이’ 생성됩니다.]
[스킬창 ‘초급 주술문양 제작술 lv1(숙련도 0%)이’ 생성됩니다.]
[기본 액티브 스킬 ‘제작’를 배웠습니다.]
[숨겨진 직업 ‘영매사’를 발견하여 ‘손재주’와 ‘운’능력치가 30씩 증가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며, 이안은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캬, 아직 뭔진 잘 모르겠지만… 뭐가 막 생기는 걸 보니까 기분은 좋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루스펠 제국과 카이몬 제국에 ‘역술가’로 전직할 수 있는 직업 길드가 만들어집니다.]
[콜로나르 대륙의 모든 소환술사들이 당신을 찬양합니다.]
[명성을 100000만큼 획득합니다.]
[이제부터 필드에서 몬스터를 사냥할 시 소환수 전용 아이템인 ‘부적’과 ‘주술문양’이 드랍 됩니다.]
“크으….”
이안은 앞에 담천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감탄사를 터뜨렸다.
최초발견 메시지와 보상이 뜰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뭔가 카일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만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
행복한 표정으로 새로 생긴 스킬창과, 직업 관련 능력치들을 확인하고 있는 이안을 향해, 담천이 입을 열었다.
“뛰어난 영매사가 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하다네. 실력이 좋아질수록 더욱 높은 등급의 부적과 주술문양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인내하고 정진하도록 하시게.”
이안에게는 장황한 그의 말이 단 한마디로 압축되어 들렸다.
‘그러니까 노가다 열심히 하라는 거 아냐.’
이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가다… 아니 노력과 인내 하면 또 제가 자신 있죠. 걱정 마세요.”
< (4). 올리버스 해안마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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