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올리버스 해안마을 -1 >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 역시 이렇게 쉽게 날로 먹을 수 있을 리 없지.”
투덜거리는 그의 옆으로 하린이 다가왔다.
“진성아, 안 들어가고 뭐해?”
그녀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야. 잠깐 뭐좀 생각하느라고.”
이안은 하린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로터스 영지와 올리버스 마을의 군사력을 먼저 비교해 보았다.
날로 먹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이 노다지같은 마을을 점령하고 싶었다.
다른 거대길드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음… 군사력은 별로 차이 안 나네. 마을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병사 숫자에 비해 레벨이 많이 낮아.’
영지의 군사력은 병사들과 전투형NPC들의 전투력을 전부 수치화 시켜서 합산되어 표기된다.
올리버스 마을이 로터스영지보다 병사의 숫자는 두배도 넘게 많았지만, 병사들의 레벨과 등급이 떨어져 전투력이 비슷한 것이었다.
‘군사력 조건은 마음만 먹으면 며칠 내로 충족시킬 수 있는 수치고….’
마지막으로 이안의 시선이 ‘조건3’ 이라고 쓰여 진 메시지를 향했다.
‘해당 마을과의 우호도가 70% 이상이어야 한다… 라….’
우호도를 올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영지 차원에서 교역을 시도해도 되고, 지원을 해주어도 되며, 마을에 있는 NPC들의 퀘스트를 해 주어도 된다.
‘일단 지금 받은 퀘스트 해결하고 생각해야지. 이 퀘스트로도 우호도가 조금은 오를 테니까.’
현재 올리버스 마을의 우호도는 20%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마을의 우호도를 올리는 작업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짐작이 잘 되지 않았다.
‘이것 저것 다 해본 다음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안이 복잡해진 머리속을 정리하는 동안, 두 사람은 올리버스 마을의 잡화상점에 도착했다.
“진성아, 나 잡템좀 정리하고 있을게!”
“응! 알겠어.”
진성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럼 하린이가 아이템 정리하는 동안 아까 얻은 아이템들이나 확인해 볼까?’
이안은 먼저 ‘블러디 펜리르의 목걸이’ 라는 이름의 영웅등급 아이템을 확인했다.
‘오, 이건 딱 암살자용 목걸이네. 제법 비싸게 팔아넘길 수 있겠어.’
훌륭한 아이템의 옵션에 흡족한 표정이 된 이안은, 이번에는 ‘샬로스’로부터 받은 아이템인 블러디 홀의 정보를 확인했다.
---------------------------------------
- 블러디 홀 -
분류 - 부적(Charm)
등급 - 영웅
착용제한 - ‘소환수’에 한해 착용가능.
내구도 - 55/55
옵션 - 모든 전투능력 +35%
모든 고유능력 재사용 대기 시간 -15%
* ‘늑대’ 종족이 착용할 시, 공격력이 추가로 15%만큼 상승한다.
* ‘늑대’ 종족이 착용할 시, 움직임이 30%만큼 빨라진다.
*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랍 되지 않는다.
(최초 1회에 한해 양도할 수 있다.)
블러디 펜리르 샬로스가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떼어 만들어낸 부적이다.
매우 강력한 능력을 품고 있다.
---------------------------------------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이안은 무척이나 놀랐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아이템이었기 때문.
‘정말 소환수 전용 아이템이란 말이야…?’
궁금하다면 지금 곧바로 확인해 보면 될 일.
이안은 곧바로 라이를 소환했다.
“라이 소환!”
아이템 옵션을 읽어본 결과 여지없이 라이를 위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릉- 크르릉-!
소환해제 되어있는 동안 답답했는지, 라이가 이안의 앞으로 다가와 기분 좋게 그로울링 하며 머리를 부볐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착용시켜야 하는 거야?’
일단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블러디 홀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아이템을 사용하듯, 일단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띠링-
[‘블러디 홀’ 아이템을 착용시킬 소환수를 선택해 주십시오.]
시스템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본 이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안은 라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뒤, 아이템을 다시 사용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소환수 ‘라이’에게 ‘블러디 홀’ 아이템을 착용시킵니다. (착용 해제를 하려면, 소환수를 선택한 후 ‘착용해제’ 명령어를 떠올리면 됩니다.)]
그리고 이안의 손에 들려 있던 블러디 홀이 새빨간 빛으로 변하며 허공으로 떠올라 라이의 이마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오호. 이런 방식으로 착용이 되는거구나.”
블러디 홀은 원래 작은 구슬 같은 모양의 아이템이었는데, 라이의 이마에 빨려 들어가더니 특이한 문양의 타투가 되어 새겨졌다.
이안은 라이의 정보창을 열었다.
그리고 변화된 라이의 능력치를 확인한 그는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진짜 좋은데…? 그런데 소환수 전용 아이템은 따로 구할 방법은 없는건가? 경매장에 가면 올려 져 있으려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안에게 하린이 다가왔다.
잡화상점에서 아이템들을 처분하고 정비를 다 마쳤는지, 한결 가벼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성아. 이제 나는 나가봐야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그녀의 말에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 하린아.”
하린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는 무슨. 네가 정말 고생했지.”
그리고 잠시 후.
하린을 보낸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이 이것 저것 많았지만, 일단 샬로스가 얘기했던 ‘이카엘’ 이라는 NPC를 찾을 생각이었다.
“하린이가 나가지 않았으면 혼자 퀘스트를 진행하기는 조금 미안했는데… 마침 잘 됐네.”
샬로스에게서 퀘스트를 받던 자리에 하린이 함께 있기는 했었지만, 하린은 레벨이 낮아서 퀘스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이안은 마을 초입으로 돌아가, 눈에 보이는 NPC들부터 하나 하나 말을 걸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저기, 잘생긴 아저씨!”
“허허, 못 보던 젊은이인데… 사람 보는 눈이 있군. 무슨 일인가?”
“혹시 ‘이카엘’이라는 분을 아시나요?”
“이카엘? 이카엘이라… 글쎄…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
이안은 남작의 작위를 갖고 있는 귀족 신분이었지만, 소속 국가가 없는 마을의 NPC들이어서 그런지, 이안이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럼 없이 정보를 모으기에 편했다.
‘흠… 이 마을에 있기는 한 거겠지?’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자, 이안은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아 좀,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어야지. 마을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잖아!’
그렇게 한 40분여 정도를 돌아다녔을까?
이안은 결국 마을 구석에 있던 한 노인에게서 이카엘 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카엘? 그 분이라면 마을 서쪽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 살고 계신다네.”
이안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마을 서쪽에 오두막이 여러 개 있던데… 혹시 어떤 집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어려울 것 없지. 이카엘님이 살고 계신 오두막은 가장 북쪽에 있는 집이라네.”
“아, 감사합니다!”
노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따라 이안은 마을 서쪽으로 움직였다.
‘저 집인가 보군.’
어렵지 않게 오두막을 찾은 이안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계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이안의 시야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뭐지? 못 들은 건가…?’
이안은 노인을 다시 한번 불렀다.
“저기요, 혹시 이카엘님 이신가요?”
그제야 이안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노인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크흠… 손님이 왔나보군.”
그리고 노인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그리퍼랑 똑같이 생겼잖아!’
* * *
“그러니까… 말하자면 던전 공략왕 이벤트 라고 할 수 있는거네요?”
피올란의 말에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공식 커뮤니티에 있는 공략 게시판 아시죠?”
“네. 당연히 알죠.”
“공략 게시판 하위 그룹에 새로운 게시판을 이벤트 전용으로 하나 만든다고 하더라구요. 거기에 공략글을 올리면 일주일 뒤에 심사를 해서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상품을 지급한대요.”
“상품은 뭔데요?”
“들으면 놀라실 걸요?”
“…?”
헤르스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이번에 LB소프트에서 새로 출시한 신형 캡슐 아시죠?”
“그거야 당연히 알죠. 요즘 티비만 틀면 선전이 나오는데….”
대답한 피올란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에… 그러니까… 설마 상품이…?!”
헤르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이번 이벤트 상품이 바로 그 신형 캡슐이래요. 10등까지 선정해서 준다고 하더라구요.”
얼리어답터들의 후기에 의하면 정말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던 그 캡슐!
가격이 무려 3천만원에 육박함에도 돈이 아깝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카일란 유저들의 꿈의 캡슐이 상품으로 지급된다는 말에 피올란의 두 눈이 반짝였다.
“크… 진짜 그거 가지고 싶었는데….”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이거 개인이 아니라 길드 이름으로 참가해야 하는 이벤트라면서요? 설마 길드원 전원한테 캡슐을 주는 건 아닐 거고….”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요. 당연히 그럴 리는 없죠. 1등 길드에게는 신형캡슐 3개, 그리고 길드원 전원에게 ‘수수께끼 아이템 상자’를 지급한대요. 그리고 순위권에 들어간 길드들은 자동으로 홍보도 될 테구요.”
“와아…! 세 개나요? 그리고 수수께끼 상자라면 지난 이벤트에서 어떤 유저가 전설템 뽑았던 그거?”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
하지만 들떠있던 피올란은 곧 울상이 되었다.
이 정도로 후한 상품이 걸려있으면 정말 너도 나도 달려들어서 이벤트에 참가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가 공략같은 걸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헤르스님은 자신 있으세요?”
헤르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그런 꼼꼼함과 세심함이랑은 좀 거리가 있어서….”
“그럼 어쩌죠…?”
피올란의 물음에 헤르스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영주님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안을 떠올린 피올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 확실히 이안님이라면…!”
“저번에 보셨죠?”
“뭘요?”
“영지 내정 한다고 모든 내정건물 쿨 타임 싹 다 메모해서 정리해 놓은 수첩이요.”
“아… 그거…!”
두 사람은 이안의 메모가 담긴 수첩을 우연치 않게 본 뒤 경악했던 기억이 있었다.
훈련에 들어간 병사들이 생산되는 시간부터, 각 건물들의 건설완료 시간까지 빼곡이 적혀 있던 이안의 노트!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준의 집착이 담긴 노트였다.
헤르스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게 생각해요, 피올란님. 우리에게도 승산이 충분히 있겠죠?”
피올란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리고 의욕적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번에 이안님 돌아오시면 포를란 던전 S등급 클리어 도전하기로 했거든요. 그때 연구하면서 쓰면 될 것 같아요.”
“굿. 좋아요.”
헤르스와 피올란은 굳건히 손을 맞잡았다.
“캡슐 세 개 중 하나는 당연히 이안이 것이 되겠고…. 남은 두 개는 길마와 부길마에게 돌아가면 되는 것이겠죠?”
헤르스의 은근한 물음에 피올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당연하죠.”
“후후… 이제 이안이만 잘 설득하면 되겠군요.”
피올란은 벌써 1등을 기정 사실화한 듯, 행복한 표정이 되었다.
“크으! 신형 캡슐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레이네요.”
그리고 헤르스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그거… 진짜 안에서 막 에어컨도 나오고 그럴까요?”
* * *
< (4). 올리버스 해안마을 -1 > 끝
========================================