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올리버스 해안마을 -2 >
* * *
“그러니까, 그리퍼님의 쌍둥이 형… 이시라는 거죠?”
“그렇다네. 헐헐. 내가 뭐하러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안은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리퍼는 많이 쳐줘야 50대 정도로밖에 안 보였는데… 이 할아버지는 거의 신선 수준이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쌍둥이라기엔 외모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너무 심각해 보였던 것.
그리퍼는 미중년 같은 이미지였다면, 이카엘의 외모는, 허리까지 기다랗게 늘어뜨린 흰 수염에 성성한 백발을 가진, 꼭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산신령같은 느낌이었다.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퍼님에 비해 좀 많이… 노안이시네요….”
이안의 말에 이카엘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 놈이야 차원의 마도사가 아닌가. 시간을 마음대로 쥐고 주무를 수 있으니 세월의 영향을 덜 받은 게지.”
“아….”
그제야 이안은 납득이 되었다.
‘어쩐지…. 뭔가 이유가 있긴 하네’
이안과 이카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리퍼와의 친분이 이안에게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퍼 덕에 이카엘의 호감도를 올리기가 엄청 수월하네. 의외의 소득이야.’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 또한 운명을 거스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제법 오랜 세월을 살 순 있네. 하지만…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더군.”
“그렇군요. 모든 이들이 바라 마지 않는 대단한 능력 아닙니까.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힘 말이죠.”
이안의 아부에 이카엘이 피식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그에 걸맞는 무게를 가진 사명을 가졌으니… 꼭 좋은 것만도 아니라네.”
이카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그의 물음에, 이안은 블러디 펜리르 샬로스를 만났던 일과, 그에게 받은 부탁에 대해 재빨리 설명했다.
잠깐동안의 설명이 끝나자, 이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했다.
“그러니까… 샬로스가 해방되었단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르빌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는 게지?”
“그렇죠.”
“흠….”
그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은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어.”
“네?”
“샬로스를 해방시켜준 것 말이야. 그는 이 마을의 은인이며, 오랜 나의 지기 이기도 했다네.”
이카엘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자, 이안도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르빌의 해방이라….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힌 샬로스를 상대로 이긴 자네라면 오르빌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이카엘은 샬로스와 오르빌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퀘스트와 관련된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안은 더욱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들었다.
“사실 샬로스와 오르빌은, 오래 전 이 마을을 어둠의 주술사로부터 구해준 영웅이라네.”
이야기는 제법 길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이 올리버스 마을에 의문의 유령선 한 대가 정박한 일이 있었다.
유령선에는 수십이 넘는 네크로멘서들과 어둠의 주술사들이 탑승해 있었고, 그들은 마을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혼자의 힘만으로 마을을 지키는데 실패한 이카엘은, 포를라스 고원의 수호자였던 두 펜리르인 샬로스와 오르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올리버스 마을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그들은 흔쾌히 이카엘을 도와 마을을 지켜 주었다.
그런데 어둠의 주술사들의 수장이 죽기 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두 펜리르에게 영혼을 속박하는 저주를 걸었고, 그들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이다.
샬로스와 오르빌은 자신들의 자아가 통제되지 않자, 스스로를 포를라스 고원 깊숙한 곳에 가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성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
그리고 그렇게 지금까지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오르빌은 샬로스보다 더 강하다네. 만약 그를 이길 자신이 없다면 그가 있는 곳을 알려줄 수 없어.”
그에 이안은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샬로스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했었는데, 오르빌이 그보다 더 강력하다니 걱정된 탓이었다.
‘그래. 뭐 S급 퀘스트가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카엘은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오르빌의 봉인을 풀었는데, 자네가 그를 이기지 못하고, 광기에 휩싸인 그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면 아마 올리버스 마을부터 초토화가 될 거야.”
“그렇군요.”
“난 분명 그가 갇혀있는 곳을 알고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자네에게 선뜻 그 위치를 알려줄 수 없는 걸세.”
이카엘에게는 오랜 지기인 오르빌의 해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마을 사람들의 안위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이안이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하면 절 믿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제가 오르빌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을까요?”
“흠….”
이카엘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자네가 샬로스를 이길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은 알았으니… 자네를 조금만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만 있다면 내가 안심을 할 수 있겠는데….”
그리고 돌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자네 소환술사라 했지?”
“네. 그런데요…?”
“마침 얼마 전, 교역선을 통해 바다 건너 동방의 대륙에서 소환술에 능한 고인이 한 분 오셨다네.”
“오…?”
그 말을 들은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되었다.
‘동방의 대륙? 교역선? 혹시 다음 달에 한다던 신규 업데이트와 관련이 있는 건가?’
이안의 표정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뭔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환술사의 특수한 능력이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 찾아가서 그 신비한 능력을 좀 배운다면, 내가 자네를 믿고 오르빌이 봉인되어있는 곳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카엘은 길다란 자신의 수염을 한번 쓸어내리며 이안을 응시했다.
“어떤가, 그분은 지금 촌장님 댁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것이네. 한번 찾아가 보겠는가?”
물론 이안은 한 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퀘스트는 무조건 할 생각 이었는데다, 새로운 소환술사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네.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이카엘도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좋아, 좋아. 고맙네. 그 분의 성함은 ‘담천’일세. 그 분께 가서 내가 보냈다고 말씀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도와주실 거야.”
* * *
올리버스 마을의 촌장집은 마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촌장집 안에는 제법 여럿의 NPC들이 있었지만, 이안은 이카엘이 말한 담천이 누군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동방의 대륙에서 넘어왔다더니… 무슨 개량한복 같은 걸 입고있네…?’
카일란 세계관 안에서 동방의 대륙은, 실제 동양을 모티브로 하는 듯 했다.
게다가 카일란의 개발사인 LB소프트가 한국 회사여서 그런지,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복장을 한 NPC였다.
이안은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갔다.
“담천님… 이신가요?”
창가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창 밖을 응시하던 그는, 이안의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소만. 그대는 누구신지?”
이안은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 저는 ‘이안’이라는 소환술사입니다.”
소환술사 라는 말에 담천은 흥미가 동한 듯,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되었다.
“아하… 소환술사셨군. 그런데 내게는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
이안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으 똑같은 말 여러 번 하려니까 좀 귀찮네.’
하지만 라이의 진화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퀘스트였고, 소환술사의 알려지지 않은 능력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정성들여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다행히도 담천은 이안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들어 주었다.
“정말 가여운 영혼들이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고통 받았다니 말이야.”
“그래서 제게 담천님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말을 한 이안은, 이제 퀘스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싶어 그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그의 다음 말을 들은 순간 조금 김이 샐 수 밖에 없었다.
“흠… 그렇다면 내게 이 대륙의 소환술사들의 능력에 대해 들려줄 수 있겠는가? 자네가 가진 능력을 알아야 내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 뭐야 또 설명을 하라고…?’
이안은 조금 귀찮았지만, 충분히 공을 들일 만한 퀘스트였기 때문에 군말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의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기도 했다.
“무, 물론이죠. 그 정도야 뭐….”
이안은 간단하게 자신이 가진 능력들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오, 힘드네…. 차라리 전투를 시켜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이안의 설명을 담천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다 들은 담천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확실히 내가 그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군.”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이안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오, 그렇습니까?”
담천이 고개를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리고 덧붙였다.
“사실 내가 가진 전투능력들 중에는 자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게 없다네.”
여기까지 들은 이안은 실망감에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듣고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정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지.”
“…?”
이안이 그 능력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돌연 커다란 시스템 창이 하나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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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술사 ‘담천’의 능력 전수받기-
* 생산직업(히든) 전직 퀘스트.
동방의 대륙에서 온 소환술사인 담천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가진 능력은 바로 ‘부적’과 ‘주술문양’을 제작하는 능력.
당신이 그에게 능력을 배운다면 부적과 주술문양을 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제작된 부적과 주술문양은 소환수의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줄 것이다.
그에게 자질을 인정받은 뒤, ‘역술가(영매사)’로 전직하자.
퀘스트 난이도 - 알 수 없음
보상 - 역술가(영매사) 로 전직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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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만큼 놀라웠기 때문.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산직업 전직 퀘스트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히든 클래스로!
이안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르쳐만 주신다면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생산직업 전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담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물론 쉽지는 않은 길이네만, 자네처럼 뛰어난 소환술사라면 충분히 배워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 (4). 올리버스 해안마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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